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에 태어난 놈들인데 이해가 되지 않아 밥을 주는 시간에 관찰을 해 보았더니, 큰 덩치의 돼지가 직은 놈을 못 먹게 밀치는 것이었다. 못 먹어서 못 크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다음 번에는 혼자서 다 못 먹을 정도로 많이 밥을 주었다. 그래도 소용이 없었다. 실컷 먹은 큰 놈은 구석에 가서 게슴츠레 눈을 뜨고 식식대다가도 작은 놈이 먹으려면 뛰어 와서 먹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다음부터는 긴 막대기를 가져가 큰 놈을 밀쳐 못먹게하고 작은 놈이 먼저 먹게 하는 것이 일이 되었다. 매번 그렇게 할 수는 없는 터, 큰 놈이 50키로를 넘는 돼지로 커가는 동안 작은 놈은 3분의 1도 안되는 새끼로 남게 되었다. 내가 다른 부서로 발령나서 전출나가게 되자 부대에서 돼지를 잡아 잔치를 열었는데, 당연히 큰 놈이 선택되어 욕심 많은 놈은 일찌기 운명을 달리하게 되었다.
자기 욕심만 차리는 돼지를 보고 돼지는 역시 돼지구나라고 간단히 생각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를 되돌아 보면 돼지들보다 더 못하다.
1) 돼지는 욕심이 눈 앞에 보이는 먹는 것에 한정되어 있다. 인간의 욕심은 먹는 것, 입는 것, 사는 곳 등 소비재에서 시작해 각종 명품, 귀금속 등 사치재에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양적으로는 자기가 평생 먹고 쓰는 것을 넘어서 무한대에 이르기까지 한계가 없다. 2) 돼지는 적어도 다른 돼지를 부려 먹거나 착취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 물 떠와라, 밥해라 부려먹는다. 노동을 시키고 댓가를 주지 않음으로써 부를 축적한다.
3) 돼지는 앞에서의 큰 돼지처럼 욕심을 부리다가도 죽어서는 남에게 이로움을 준다. 인간은 죽어서까지 큰 묘지를 차지하는 등 해를 끼친다. 4) 마지막으로 돼지의 욕심은 자기 대에서 끝난다. 인간들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은 어린애에게까지 평생 쓰지도 못할 거대한 부를 넘겨 주며, 인간의 욕심은 상속되어 자자손손 이어진다.
이는 맑스가 이야기한 공산주의의 첫번째 단계의 원칙, 즉 착취가 사라지고 모두가 기여한 만큼 가져가는 바로 그 원칙이다. (맑스는 흔히 누구나 똑 같이 가져가는 것을 제창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물론 여기에서의 성과에 따른 분배는 자본의 이윤이 전제되지 않은 것이므로 흔히 이야기되는 성과급하고는 다르다. 또한 재생산을 위해 필요한 부분, 노동 능력이 없는 자에 대해 나누어 주어야 하는 부분이 이미 공제된 나머지를 분배하는 것이므로 노동 능력이 없는 사람은 굶어 죽으라는 것이냐, 다 나누어 주면 생산은 어떻게 하는가라는 등 흔히 제기되는 질문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돼지에게서 큰 깨달음을 얻은 후 동물들의 행태를 유심히 보기 시작했는데, 동물의 왕국 프로그램에서 사자들을 보고 다시 한번 깨달음을 얻게 되었다. 사자들이 사냥을 하는 장면이었는데, 우두머리 사자에서 암사자, 새끼 사자까지 모두 합심해서 사냥을 했고, 사냥이 끝난 후 모든 사자들이 모여 각자의 필요에 따라 다툼 없이 골고루 나누어 먹는 것이었다. '누구나 능력에 따라, 누구에게나 필요에 따라!' 이는 맑스가 공산주의의 발전한 단계에 가능한 원칙, 즉 생산력이 발전하고, 정신 노동과 육체 노동의 차이가 사라지고 난 후에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던, 바로 그 인간 사회가 도달할 수 있는 마지막을 묘사하는 과정에 나온 원칙이다. 사자들은 돼지보다 더 높은 수준의 원칙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인간 세상을 주도하고 있는 힘은 다른 인간의 피와 땀 위에 축적된 부이다. 이는 정당화되고, 미화되어 모든 사람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돠고 있다. 이러한 질서는 인간의 이기심이라는 어쩔 수 없는 인간 본성에 바탕을 두고 있어, 더 이상 바꿀 수 없는 일종의 자연법적인 사회의 기본 원칙이라고 받아들여지고 있다. 돼지나 사자보다 못한 원칙이 우리 사회의 주도적 원칙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주도적'인 원칙일 뿐 다행히도 인류사에는 동료 인간의 고통을 위해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는 고귀한 인간들이 한편에 존재해 왔다.
다양한 사상, 이념, 종교의 기치 아래 무수한 인간들이 참다운 이웃 사랑을 실천해 왔고, 각기 해당 사회의 모순에 저항해 왔으며, 새로운 세상 만들기에 힘써 왔다. 이러한 점이야말로 짐승과 인간을 구분시켜 주고, 인간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며, 역사에 기록된 그들의 고귀한 삶을 배우며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될 것이다.
P.S. 최근에 강모 전 장관이 상속제 폐지를 주장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는 보도를 보고, 이게 웬일이지, 인간들이 드디어 돼지 수준으로 가려고 하나 보다 생각하며 내심 기뻐했다. 반대하는 주장을 보다가 이상하여 자세히 보고 허탈해졌다. ‘상속세’ 폐지를 ‘상속제’ 폐지로 잘못 읽은 것이었다. 그러면 그렇지, 에이 돼지보다 못한 인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