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우리사회의 반응은 대체로 '학생인권조례는 시기상조다', '학생인권이 오히려 교권을 침해하는 상황은 어쩔꺼냐?'다. 조용히 있으면 '성숙한 어른들'이 다 알아서 '보호할 건 보호'하고 지켜줄 건 지켜 줄 텐데 '왜 이렇게 문제를 키우냐', '불편하다'는 거다. 이런 격한 반응은 그동안 우리 사회에 '학생'인 청소년을 위한, 혹은 '미성년'이고 '미성숙'한 존재로서의 청소년을 위한 담론만이 무성했기 때문이다.
청소년노동인권은 그래서 좀 더 미묘한 지점에 있다. 강력범 수배자를 설명하는 '효과적인' 수식어가 '노동자풍'일 정도로 우리사회의 노동인식은 여전히 천박하다. 청소년노동에 대해서도 '청소년이 무슨 노동이냐', '학교 안 다니는 애나 알바 하는 거 아냐?' 등의 반응을 보이긴 하지만 청소년노동인권에 대한 첫 반응은 학생인권조례에 비하면 우호적이다. '거친 노동'(을 하지 말아야 하거나)으로부터 보호되어야 할 청소년이 보호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인권이 학교에 편입되어 통제받고 있는 학생의 보편적인 인권을 이야기하며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면 청소년노동인권은 매우 특별한 대상에 대한 인권을 이야기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청소년노동자는 낯설고 청소년노동인권은 협소할 수밖에 없다.
청소년노동자, 정말 낯선가?
국제노동기구(ILO)에서 발표하는 <세계 청소년 고용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15~24세의 연령집단이 세계 인구의 약 1/5을 차지하는데 이 중 절반 이상인 6억3300만 명이 적극적으로 노동시장에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실업률은 성인 실업률보다 3배 가까이 높다. 일하는 청소년 중 1억2500만 명은 하루 1달러도 안 되는 돈으로 생활하는 빈곤층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2007년 국가청소년위원회 조사 결과 15세~19세 청소년의 알바 경험률은 21%라고 발표 한 적이 있다. 2009년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하는 <아동청소년백서>에 따르면 15세~19세 청소년 329만4000명 중 그 경험률이 19.3%라고 하니까 약 70만 명의 청소년들이 알바를 경험했다고 추정할 수 있다.
2010년 3월,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에서 "노동인권의 최저지대에 놓인 청소년에 대한 보호 필요"라는 제목으로 노동부장관과 교육과학기술부장관에게 관련 법령과 정책개선을 권고한 일이 있다. 인권위의 권고안에 따르면 15세~19세 청소년 중 6.5%인 21만3000명이 일하는 것(2009년 8월 기준)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중 63.7%에 해당하는 12만3000명이 법정 최저임금(2009년 시급 4000원)에 미달하는 임금을 받으며 일하고 있었다.
상담을 통해 만나는 청소년 중에는 학업과 알바를 병행하는 친구도 있고, 생계를 위해 몇 개의 알바를 동시에 하는 친구도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일하는 청소년이 어떤 노동조건에서 일하는지에 대해 도통 관심이 없다. 일하는 청소년을 없는 존재 혹은 비정상적인 일탈 행위 같은 것으로 치부하는 정도다. 청소년노동자는 언어폭력에 모멸감을 느끼면서 '44만원 세대'라는 딱지를 붙인 채 노동인권의 사각지대에서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전태일과 함께했던 '여공', 건강을 담보로 반도체공장에서 일하는 '현장실습생', 고기 구워 주고 음료 날라다주는 '알바', 아찔한 곡예 운전을 하며 피자를 배달해 주는 이들이 청소년노동자의 다른 이름이다. 청소년노동자의 보편적인 노동인권을 이야기할 때다.
알바해서 어디다 쓸 거냐가 왜 궁금할까?
▲ 청소년노동자의 노동인권-건강, 안전, 폭력 경험을 중심으로-실태보고2009년 11월 국가인권위배움터) [출처: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 |
우리나라는 3년마다 '최저생계비 계측 조사'를 하고 있는데 조사 항목은 식료품(외식포함), 교통․통신비, 문화비, 오락비, 의료비, 교육비, 피복비 등이다. 일하는 청소년들이 주로 지출하는 외식비, 핸드폰 구입이나 요금, 책값, 학원비, 영화관람 등과 비교해서 차이가 없었다.
일하는 비청소년에게는 '명품가방 사려고 일하지?', '여행경비 마련하려고 일하지?' 등의 물음으로 일하는 이유나 목적을 폄하하거나 그 가치를 훼손하고 평가절하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유독 일하는 청소년에게는 그런 물음들을 아무렇지 않게 던지고 있다. 부당한 일이다. 이런 부당한 인식이 일하는 청소년의 노동을 평가절하하고, 노동조건을 후퇴시키거나 저임금을 고착화 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같이 키우자, 청소년노동인권의 나무
'초저임금'의 밑바닥 노동을 강요당하면서 부정적인 노동인식을 먼저 경험하게 되는 청소년노동자에겐 회복되어야 할 것들이 많다. 노동운동 진영에서도 함께 일하고 있는 청소년노동자에 대한 이해가 매우 협소하다. 부리기 편하고 귀찮은 일 대신하는 '알바'로 대하고 대하기 일쑤다. 당연하겠지만 청소년노동자의 노동인권이 회복될 때 우리 사회의 노동권에 대한 천박한 인식도 함께 변할 것이다. 다행히 여러 지역에서 청소년노동자의 노동인권에 관심을 갖고 함께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2005년 청소년노동인권 교재(『똑똑, 노동인권교육 하실래요?』)를 발간하며 활동을 시작 한 청소년노동인권네트워크는 현재 청소년 노동인권교육과 교사 교육, 실태조사 등을 하고 있다. 2008년 '최저임금 실태조사' 이후 인천, 부산, 광주, 울산, 충북 지역 등에서도 상담․교육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여전히 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노동인권 교육은 제한적이고, 당사자의 힘갖추기라는 힘든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2008년 청소년인권선언-"청소년은 노동을 하거나 하지 않을 권리가 있어. 일하는 목적이 생계를 위한 것이건 다른 용도를 위한 것이건 상관없이 청소년들의 노동은 존중받아야 해."-처럼 당사자의 목소리를 담아 청소년의 노동하지 않을 권리도 보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고민도 과제로 남아 있다. 함께할 일이다.(제휴=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