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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

[연속기고](1) 홈리스법 제정으로 인권보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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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Homeless Memorial Day)'는 2001년에 시작해 올해로 열번째를 맞는다. 해마다 밤이 제일 길다는 동짓날에 열리며 추모제를 통해 극한의 빈곤상황에서 외롭게 생을 마감한 홈리스 생활자들을 위로함과 동시에 홈리스 문제의 현실을 발언하고 정책을 요구하며, 권리실현을 위한 운동을 결의하는 장이기도 하다. 추모제를 맞아 홈리스의 주요요구를 정리하고 추모제 의미를 밝히는 글을 연재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홈리스(homeless)에 관한 제도로서의 규정은 <부랑인및노숙인보호시설설치·운영규칙>에 의한다. 동규칙에 의하면 부랑인(浮浪人)은 ‘일정한 주거와 생업수단 없이 상당한 기간 거리에서 배회 또는 생활하거나 그에 따라 부랑인복지시설에 입소한 18세 이상의 자’, 노숙인(露宿人)은 ‘일정한 주거 없이 상당한 기간 거리에서 생활하거나 그에 따라 노숙인쉼터에 입소한 18세 이상의 자’로 규정되어 있다. 규칙의 명칭자체에서도 볼 수 있듯이 두 개의 명칭이 점하나로 연결되어 있을 뿐 ‘생업수단여부’는 실질적이지도, 객관적이지도 않은 개념규정이다. 우리 사회에서 빈곤(貧困)하면서 무주거(無住居)인 사람들, 즉 홈리스들은 이들을 바라보는 역사적 맥락, 경제․사회적 맥락 속에서 행려자, 부랑인, 노숙인 등으로 명명되면서 같은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른 대상으로서 다르게 취급되어왔다.

두 대상에 대한 보호사업의 동규칙이 마련되기까지를 간략히 정리하자면, 부랑인보호사업은 1980년대 대규모시설수용정책 하에서 오랜 기간 동안 내무부 훈령으로 운영되어오다가 대전양지원과 부산형제원의 인권유린사건을 계기로 1987년 “부랑인선도시설운영규정”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비로소 복지영역에 공식적으로 편입하게 되었지만 이후 시설의 입․퇴소절차와 시설운영에 관한 규정 외에 별다른 진전 없이 2000년 사회복지사업법 내 <부랑인복지시설 설치․운영규칙>의 형태로 존재해왔다. 한편 노숙인보호사업의 경우 외환위기 이후 실직노숙인 대책을 중심으로 응급구호적 성격을 이어오다가 2003년 사회복지사업법 내 노숙인보호사업이 부랑인보호사업에 묶여 삽입되면서 제도화를 꾀하게 되었다. 이 두 대상은 2005년 <부랑인및노숙인보호시설설치운영규칙>으로 시설체계의 개편 없이 명칭만 ‘묶여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2004년 사회복지사업법과 지방분권특별법 개정시 부랑인복지사업은 중앙정부로 노숙인복지사업은 지방정부로 이양되어 사실상 같은 대상임에도 불구하고 행정적 책임소재가 양분되었다. 이후 행정의 비체계적, 비효율적인 운영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의 책임회피라든가 혹은 중앙정부의 비개입이 발생하여 노숙생활의 현장에서는 썩소를 자아낼 비상식적인 일들이 벌어졌다. 몇 가지 에피소드를 되돌아보자.

“노숙인 의료구호비 중단사태(2004년)”

노숙인과 같은 취약계층에게 의료문제는 가장 심각한 형태로 다가선다. 의료서비스의 방치가 죽음과도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헌데 2004년 봄,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서울시가 책정한 의료비가 1/4분기에 바닥을 드러냈다며 노숙인 의료서비스를 전면 중단한 것이다. 당시 노숙당사자와 민간단체의 행동대응으로 추경예산이 편성, 고비를 넘겼지만 노숙인에 대한 의료지원은 현재까지도 의료구호비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지원방식은 사실상 책정된 예산이 실제의료비용을 포괄하지 못하는 문제를 배태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 2008년 복지부의 의료급여사업지침개정으로 행려환자에 대해 부양의무자 확인절차를 반드시 거치도록 하고 있어 진료기관의 소극적인 진료를 초래하게 되었고 결국 진료기관에서 오히려 노숙인구호체계로 환자를 의뢰하는 역류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결국 노숙인의료구호에 대한 소요비용은 더 증가할 것이다.

“노숙자율금지구역지정(2007년)”

‘노숙은 건강한 정신과 육체에 매우 해롭습니다. 노숙이 지속되면 폐결핵․당뇨 등 각종 질병을 가져오며 불규칙한 식사는 영양실조로 이어져 소중한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건강을 지켜드리고 자립을 도와드리고자 하오니 상담보호센터나 쉼터로 입소해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시가 몇 개의 자치구에 이러한 문구를 담은 ‘협조문’을 게시하도록 하였다. 지금도 덕수궁이나 시청, 서울역 등의 지하도를 걷자면 노란색 게시물이 여전히 붙어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럼, 거리노숙인들은 갈수 있는 쉼터와 상담보호센터가 충분한데도 본인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거리잠을 잔다는 건가? 하지만 노숙인들이 접근가능한 쉼터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아 보인다. 시가 입소를 권유하는 쉼터는 외환위기 당시 160여개에 달했으나 노란색 게시물이 부착될 무렵 70여개소로 감소되었고, 서울시는 50여개소가 채 되지 않는다. 알코올 치료를 위한 재활쉼터는 1개소뿐이며 남성가족쉼터도 1개소뿐이다. 상담보호센터는 사적인 공간이 전혀 확보되지 않는 거리노숙인 이용시설로서 최소 50인 이상이 한 공간에서 냄새와 소음을 참고 일정기간동안만 잠을 잘 수 있는 곳이다. 게다가 여성전용 상담보호센터는 전무하다. 상황이 그런데도 불구하고 노숙을 ‘자율적으로 금지하니 입소하라’니... 이는 행정의 거리노숙인 비가시화대책에 불과하다.

“노숙인과 부랑인을 구분하라(2008년)”

서울시는 관할 상담보호센터에 거리노숙인을 ‘일반노숙형’과 ‘부랑형’으로 나누어 지원대상을 명확히 할 것을 지시했다. 시가 제시한 세부구별 기준을 보면 부랑인은 “위생상태가 불량하고, 취침장소가 일정하지 않고 전염병 또는 만성질환을 앓고 있으며 일자리가 주어져도 일할 의지가 없는 경우”니 이들과 노숙인을 구분해 지원하라는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부랑인은 중앙정부, 노숙인은 지방정부로 행정체계가 분리되어있고 예산편성도 다르다. 이러한 처사는 분명 예산을 고려한 미루기로서 다분히 행정편의주의적 발상이며 홈리스에 대한 낙인을 부여하는 행태였다. 그리고 그를 가능하게 한 것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협의와 협력의 부재이다.

“노숙인의 일자리는 고무줄(2010년)”

2010년 추석을 앞 둔 즈음 서울시는 노숙인 특별자활근로의 일자리를 일시에 절반이상 줄였다. 서울시 관할 노숙인쉼터와 상담보호센터 26개 기관을 통해 505명에게 일자리를 제공했으나 242명으로 축소한 것이다. 노숙인특별자활근로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근로유지형자활사업에 준하는 것으로서 일반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거나 공공부조에 편입하지 못하는 거리노숙인이 이용할 수 있는 일자리로서 월39만원 정도의 급여가 발생하는 일자리다. 서울시는 재정위기를 이유로 예년과 달리 사업대상 인원을 줄였다. 해당 급여로 쪽방이나 고시원에 거처를 마련한 사람들을 일자리를 잃은 후 다시 거리생활의 위기에 처했다.

노숙현장활동을 수행하면서 부딪혔던 장벽들을 돌아보며 10여년에 걸친 노숙인 보호사업을 훑어보았다. 요컨대 의료대책, 일자리대책, 시설을 포함한 주거대책 등 모든 부문에 걸쳐 현재의 홈리스 지원사업은 분명 시설중심적이고 다분히 거리노숙인의 비가시화에 집중하고 있으며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로 양분되어 비체계적이고 불안정하다. 바로 여기에 법적 제도로서 체계화 작업의 필요성이 있다. 즉 행정이 전담하는 규칙의 수준을 넘어선 보다 장기적인 비전을 갖고 포괄적으로 홈리스 지원대책을 수립할 수 있는 법적 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홈리스법 제정의 필요성

그렇다면 우리의 홈리스법은 어떠해야 할까? 우선 홈리스 지원정책의 방향을 천명하는 법의 목적에 반드시 국가에 의한 주거보장이 명시되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거처가 가장 필요한 사람들이 홈리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홈리스에 대한 긴급거처제공은 물론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예방책까지도 포괄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홈리스지원의 기본정책의 수립 시 거리생활자뿐만 아니라 최근 도입되고 있는 비주택(인구주택총조사에서 사용하는‘주택이외의 거처’의 개념-①오피스텔, ②호텔, 여관 등 숙박업소의 객실, ③기숙사 및 특수사회시설, ④판잣집, 비닐하우스, 움막 ⑤업소의 잠만 자는 방, 건설 공사장의 임시막사 등 임시적 거주를 위한 구조물-외에 쪽방, 여관, 여인숙, 고시원, 만화방, 다방, PC방, 찜질방, 기원 등 비주거용 시설을 의미함)거주자를 포괄하는 광의적 개념의 홈리스에 대한 실태조사가 수반되어야 한다. 실태조사에는 지원계획을 염두하여 활용가능한 자원-염가숙소와 공공임대주택 등 주거자원-에 관한 조사도 포함되어야한다. 특히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책임소재와 역할을 분명히 하고 중앙의 경우 관련부처의 책임자들의 협의기구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간 민간에 의해 진행된 창의적 주거지원사업과 구호사업이 잘 수행될 수 있도록 민관의 협력도 명시되어야 한다. 또한 부랑인복지시설과 더불어 노숙인쉼터, 상담보호센터 제도로부터 제외된 쪽방상담소 등에 관한 시설체계의 개편과 각 시설체계에서의 역할도 필수포함사항이며 근간은 지역사회정착에 두어야 할 것이다. 홈리스란 명칭에 관한 문제가 제기된 바 있다. 홈리스문제를 예방하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사회의 홈리스문제에 관한 인식의 수준을 높이기 위해 홈리스라는 용어가 타당하다고 사료되지만 차선책으로서 노숙인이라는 명칭을 그대로 사용한다고 했을 때, 적어도 그 개념은 거처상태를 중심으로 광의적으로 규정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홈리스의 복지수급권 보장을 위한 이이신청 혹은 정보공개청구권, 홈리스 인권옹호로서 사회적인식의 제고를 위한 대국민홍보 등의 조항이 필요할 것이다.

동지(冬至), 노숙인 추모제

  2009 노숙인 추모제 모습

대한과 소한사이에서 낮이 가장 짧고 밤이 가장 길고 춥다는 동짓날이면 ‘거리에서 죽어간 노숙인 추모제(Homeless Memorial Day)'가 열린다. 2001년부터 촛불을 밝히기 시작했으니까 올해로 꼭 열 번째가 되는 셈이다.

이 추모제를 통해 노숙당사자를 비롯해 노숙인지원자들은 빈곤의 최극단에 맴돌다 종국에는 거리생활로 삶을 마감한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며 홈리스생활의 문제를 외연화하고 노숙인의 인간다운 삶의 권리를 실현하기 위한 활동의 결의를 다진다. 제10회 홈리스추모제를 앞둔 즈음 올 한해를, 그리고 그간 노숙인 및 부랑인 지원사업의 비효율성과 비체계성을 되돌아보며 법제도를 통해 홈리스 인권이 보장받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