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88만원 세대’라는 청년 비정규직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홍익대 사태는 노년층 역시 ‘88만원 세대’로 진입했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줬다. 때문에 지금까지 산발적으로 터져 나왔던 비정규직문제는 이제 전 세대적인 문제로 인식되고 있으며, 노동과 사회에 깃든 우울감을 한층 더 심화시키고 있다.
빈곤한 노년들의 ‘생계형’ 비정규직 일자리
비정규직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 노동자와 마찬가지로, 노년 노동자 역시 고용 불안을 느끼며 비정규직 일자리를 전전하고 있다. 2011년 새해 첫날, 벌써 홍익대학교 소속 170명의 청소, 경비, 시설 노동자가 일자리를 빼앗겼다. 그 자리는 다른 노동자들로 채워질 수 있지만, 쫓겨난 노동자들이 또 다른 일자리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 만큼 노년의 일자리는 한정적이고, 노년을 사는 이들은 많다.
특히 노년층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대부분 생계를 책임진다. 그럼에도 임금은 낮고, 노동 환경은 열악하다. 홍익대 청소노동자들 역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이 대다수다. 지난 2일, 해고통보를 받고 농성에 돌입한지 삼일 째. 60대에 진입한 청소노동자들은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시멘트 바닥에서 한뎃잠을 자고 있다. 생존하기 위해 생계를 꾸려가는 이들에게 직장은 절실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일찍부터 결혼해서 독립하고, 남편은 술을 좋아하고 돈을 많이 탕진해서 지금 따로 살고 있어요. 저 혼자 홍제동 달동네에서 월세방에 살고 있는데 한 달 방값이 25만 원이예요. 제가 한 달에 75만원을 버는데 방세, 가스비, 전기세 제하고 나면 밥값과 반찬값으로 35만 원 정도가 남아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때문에 저축은 꿈도 못 꾸죠.”
홍익대 청소노동자 김명자(가명)씨는 앞길이 막막하다고 했다. 60평생 거친 삶을 살아오며 한 번도 속 편한 적 없던 그였지만 자신의 생계 까지 잃어버릴 위기에 놓였으니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도 평생을 가난하게 살아왔지만, 일손을 놓아본 적이 없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앞으로의 노후 대책 역시 가슴을 답답하게 만든다.
“집안 사정이 워낙 안 좋아서 큰 아들은 어릴 때 큰 집으로 입양시켰어요. 아들에게는 마음의 짐이 있어 많은걸 바라지도 않아요. 막내딸도 중학교 때부터 아르바이트하며 생계를 꾸렸어요. 언니 주민등록증 몰래 가져가서 일을 한 거죠. 그래도 지금은 자수성가해서 잘 살아요. 자식들이 와서 용돈도 주고 그러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한계가 있죠. 언제까지 일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르고, 돈도 모으지 못하니까 답답해요”
이 같은 사정은 김명자씨만의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다. 김명자씨 주변의 또래들은 대부분 비슷한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었다. 특히 5~60대 고령의 여성 노동자가 할 일은 대체로 한정적이다.
“뭐, 제 주변 친구들도 다 비슷비슷하게 일하고 있어요. 한 친구는 그래도 사무직이었는데 알고 보니 용역회사에서 한 달에 20만 원 정도를 띠어 먹고 있는 거예요. 정말 더러워서 못해먹겠다 그러죠. 또 다른 친구는 저처럼 대학교에서 청소를 하다가 얼마 전에 H대학병원 간병인으로 자리를 옮겼어요. 거기가 청소보다 월급을 많이 주기는 하는데 일이 많이 고되죠. 그리고 대부분의 친구들도 식당일을 하거나 청소를 하거나 그래요.”
홍익대 경비노동자 이동천(가명)씨 역시 경비 일을 하며 홀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벌써 60대에 진입했지만, 힘이 남아있는 한 계속 일을 할 계획이다. 저축을 할 수도, 누구의 도움을 받을 수도 없는 상황에서, 그 날 그 날의 생존이 이동천 씨 자신의 손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하던 사업이 부도가 나서 경비를 시작했어요. 아내와 딸들은 외국에 나가 있어서, 그냥 제가 번 돈으로 저 혼자 생활하는 식이예요. 한 달에 91만 원 정도를 버는데, 월세 30만원과 각종 공과금, 식비, 담배 값을 치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먹고 살기는 빠듯하지만 그래도 일은 해야죠. 제 주변에 사업이 부도가 나고 이리저리 일이 안 풀려서 노숙을 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그래도 그렇게 살기는 싫었어요. 적어도 제 자신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돈은 제가 벌고 싶죠. 여기 홍대 경비아저씨들 중에는 저처럼 한 달 월급으로 빠듯하게 생계를 꾸려나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노년층’의 노동은 ‘88만원 세대’의 노동보다 가혹했다
김명자 씨나 이동천 씨처럼, 자신의 생계만 책임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가족들의 생계 역시 책임져야 하는 사람도 있다. 자녀들의 대학등록금부터 생활비, 집세, 세금, 심지어 자녀 결혼 자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노년층의 노동은 그야말로 괴로움이다. 물론 집에 있기 갑갑해서 나온다는 이들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이들 역시 ‘일 할 수 있을 때 까지 일을 하며 노후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입을 모은다.
하지만 하루 10시간 넘게 일하면서도 이들 손에 쥐어지는 임금은 최저임금조차 되지 않는다. 홍익대 청소노동자 같은 경우, 한 달 임금은 75만원, 식대비로는 하루에 300원이 책정 돼 있다. 한 달 9000원인 식대비는 지난 3월부터 지급받기 시작했다.
최저임금도 못 미치는 임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조는 용역업체에 임금 70% 인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오히려 용역단가 동결을 요구했다. 공공노조 서경지부 관계자는 “노조가 용역업체에 임금 70%인상을 요구했다고 해도, 실제로 계산해 보면 시간당 5180원 밖에 되지 않는다”며 “특히 용역회사가 노조가 제시한 요구안 이외에도 3가지 정도의 대체방안을 학교 측에 요구했는데도 이를 모두 무시했다”고 설명했다.
“원래 식당일을 했어요. 하루 12시간씩 일을 하고는 했는데 쉬는 시간도 없고 나이가 들어 힘에 부치기도 해서 이리로(홍익대) 자리를 옮긴 거예요. 그 때는 한 달에 두 번밖에 쉬지 못했거든요. 물론 돈은 식당이 더 많이 벌지만 나이가 60이 되니 몸이 아프더라고요. 그래서 청소 일을 하면서 쉬는 날 동네에 있는 파지를 모았어요. 많이 모으면 2만원 돈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것도 지금은 못해요. 몸도 아프고 시간도 없어서... 생각해보면 식당보다 학교가 시간을 더 많이 빼앗겨요. 그리고 식당에서는 밥이라도 든든히 먹었는데 여기서는 영 부실해요. 국이나 찌개도 냄새난다고 못해먹게 하니까 물에다 밥 넣고 끓이는 것이 국 대용이에요. 반찬은 김치 같은 것을 집에서 싸오고요.”
김명자씨는 얼마 전까지 근육통을 앓아왔다. 다행히 침을 맞아가며 치료를 했지만 그래도 몸이 아플 경우 지불해야 하는 병원비 때문에 언제나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때문에 밥이라도 잘 챙겨먹고 싶지만, 환경이 따라주지 않는다. 처음에 뭣 모르고 생선을 튀기고 국을 끓였다가 소장에게 불벼락을 맞았다. 그 후로는 물을 끓여 국 대용으로 먹고 반찬은 싸 가지고 다닌다. 일 하면서 느끼는 힘든 점은 다들 똑같다.
“1년에 두 번 신주 닦는 것이 가장 힘들어요. 물에 세제 풀어서 손으로 박박 문지르는데 팔도 너무 아프고... 쉬는 곳도 쉼터라고 있는데 그냥 스펀지 같은 것을 바닥에 깔아놓고 쉬는 곳 이예요. 제가 여기서 일 한지 10년이 됐는데 그 때 한 달 월급이 50만 원정도 됐던 것 같아요. 하루하루 그냥 일하다보니 벌써 10년이 흘렀네요... ”
10년 동안 홍익대 청소노동자로 일 해왔던 한정숙(가명)씨와 임영숙(가명)씨는 고되고 열악한 노동을 똑같이 느끼고 있었다. 일 하면서 자존심도 수 없이 구겨져 봤다. 특히 경비노동자의 경우, 교수 이삿짐을 옮기거나 하수구 청소, 쓰레기 청소 등의 동원 소집을 겪으며 삶의 무게를 실감하고 있었다.
“저녁 7시에 동원 호출이 왔어요. 교수가 방을 옮긴다고 이삿짐을 나르래요. 기본적으로 이삿짐을 나르라고 했으면, 짐을 쌓아놔야 하는 거잖아요. 그런데 방을 그대로 오픈시켜놨어요. 경비 다섯 명이 물건을 그대로 들고 날랐어요. 끝나니까 밤 11시 20분쯤 되더라고요. 그런데 일이 끝나고 나자 그 교수가 경비들한테 만 원씩을 주는 거예요. 저는 경비도 엄연한 직장이라고 생각하고 일을 해 왔거든요. 그런데 너무 자존심이 상하는 거예요. 그러면 안 되지만 화장실에 들어가서 그 돈을 찢어서 변기에 버렸어요. 내 60인생이 너무 서러워서...”
50대 이상 2명중 1명이 비정규직
‘비정규직’대안 없는 정부, 고령자 일자리 대책도 없다
사회는 청년구직자가 ‘쏟아져 나온다’고 얘기 한다. 퇴직한 고령층 역시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라고 입을 모은다. 때로는 ‘세대 교체’로 인한 노령 인구의 일자리 박탈을 이야기 하다가도, 사회 기득권 세력을 확보한 기성세대에 ‘철밥통’이라고 비난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은 사회 안팎으로 쏟아져 나오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 자리에 있을 뿐이다. 문제는 고용시장의 축소와 고용정책의 패러다임이 이들을 잉여화 시키는 것이다.
정부가 단기적 인턴제만을 청년실업의 대안으로 내놓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고령층에 대한 일자리 정책 역시 부실하다. 작년 9월, 보건복지부는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이라는 고령자 고용 관련 정책들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는 전직지원장려금제도 개편을 통한 고령자 전직 및 취업지원 서비스 강화, 고령자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서비스 일자리 내실화와 고령전문인력 우선채용 등이 담겨 있다.
하지만 이와 같은 고령자 일자리 정책은 퇴직 직후의 노동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다보니 청소, 간병, 식당 등을 전전하는 취약계층 고령 노동자에 대한 대안이 부재하다. 저소득층 중고령층 고용 계획은 ‘저소득층 취업 성공 패키지 운영’뿐이다. 또한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고령자 일자리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면서도 고용 안정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 지난 2008년부터 2010년까지 이명박 정부는 일자리 창출 사업에 3조원 이상을 투자했지만, 생성된 일자리는 단기적인 임시직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중, 노년 일자리로 추진된 일자리 창출 사업은 희망근로 프로젝트와 하천하구 쓰레기 정화사업, 아동안전 지킴이 등 뿐이다.
일자리의 질적인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고령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문제는 그들의 생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지난해 9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노동시장동향분석’에 따르면, 50대 이상 중고령자의 비정규직 비율이 48.2%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 연령대의 비정규직 평균 비율이 33.1%인 점을 감안하면, 2명당 1명꼴로 고령의 비정규직 노동자가 존재하는 것이다. 심지어 65세 이상 노령자의 비정규직 비율은 76.5%를 기록했다.
반면 생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을 원하는 노령인구는 늘어나고 있다. 작년 통계청의 고령층부가조사에 따르면, 55세에서 75세까지의 고령자 중 60.1%가 근로를 희망하고 있었다. 또한 이들 중 56.8%는 생활비 등 경제적 사유로 근로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일자리를 원하면서도 고용 불안, 일자리 부족, 저임금 등에 시달리는 고령 노동자들의 문제는 88만원 세대의 실업난을 방불케 한다. 작년 초, 통계청이 조사한 전체 비정규직 근로자는 549만 8000명이며, 노동계는 임시직과 일용직을 포함할 경우 800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존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제 비정규직, 실업난, 저임금 문제는 전 세대적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때문에 청년 일자리 문제, 고령자 일자리 문제 등 산발적으로 내놓았던 정부의 정책들은 이제 전 세대적인 ‘비정규직’문제를 바라보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