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구제역이란 무엇이기에 이렇게 140만 마리가 넘는 소와 돼지를 살 처분해야하는 것일까? 구제역은 소, 돼지, 양, 염소, 사슴 등 발굽이 둘로 갈라진 동물(우제류)에 감염되는 질병으로 전염성이 매우 강하여 국제수역사무국(OIE)에서 A급 질병(전파력이 빠르고 국제교역상 경제피해가 매우 큰 질병)으로 분류하며 우리나라에서는 제1종 가축 전염병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구제역이 문제가 되는 것은 치사율이 높다거나 인체에 피해를 주는 수인공통 바이러스이기 때문이 아니라 빠른 전염성과 완치 후에도 유류나 육류 생산력이 현저히 떨어져 경제적 가치가 없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소는 성체의 경우 치사율이 10%미만(미성체 50%미만)이며 돼지의 경우는 이보다도 낮다고 한다. 따라서 한국은 빠른 전염성, 발병된 가축의 생산력 저하, 구제역 청정국가라는 상징성 때문에 제1종 가축전염병으로 지정하여 예방적 살 처분 위주로 구제역 확산 방지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구제역 청정국가라는 명예는 꼭 필요한가?
현재 추진되는 정부의 구제역 관련 정책은 타당한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구제역 청정국가는 비접종 청정국 유럽. 북미 65개국, 접종 청정국 우루과이 1개국으로 66개국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국가는 비청정 국가이다. 특히 한국과 교류가 잦은 중국, 베트남, 태국, 러시아 등은 상시 발생국으로써 살처분 정책을 실시하지 않고 있다.
그럼 한국이 구제역 청정국가로 인정받음으로써 어떤 이익이 있는 것일까?
한국은 육류 수출국이 아니라 수입국임은 모두가 알고 있다. 실제로 국립수의과학검역원과 한국육류유통수출입협회가 밝힌 2005년부터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유지한 최근 5년 동안 돼지고기 수출현황(검역기준)을 보면 2005년 83톤, 2006년 1천424톤, 2007년 191톤, 2008년 269톤, 2009년 549톤으로 총 2천516톤 900여만 달러가 전부다. 같은 기간 소고기 수출 실적은 2009년 수출액 4억원 정도로 극히 미미한 실정이다. 이처럼 국내산 육류의 연평균 수출물량은 고작 20억원 내외에 불과한 것으로써 '수출을 위한 것'이라는 당국의 청정국 지위 획득 명분은 설득력이 없다.
그렇다면 구제역 비청정국이 되면 정부의 주장대로 중국, 호주 등 육류 수출국들로부터 수입압력이 강해져 더 많은 물량을 수입해야 한다는 것은 옳은 얘기인가. 농식품부 관계자도 밝혔듯이 육류수입에 대한 제한조치는 구제역뿐만 아니라 사육환경 등 해당 국가의 여러 가지 위생조건에 따라 수입국이 결정하는 것으로써 이 또한 설득력이 없다.
비청정국 보다는 청정국으로 인정받는 것이 훨씬 좋고 청정국으로 인정받기 위해 방역을 강화하고 축산정책을 입안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이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축산기반이 붕괴될 정도로 살처분 위주의 방역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정부에서 주장하는 경제적 측면에서 볼 때도 결코 실효성을 담보할 수 없는 정책인 것이다.
따라서 구제역 청정국이라는 명예는 수출을 통한 축산농가의 이익을 확대하기 위한 것도, 육류수출국들의 수입압력을 억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다. 지난 12월 대통령이 농식품부 방문 시 밝혔듯이 “빨리 청정국가로서 명예를 회복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청정국가라는 허울뿐인 국가의 명예 즉, 국격을 높이겠다는 발상의 연장이라고밖에 판단할 수가 없다. 그럼 그 결과는 어떤가? 청정국가라는 명예보다 무차별 살 처분으로 인한 야만적인 나라라는 불명예만이 우리에게 주어졌을 뿐이다.
예방적 살처분 정책 과연 실효성 있나?
현재 전 세계적으로 예방적 차원의 살 처분 정책을 실시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대만의 경우 1997년 구제역이 발생하여 385만 마리를 살처분 했으나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없었으며 지금은 상시발생국으로 분리되어있다. 영국 또한 2001년 구제역이 발생하자 살 처분 매몰방식으로 대처하다 구제역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자 예방백신을 접종하였으나 시기를 놓쳐 600만 마리를 살 처분하고서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이후 영국은 백신 대상 축종, 접종 판단 기준 및 실시지역 등에 대한 매뉴얼을 법률로 규정하여 구제역 발생 및 확산을 효과적으로 억제하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대만과 영국은 대표적 육류 수출국가 중 하나였기에 청정국 유지를 위해 초기에 예방백신을 접종하지 않고 미온적인 대처를 하다 국가적 재앙으로 키운 예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가 있음에도 육류 수출국이 아닌 한국이 청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예방백신 접종을 미루고 예방적 살처분 방식을 고집하는 것은 농가를 위해서도 가축을 위해서도 국가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정책이 아니다.
▲ 살처분 하는 모습 [출처: 한국동물보호연합] |
141만 마리가 넘는 살처분된 가축중 구제역에 걸린 가축은 과연 몇 마리나 될까? 한 마리만 구제역에 감염되어도 인근 500m 이내의 모두 우제류 가축을 살처분 하는 것이 과연 과학적이고 경제적 효율성이 있는 정책인 것인지 심각하게 검토해봐야 한다. 충남 보령의 한 축산 농가의 경우 구제역 의심 가축조차 발생하지 않았음에도 수의사가 경북의 구제역 발생농가에 다녀온 후 신발을 갈아 신지 않고 방문했다는 이유만으로 2만5천여마리의 돼지가 살 처분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예는 전국 곳곳에서 발생되었고 아직도 발생하고 있다.
예방적 살처분 방식, 과연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있나?
한국과 같이 국토가 좁고 교통이 발달하였으며 전염 경로가 다양한 지역에서는 살처분 방식이 효과적일 수가 없다. 전염경로를 추측해보면 첫째로 상시발생국인 중국, 대만, 베트남, 몽고 등과의 인적 물적 교류에 의한 전염, 둘째로 사료, 축산분뇨 등 부산물 운반 차량 및 사람에 의한 전염, 셋째로 육류제품의 유통에 따른 전염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위에서 제시한 세 가지가 가장 유력한 전염 경로라고 판단되는데 이와 같은 전염은 예방적 살처분 방식만으로는 그 확산을 막을 수가 없다. 구제역 상시 발생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에 의한 전염은 출입국(출입하)시부터 철저한 방역을 실시하지 않으면 막아낼 수가 없으며 사료, 축산분뇨 등 부산물 운반 차량 및 사람에 의한 전염이나 육류제품 유통은 구제역에 감염되었다고 하더라도 2-14일이나 되는 잠복기 동안은 무방비 상태에 놓이기 때문에 전염을 막을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철저하게 발생지역 500m이내에 대한 방역과 예방적 살처분을 실시한다고 하더라도 상기 사유에 의한 전염을 완벽하게 막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구제역 청정국가라는 명예는 과감히 포기하고 최소한의 살처분과 예방백신 접종이 병행될 수 있도록 정책적 변화가 필요하다.
예방적 살처분 정책에 따라 소와 돼지 등 가축들은 학살되어도 괜찮은 것인가?
살처분에 대해 이런 저런 얘기들이 있다. 예방적 살처분이냐, 인도적 살처분이냐, 생매장이냐. 생매장만 나쁘고 예방적 살 처분이나 인도적 살처분은 괜찮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생매장 뿐 아니라 인도적 살처분도 나쁘지만 축산 농가를 보호하고 전염병의 확산을 방지하기 위한 살처분은 어쩔 수 없기 때문에 인도적으로 살처분을 하자는 주장일 것이다.
인간이 먹기 위해 키우는 동물이라도 생명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모든 사고의 중심은 인간을 중심에 놓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또한 채식을 좋아하지만 육식을 거부하지도 않고 동물들의 생명보다 농민들의 생활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같이 진행되고 있는 무차별적인 살처분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 그건 생매장이 아니라 인도적 살처분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알량한 청정구역 유지를 위해 병에 거릴지도 않은 가축을 죽이는 것을 보며 인간에 대해 생각했다. 아메리카를 정복했던 서양인들의 시각이 우리가 소, 돼지를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각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예전 TV에서 방영했던 V에 나오는 외계인과 우리 인간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비록 인간이 먹기 위해 키우는 가축일지라도 경제적 손익만을 따져 무차별적으로 학살하는 것은 가축의 생명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듣고 시행한 인간들의 정신조차 피폐하게 만드는 것이다.
어떤 소는 송아지를 낳고나서 송아지와 함께 살처분됐다고 한다. 포크레인에 밀려 자신들의 무덤으로 쏟아져 들어가는 돼지들은 벌써 스스로의 죽음을 예견하고 있는지 우리에서부터 꽥꽥 소리 지르고 발버둥을 친다고 한다. 그런 돼지들을 비닐 한 장 깔린 구덩이에 몰아넣고 다시 비닐을 덮고 이산화탄소를 주입하여 죽인다고 한다. 우리는 인도적 차원의 살 처분을 주장할 것이 아니라 청정구역 유지를 위한 예방적 살 처분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
살처분한 농민, 살처분에 참여한 공무원, 수의사, 중장비 기사들은 어떤가?
자신의 가축을 정부정책에 따라 살처분한 농민들은 경제적 손실뿐 아니라 키우던 가축을 강제로 죽여야 했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직접 살처분 및 방역에 동원된 공무원 등 2명이 과로 및 사고로 사망했으며 임산부 1명은 유산을 했다고 한다. 어떤 공무원은 꽥꽥대는 돼지소리만 들리지 않아도 좋겠다고 얘기하며 아직도 가끔씩 환청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돼지들을 구덩이에 몰아넣어야 했던 어느 포크레인 기사는 하루 일해보고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그런 짓은 못하겠더라고 한다. 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상처는 그 누가 책임질 것인가?
살처분 방식의 방역에 대해서 더 이상 청정구역 유지라는 허울뿐인 명분을 내세우지 말자. 누구를 위한, 무엇을 위한 살 처분이란 말인가? 이제는 구제역 방역대책의 실패를 인정하고 가축과 축산기반을 살리고 인간을 살릴 수 있도록 가축방역 정책에 대한 일대 전환이 요구된다. 이미 묻어버린 가축들은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하루라도 빨리 살 처분 정책을 중단하고 보다 효과적인 방역대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몇 가지 방안
이에 대해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로 구제역 청정국가 지정 유지 정책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이 구제역 청정국가로 지정된다고 하더라도 수출기반이 붕괴되거나 수입이 급증하는 것은 아니므로 허울뿐인 청정국가 지정을 위해 예방적 살처분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없다. 무차별적인 살처분으로 인해 오히려 한국의 축산기반이 붕괴되어 육류 소비를 수입에 의존해야 하는 재앙을 초래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한국 교역량의 60%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중국, 대만, 동남아 등 상시 발생국과의 인적. 물적 교류를 차단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구제역은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어 청정국가 유지는 힘들다고 판단된다. 그렇다면 청정국 유지를 위해 무리한 살처분 정책을 펼칠 것이 아니라 영국처럼 축종, 접종 판단 기준 및 실시지역에 따른 백신접종 프로그램을 법제화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로 방역전문기관을 설치하여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연구와 효과적인 방역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현재처럼 전문성이 담보되지 않은 일반 공무원들이 방역의 중심이 된다면 인력동원 식 방역, 임시방편적인 방역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국가적 차원에서 방역기관을 설치하여 구제역 발생 시 충분하고 신속한 방역인력과 물자 및 예산이 투입되도록 하여야 하며 축산농가에 대한 상시 예방교육 및 지도가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한다.
셋째, 방역체계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현재처럼 주요도로에 대한 살포식 방역은 그 실효성이 의심된다. 구제역이 발생하면 발생가축(최대 확대해서 발생농가)에 대한 살처분은 어쩔 수 없었다 하더라도 그 외에는 일정지역을 지정해 초기 백신예방 접종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구제역 발생지역과 거리가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도 전국의 축산농가가 동시에 전염경로 차단 및 방역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주요 도로에 대한 살포식 방역으로는 구제역 확산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은 이번 사례를 통해 확인됐다.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서는 사료, 축산 부산물 운반 차량 및 사람과 축산물 유통에 대해 역학적인 조사와 사전 방역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축산농가 출입 차량 및 사람에 대한 철저한 방역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주요도로 살포식 방역은 실효성은 없고 인력과 비용만 많이 드는 보여주기식 방역이 될 수밖에 없다. 이를 위해 충분한 예산 및 약품을 축산농가에 지원하여야하며 이를 바탕으로 축산농가가 의무적으로 방역에 참여하도록 법제화 하여야 한다.
넷째로 축산 사육방식에 대한 장기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공장식 사육방식, 동일한 사료를 통한 사육, 인공수정을 통한 유전자의 다양성 상실 등이 계속된다면 구제역뿐만 아니라 새로운 전염병에 의한 재앙을 막아낼 수 없다.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탐욕으로 인한 동물들의 역습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이번의 재앙을 교훈삼아 장기적인 축산업 체질 개선 대책이 연구되고 추진하여야 한다.
재앙적 수준의 구제역 확산에 대해 그 누구도 책임을 회피할 수 없다. 지금 당장 확실한 해결책을 제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이번의 사례를 통해 진정으로 필요한 방역대책이 무엇인지 우리 모두는 함께 고민하고 토론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느 개인의 생각과 판단이 정답일수는 없다. 따라서 위에서 제기한 문제점과 대책이 정답일수는 없지만 검토하고 고민해볼 수 있는 단초는 된다고 생각한다. 고민과 토론을 통해 가축도 사람도 함께 살아갈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만들어 갔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