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전태일 다리 아래에 전태일 열사 40주기 기념 문화예술전을 위해 설치한 청년실업과 비정규 노동만화전 작품들이 11월 1일 오후 5시 경에 사진을 찍으러 들렸더니 이런! 몽땅 사라진 것이다.
작품을 걸어놓았던 모습이다. 산책하는 시민들이 강변에 풍자적인 만화작품들이 걸리자 눈길을 주며 간혹 그 앞에서 사진을 찍기도 했다.
▲ 작품설치 후 모습 [출처: 전미영] |
▲ 작품설치 후 모습 [출처: 전미영] |
전태일 얼굴사진을 모아놓은 '엄마를 부탁해'만 하나 덩그라니 놓여 있었다. 위 만화들은 그동안 시사만화가들이 신문에 발표했던 작품들 가운데서 노동, 청년실업, 비정규문제와 그와 연관된 내용들을 비판하고 풍자한 것들이었다. 그런데 한꺼번에 모두 사라지다니!
▲ 설치한 작품들이 사라졌다 [출처: 이동수] |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일단 동료에게 알리고 재단측에 어떤 연락이 있었는지 확인을 부탁하고 현장확인을 위해 가까이 가보니 작품들을 걸었던 줄들이 모두 잘려 있었다.
▲ 작품을 묶어둔 줄이 끊어져 있다 [출처: 이동수] |
▲ 끊어진 줄 [출처: 이동수] |
황망했다. 이걸 어째야 할까? 안 그래도 작품을 부착할 때부터 상황실에서 업무소통이 안되서 쓸데없는 소란까지 일어났을 때 마침 잘됐다 싶어 일부러 상황실 직원들에게 관리를 잘 해줄 것을 당부하기까지 했는데...
우선 현장 사진을 찍고 생각을 수습하는데 마침 청계천 경비 아저씨(용역회사)가 지나가신다. 아저씨를 불러 물어보았다. 그 분 말씀인즉 일용직으로 나오시는 분이 강변에 그림들이 걸려 있어서 그게 불법이라고 생각해서 떼어냈다고 한다.(잘라낸 것이 아니고?!)
이해가 안됐다. 일용직으로 나오신 분이 무슨 권한을 갖고 그런 일을 용감하게 하실 수 있나?
상식적으로 상황실이건 어디건 연락을 해서 확인을 한 후에 누군가의 지시를 받아야만 가능한 일 아닌가? 그나마 작품들을 한 곳에 모아놨다고 하길래 동대문역 방향의 경비실(5관수?)로 가보니 작품들이 쓰레기봉투에 뭉뚱그려서 담겨져 있다. 아뿔싸!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작품들을 쓰레기봉투에 뭉뚱그려 담아 놨다니! 기가 막히고 부들부들 떨렸다.
사실 확인을 위해 다시한번 경비아저씨들에게 물어봤다. 용역회사의 직원인 두 분 중 한 분의 말씀은 '일용직 아저씨가 모르고 그랬다'고 알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처음엔 잘 모른다고 하다가 그나마 전태일 열사 얼굴을 그린 것을 모아놓은 것을 떼려고 해서 말렸다고 했다. 여전히 이상하다. 자꾸 캐묻자 자신들은 자세히 모르니 상황실에 연락을 해보라고 했다.
상황실 담당자와 통화를 했다. 맨 처음에는 잘 모르는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만화작품의 내용이 정부비판적인 것들이 있어 그런 것들은 걸 수가 없어서 떼어놨다고 했다. 처음부터 그런 내용인 줄 알았다면 허가를 안했을 것"이라면서. 더 황당했다. 이미 신문에 나왔던 것들이고, 전태일 열사 40주기와 관련된 내용들이 가짜 친서민 현 정권 입맛에 맞는 만화들일 것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더 큰 문제는 공공시설을 시민의 것이 아닌 정권의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현 정부를 비판하는 내용들이라고 표현의 자유와 관계된 고려도 없이, 작가들이나 주최단체에 아무런 이야기도 없이, 자신들 임의로 떼어내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는가?
시설관리공단 측은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즉각 작품들을 원상태로 부착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이후의 모든 책임은 시설관리공단과 서울시 측이 져야 할 것이다. 이 문제에 대해 전태일 재단과 전태일 열사 40주기 행사위원회, 전국시사만화가협회와 파견미술인작가들은 강력히 항의를 하는 바이며 이 정부 들어서 이렇게 알아서 정권의 눈치를 보고 받드는 일들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계기로 삼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