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뜻대로라면 성과연봉제는 2011년 바로 올해부터 시작된다. 이미 공공기관의 이사회들은 대부분 정부의 지침대로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기로 의결을 해둔 상태이다. 간부직을 대상으로 우선 적용하라고 권고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권고일 뿐이다. 간부직으로 일단 한정한 것도 2010년 상반기에 공공기관 노동조합들이 하나로 뭉쳐 성과연봉제에 저항하자 슬그머니 우회로를 찾은 것뿐이다. 못난 사용자들은 하나씩 둘씩 전 직원에 대한 성과연봉제를 도입함으로써 정부의 품 안으로 기어들 기미를 보이고 있다.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전쟁인 바에야, 본격적으로 투쟁하기에 앞서서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성과연봉제를 구석구석 살펴보자. 정부의 지침대로 했을 경우에 성과연봉제가 어떤 파괴력과 폐해를 갖고 있는지 집중적으로 분석해 보기로 한다.
▲ 정부 출연연구기관과 교과부 산하 대구경북과학기술원 등 6개 기관 사용자들이 22일 오후 일제히 단체협약을 해지한다고 공공연구노조에 통보, 노조가 투쟁을 선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출처: 공공연구노조] |
통제불능의 누적식, 임금교섭이 불가능해진다
기본연봉이란 연간 통상임금에서 성과연봉을 제외한 임금이다. 기존에 연봉을 구성하던 정액급, 연구활동비, 중식비, 차량보조비 등을 모두 통합해서 총연봉의 70-80% 수준으로 하라는 것이 정부의 지침이다. 기본연봉은 직급별 호봉 또는 연봉표를 폐지하고 직급별 임금범위로 관리하며, 근속년수와 연동한 자동승급 등을 지양하고 평가를 통해서 차등인상하라고 한다. 기본연봉의 차등인상도 문제이지만 더욱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작년에 평가한 결과로 올해 기본연봉이 결정되고 올해 기본연봉을 기준으로 내년도 임금이 결정되도록 하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누적식이다. 직급별 임금폭은 상위직급으로 갈수록 확대되고 차등폭도 점진적으로 커지도록 할 것이다.
누적식을 도입할 경우 3년간 기본연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계산해 보았다(표 1). 임금인상률은 3±2%(D 1%, C 2%, B 3%, A 4%, S 5%)로 5단계로 차등을 두었고, 각 배분율은 S/D 10%, A/C 20%, B 40%로 했다. 이렇게 상대평가를 통해서 5등급으로 평가하면 계산상으로는 1년차 5등급, 2년차 25(=5×5)등급, 3년차 125(5×5×5)등급으로 나뉘지만 결과적으로 동일한 평가등급(AB=BA, ABC=CBA=CAB 등)끼리 묶으면 2년차 15등급, 3년차 35등급으로 축약된다. 똑같은 경력 똑같은 임금에서 시작하더라도 불과 3년 만에 35개의 다른 기본연봉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것은 완전연봉제이다. 이렇게 되면 임금에 대한 통제권은 전적으로 사용자에게 귀속된다. 노동조합의 임금교섭권은 철저히 무력화되고 설령 노동자가 개별적으로 연봉협상을 하려고 해도 호봉표, 연봉표가 폐지된 후에는 적정한 비교 기준을 찾을 수도 없다.
사실상 완전연봉제, 임금차등폭은 갈수록 확대된다
<표1>에서 보는 것처럼 임금인상률을 3±2%로 해서 누적식으로 적용하게 되면 3년만에 기본연봉 최고와 최저의 인상률 격차는 12.73%(SSS 15.76%, DDD 3.03%)에 이른다. <표2>는 임금인상률이 같아도 차등률에 따라 변화되는 최고-최저 기본연봉의 격차를 보여주고 있다.
만약에 임금이 동결되는 경우에도 차등폭을 유지한다면 일부(C, D등급)는 여지없이 삭감을 감수해야 한다. 삭감이 거듭되면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간부직과 그렇지 않은 비간부직 사이에 임금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기존 직원과 경력이 전혀 없는 신규 직원 사이에도 임금역전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기본연봉의 양극화, 중간등급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남보다 열심히 일해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면 모르지만 상대평가제도 아래에서 정규분포를 따라가다 보면 중간 등급을 유지하기도 어렵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각 등급별 인원 배분비율에 관한 정부의 지침은 특정등급이 50%를 초과하지 않고 최소 10% 이상으로 상대평가를 하라는 것이다.
다시 <표1>로 돌아가 보자. S와 D 10%, A와 C 20%, B 40%로 배분했을 때, 중간등급은 40%(1년차, B)에서 16%(2년차, BB)로 줄어들고, 3년차에는 6.4%(BBB)로, 4년차에는 2.56%(BBBB)로 계속 축소된다. 그리고 중간등급(B, BB, BBB...)에서 이탈한 사람들은 위 아래로 고루 분산되는 것이 아니라 하위등급으로 갈 확률이 더 높다. 1년차에서 상위등급(S+A)과 하위등급(C+D)이 될 확률은 똑같이 30%였지만, 2년차에서는 상위등급이 될 확률(37%)보다 하위등급으로 추락할 확률(47%)이 10%나 더 높고, 3년차에서는 상위등급으로 갈 확률(39.6%)보다 하위등급으로 갈 확률(54%)이 14.4%가 더 높다. 3년만에 전체 인원의 절반이 평균보다 더 낮은 등급으로 가게 된다. 쉽게 말해서 누적식 기본연봉은 중산층을 붕괴시키고 연봉의 양극화를 촉진한다.
상위등급 쟁탈전, 한번 뒤처지면 회복하기 힘들다
가령 3년간의 평가가 S->B->D와 D->B->S를 비교해 보자. 기본연봉 인상률은 둘 다 같다. 그러나 3년간의 총연봉은 다르다. 3년간 평가등급 S->B->D와 D->B->S는 현행 임금체계에서는 0.05% 차이밖에 없지만 누적식 기본연봉을 도입하면 임금인상률 3±2%에서 3년간 연봉총액에서 2.43%(5,422,277원)나 차이가 발생하게 된다. <표3>은 기본연봉 4,900만원(총연봉 7,000만원)인 사람이 성과연봉 차등폭을 ±10%로 했을 때 3년간 평가등급의 순서에 따라서 총연봉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계산한 것이다. 높은 등급을 한번 놓치면 만회하기 힘든 체계에서 노동자들은 그야말로 치열한 경쟁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다.
정률제 중심의 임금인상은 상후하박을 가속화한다
그동안 하후상박은 임금인상의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성과연봉제는 기본적으로 정률제를 중심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하후상박은 폐기되고 상후하박이 강화된다. 해가 갈수록 상위 연봉자와 하위 연봉자의 임금격차를 확대하여 상대적 박탈감과 위화감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이렇듯 성과연봉제는 부익부 빈익빈을 가속화한다. 참으로 이명박 정권의 본질과 잘 맞아떨어진다. 노동자로서는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점에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