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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까지 회사에 우리만...조금 무섭다

[현대차 비정규직 점거농성 일기]③ 점거농성 4~5일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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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18일 점거4일째

하루하루가 너무나 빨리 간다. 벌써 4일째 몸이 뻐근하다. 유일한 게 좋은 건지... 난 유일한 여성이라 써클룸에서 잔다. 하지만 밖에서 자는 동지들에게 미안해서 불을 올리고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그래도 제일 따뜻한 곳에서 자는 사람이었다.

여러 곳에서 보급품이 지원됐다. 라면박스를 보면 내 배가 부르다. 쌓여라 많이 많이. 1공장 ㅎ기업 이00 동지는 몇 번 본 게 전부인데, 항상 나를 챙겨준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은 1공장. 여기 있는 여성조합원들은 삶은 달걀을 아침마다 가져왔다. 한 사람당 30개가 넘는 달걀을 삶아오면서도 많이 못해 와서 미안하단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내 눈물도 따뜻하다.

이곳은 발끝이 시리다 못해 따가울 정도로 춥지만 우리의 마음만은 따뜻하다. 다 같이 절실함 끝에 이곳에 모였고, 4일이 지나버린 지금엔 한 길만 있기에 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지금에 와서 다른 생각을 하기엔 늦은 것 같다. 끝까지 가보는 거다.

여긴 너무 춥다. 그래도 4일째 같은 맘으로 자고 먹고 했다. 그 끝이 뭔지 모르지만 뒤돌아 가기엔 너무 많이 왔기에, 다시 돌아가기엔 걸어온 순간마다 입은 상처를 다시 할 수 없기에 나머지 남은 길을 가련다...

걸어온 인생이 얼마나 아팠는지를 알기에 뒤돌아서 또 다시 왔던 길을 가고 싶지 않다.


11월19일 점거5일째

벌써 금요일이다. 낼이면, 아니 오늘 저녁부터는 뭔가를 단단히 준비해야 할 것 같다. 토요일 아침이면 회사에 있는 모든 직원이 다 빠져나간다. 그리곤 월요일까지 우리만 남겨져 있다는 게 조금 무섭다. 혹시나 관리자들을 엄청 풀어서 농성장을 치는 건 아닐까? 별별 생각이 다 든다. 맞으면 무지 아플 텐데...

부지회장이 앞에 앉아보란다. 할 말이 있는 듯 했다. 내가 나갔으면 좋겠다고 했었던 오빠...처음엔 그랬다.

그런데 이젠 나에게 미안하지만 있으면서 여러 가지 일을 도와 줘서 오빠가 한 결 편하단다. 그래서 안 나갔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미안하단다. 뭐가 미안한 건지... 내보내지 못해서? 난 고맙다. 내가 여자라 농성장에서 거치적거리고 귀찮지 않다는 게. 뭔가 도움이 되는 존재라는 게 너무나 고마운데 미안하단다.

그러면서 부탁 하나, 아니 약속 한가지 하라며 혹시 상황이 벌어지면 보급창고 불 켜놓고 의자에 앉아 있으란다. 밖에 나오지 말고...


오빤 그 약속 지키는 걸로 알고 있겠지만 나도 일이 생기면 어찌 변할지 모르는 성격이라 마음속으론 약속을 하지 않았다. 싸움도 많이 하고, 욕도 많이 하고, 거친 성깔머리 덕분에 난 항상 신상이 편하질 못하다. 팔자인가 보다.

보급창고 정리를 하고 있는데 한 조합원이 헬멧을 주고 간다. 일 생기면 쓰라고. 너무 감동해서 고맙다고 인사했더니 작아서 주는 거란다. 본인이 쓰려고 공장을 뒤지다가 하나 찾았는데 작아서 못 쓴다고. 난 그것도 모르고 감동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