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론, 이러한 분석이 틀렸다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주체 100년이 되는 2012년까지 권력기반을 반석위에 올려놓고자 노력하고 있는 북한 권력층으로서는 김정일의 건강문제도 있고 빠른 시간 내에 이를 해결해야 하는 과제가 있다.
하지만 내부적인 목적으로 일으켰다고 하더라도 하나의 사건이 밖으로 표출되면 이미 그것은 국제적인 문제가 된다. 특히 한반도에서 일어난 군사적 사건이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출처: 국방부] |
경제와 안보 사이, 갈등하는 미국
한반도를 둘러싼 지형에서 북한의 군사적 행동은 미국의 판단에 따라 전체 지형이 크게 바뀐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사건을 어떻게 접근했을까? 문제를 단순화시켜, 이를 안보문제로 접근했을까, 아니면 경제문제로 접근했을까? 물론 양쪽 다 중요한 접근방법이라고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이 사건이 발발하고 미국 내에서는 군사와 안보를 걱정하는 뉴스보다는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더 크게 다루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주가와 금리 동향에 이목이 집중되었고 혹시나 코리안 리스크가 전면전 혹은 쌍방간 포격전의 확대로 인해 경제불안이 아시아 전체로 확산되거나 번질까 우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이처럼 미국사회는 이 문제를 안보문제로 다루기보다는 주로 경제문제로 우선해서 다루었고 오바마 미 행정부도 마찬가지다.
미국이 이와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된 것은 미국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기 때문이다. 국제적인 비난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양적완화 정책을 지속시켜 가면서 위기를 신흥국 등에 전가시켜 왔다. 여기에 최근 아일랜드의 구제금융 사태의 재발로 유로존의 위기가 다시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그런데 성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시아권이 코리아 리스크로 인해 타격을 받을 경우 미국경제는 다시 회복할 기회를 가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안보문제와 관련해서 북한 핵문제의 해결 능력이 의심받고 있던 때에 발생한 연평도 포격사건은 그만큼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북한의 농축 우라늄 시설의 공개에 따라 북한의 핵동결이 사실상 실패로 돌아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인 가운데, 보즈워스 특사를 파견해 북한 핵 문제에 대한 한중일의 조정 작업이 이루어진 직후에 이 같은 포격사건이 발생했다. 잘 못하다가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안보문제의 해결 능력을 다시 검증받아야 하는 처지에 몰릴 위기에까지 처했다.
미국내 우파들과 FOX TV 등 우익 언론들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소식이 알려지자마자 “우라늄 농축시설의 폭격” 등을 주문하고 나섰다. 하지만 오바마 미 행정부는 이것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북한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미국이 북한 핵 시설에 대한 공습을 감행할 경우 미국 경제는 단숨에 검은 구름으로 덮이게 된다. 외교적으로는 중국으로부터의 비난에 시달리고, 한국 내부에서 반미감정의 고조로 인해 외교적인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또한 더 우려되는 것은 북한 핵시설 등에 대한 폭격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서해상에 대한 무력공격을 더 확대시켜 나갈 수도 있다. 상황이 이렇게까지 악화된다면 오바마 행정부는 북한과 전쟁을 치루거나 아니면 상황을 그냥 인정해야 하는 양자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가뜩이나 경기부양에도 힘이 부치는 오바마 행정부가 군사비도 예산삭감의 대상이 되고 있는 판에 북한과 전쟁을 치러야 하는 값비싼 전략을 선택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렇다고 악화된 상황을 그대로 용인할 경우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적 관리능력은 그 어느 때보다도 의심을 받게 되며 정치적으로 치명상을 입게 된다.
결국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전략지대는 ‘중국을 통한 대북 압박’이며, 현재의 상황이 ‘확전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것 외에는 없어 보인다.
중-미의 대결장소가 된 한반도
기본적으로 한반도는 ‘한-미 대 북한’이라는 틀을 가지고 있다. 한반도에서 각종 분쟁의 당사자는 북한과 한국 또는 미국 (혹은 일본)이 되어 왔다. 특히 서해상에서 중국의 개입은 제한적이다. 동중국해, 남중국해가 이미 분쟁지역화 되어 있는 상황에서 서해(황해)까지 분쟁지역이 되는 것이 매우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렇게 군사적으로 고립된 구도를 벗어나려 한다. 더군다나 포스트 김정일을 고려한다면 김정운의 정치, 군사, 외교적 기반을 더욱 탄탄히 해 나갈 필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북한은 한반도에서 관계역전 혹은 대등한 긴장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전략적인 계획을 가진다고 보여진다. 특히,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가 고조되면서 미국의 지위와 역할이 축소되는 상황을 맞아 “한-미 대 북”의 대립축을 “한-미 대 북-중”으로 재편하여 일방적인 고립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세력관계에 새로운 변화를 주려고 시도할 것이다.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연평도 포격 등 일련의 행위들도 전략적 측면에서 이런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이 구도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실든 좋든 서해상에 중국의 개입 특히, 중국의 군사적 개입을 가시화해야 한다.
미국으로서도 앞서 설명한대로 외교적, 경제적 이유 등으로 중국의 역할에 기대지 않을 수 없다. 오히려 현재 미국이 의심하는 것은 중국이 북한에 대한 통제력이 얼마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농축 우라늄 시설을 미국에 공개하면서 중국에 미리 알렸는지, 이번 연평도 포격 이전에 중국이 이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등이 미국의 주요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국이 내년 1월 후진타오 국가주석의 방미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중국의 대북 통제력이 어느 정도 되는지 검증하려 할 것이다.
중국과의 유일한 통로를 개설하고 있는 북한이 문제를 일으키면 일으킬수록 중국의 역할은 그만큼 커지게 된다. 북한이 행동을 가시화하면 할수록 미국의 개입도 커지고 그에 따라 중국의 개입도 커지게 된다. 미국 핵항모와 7함대의 서해 진출이 본격화, 일상화 된다면 중국으로서도 가만히 눈감고 있을 수 없기 때문에 군사적 개입이 반드시 뒤따르게 될 것이다. 북한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최근 중국이 천안함 사건 발생시 미국 핵항공모함의 서해진출에 극렬히 반대했던 비해 중국이 이번 사건을 오히려 조용하게 넘어가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는 당장 눈앞에 닥친 후진타오 주석의 미국방문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며 그만큼 단기적인 현상이다.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긴장은 여전하기 때문에 미군의 서해확장은 그만큼 중국으로서도 위협적이다.)
기본적으로 미국은 중국에 대하여 외교와 경제라는 양면으로 압박과 균형을 지속시켜 왔다.
경제적으로는 가이트너 미국 재무장관의 진두지휘 아래 위안화 평가절상을 무기로 경제전쟁을 치르고 있다. 군사외교적으로는 남중국해에서 중국과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과의 영토분쟁이 확대되자 미국은 지난 6월 이후 지속적으로 개입해 베트남과도 사상 처음으로 합동군사훈련까지 진행하면서 중국을 압박해 왔다. 여기에 대만, 중국 간의 양안문제와 함께 중국, 일본간의 조어도(센카쿠 열도) 분쟁에도 개입해 중국을 압박하고 있다. 이를 총괄하는 것이 힐러리 미 국무장관이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경제적으로 G20을 통해 세계경제체제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위안화의 점진적 절상이라는 불편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외교적으로는 영토분쟁을 빌미로 한 미국의 다소 강경한 중국압박 속에서 나름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때문에 미국은 한반도 긴장상태를 이유로 중국에 대해 섣불리 행동할 수가 없다. 그것은 동중국해와 남중국해에서 강하게 중국을 압박하며 대중국 균형을 지향하고 있는 힐러리의 외교전략과, 위안화의 완만한 절상을 추진하고 있는 가이트너의 경제전략을 동시에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말의 의미는, 미국으로서는 중국에 대한 압박이 전체적인 균형상태의 붕괴우려로 한계를 갖게 되며, 북-중관계의 자율성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기도 하다. 미국이 중국에 기대하는만큼 북한의 자율성이 또한 존재하며, 미국은 물론 중국을 상대로 한 북한의 정책수단도 다양화될 수 있다. 북한으로서는 한편에서는 미국의 지위를 흔들고 다른 한편 중국의 높아진 위상을 실험할 기회로 보고, 한반도 내 역학구도의 재편을 저울질해 나갈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만든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과연 이러한 구도가 실현가능한가의 문제는 차치에 두더라도, 당장 미국과 중국이 군사개입을 확대시킨다면 서해 일대는 일상적인 긴장상태로 바뀌게 된다. 나아가 이러한 긴장이 지속되면 동중국해나 남중국해처럼 중국과 미국의 군사적 대결공간으로 서해가 자리잡을 수도 있게 된다.
북한에 놀아나는 한미동맹
지금 북한의 속내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연평도 포격으로 서해의 긴장상태의 고조, 우라늄 농축시설 공개와 결합된 군사적 대결의 확산, 그를 통한 한반도 역학구도의 변화까지 고려했는지 알 수는 없다. 중국과 사전논의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며, 중국이 왜 불난 집을 상대로 6자회담을 급하게 제안할 수밖에 없었는지도 의문이다. 또는 북한이 서둘러 6자회담 틀을 재가동하며 궁극적으로 한반도의 평화협정체결을 목표로 움직이려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만약 북한이 청년장군으로의 권력이양기에 권력기반의 강화를 목표로 했다면 현재까지는 정확히 북한의 의도대로 진행되고 있다.
서해5도지역은 군사외교적으로 놓고 볼 때 분쟁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대고 포격을 가했으니 당연히 한국과 동맹국인 미국이 군사적 응전을 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자칫 평양이나 핵 시설에 대한 폭격이 가능할 상황까지 염두에 두었을 것이며 그것에 대해서도 정확히 판단했을 것이다.
연평도에 포격했을 때, 즉각 보복공격을 하지 않으면 대응할 기회를 잃게 된다. 북한에 대한 군사공격권은 전시작전권이 한국측에 이양되지 않아 한국 군당국이 임의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보수진영은 평양과 핵시설 폭격을 말하지만 미국의 허락없이 이명박 정부가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그들이 반대한 전시작전권을 미국으로부터 이양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전시작전권이 정부에 반환되었다면 어찌되었을까? 문제는 대결구도의 해소와 억제능력에 있는건 아닐지.)
북한을 공격할 수 있는 것은 미국뿐이다. 하지만 미국은 현재 상태에서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북한과의 전쟁을 피하고 싶어 한다. 때문에 한국 정부는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무력시위 이상 할 수가 없다.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를 확대시키는 방안도 고려할 수는 있으나, 반기문 사무총장이 당사국인 한국의 외무장관 출신이라는 점, 이미 천안함 사태에서도 유엔 제재의 실효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없다.
이미 지난 5월 한국정부가 천안함 사건이 북한 어뢰공격 때문이라고 결론내린 이후, 한국과 미국은 북한을 상대로 무력시위를 감행한 바 있다. 그 때 미국의 핵항공모함인 조지워싱턴호가 서해바다에 진출하려고 했으나 중국의 반발로 무산되어 동해안에 머문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포격사건으로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상에 진출할 것이라는 점을, 중국이 반대해도 미국이 강행할 수 있다는 것을 북한이 계산에 넣지 않고 행한 일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이 점은 충분히 예상 가능한 것으로, 북한으로서는 숙적 미제가 턱밑에까지 와서 위협을 하는 현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제대로 보여줄 수 있는 기회로 삼았다. 이것을 통해 ‘선군정치’의 필요성을 확인하고 내부체제를 강화시킬 기제로 삼고 있다. 조지워싱턴호가 서해상으로 진출해 군사훈련을 하며 북한을 위협해주고, 북한은 준전시상태로 가게 되었으니 그야말로 미국과 한국의 군당국은 북한 권력층의 기대대로 움직여준 꼴이 아닐까?
▲ 미국의 핵항공모함 조지워싱턴호 [출처: 국방부] |
남과 북, 지배권력 사이에서
미국의 북한에 대한 ‘무시(neglect)’ 전략과 함께 이명박 정부 역시 6자회담 재개를 위한 북한의 대화 요구를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이달 초 열린 이산가족상봉에서 북한은 남측에 대규모 식량지원을 요구했으나, 정부는 이를 거절한 바 있다. 또한 정부는 금강산 관광 재개 역시 “회담을 하려면 금강산 관광지구 내 남측 시설에 대한 동결, 몰수 조치부터 즉각 철회해야 한다”면서 사실상의 회담 거부를 표명했으며, 경협 확대 요구 역시 묵살 했다. 결국 북한이 내민 대화카드를 정부가 전면적으로 거부했다.
특히 지난 3월 천안함 사건으로 남북 관계는 급속도로 냉각 됐다. 남측은 천안함 사태에 대해 북한 잠수정의 어뢰 공격이라는 결과를 발표했으며, 북측은 이에 대해 ‘사기극’이라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천안함 사건 이후 대북 압박정책의 수위를 계속적으로 높여 왔다. 급기야 지난 9월에는 국방부에서 ‘2010 국방백서’를 발간하며, 북한을 주적으로 명기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명박 정부의 대북 대응은 구두선에 머물렀다. 지난 5월에는 정부가 개성공단에 대북 확성기를 설치하겠다고 나서면서 갈등이 증폭되기도 했지만 북한이 격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자 슬그머니 거둬들였다. 지난 29일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사태에 대한 대국민담화문을 발표했지만 당장 어떻게 하겠다는 것은 없고 앞으로 이런 일이 생기면 이라는 식의 사후약방문 수준으로 그쳤다.
현 정부는 대북전략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적극적인 군사적 긴장과 대결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원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평화와 협력같은 구호와도 거리가 멀다. 따라서 이명박 대통령의 가래끓듯한 호령은 국외용이 아니라 언제나 그렇듯 국내용이다.
가뜩이나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국방예산을 7천억원 이상 증액하며, 이 대가로 민중복지의 어떤 부분을 더 희생해야 할지도 알 수가 없다. 현대차 비정규직 파업이 한창 진행중인 상황에서 연평도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노동부 장관, 경찰이 나서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옥죄기 시작했다. 여기에 한미FTA 재협상도 다시 시작했다.
또한, 북한이 연평도 포격으로 남한 민중에게 끼친 해악도 이만저만한게 아니다. 청와대가 개입되었을 것으로 의심된 미증유의 사찰내용이 담겨있던 원충연 수첩 스캔들이 대포 한방에 날라가 버렸으며, 지난 10년간의 차별에 몸서리치며 공장라인을 세웠던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의 파업에 찬물을 끼얹었다. 게다가 이번 포격으로 해병대 군인 2명과 민간인 2명이 희생되면서 한반도는 그야말로 전투태세를 촉구하는 목소리로 들끓어야 했다. 평화를 바라는 노동자와 서민들의 바람을 연탄재 걷어차듯 차버린 것이다.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상태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소한 북한이 권력의 안정적 이양을 목표로 하는 2012년까지 이러한 긴장과 대립이 지속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 남과 북의 권력사이에서 누가 피해를 볼지도 자명한 노릇이다.
일본의 한 외교전문가는 한반도에서 전면전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마치 ‘주유소에서 불장난’ 하는 것과 같이 우연한 실수로도 불이 번질 수 있는 긴장상태라고 표현한 바 있다. 가령, 지난 한미합동군사훈련에서 한국군이 DMZ 부근으로 오발탄을 쏜 일처럼 말이다. 통제하지 못하면 불은 붙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