인생의 일할을
나는 학교에서 배웠지
아마 그랬을 거야
매 맞고 침묵하는 법과
시기와 질투를 키우는 법
그리고 타인과 나를 끊임없이 비교하는 법과
경멸하는 자를
짐짓 존경하는 법
그중에서 내가 살아가는 데
가장 도움을 준 것은
그런 많은 법들 앞에 내 상상력을
최대한 굴복시키는 법
- <학교에서 배운 것>, 유하
“나 좀 도와줘야겠어.”
2009년 여름 다급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 곽노현 교수였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일을 맡게 되었는데, 위원회에 들어와 도와달라는 얘기였다. 뭔가 시큼하면서도 달달한, 이름 모를 음료수를 꿀꺽한 느낌이랄까? 10년 넘게 활동을 해 오는 동안, 학생인권은 늘 ‘장외 선수’ 처지였다. 썰렁한 잔칫집 풍경마냥 학생인권은 교육정책은 물론 정책을 풀무질하는 교육 운동에서도 즐겨 찾지 않는 문제였다.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이후 약간 훈풍이 부는가 싶은 적도 있었다.
2005년 학생의 두발 자유는 기본권임을 확인하는 결정처럼 몇 가지 의미 있는 기준이 쌓이기 시작했고, 학생인권의 기준을 구체화하기 위한 가이드라인 제정 작업도 시도됐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몸을 사리기 시작한 국가인권위원회는 정권 교체 이후 아예 맛이 가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청에서 조례를 만들겠다니 반가우면서도 가능할까 미심쩍은 마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올 수밖에.
교육청이 나선다고 새로운 길이 열릴까? 1998년 ‘인권 대통령’을 내세웠던 김대중 정권 아래서도 학생인권선언을 만들려던 교육부 시도가 어이없이 백지화됐는데……. 그냥 몇 사람 모여서 보고서 만들어 올리는 걸로 끝나는 건 아닐까? 교육청이 의지를 갖고 밀어붙인다 해도 의회가 설득될까? 무엇보다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진다 해도 저 지랄 맞은 학교가 바뀌기나 할까? 모든 게 미심쩍었다. 그럼에도 내 마음은 수원행 기차에 벌써 오르고 있었다. 서울과 수원을 수십 차례 오가면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일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로부터 1년 반 가량이 지난 지금, 학생인권을 잠재워 온 봉인이 조금씩 풀리고 있다.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세운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여럿 당선됐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가운데, 추석을 얼마 앞두고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도의회를 통과하는 이변이 연출됐다. 서울, 광주, 전북 등지에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 위한 교육청 자문위원회가 출범했다. 서울에서는 조례 제정에 앞서 하반기부터 체벌이 전면 금지됐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일들이 지금 눈앞에 현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 물결이 어디까지 흘러갈 수 있을지, 다다른 곳이 어디일지 짐작하긴 힘들다. 장외 선수였던 학생인권이 장내에 들어서는 순간,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전투가 시작되고 있다. “학교가 혼란에 빠졌다”, “교권이 무너진다”, “애들이 통제되지 않는다”는 아우성에서부터 상위법인 초중등교육법을 손질해 학생인권조례에 제동을 걸려는 묵직한 반격까지 공세가 만만치 않다. 학생인권의 부작용을 과장되게 부풀리고 사건화함으로써 진보 교육감들은 물론 교사 운동, 마침내는 진보와 인권의 가치 자체를 공격하는 일들도 속속 기획되고 있다.
게다가 현장의 준비 없이 밀고 들어온 정책을 탓하는 교사들의 불만도 만만치 않다. 이런 악조건에서 이제 갓 입학한 학교에서 학생인권은 정말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학생인권조례는 교육 현장으로, 사람들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제자리를 잡을 수 있을까? 도대체 학생인권조례가 의미하는 게 무엇이기에 이토록 엄청난 반발이나 걱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일까?
학생인권조례가 던지는 질문들
학생인권조례를 훑어보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 조례에는 학생이 학교 안에서 어떤 권리를 존중받아야 하는지 기준이 담겨 있다. 정기적 인권 실태 조사, 인권 교육 등 학교의 인권 수준을 지속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학교와 교육청이 해야 할 과제가 담겨 있다. 인권을 침해당한 학생들이 권리 회복 절차를 밟을 수 있는 기구로 ‘학생인권옹호관’(일종의 옴부즈퍼슨)도 설치하도록 했다. 조례는 이렇게 단 몇 장의 문서로 끝나지만, 그 안에는 지금까지 학생을 바라보던 관점, ‘학교’ 하면 떠오르는 익숙했던 관행들, 무엇보다 현 교육의 프레임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담겨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시민의 불복종》이라는 책에서 “우리는 국민이기 이전에 사람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마찬가지로 학생인권조례는 “학생은 학생이기 이전에 사람이다”라고 말한다. 소로가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참뜻을 묻고 있듯이, 학생인권조례는 학교에서 민주주의의 참뜻을 묻고 있다. 지금까지 학교생활규정이라는 게 학생의 인권을 자의적으로 침해해 온 문서였다면, 학생인권조례는 그 학교의 자의적 권력 행사에 제동을 거는 문서다. 많은 이들이 교육을 걱정하지만, 학생인권조례는 그동안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폭력들이 진정 교육이란 이름에 걸맞은 것이었는지를 묻고 있다. 학생이 교사를 존경하기보다 두려워하도록 만드는 교육, 체벌·폭언·차별 등 인간적 모멸이 판치는 교육, 거짓 동의와 자백이 강요되는 교육, 격려와 소통은 온데간데없고 강압과 지시만이 지배하는 교육이 과연 누구를 위한 교육이었는가 하는 질문 말이다.
그런데 학생인권조례가 던지는 질문만으로는 학교는 크게 변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좀체 얼굴을 드러내지 않고, 학생을 통제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인식도 뿌리 깊다. 학생인권이 제한되어야 할 이유를 만들기란 너무나 쉽고, 인권에 관한 한 학생도 교사도 미성숙하기는 마찬가지이다. 학생인권조례를 피해 나갈 구멍을 찾는 일도 참으로 쉽다. 경기도 학생인권조례가 수업 시간 중 휴대전화 제한은 가능하나 소지 자체를 금지해서는 안 된다고 하자, 학교 일과 시간 전체를 수업 시간으로 확대 해석하거나 교사의 허락을 받고 사용하도록 규정을 손질하는 움직임이 부산해지고 있다. 체벌이 금지된다고 하자, 상벌점제와 각종 수업 규칙으로 학생을 통제하려는 또 다른 법치의 물결도 일고 있다. 교문지도가 공격받자 똑같은 지도의 공간을 현관으로, 교실로만 옮겨 버리는 일도 일어난다. 이런 상황이라면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돼도 복종을 강요하던 기존의 교육은 기어이 살아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조례 자체가 아니라, 조례를 통해 바꾸고자 했던 현실이 무엇이었는지를 다시 환기하는 일이 아닐까?
많은 이들이 보충수업과 야간 자율학습을 자유롭게 선택하도록 하면 사교육비가 늘면 어쩌나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학교가 끝난 이후에도 학원과 피시방 외에는 갈 곳이 없는 황량한 십대의 삶이어야 하지 않은가? 많은 이들이 체벌이 사라지면 교사가 일부 학생의 폭력적 행동을 제지할 수 없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끊임없이 외부의 ‘통제자’를 불러들이지 않고는 불안해하는 학생들 아닌가? 많은 이들이 학교 안에서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면 질서가 무너지고 학교가 시끄러워질까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낱개로 흩어진 채 변화를 구걸하거나 ‘어차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낙담밖에는 모르는 학생들 아닌가? 많은 이들이 두발 규제를 풀면 수업 분위기가 엉망이 될까 걱정한다. 그러나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두발 규제와 함께 학생들이 통제하는 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기보다 자기가 통제되어야 할 이유를 찾는 데 익숙해지는 것 아닌가? 많은 이들이 학교가 정치에 휩쓸릴까 걱정한다. 그런데 우리가 걱정해야 할 것은 ‘중립’을 가장하면서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는 데 익숙해지고 결국 학교가 독점하고 있는 진실만이 유일한 진실로 남는 것 아닌가?
학생인권조례는 이처럼 많은 질문들을 이끌고 다닌다. 어쩌면 학생인권조례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도 이런 질문들이 낳게 될 변화 아닐까? 모든 학생을 고루 지원하는 교육이 아니라 가혹한 경쟁 시스템 안에 학생들을 집어넣고 될성부른 떡잎만 솎아 내고 있는 교육의 진실이 파헤쳐지는 모습, ‘싹수 노란 떡잎들’이 일찌감치 잘려 나가지 않고 자유네 참여네 하면서 왈왈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것 아닌가? 자유의 공기를 흡입한 학생들이 정말로 성숙해질까 봐, 더 이상 인내하지 않을까 봐, 통제와 폭력에 교육이라는 권위를 부여해 준 독점적인 권력이 무너질까 두려운 것 아닌가?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의 의미
사실 경기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준비되는 과정에서는 이와 같은 질문들이 제대로 던져지지 못했다. 고백하자면 조례 제정 위원으로 참여할 때 가장 큰 관심은 인권 활동가로서 그동안 이야기해 온 원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괜찮은 조례안’을 만드는 데 있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조례 제정 권한을 거머쥔 다른 위원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를 걱정했다. 생활지도부장으로 잔뼈가 굵은 교사 출신 위원들의 마음을 얻고 그들의 불안을 덜어 주기 위해 여러 차례 워크숍과 논의를 거듭하면서 비교적 인권의 원칙에 충실한 조례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 다음으로 가까스로 합의를 본 조례 초안을 교육감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까가 염려됐다. 조례안을 만드는 과정에서 교육 주체들의 의견을 꾸준히 들으려 노력했지만, 교육청이 주최한 간담회와 토론회가 그리 깊이 있는 논의를 할 만한 공간은 못 되었다. 학생참여기획단을 꾸려 이 조례의 주인이 되어야 할 학생들이 관심을 갖고 의견을 낼 수 있도록 했지만, 학교 현장까지 그 흐름은 미치지 못했다. 교육 운동 진영이 자기 운동의 의제로 삼고 적극 뛰어드는 모습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런 가운데 ‘학생인권 정책’이 가져올 파장을 가장 깊이 꿰뚫어 본 이들은 다름 아니라 이 조례를 통해 잃을 게 많은 이들이었다. 학생인권조례가 현실 가능한 정책으로 떠오르자 그들은 조례를 불청객 수준을 넘어 떼강도 취급을 하기 시작했다. 어쩌면 김상곤 교육감을 비롯해 학생인권 정책을 내세웠던 다른 교육감들도 그 정책의 깊은 의미를 몰랐을 수 있고, 그토록 많은 반발이 터져 나올 줄도 예상 못했을 것이다. 그들의 공격을 받으면서 학생인권조례를 만드는 일이 도대체 무얼 하고자 하는 것인지도 투명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잃을 게 많은 이들이 학생인권조례를 공격하는 데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서는 모습은 어쩌면 자연스럽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교사들이 ‘지지하는 척하기’ 내지는 ‘시기상조론’에 여전히 발목 잡혀 있는 현실이 아닐까 싶다. 현장의 준비됨 없이, 교사들의 지지 없이 학생인권조례는 결코 학교에 뿌리내릴 수 없다. 물론 교육청에서 학생인권조례가 만들어지는 과정이 현장과의 충분한 소통이나 준비 단계 없이 이루어졌던 것은 맞다. ‘위로부터 주어진 개혁’의 전형적 한계를 학생인권조례는 분명 갖고 있다. 그러나 교육청이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았다는 푸념에만 머물러 있는 것은 아쉬움을 넘어 위기감까지 들게 만든다. 언제까지 푸념만 하며 한발 뒤로 물러서 있을 것인지 걱정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는 괜찮은 교육감 아래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작품이 아니라, 학생인권 운동의 길다면 긴 역사가 녹아 있는 성과물이다. 그동안 학생인권 운동은 외로웠고 주변부의 목소리였기에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다. 학생인권 운동의 요구가 실현 가능성이 없을 때는 ‘하면 좋지’ 정도의 추상적 지지만 보내다가 이제 그 운동이 중요한 결실을 맺고자 하는 순간 ‘준비부터 하고 나중에’를 이야기하는 태도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동안은 왜 준비하지 못했나? ‘나중’을 이야기하는 것은, 그리고 머뭇거릴 수 있다는 것은 절박하지 않다는 것 아닐까? ‘완벽한 준비’와 ‘조례 이후의 혼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선택이 필요한 것 아닌가?
감옥에 갇힌 마틴 루터 킹은 흑인들의 시민권 보장 주장이 이해는 되지만 시기상조라고 말하는 백인들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누구에게는 시기상조가 누구에게는 오래된 간절함이었을 수 있음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모든 변화에 대한 시도는 시기상조로 다가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분리의 괴로운 고통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 ‘기다리라’고 말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악랄한 폭도가 여러분의 부모에게 함부로 린치를 가하는 것을 볼 때, 증오로 똘똘 뭉친 경찰이 흑인 형제자매를 욕하고 발로 차고 야만스럽게 다루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데도 벌조차 받지 않을 때, 번영하는 사회 한가운데서 숨 막히는 가난으로 허덕이는 2천만 흑인들을 볼 때, ‘백인 전용’, ‘유색인종 전용’이 표시된 지긋지긋한 간판을 매일 보면서 수치심을 느낄 때, 백인들이 여러분을 ‘깜둥이’라 부르고 나이에 상관없이 ‘놈boy’이라고 부를 때 그때 여러분은 우리가 기다리기 어려운 이유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주민발의운동은 성공할 수 있을까?
학생인권조례의 본무대는 조례 제정을 주민발의로 일구어 내고자 선택한 서울이 아닐까 싶다. 서울에서는 3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이 연대체를 꾸려 서울시민 1%의 서명을 받아 학생인권조례를 만들기로 하고 2010년 11월부터 서명운동에 돌입했다. 학생인권운동을 꾸준히 전개해 온 청소년·인권 단체들도 있지만, 이 운동의 의제에 이제 갓 공감하기 시작한 단체들도 함께하고 있다.
주민발의 서명에 주어진 시간은 단 6개월. 이제 불과 1개월 조금 넘는 시간이 남아 있다. 학생을 불신하는 데 익숙해진 사회에서, 경쟁교육의 가치가 하늘을 찌르고 탈락에 대한 공포로 인권을 기꺼이 반납하는 데 익숙해진 교육현실에서 8만 명이 넘는 서울시민의 발의서명을 얻는 일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걸 새삼 깨닫고 있는 중이다. ‘학생도 인간’이라는 소박한 진실과 ‘학생이기에 더욱 풍요로운 권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교육의 역할’이라는 믿음은 ‘애들이 잘못하면 때려서라도 가르쳐야 한다’는 신념과 ‘애들은 아직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의 벽 앞에서 나아갈 길을 가로막히고 있다. 학생이 자유와 참여 속에서 배움의 기쁨을 누릴 수 있는 학교, 감당할 만한 배움과 다양성이 꽃피는 학교, 차이가 낙인과 배제의 이유가 되지 않는 학교, 교사와 학생, 학생과 학생,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와 소통이 복원된 학교. 어쩌면 학생인권조례 운동은 운동마저도 체념하는 데 익숙해진 현실에서 ‘다른 교육’에 대한 열망부터 환기시켜야 하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다.
2010년 6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에서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힘쓰겠다’는 공약을 내건 학생회장 후보가 학교의 탄압으로 징계위기에 놓인 사건이 있었다. 학생인권조례를 언급하지 말라는 교장과 학생부장의 ‘지도’에 따라 후보 연설문을 수정해야만 했던 학생은 양심의 가책을 이기지 못하고 자기에게 일어난 일을 학생들에게 알렸다. 학교는 학생이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교사를 비방했다는 이유로 보복 징계를 하고자 했다. 이 사건은 학생과 학부모의 끈질긴 문제 제기, 주위 단체들의 비판, 교육청의 해결 노력으로 학교가 학생에게 공개 사과하는 것으로 끝을 맺었다. 예전 같았으면 이와 같은 결말은 기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공약으로 내건 학생회장 후보를 만나기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학생인권조례 운동이 비록 좌초하더라도 의미가 있다면, 바로 이런 학생들에게 열망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 아닐까?
학생인권 침해는 학생을 불신하는 데서 출발한다. 이란을 배경으로 한 만화 《페르세폴리스》에서 주인공 마르잔은 말한다. 집을 나서면서 베일은 잘 씌워졌나, 화장이 너무 진한 것은 아닌가, 나를 때리면 어쩌지와 같은 질문을 던지는 사람은 내 생각의 자유는 어디로 갔지, 내 삶은 살 만한 것인가라는 질문은 더 이상 던지지 않게 된다고. 질문을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곳에서 교육이 가능할까? 그렇다면 학생을 침묵시켜 온 ‘학생 지도·통제권’이 교사의 권리였는지, 아니면 지금의 교육체제를 유지시키기 위해 교사에게 주어진 의무였는지를 근본적으로 되물어 보아야 한다. 교사들이 시국선언과 정당 후원 문제로 무더기 징계를 당하고 있는 상황만 보더라도 짐작 가능하다. 학생이 미성숙의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에 그 미성숙한 학생들을 감독해야 할 교사 역시 미성숙을 강요받고 정치적 자유와 같은 중요한 권리마저 박탈당했던 것은 아닌가? 가혹한 경쟁과 훈육 시스템에 학생들이 볼모로 잡혀 있는 사이, 학부모 역시도 자녀를 양육하고 탈락하지 않도록 뒷받침하는 삶에 볼모로 잡힌 것은 아닌가?
소로는 노예제의 문제점을 계속 토론만 하고 있는 한 변화는 없다고, 수만 수천 명이, 아니 단 한 명이라도 노예를 소유하기를 멈출 때 노예제는 폐지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학생은 자신을 노예로 삼고, 교사는 학생과 자신을 노예로 삼고, 학부모도 자녀와 자신을 노예로 삼는 이 악순환을 깨기 위해서는 적어도 우리가 어떤 이유로든 한 인간에게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교사에 대한 학생 폭력, 어떻게 봐야 하나?
그럼에도 최근 ‘기획적’으로 보도되고 있는 학생의 교사 폭력 사건들은 학생인권조례의 암울한 미래를 보여 주는 듯하다.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교사의 참다운 권위는 바로서지 못했다.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수업 분위기가 이미 엉망이었다. 학생인권조례 이전에도 마음 둘 곳 하나 없고 폭력에 멍든 학생들이 ‘핫 버튼Hot Button’을 누르는 교사에게 ‘대드는’ 일들은 비일비재했다. 그럼에도 그 모든 현상의 원인이 학생인권조례에 있다는 식으로 몰아가는 보도들이 줄을 잇는다. 학생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맥락을 살펴보지 않고 ‘교권’만을 내세워 엄벌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몰고 올 결과가 무엇일지 암담하다. 교사가 학생을 대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너무도 관대하면서, 학생의 행동에 대해서는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요란하다. 이런 불공평한 대접을 받는 학생들이 과연 교사를 진심으로 신뢰할 수 있을까?
‘어차피 우리 못 때린다’면서 교사의 정당한 교육적 요청도 거부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는 하소연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학생들의 이런 반응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학생들이 맞지 않으면 교사가 지시한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야말로 체벌이 끝나야 할 이유를 보여 주는 것은 아닌가? ‘교사가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가 아니라 ‘때리냐 때리지 않느냐’가 판단의 기준이 될 때, 그곳에서 교육은 가능한가? 사실 이런 현상들은 ‘체벌의 시대, 폭력 교육의 시대를 보내는 길목에서 나타나는 끝물 장면’이지, ‘학생인권 시대의 서막에서 나타나는 장면’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행의 시대에는 장면들이 겹쳐 떠오르기 때문에 둘을 구분해 내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생각의 혼돈을 비집고 ‘기존 교육으로의 회귀’를 외치는 이들이 맹렬히 일어서고 있다. 학생이 생각을 갖고 질문을 던지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싫은 학교가 교사가 생각을 갖고 질문을 던지고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은 과연 반길까?
울산에서 만난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교장이 점심시간까지 반에 들어와 머리 잡고 자습하라고 야단치고 간다고 불평하기에 교장실 가서 항의하라고 했더니 애들이 못하겠대요.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항의조차 할 수 없도록 만드는 게 지금 교육이 하는 짓이구나 싶었죠. 그래서 교장 선생님이 들어오는 시간, 들어올 때마다 했던 말들을 꼬박꼬박 적어 두라고 했지요. 교장실에 들어가 우리 애들이 다 기록하고 있으니 해 볼 테면 해 보시라고 그랬죠. 그 다음부터 교장이 우리 반은 건드리지 않더군요.” 서울의 한 청소년은 말했다. “학생인권조례를 읽어 보니 괜히 눈물이 나대요. 학생인권 주장이 동물과 인간의 경계에서 최소한의 것을 이야기하는 거구나 싶어서……. 그러고 나니 조례가 말하는 기준조차 지켜지지 않는 게 과연 교육이라고 할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얼마 전 밀양에서 만난 한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학생인권으로 인한 가장 비싼 부작용도 가장 싼 폭력의 교육보다는 낫다.” 그래, 이런 이야기를 하는 빛나는 사람들이 곳곳에서 고군분투하고 있으니 학생인권조례 운동, 아직은 포기하기 이를 때가 아닌가 싶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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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경내 인권을 만나고 제 삶이 충만해졌습니다. 인권과 교육의 만남, 인권과 청소년의 만남이 제가 주로 영감을 받고 저를 달뜨게도 만드는 주제입니다. ‘인권교육센터 들’에서 주로 둥지를 틀고 있고, 최근에는 학생인권조례 제정 일에 발품을 팔러 다닙니다. 쓴 책으로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가 있고, 함께 쓴 책은 《대한민국 1%》, 《뚝딱뚝딱 인권짓기》 등이 있습니다.
* 이 글은 <오늘의 교육> 창간준비호(1,2월)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