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철인이다. 전 세계 노동자의 보편적인 주 40시간 노동은 나에겐 그림의 떡이다. 휴일이라곤 없다 남들이 말하는 여가의 활용, 재충전을 위한 휴식은 나에겐 사치다. 한 달에 보너스 합쳐 200만원도 안 되는 임금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내 몸뚱이는 일만하는 기계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것도 절대로 고장 나서는 안 되는 기계로 말이다.
얼마 전 시급이 200원 올랐다. 한 달 기본 노동시간 240시간 곱하기 200원 하니 48,000원이라는 금액이 기본급으로 오른 것이다. 사장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줄인다고 말한 것 같은데 이대로는 물가인상률도 따라가지 못 할 것이다. 그러니 시급이 200원 올라도 나는 지금보다 더 많이 내 몸을 혹사해야 한다. 그래야만 근근이 내 가정을 유지해 나갈 수 있다. 어찌 되었든 우리는 한 달에 350시간 이상씩 거뜬히 일 해내는 자랑스러운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인 것이다. 다음 달에는 기필코 400시간 이상을 해치워야지. 먹고 살기 위해서라면….
출처 : B조선 사내하청노조준비위원회 홈페이지 자유게시판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의 다섯 명 중 한 명은 이 같은 처지에 놓인 사내하청 노동자다.
노동자 다섯 모이면 한 명은 하청노동자
2008년 노동부가 300인 이상의 963개 원청 사업장을 대상으로 사내하청 노동의 규모를 추계한 결과 이들 사업장의 정규직 노동자는 131만 7천명, 사내하청 노동자는 36만 8천여 명으로 조사대상 사업장 노동자의 21.9%가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하지만 이 조사는 대상을 300인 이상 사업장으로 한정했고 완성차 사업장과 장치산업 부문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나는 2, 3차 사내하청 노동자는 제외해 실제 제조업 부문 등에서 활용되고 있는 사내하청 노동자의 규모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같은 하청노동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조(금속노조)가 2001년, 2004년, 2007년 총 3회에 걸쳐 산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사내하청 노동 규모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사내하청 노동자 수는 2001년 39,167명에서 2007년 64,767명으로 6년 만에 165%나 증가했다.
비정규직의 증가폭이 얼마나 큰지는 정규직과 비교해 보면 더 쉽게 알 수 있다. 3차례에 걸친 금속노조 조사에 모두 참여한 사업장 총 23개소를 대상으로, 2001년 대비 2007년의 정규직 조합원 및 사내하청 노동의 증가율을 구해 보면 정규직 조합원은 5.6% 증가하는 데 그친 반면 사내하청 노동은 119.9%나 증가했다. 사업장의 생산직 노동자 수요 대부분을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 왔다는 의미다.
같은 일 하고 임금은 절반
업체들이 정규직 자리를 하청노동자로 대체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영 정규직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한 하청노동자들의 저임금 때문이다.
2003년 금속노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실태조사 한 자료(박영삼 외)에 의하면 정규직 월평균임금(연장근로수당 포함, 상여금 제외)은 155만원인 데 비해 사내하청은 그 70.3% 수준인 109만원이었다. 상여금까지 감안하면 정규직은 226만원 수준으로 올라가고 사내하청은 134만원 수준에 머물러 격차율은 더 확대된다.
2007년 조사 결과도 거의 유사하다. 금속노조가 산하 257개 사업장을 대상으로 작업장 내 사내하청 노동자 실태를 조사한 결과 자동차 업계의 정규직 평균연봉이 3,519만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의 평균연봉은 그 57.3% 수준인 2,016만원이며, 철강업계의 경우 정규직 평균연봉이 3,693만원인데 비해 비정규직은 2,488만원으로 62.3% 수준에 불과했다.
이처럼 하청노동자들은 정규직 절반 수준의 임금을 받으면서도 원청 노동자들과 동일하거나 거의 유사한 업무를 하는 경우가 60%에 이르렀다.
‘비정규직없는세상’의 2010년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 중 35.1%가 ‘같은 일을 함께 한다’, 22.1%가 ‘같은 일을 분리되어 한다’고 답해 무려 57.2%의 하청노동자가 원청 노동자들과 같은 일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청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기업의 핵심 업무나 적어도 직접고용을 해야 할 업무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담한 노조조직률 3% … 대공장 노조 중심인 금속노조, 한계보여
이렇게 불합리한 노동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노동조합이다. 하지만 하청노동자들의 조직률은 매우 저조하다 못해 참담한 실정이다.
2009년 1월 말 기준,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사내하청 노동조합원 수는 32개 지회(노조)에 5,048명으로서, 전체 조합원 153,013명 중 사내하청 노동자 조합원 비중은 3.3% 수준에 불과하다(금속노조, 2009). 경제활동 인구조사 부가조사(2009. 8)를 통해 확인되는 전체 노조 조합원중 비정규직 노동자 비중이 약 8.5% 수준임을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금속부문 사내하청 노동자의 노조 조직화 정도는 상당히 낮다.
그나마도 하도급 관계로 포장된 간접고용의 특성으로 인해 ‘노조 결성 시도 → 하도급 계약 해지(업체 폐업) → 사실상의 해고’로 귀결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연구위원은 ‘사내하청 노동 문제 해결을 위한 제언’(2010)에서 “정규직 노동조합 또한 기업별 노조의 조직형태를 탈피하여 산별 노조화 하였지만, 대공장 노조의 1사 1노조 조직통합 거부 사례에서처럼, ‘조직은 하되, 작업장 권력 공유는 거부하는’ 양상으로 귀결하고 있다”며 “이러한 대공장 노조의 태도는 대공장 정규직 노조를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의 사회적 ‘고립화’ 경향을 가속화하면서, 기존 조직노동의 변화를 지연시키는 주된 계기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금속노조의 내부 구성도 문제 삼았다. 금속노조 전체 조합원의 71.9%가 1,000인 이상의 중.대형 사업장 소속이고, 지회 수에서는 2.5%에 불과한 5,000인 이상의 대규모 사업장이 조합원 수 비중에서는 39.8%에 달하고 있는 상황으로 “금속노조 자체가 대공장 조합원의 이해를 우선적으로 대변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손 연구위원은 “원하청 구조의 상층, 내지는 최정점에 있는 이들 대공장 노동조합이 노-사간 경합 속에서 단기주의적 이익 극대화 전략에 매몰되면서 궁극적으로는 전체 금속부문 노동자 및 노동조합간 연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된다”며 “이는 결과적으로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도의 저하와 사회적 고립화로 연결되고 있으며, 구체적으로는 금속부문 조직노동의 외연 축소, 즉 조직율 하락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울산=미디어충청,울산노동뉴스,참세상 합동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