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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중앙집행위원회 ‘국가재정 활용방안’ 안건의 문제점

[칼럼] 민주노총 의무인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정부 지원에 의존 하겠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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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은 지난 12월 16일 중앙집행위원회에 ‘국가재정활용방안’을 안건으로 올렸다. 1월 12일 중앙집행위원회에서 다시 논의한 후 대의원대회에 붙이려는 안건이다. 내용은 ‘국고보조금 지원방침’을 바꾸는 것이다. 이미 민주노총은 2001년 22차 대의원대회에서 ‘국고보조금을 받되 건물(유지를 위한 최소관리비)로 제한한다’는 방침을 결정한 바 있다. 그런데 10년간 운영된 ‘국고보조금 지원방침’과 관련하여 충돌지점이 발생하고 방침의 불일치로 의미가 퇴색해버렸기 때문에 그 방침을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방침을 지키지 않는 연맹이나 지역본부가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 방침을 지키지 않은 연맹이나 지역본부를 제재하는 것이 아니라 방침 자체를 바꾸겠다고 한다. 물론 어떤 방침이든 만고불변의 것일 수는 없고, 근거만 분명하다면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뀔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침이 바뀌어야 할 근거는 무엇일까? 중집 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지자체 선거 당시, 비정규 중소영세 노동자를 위한 지원센터 설립을 포함하여 10대 요구를 결정한 바 있음. 선거 이후 진보정당 지자체 당선지역, 민주노총과 정책협약식을 맺은 지역, 진보교육감 당선지역 등을 중심으로 비정규지원센터와 교육센터 등 설립 가능성이 열려있어서 부동산 및 건물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관리유지비 지원으로는 사실상 운영이 어려운 상태임.” 즉 지자체에서 진보정당과 민주당의 승리로 지원의 가능성이 열려있으므로 이것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업비 받으면 정부가 언제라도 노동계 사업을 감사할 수 있다

2001년 당시 이 방침이 결정될 때는 김대중 정부 때였다. 시민단체들도 국고보조금을 받는 등 정부로부터 다양한 형태의 지원이 가능한 때였다. 그렇지만 그 결정을 하기 위해서 민주노총은 내홍을 겪어야 했다. 무수히 많은 반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의 지원금을 받기 시작하면 처음에는 건물로 시작하더라도 이후에 국고보조금에의 의존도가 높아지고 결국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잃게 되리라는 것이 중요한 근거였다. 바로 그 점 때문에 비록 국고보조금을 받기로 하였지만 사업비를 제외하고 ‘건물만 받는 것’으로 정리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그 방침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노동조합의 자주성 침해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져있다. 단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현실적 가능성’만이 근거로 등장해있을 뿐이다.

2006년 당시 민주노총 이수봉 전 교선실장은 “한국노총은 정부 보조금 의존도가 43%에 달했고 심지어 WTO 각료회의에 맞서는 투쟁도 국가보조금으로 다녀왔다”고 신랄하게 비판한 바 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은 건물만 지원을 받기 때문에 자주성을 지킬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이제는 사업비로 정부 지원을 받겠다고 한다. 전임자임금지급이 금지된 상황에서 일단 사업비 받는 것을 허용하게 되면 이후에 다른 사업비를 받지 않을 명분은 사라지고 점차로 국가보조금 의존도는 높아질 수밖에 없다. 설마 ‘한국노총은 원래부터 어용이라서 문제가 있고 민주노총은 투명하고 민주적이니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싶은가? 2005년 민주노총 강승규 수석부위원장이 택시운송조합으로부터 수천만원을 받은 비리사건을 우리는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도 민주노총만은 정부에서 사업비를 받아도 투쟁성과 자주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인가?

민주노총은 운영원칙에서 ‘민주노총의 자주성을 심각하게 위배한다고 판단될 시, 중앙집행위원회는 이를 규제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운영원칙은 이미 2001년 결정사항에도 있었다. ‘사업집행, 결산을 중앙에 보고하고 반드시 감사를 받는다. 사업 집행 시 조직 내부 회의기구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중앙위원회가 승인한 항목만 신청할 수 있다’고 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총연맹은 이미 자체적으로 평가하듯, 각 연맹이나 지역본부가 정부 예산이나 기금을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현황조차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의 국가보조금 현황도 파악조차 못하는데 이후에 과연 각 연맹과 지역본부가 임의로 국고보조금을 받는 것을 통제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국고보조금은 어떤 명목으로든 계속 늘어나서 정부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심화시킬 것이다.

정부지원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 그 때부터는 정부가 민주노총을 통제할 가능성이 열린다. 보조금 교부를 신청할 때는 보조사업의 목적과 내용, 보조사업에 소요되는 경비, 기타 필요한 사항을 기재하여 서류로 제출해야 한다. 그리고 당연히 용도 외의 사용을 금지한다. 만약 사업비를 받게 되면 노동부나 지자체가 언제라도 노동계의 사업을 감사할 수 있다. 심지어 노동부는 양대노총에 지급하는 사업비를 공모방식으로 전환하겠다는 안을 내놓은 적도 있다. 자기들 입맛에 맞는 사업에 대해서만 지원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정부지원에 의존하면 그 비용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사업비에 대한 정부의 통제에 따르게 되는 것이 수순이다. 민주노총이 비판해마지 않는 한국노총의 태도가 바로 그런 것 아닌가.

상근자와 예산의 30%를 미조직사업에 활용하기로 한 애초 결의 실현해야

더 문제인 것은 국고보조 지원금의 명목이다. 기존의 건물 외에 “미조직비정규사업, 교육사업, 정책연구사업에 한해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지자체에서 진보정당이 집권할 경우 비정규직에 대한 사업을 공동 논의하는 것은 정말로 필요한 일이다. 그리고 이후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다양한 투쟁과 사업도 만들어나가야 한다. 그런데 그 사업의 일순위는 무엇이어야 할까? 우선 지자체의 다양한 민간위탁 사업을 다시 환원하기 위한 구상과 기획을 하는 것이다. 민간위탁은 노동자들의 저임금의 온상이기도 하고, 공공성을 훼손하는 주범이기도 하다. 그래서 경주재활용선별장 노동자들의 투쟁 등 민간위탁을 다시 돌리기 위한 투쟁도 지속되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지자체의 다양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이나 고용안정에 대한 장기적인 계획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조례제정 등으로 지자체에서 입찰을 하는 경우 일정한 정도 이상의 노동조건을 갖추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지자체를 대상으로 하는 비정규직 사업은 너무나도 많고 계획을 잘 세우고 투쟁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런데 비정규센터를 세운다는 것은 무엇을 위함인가? 지자체가 비정규직 문제에 관심을 갖고 사업을 하도록 하기 위한 ‘비정규센터’를 고민한다면 이것은 조례로 만들어져야 한다. 지자체의 비정규센터는 지역 비정규직 실태조사를 하고 지자체 안에 있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해결방안을 연구하고, 지역 사용주들과의 논의와 대응을 통해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올리기 위한 계획을 세우며, 불안정한 일자리에 대한 관리감독 등을 해야 한다. 이것이 지자체 비정규센타의 주업무가 된다면 거기에는 책임과 권한이 있어야 하고, 당연히 지자체의 조례로 책임과 권한을 보장받아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로부터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해야 한다. 이 사업을 임의로 위탁을 해서도 안된다. 그러므로 ‘지자체 비정규센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민주노총이 사업비로 위탁받을 생각을 해서는 절대로 안 되며 오히려 책임과 권한을 가지도록 조례를 만들기 위해 투쟁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지역 비정규센터라는 것이 이런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노총이 지역 미조직노동자들과 만나는 다양한 사업을 하는 곳이라고 해도 문제는 여전하다. 즉 명목은 ‘비정규센터’이지만 결국은 지자체의 돈을 받아서 미조직사업을 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당연히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만나야 한다. 그 노동자들에게 희망이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 사업이야말로 ‘민주노총’의 사업이어야 한다. 조직되지 않은 노동자들을 만나고 민주노총 조합원으로 조직하는 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의 의무이고 존재 이유 중 하나이다. 민주노총 스스로가 돈과 사람을 만들어서 최선을 다해야 하는 사업인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업을 정부의 돈을 받아서, 정부가 해야 할 일을 위탁받아서 한다는 것은 문제 있는 태도가 아닌가?

민주노총은 2005년 대의원대회를 통해 전략조직사업을 결정하였고, 2007년까지 예산의 30%를 미조직사업으로 배정하자고 결의한 바 있다. 그러나 2009년 이 사업에 대한 평가에 의하면 사실상 예산을 배정해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거나 혹은 예산 배정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또 2005년에 민주노총은 건물비용으로 400억의 국가보조금을 신청할 때 이석행 사무총장은 “국고보조금 수령과 건물 신축은 4기 집행부의 선거공약이고, 비정규직 등 전체 노동자가 혜택을 받도록 사용할 계획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 국고보조금이 과연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갔는지는 알 수 없다. 매번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이야기하지만 미조직노동자 조직사업은 조합원 전체의 총의를 모아서 마련한 22억 모금으로 진행되었고, 국고보조금을 통해 올라간 예산의 30%를 미조직사업으로 쓰는 계획은 현실화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런데 지금 정부의 돈으로 다시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을 하겠다고 계획하고 있는 것이다.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위한 국가재정활용 방안”이 혹시라도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이라는, 누구나 인정하는 명분으로, 사업비로도 정부지원을 받는 가능성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미조직·비정규직 사업은 그렇게 명분용으로 아무 곳에나 갖다붙여도 될 사업이 아니다.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에 맞서는 투쟁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현실에서는 편법적으로 노조전임자를 유지하거나 혹은 전임자들이 줄어들고 있고, 민주노총의 재정상태도 많이 좋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국고보조금’에 유혹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고보조금 지원’을 ‘국가재정 활용’이라는 명칭으로 바꾸어서 마치 우리가 자주적으로 정부 재정을 활용할 수 있는 것처럼 만들거나 ‘미조직·비정규사업’이라는 명분을 붙여서 국고보조금을 받는 것은 안된다. 지금 민주노총이 할 일은 민주노조운동의 자주성과 계급성을 유지하면서 전체 노동자들을 위해서 제대로 투쟁하는 것이다. 그리고 미조직·비정규사업을 제대로 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상근자와 예산의 30%를 미조직사업에 활용하기로 한 애초의 결의를 실현해야 한다. 그리고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다양한 비정규직 조직과 투쟁사업에 매진해야 한다. 그럴 때만 민주노총의 진정성을 인정하고 많은 이들이 미조직·비정규사업에 민주노총과 함께 나설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민주노총이 더 많이 탄압받고 재정적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길게 보면 이것이야말로 민주노총이 민주노총답게 살아남고 이후에 미조직노동자의 희망이 되는 유일한 길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