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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노동자 현실을 바꿔야 노동운동의 미래 바뀐다

[기획연재] 여성노동자의 현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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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비정규직과 저임금층의 다수가 여성인 현실, 불안정한 고용과 더불어 인격적으로도 존중받지 못했던 현실을 깨기 위해 이제 여성노동자가 노동조합의 주인으로 나서고자 한다. 여성이 노동자로 당당하게 살 수 있는 세상, 전체노동자가 하나로 단결할 수 있는 세상을 위한 변화를 모색하고자 서울지역 여성노동자들이 뭉치는 서울여성조합원대회가 준비되고 있다. 12월 11일 토요일, 서울여성조합원대회를 준비하며 현재 여성들이 처한 현실을 담은 기획기사를 연재한다.


경기침체가 불안정하게 지속되고 있고, 저출산 고령 사회로 진입한다는 위기감 속에 정부와 자본은 전체 노동시장의 재편과 여성, 청년 등 취약계층 인력을 활용해 위기를 극복하려는데 분주하다. 각종 법, 제도 개편을 통해 노동시간과 임금을 더 불안정하게 만들고, 이를 방해하는 노동조합의 투쟁을 말살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다. 또 ‘일 ․ 가정 양립’ 정책을 통해 일 하기 좋은 조건을 만들어 준다고 하지만 그 실상은 일하면서 집안일까지 잘 해내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정부와 자본의 분주함 덕택에 수많은 여성노동자는 불안정한 고용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으며, 노동자의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투쟁이라도 하게 되면 바로 무자비한 탄압을 받게 된다. 하지만 이에 맞서기 위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 역시 꿋꿋하게 이어지고 있다.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가진 여성노동자들의 투쟁들

“시작이 있으니 끝이 있네요. 그것을 믿고 달려왔습니다. 이렇게 결국 우리가 원하는 것 100%는 아니지만 결론을 내었습니다. 살면서 정말 좋은 사람들이 많구나 느꼈습니다. 제가 만약 이렇게 투쟁하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세상에 경쟁하고, 빼앗고, 서로 할퀴는 사람들이 있다고만 생각하고 살았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하는 것을 배웠습니다. 저희가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 연대의 힘이었습다. 앞으로도 가야할 길이 있습니다. 여전히 비정규직, 파견직으로 고통받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더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연대의 고마움을 갚는 길입니다. 구로공단에 있는 노동자들과 더 많은 비정규직들의 투쟁에 연대하며 인간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 갑시다.”- 기륭전자 김소연 분회장, 투쟁승리보고대회에서

불법파견 정규직화에 맞서 1895일이라는 시간동안 투쟁해 온 기륭전자 동지들의 투쟁 승리는 여성의 70%가 비정규직인 이 시대에 희망의 소식이다. ‘여성노동자의 현실은 전체 노동자의 미래다’라는 말처럼 결혼과 가사노동의 일차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빌미로 여성노동자에게 가해져온 열악한 노동조건, 상시적 해고 위협이 이제는 전체 노동자들의 현실이 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비단 여성노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전체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바꾸는 투쟁이 되고 있는 것이다.

기륭전자분회가 그러했듯이 KEC지회는 노조를 파괴하려는 자본과 정권에 맞서 민주노조 사수를 위한 파업을 6개월 째 이어나가고 있다. 또 저임금으로 노동자성도 인정받지 못하던 재능 학습지 교사들이 단체교섭과 해고자 복직을 요구하며 노조 탄압에 맞서 싸우기 시작한 것도 3년이 다 되었다. 노동자가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법과 공권력에 가로막히고, 짓밟히고 있는 암담한 상황 속에서도 투쟁의 끈을 놓지 않는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절망 속에서도 끈질기게 희망을 이야기 하는 여성노동자들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노동의 권리를 되찾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는 일

“이 나이에 투쟁해야하나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그건 아니죠. 여성들도 노동조합에 당당히 가입하고 자기의 역할들을 해나가야 합니다. 또 여성들이 노동운동의 주체로 나서는 것에 대해 부담스러워하고 싫어하면서 가족들과 멀어진다고 생각하는데, 그 생각을 깨야한다고 봅니다. 딸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내부 투쟁도 계속해야 합니다. 여성들이 깨달으면 입소문을 내야 합니다. 그게 힘이 큽니다.”- 이경옥 서비스연맹 사무처장

사회 문제에 대해 토론하고 그런 문제에 앞장 서 나서고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남성에게 익숙한 것인 반면 여성은 앞에 나서지 않고, 가정에 충실하고, 누군가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익숙하다. 그러나 태생적으로 그러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길러져 온 것이다. ‘어디 여자가...’, ‘여자가 드세다’ 등등 ‘노동조합 활동을 하면서 가장 달라진 좋은 점은 나이어린 남자 반장이 막말하고 그래도 잘릴까봐 꾹 참았는데, 이제는 누구누구 씨라고 불러주며 함부로 대하지 않아요.’라는 어느 청소노동자의 고백처럼 여성에게 주어진 열악한 노동조건은 비인간적 대우와도 연결된다.

낮은 임금에 비정규직으로 일한다고 해서 인간 이하의 대접을 받아야 하고, 인격적 모독을 당해도 되거나 성폭력까지 감수해야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또한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런 현실을 참아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고용불안정은 이런 문제제기조차 큰 결단을 필요로 한다. 안타깝게도 많은 여성노동자들은 노동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과 동시에 인간적으로도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은 대부분 집에서 하던 가사노동, 돌봄노동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집에서 하던 일 밖에서 하는 것이 뭐가 어렵냐는 인식하에 저임금이 당연시 되고, 그 마저도 벌어야 하기 때문에 반장이나 사장에게 막말을 들어도 참을 수밖에 없다.

어느 지하철역에서 청소하는 중년의 여성노동자가 용역업체 관리자에게 일상적 성폭력을 경험하고도 자식들이 알게 될까 두려워 말도 못하고, 문제를 폭로한다고 해도 돌아오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반격과 해고이기 때문에 참고 또 참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개인의 상처와 모독을 감내하지 않으려면, 부정의한 비인격적인 노동조건을 바꾸려면 여성노동자의 집단적인 힘이 필요하다. 노동현장에서의 고용안정, 노동에 대한 가치를 인정받고 노동자로 대접받는 일은 인간으로서, 여성으로서 존엄성을 되찾는 일이다.

이제, ‘여성’ 노동자의 권리를 이야기 할 때

많은 여성노동자들이 열악한 노동조건에 맞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되찾기 위해, 민주노조를 사수하기 위해 투쟁하고 있음에도 여성노동자를 둘러싼 현실은 쉽게 변하지 않고 있다. 노동운동이 진정으로 승리하기 위해서는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조건과 현실을 보다 면밀하게 바라보고, 변화를 위한 실천을 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여성노동자들이 그런 실천을 만드는데 앞장서야 한다.

여성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늘려주겠다지만, 막상 그 일들은 집에서 하던 것이라며 저평가하고 저임금을 당연시하는 자본과 정부의 태도를 단호히 거부하자. 그리고 이렇게 질문해야 한다. 왜 집안일의 일차적 책임이 여성에게 있는지, 왜 여성에게 적합하다는 일들을 그리 낮게 평가하는지, 왜 일상적인 성폭력의 위협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인간적으로 대우받기도 힘든 현실이 있는지 말이다. 한편 이런 질문을 던지고 답을 내리는 것은 노동운동을 하는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여전히 희망인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이 여성노동자들의 현실을 바꿀 수 있는 투쟁으로 한 걸음 더 나가기 위해서는 다시 뭉치고, 더 많이 연대하고, 무엇보다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어야 한다. 그 시작이 되기 위해 서울여성조합원대회에서는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던 여성노동자들이 만나 한 판 힘 다지는 자리로 기획되고 있다. 서로 하는 일에 대해 이해하고, 어려움에 대해 다독여주고, 또 앞으로 여성노동자들이 가야 할 투쟁의 길을 공동으로 그려보는 자리. 첫 출발로 모든 것을 완성할 수 없지만 탄탄한 징검다리를 놓아가는 기획들로 향후 여성노동자 사이의 연대를 키워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