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에게 빚쟁이로 살아가길 권장하는 사회다. 어릴 때부터 남에게 빌려 쓰는 돈이 얼마나 위험하고 가정파탄에 이르게 되는지 직접 목격했었다. 부모님에게도 거짓말하지 마라, 노름하지 마라, 남의 돈 빌려 쓰지 말고 아껴 쓰라는 말을 수도 없이 듣고 자란 우리 세대이지만 세상에 널린 게 돈이니 싼 이자로 갖다 쓰라고 강요하는 이상한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빚쟁이로 살아가길 권장하는 고리대금업사회는 자본주의에서 나타나지 말아야 할 최악의 ‘천민자본주의’라고 했다. 수천년 동안 땅을 소유하지 못했던 유태인들이 주로 상업이나 고리대금업으로 부를 축적하는 과정을 비유하며 피도 눈물도 없는 금융자본이 민중들의 삶을 강제하는 ‘천민자본주의’는 절대 나타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그런데 절대 나타나지 말아야 할 ‘천민자본주의’가 신자유주의와 함께 한국 땅에 나타났다. 텔레비전에서는 고급의상과 가전제품, 휴대폰, 보험까지 모든 상품을 선전하며 국민들에게 허영심을 부추긴다. 어렵고 힘들게 번 돈이지만 자본주의의 유지를 위해 노동자와 가족들은 생산자이며 동시에 소비노예가 된다. 민주노조운동을 통해 생산노예를 극복하고 일정한 물질적 향상을 이루었지만 임금인상 곧 삶의 질 향상과 인간다운 삶으로 연결되지 못하고 천민자본주의를 유지.발전시키는 데 부역하는 소비노예화의 삶으로 전락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생활실태조사를 들여다 보면 전체의 76%가 3000만원에서 1억원 가량의 부채를 안고 있다. 이 부채의 원인은 70%가 주택마련과 관련이 있으며, 자녀교육비로 부채가 더욱 늘어난다고 답변하고 있다. 결국 지난 23년간의 투쟁을 통한 임금인상 효과는 천민자본주의 소비노예로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번 벗어난 과소비 삶은 하향시키기 고통스럽다. 더 큰 냉장고, 더 큰 텔레비전, 더 큰 아파트와 더 큰 자가용을 구입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더 많은 임금이 필요하고 부족하면 카드와 대출을 받는다. 노동자들은 비정상적인 삶에 부족한 비용을 채우기 위해 더 많은 연장근무와 특근을 자발적으로 원하며 과로사로 죽어가고, 70% 이상이 근골격계질환이라는 골병이 들고도 더 일하기를 원하는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과도한 소비는 미덕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빚쟁이 인생으로 만들고 부자들만 더욱 큰 부자로 만들어 주는 ‘천민자본주의’만 강화시켜주게 된다.
88년 노태우정권의 보통사람들도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다는 200만호 건설에 서민들은 환호했으며, 너도 나도 건설업체의 아파트 분양에 대출서류를 들고 줄을 섰다. 더 높고 더 큰 평수로의 유혹에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지속되었지만 결국 우리 노동자.서민들은 투기꾼이 빠져나간 뒤 막차를 탔다. 미국발 세계 경제위기를 알아 챈 부동산투기꾼들은 이미 2006년 다 빠져 나가며 노동자.서민들 등만 떠밀어 넣었다. 빚을 얻어 아파트 가격 인상을 바라며 무리하게 더 큰 평수로 옮겼지만, 신규 미분양아파트가 30%씩 할인판매를 하니 가만히 앉아서 큰 손해를 보고, 이자노예가 되어 관리비가 무서워 난방도 넣지 못하고 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서 자는 가정도 늘어 간다.
서울지역 전세 값이 폭등하니 아파트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악마의 속삭임에 속지 말자. 더 작은 아파트, 더 작은 자가용, 더 작은 가전제품으로도 얼마든지 인생을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편안한 노후준비는 소비노예로부터 탈출하는 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