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정작 직원들과의 소통은 부족했는지, 12월 1일 비정규직 노동자 두 명이 지엠대우 공장 정문에 설치된 높이 9미터의 광고판 위에 올랐다. 광고판에 오른 이들은 ‘지엠대우는 비정규 해고노동자를 복직시켜라’라는 문구가 쓰인 현수막을 내걸고 농성에 들어갔다.
소통 잘하는 기업, 지엠대우는 정작 이들과의 대화는 거부했다.
‘저들은 자사 직원이 아니다. 협력업체의 직원이므로 지엠대우가 대화에 나설 필요가 없다.’
이것이 지엠대우의 입장이다.
그러나 농성은 이번만이 아니다. 이들은 이미 지엠대우 공장 앞에서 3년 동안 농성을 해왔다. 3년 전인 2007년,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지자, 지엠대우는 조합원들이 속한 하청업체를 폐업시키거나 외주화했다. 광고판 위에 오른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했다는 이유로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 황호인, 이준삼 GM대우 비정규직지회 조합원이 ‘해고자 복직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부평 대우차 정문 아치 꼭대기에 올랐다. |
더럽고 치사해서 안 먹어
12월 4일, 광고판에 오른 두 노동자가 지상으로 밥을 집어 던졌다. 아무것도 없는 상공, 밑에서 올려주는 밥이 끊기면 그대로 굶어야 하는 사람들이 그 귀한 밥을 던지다니. 이 모든 건 ‘낫’ 때문이었다.
광고판 위 노동자들은 끼니때마다 밧줄을 내려 도시락을 전달받는다. 이 날도 밧줄이 내려왔다. 그리고 동시에 지엠대우 노무팀 직원들이 낫을 들고 나타났다. 긴 장대에 연결한 낫은 도시락을 매단 밧줄로 향했다. 밧줄을 끊으려는 거였다.
도시락을 전달하던 사람들이 노무팀을 막았고, 이내 싸움이 벌어졌다. 그 바람에 날선 낫이 사람들 머리 위를 휘젓고 다니는 위험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식사는 무사히 광고판 위 노동자들에게 전해졌지만, 이들은 밥을 내던졌다. 대화는커녕 밥줄마저 끊으려는 지엠대우에 대한 항의였다.
더럽고 치사한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하루는 아침식사 대신 과일을 올려 보내려 하자 경찰이 이를 저지했다. 허락된 물품은 밥과 물뿐이라고 했다. (경찰은 늘 농성자들의 도시락을 검사했다.) 담당 경찰서장에게 항의를 하자, 서장은 이렇게 대꾸했다.
“고생하려고 올라가놓고 뭘 그리 잘 먹으려 하냐”
당시 기온이 영하 13도였다. 농성을 하는 이들이 가진 것은 겨울용 작업복뿐이다. 그런 이들에게 고생을 더 해봐야 한다는 말이었을까? 두 노동자는 소원대로 더한 고생을 했다.
17일 고공농성을 하던 이준삼 씨가 통증을 호소했다. 일주일이나 참은 뒤였다. 의사가 올라가보니 이준삼 씨의 두 발은 중기 동상에 걸려 있었다. 피부가 울긋불긋했다. 추위에 시달린 혈관 조직이 죽어가고 있었다. 황호인 씨 또한 저체온증으로 폐렴에 걸릴 위험이 있었다. 한겨울 철제 구조물에 합판 하나 깔고 보름 이상을 보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의사가 가져간 체온계마저 얼려버린 추위였다.
두 사람에게는 조속한 치료와 난방기구가 필요하다. 그러나 9미터 상공에서는 어느 것도 가능하지 않다. 경찰은 난방용품을 올려 보내길 거부하고, 두 노동자는 농성을 멈추지 않고 있다.
열악한 상황은 지상도 마찬가지다. 고공농성을 지키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길에서 밤을 지새운다. 길가 구석에는 어디서 구해온 건지 장작이 잔뜩 쌓여 있다. 이 장작들이 추위를 막아주는 유일한 수단이다. 비정규직지회 조합원 한성호 씨에게 잠은 잘 만하냐고 물었다. 잘 땐 그나마 나은데 새벽에 깨는 게 곤혹이라고 한다. 한겨울에 비닐 한 장 덮고 자는 잠이다.
감쪽같은 비정규직과 정규직
조합원 한동수 씨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우리 조에 젊은 애가 있었는데 여자친구하고 대화를 하다가 <스피드파워월드(지엠대우 1차 하청업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나 봐요. 여자친구는 그 친구가 지엠대우에 다니는 줄 알았는데 스피드 업체 얘기가 나오니까 뭔지 물어봤겠죠. 그러니까 그 친구가 당황을 한 거예요. 그래도 센스 있는 놈이에요. 순간 ‘우리 회사 구호야’ 라고 한 거죠. ‘스피드! 파워! 월드!’ ‘빠르게! 힘 있게! 세계로!’ 그렇게 둘러대서 그 순간을 모면했데요.”
애인을 속일 수 있을 정도로 하청업체 직원들은 지엠대우 정규직 직원과 다를 바 없이 일한다. 같은 공정에서 정규직과 함께 일하며, 지엠대우 관리자에게 작업 지시를 받는다.
그러나 그들의 처지는 애인을 속여야 할 정도로 정규직과 차이가 난다. 월급도 대우도 그리고 미래도 다르다. 이런 차별을 없애려는 움직임이 있어 왔음은 당연하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진짜 사장이 해결하라
그러나 지엠대우의 입장은 한결 같다.
‘저들은 <스피드파워월드>의 직원이다. <대일실업>의 직원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책임이 없다. 대화를 할 이유가 없다.’
스피드파워월드, 대일실업은 모두 지엠대우의 1차 하청업체다. 그러나 하청업체 자신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신현창 지엠대우 지회장은 말한다.
“인력소개소 거간꾼 역할 밖에 하지 못하는 하청 사장은 정규직 관리자만큼 밖에 이득을 가져가지 못 해요. 나머지 차액을 누가 가져갈까요? 요즘 추세로 보면 100명을 가진 하청 업체도 없어요. 보통 50명도 안 되게 영세한데. 그런 하청 사장이 50명, 100명의 사람들을 위해 뭘 할 수 있을까요? 기껏해야 자기가 좀 덜 가져가고 한 두 사람정도 늘리는 거? 이것밖에 없어요. 하청 바지사장들은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농성장 주변에는 ‘진짜 사장이 고용해라’라는 문구가 적힌 피켓과 현수막이 빼곡하다. 지엠대우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진짜 사장’인 지엠대우 마이크 아카몬 사장과의 대화를 요구하고 있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난 ‘진짜 사장’
23일, 지엠대우의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 혐의를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났다. 지엠대우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실제로는 원청 지엠대우에서 불법파견으로 근무했다는 것이다. 하청노동자들의 실질적인 고용주는 원청 지엠대우라는 말이며, 이는 수많은 하청노동자들이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다.
지엠대우만이 이를 부정한다. 대화도 거부한 채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농성에 묵묵부답이다. 아니 오히려 폭력적인 진압마저 시도하고 있다. 21일에는 경찰 병력이 공장 정문에 몰려왔다. 농성 중인 두 노동자는 광고판에 매단 현수막 끈을 목에 묶고 저항을 했다. 경찰은 가까스로 물러갔으나 곧 강제집행을 하겠다는 통보를 했다. 신현창 지회장이 단식에 들어갔다.
이런 상황에서 지엠대우 아카몬 사장은 한 달 간의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났다고 한다.
3년 동안 노동조합이 해온 단 하나의 요구. ‘우리를 고용한 진짜 사장이 비정규직 해고자의 문제를 해결하라.’ 이 외침을 외면하고 아카몬 사장은 한국을 떠났다.
그가 고향에서 가족들과 케이크에 초를 꽂는 달콤한 순간, 그의 기도가 공장 정문 광고판에 목줄을 맨 노동자들을 향하지 않을 것이기에 두 노동자는 9미터 상공에서 잊지 못할 크리스마스를 보낼 것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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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울산노동뉴스]에 연재되는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