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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인권조례 100일, 학생인권은 아직도 '백지’

[기고]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선포 100일 기념대화의 시간’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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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경기도교육청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선포 100일을 맞아 ‘경기도 학생인권조례 선포 100일 기념 대화의 시간’ 간담회를 열었다. 김상곤 교육감과 경기도 각 지역 학생들과의 소통을 위한 행사로, 웹자보에 적혀 있는 간담회의 주요한 목적은 ‘학생인권조례의 안정적 정착을 위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이었다.


그러나 입구에서부터 선택된 청소년들과 그렇지 않은 청소년들에 대한 경기도교육청의 반응이 확연히 달랐다.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수원지부 회장에 들어가기도 전에 교육청 앞의 임시강사 농성장에서 있다가 들어왔다는 이유로 제지를 당했다. 생방송으로 방영되는 행사에서 ‘피켓팅이나 기타 소란스러운 행위’를 벌일까봐 의심을 받은 것이다. 임시강사 농성장 천막에서 나와 교육청 입구로 들어가는 것을 정문 경비실에서 보고해 사전에 조치했던 것인데, 항의 섞인 무마로 여차저차 들어갈 수는 있었다. ‘진행에 방해되는 어떤 행동도 하지 말도록’당부를 받으면서.

이런 과정에서 마치 교육청은 학생을 ‘정중하게 교육감님께 의견을 내고 교육감님의 말을 경청하는’식의 예의 바른 역할로 설정해 놓은 듯 했다. 이것이 바른 자세이고, 그 기준 이상을 벗어나는 행동은 일탈이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더라도, 실제로 이 간담회는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교육청이 추구하는 ‘모범’을 학생들의 동의를 통해 대외적으로 관철시키려는 의도의 장인 듯 했다.

김상곤 교육감의 간단한 인사와 경기도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현재 진행 과정의 소개가 이어진 후, 약 1시간 동안의 자유 발언과 교육감의 답변이 시작되었다. 이 시간동안 김상곤 교육감이 강조한 것은, 학생인권조례는 단순히 학생인권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학생인권조례는 궁극적으로 건전한 시민정신과 미래지향적인 태도를 지닌 학생을 육성하기 위한 것이며, 학생들은 자신의 인권이 존중되는 만큼 시민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준수하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는 의무를 지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여기에는 학생인권이 근본적으로 침해받지 말아야 할 당연함이나, 인권이 침해받는 상황에서 청소년의 주체적인 판단과 행동이 필요하다는 점은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김상곤 교육감은 학생인권조례의 내용을 실행하기 위해 각 학교 현장으로 매뉴얼과 해설서를 보냈다고 언급했다. 이 자료들을 토대로 각 학교 현장에서는 체벌에 대한 대체 프로그램으로 그린마일리지 제도와 탈선학생 지도를 위한 교내교외봉사, 소년보호심판청원 등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이라는 말이 이어졌다. 이 제도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각제 인권단체와 교육단체가 아무런 효과도 없으며 오히려 학생들을 억죄는 것에 그칠 것이라고 수차례나 제기하고 공론화했는데도, 김상곤 교육감은 이 제도들을 시행 처리했다고 공식 선언한 것이었다. 학생인권에 대한 공무 기관의 인권 감수성을 문자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여 준 부분이었다.

이에 대한 학생 패널들의 반응은 사실 대부분 앞선 말들보다 더 나은 진전이 없었다. 학생인권조례는 여하튼 찬성하면서도, 면학 분위기와 교권에 조례에 대한 의견이 치중되는 경향이었다. 말하자면 그것은 곧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입한 ‘학생의 소임과 역할’을 다른 점 없이 그대로 되풀이하는 것을 뜻했다. ‘학생인권은 지켜져야 하지만 조례로 인해 교권이 침해될 수 있는 것이 우려스럽다’, ‘자유도 좋지만 학생들에게 책임을 강조하는 것도 중요하다’ 등 인권에는 조건이 없음에도 모두 ‘~하지만’, ‘~좋지만’에 갇혀 있었다. 특히 학생회장인 한 학생 패널은 ‘학교 전통을 유지하고 싶은데도 조례에 학교의 재량권이 너무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파마나 염색 같은 ‘이상한 헤어스타일’은 ‘수업을 하는 데 방해가 된다’는 의견을 내었다. 그 학생의 학교가 경기도 내에서 학생에 대한 반인권적인 태도를 강력하게 고수하는 것으로 유명한 학교인 것을 보면, 사실 별로 놀라운 일도 아니었다. 기실 그런 학교에서 학생회장이라는 공식적인 직함을 가지기 위해서는 학교의 입장을 수용해야 하니까 말이다.


물론 그 사이에서도 ‘제대로 된’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김상곤 교육감의 답변은 언제나 무미건조한 행정적 어투였다. 한 학생은 최근 부천 소사고등학교에서 학교규정개정심의위원회의 참관을 거절당한 학생들이 학내 시위를 벌인 사건을 말하면서, 현재까지 경기도 내 학교 총수 중 약 96%의 학교가 교칙을 개정했다는데 과연 그것이 얼마나 민주적으로 개정되었을지 의문을 제기하고 이에 대한 교육청의 해결 방안을 주문하였다. 그러나 이에 대한 김상곤 교육감의 답변은 대부분의 학교에서 학생들의 의견 수렴을 위해 노력하지만, 일부 학교에서 ‘약간의 상충’이 있었다고 하며 ‘장학사들이 교칙 개정과 관련해 조언을 하고 참고 활동을 하고 있다’라고 말한 것이 전부였다. 그린마일리지 제도는 체벌과 다르지 않으며 교사들이 내키는 대로 할 수 있는 위험한 제도라는 의견에 대해서는, 한계가 있고 악용될 소지도 있으나 학생들이 책임과 의무를 가지게 할 기본적인 조치라는 답변이 전부였다.

학생인권조례 형식에 머물러...청소년은 능동적인 주체

이런 상황은 학생인권조례와 관련된 가장 우려되는 실태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것 같았다. 학생인권조례가 실효성 없는 형식적인 제도에 머물러 있으면서, 학생들은 조례에 만족하면서 수동적으로 찬성하는 구도 말이다. 그 속에서 학생들은 ‘자유는 좋지만 방종은 금물’이라면서 스스로를 검열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학생인권조례는 건전한 시민 육성을 위한 것이 아니다. 학생인권의 완전한 보장을 위한 최소한의 법제적 조치로 작용해야 한다. 학생들은 조례의 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조례를 벗어나 자신의 권리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과 주장을 시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앞의 것들이 지금의 사회가 바라는 학생의 모습이라면, 뒤의 것들은 자신을 위해 사회에 참여하고 요구할 수 있는 학생의 모습이다. 학생인권조례와 학생이 전자와 같이 멈추어 있다면 그 조례의 조항은 문자의 나열 그 이상의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다. 청소년은 던져진 조례를 읽기만 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행동에 조례가 수많은 근거 중 하나가 될 수는 있어도.

그래서 오늘도 아수나로 수원지부는 경기도교육청이 피켓 선전전을 막기는 했어도 그 비슷한 선전을 했다. ‘학생 목소리,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학생인권조례 100일, 학생인권은 아직도 백지’, ‘수성고 사건 해결 없이 학생인권 기만이다’ 등이 쓰여진 종이를 목걸이 형식으로 만들어서 걸고 있던 것이다. (피켓이라고 하기엔 애매하긴 하니까) 마지막에서야 소규모로 해서 별로 주목받지도 못했지만, 이 행동이 보여 준 의미는 분명했다. 우리는 조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행동이 필요한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