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비정규직지회의 점거농성이 3주차 15일째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얼떨결에 밀려 올라가 이 추운 겨울에 침낭도 없이 비닐을 덮고 자며 하루에 김밥 한 줄로 고통스러운 투쟁을 하고 있다. 가족들은 남편들에게 주먹밥이라도 만들어 전달하고 싶지만, 정문의 철창 앞에 가로막혀 울부짖다가 그냥 돌아가야 한다.
다행히 현대차 정규직지부에서 지부장과 상집들이 하루 한 끼의 식사이지만 회사 관리자들과 몸싸움을 하며 올려주어 굶주림 상태는 면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리 적대적 대립관계가 발생했다고 해도 농성자들의 인권을 이렇게 무시해서는 안된다. 이제 한 끼의 김밥도 모자란다고 한다. 사형선고를 받고 이 사회로부터 영원히 격리받을 처지의 사형수도 정부가 제공하는 세 끼의 식사를 하는데 설사 불법파업이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인간이 누려야 할 권리는 있으며 우리는 그걸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대차는 불법파견 철폐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올라간 그들에게 밥을 굶겨 내려오게 한다는 얕은 생각을 버리고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예의는 지켜주기 바란다.
역지사지라는 말이 있다. 상대와 처지를 바꾸어 생각해보자는 말이다. 지금 점거농성으로 내몰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도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서 단 한 번이라도 생각을 해보았다면 현대차에 이런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장장 5년 동안이나 그들은 월차를 요구하다 아킬레스건이 잘리고 식칼테러에 맥주병으로 머리통이 깨지며 수십 명이 노조활동을 하다가 또 정규직화 요구투쟁을 하다가 해고되어 쫓겨났다. 노조활동 자체를 목숨 걸고 해야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입장에 서보지 않고서는 저들의 완강한 점거농성이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의 점거농성 장기화 사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탓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침낭과 먹을 것조차 하나도 준비하지 않은 엉성한 점거농성이 전혀 계획적이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다. 그들은 관리자들과 경찰력의 폭력에 쫓겨 그곳에 올라갔고, 기왕 시작된 파업 죽든지 살든지 끝장을 내야겠다는 결단은 그 농성장에서 이루어졌다. 그들은 불법파견이 철폐되고 정규직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내려오지 않겠다는 고통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금속노조와 현대차지부, 현대차비정규직지회 3자가 교섭의제의 요구수위를 놓고 이견이 발생한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어찌 단숨에 동일한 입장이 나올 수 있겠는가. 당연히 틀리고 언성이 높아지거나 소통이 단절되는 수도 있겠지만 결국 다시 하나가 되어 헤쳐나가야 할 과제이다. 단순한 사건 하나에 일희일비하며 좌절하지 말고 지헤롭게 해결해나가야 하는 것고 지금 그 역사의 현장에 서 있는 자들의 몫이다. 가능하면 비정규직직들의 입장에서 더욱 깊은 이해를 하고 우선 배려해준다면 없던 신뢰도 생긴다. 이경훈 지부장 말대로 원.하청 아름다운 연대로 승리하는 투쟁을 반드시 만들어낼 수 있다.
정몽구 회장에게도 빨리 이 사건 해결을 위해 불법파견 철폐라는 결단을 촉구한다. 서울고법 파기환송 판결 또한 대법원 판결을 번복할 수 없다는 건 회사가 더 잘 아는 사실 아닌가. 점거농성자들에게 정규직화 조건 없이 내려오라는데 정몽구 회장도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본다면 못 내려온다고 버틸 것이다. 더는 비정규직들을 대상으로 저임금 노동착취체제는 유지할 수 없다는 정세의 변화를 빨리 읽어야 한다. 지난 10년간 야만의 착취질서는 존립기반을 상실하고 역사 속으로 넘어가고 있다. 그 누구보다 이 사태의 빠른 해결은 최종 책임자인 정몽구 회장의 결단이며 감형을 받으며 국민 앞에 준법경영을 약속했던 책임을 지는 올바른 자세이다.
사람이 죽어서 입고 가는 수의에는 호주머니가 없다. 억만금이 있어도 단 한 푼 가져갈 수 없다. 있을 때 스스로 베푸는 여유가 적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