쪼개지는 ‘유럽’
유럽 정치는 지금 좌우로 갈라지고 있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유럽은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긴축정책을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긴축정책은 노동자와 서민들의 복지와 임금을 공격했고 공공부문을 축소시킨 것이라 유럽 각국은 지금 전례없는 몸살을 앓고 있다. 긴축정책에 항의한 스페인 노동자 1000만 명이 총파업을 단행하고 유럽의 심장이라는 벨기에 브뤼셀에는 수 십만 명의 노동자들이 항의 시위를 벌였다. 프랑스에서는 연금개악에 항의하는 350만 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이 무기한 총파업을 감행하고 있다.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함께 격화되는 계급투쟁으로 신자유주의에 경도된 유럽 사민주의는 급격하게 지지기반을 잃어가고 있다. 반면, 사민주의의 왼편에서는 반자본주의당, 좌파당을 새롭게 구성하며 사회주의에 대한 지지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독일 좌파당과 포르투갈 좌파블록 등은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확보했다. 프랑스 반자본주의신당도 약진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사민주의의 몰락에 반해 급진좌파진영의 약진현상이 유럽차원에서 두드러진다.
한편, 오른쪽에서는 중도우익 또는 보수정당이 축소되고 극우정당도 눈에 띨 정도로 확대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이슬람 이민자에 대한 반인종주의와 결합되어 유럽 각국에서 맹위를 떨치고 있고 정치지형의 변화까지 나타나고 있어 우려를 자아내게 하고 있다.
유럽, 반인종주의의 확산과 극우정당의 성장
유럽에서는 종종 이슬람에 대한 차별적, 반인종적 정책이 문제가 되어 왔다.
지난해 스위스에서 실시된 국민 투표에서는 미나레트(이슬람사원의 첨탑) 건설 금지에 찬성하는 표가 60%에 달했다. 또 벨기에에서는 올해 부르카 금지령이 하원을 통과하고 현재는 상원의 승인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에서도 부르카 금지령은 지난 주 헌법회의(헌법재판소)에서 합헌 판결을 내려 최종적으로 확정되었다. 네덜란드도 이달 10월 집권연정 내부에서 극우정당의 손을 들어 주어 부르카를 금지시키기로 합의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와 함께 유럽에서는 80년대에 들어와 극우정당이 점차 대두하기 시작했다. 특히 최근 2,3년간 극우정당의 진출은 눈부실 정도다.
2002년 프랑스 대선에서 현직 시라크 대통령과 결선투표까지 올랐던 장마리 르펜이 이끄는 국민전선은 한때 주춤했지만 올해 지방선거에서 프랑스 남부와 북부 칼레 지방에서 20% 이상 지지율을 획득하며 정치적으로 부활했다.
최근 이탈리아에서도 이슬람 사원 설립 움직임이 일자 반대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탈리아 극우정당인 북부동맹이 강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 7월 여론조사에서 북부동맹에 대한 지지가 8.3%에서 12%로 상승했다.
특히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극우정당의 강세는 집권 보수정당의 지지율 약세와 관련이 있다. 유럽 경제위기가 재정위기로 번지고 긴축정책이 확산되자 보수당정권에 대한 지지율도 추락하고 있다.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의 경우 개인적인 추문까지 겹쳐 보수정당을 지지하던 유권자들이 극우정당으로 쏠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는 지난 4월 있었던 대선에서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로젠그란츠 후보가 15%를 얻어 2위를 차지했다. 로렌그란츠는 홀로코스트 금지에 반대하고, 이슬람 사원 첨탑 건축 금지, 불법 이민자 축출 등을 주장했다. 또 최근 비엔나 시의회 선거에서 자유당은 27.1%의 득표율을 획득해 지지율이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헝가리의 경우, 반집시 반유대인 정책을 내건 ‘요비크(더 나은 헝가리 운동)’는 지난 4월 총선에서 47석을 확보해 첫 의회 진출에 성공하면서 일약 3당으로 부상했다. 미나레트 설립반대에 이어 최근 사형제 부활 움직임까지 있는 스위스는 극우정당인 국민당이 지난 2007년 총선에서 28.9%를 확보해 제1당으로 등극했다.
스웨덴에서는 지난달 국수주의 스웨덴 민주당이 1988년 이래 처음으로 의석을 획득했다. 지난 9월 의회선거에서 수년 동안 변방에 있던 극우정당인 민주당이 4%의 의석 획득 조건을 처음으로 채우고 20석을 획득했다. 영국에서는 극우 영국 국민당이 올해 선거에서 2005년 3배 가까운 표(56만3000표)를 얻었다. 국민당은 지난해 유럽의회에서 2석을 획득했다.
이밖에도 지난 6월 총선에서 네덜란드 극우정당인 자유당은 15.5%을 획득 일약 3당으로 떠올랐다. 최근 집권연정을 통해 프랑스에 이어 부르카 착용을 금지하기로 했다. 또한, 지난 911테러 이후 약진을 거듭한 노르웨이 진보당도 지난 총선에서 22.9%을 획득, 제2당을 유지하고 있다.
유럽에서 거의 유일하게 극우정당이 힘을 쓰지 못하는 독일에서도 극우세력이 대두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독일에서는 언론에 대한 엄격한 법률과 선거 저지조항(비례대표의 득표율이 5% 이상 또는 지역구에서 3명 이상의 당선자를 내지 않은 당은 의석을 얻을 수 없다) 때문에 극우정당이 연방의회에 의석을 얻을 여지가 오랫동안 없었다. 그러나 독일통신이 인용한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반이슬람정당에 대한 지지는 20%에 달해 의석을 얻기에 충분한 숫자다.
극우세력의 국제연대
일반적으로 ‘극우’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지만 그 정의에 대해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몇 가지 공통된 특징이 있는데, 첫째, 이민자들을 적대시 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 종교적으로 이슬람에 대한 적대를 표방하고 있다. 셋째, 세금인상에 반대한다는 것이다.
신흥 극우세력에 대해서는 급진우익민족주의 정당으로 정의하는 학자도 있고, 새로운 급진우익이라고 부르는 학자도 있다. 후자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새로운 급진우익의 대두를 전후 유럽사회에 일어난 사회문화의 근본적인 변화에 대한 극단적인 반응이라고 파악하고 있다.
현대의 극우정당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파시즘과 직접 손을 잡는 전통적인 우익 극단주의 정당이고, 또 하나는 전통적인 파시즘과 거리를 두는 신흥 극우정당 가령, 프랑스 국민전선과 스위스 국민당, 벨기에의 플랑드르 계열 정당 및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진보당 등이 포함된다.
유럽에서 일어난 정치 경제 사회의 복잡한 변화는 극우세력이 확대되면서 여당의 정책과 국가의 정치 구조에 일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될 수 있다.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오스트리아 등 극우정당은 정국의 추이에 영향을 미칠 정도로 성장했고, 내각에 진입하는 정당도 나왔다.
미국 보수 유권자 조직인 ‘티 파티(Tea Party)’ 운동의 성공은 유럽의 극우정당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티파티 운동조직과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극우정당들 간에 교류도 진행되고 있다. 이들은 유럽연합 가입반대로 유럽차원의 공통성을 확인한 바도 있다. 최근 경제위기 및 재정위기와 관련해서 세금인상 반대, 반이슬람, 기후변화 대응정책 반대 등 주요 활동목표에서 공통점을 가진 이들 극우정단과 관련단체들의 교류도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지난 8월에는 일본의 신우익 단체에서 유럽의 극우정당 지도자들을 불러 회동을 갖고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하는 등 대륙을 넘어 국제적인 연계를 도모하는 단계에까지 이르고 있다.
극우의 확장과 전쟁의 기억
미국에서 오바마 정부의 정책을 사회주의라고 비난하며 미국중심을 외치는 ‘티파티’ 운동의 성공과 일본 ‘신우익’의 발호 그리고 유럽에서 ‘극우정당’의 득세는 모두 자본주의 경제위기와 관련이 있다.
G20을 필두로 한 세계 각국의 경기부양책에도 불구하고 고용율이 악화되고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자가 늘어나자 빗장을 걸어잠그라는 ‘민족주의, 국가주의’의 발호와 반이슬람 ‘인종차별주의’ 선동이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경제위기와 함께 발호하는 극우세력의 확장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에 대한 암울한 조종에 다름 아니다. 1930년대 대공황과 함께 극우의 확장은 결국 2차 세계대전이라는 파멸적 전쟁으로 치닫게 한 원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형성된 브레튼우즈 체제를 필두로 각종 경제협력기구와 최근 G20 정상회의까지, 전후체제의 형성에는 기본적으로 ‘전쟁방지’라는 의미가 있다.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어떻게든 총칼로는 해결하지 말자는 체제다. 그러나 지금 IMF건, G20이건 과잉자본과 과잉생산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선진국들의 양적 완화 정책으로 인해 경제위기 상황에서도 전 세계에 돈은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넘쳐나고 있다. 급기야 자본주의 세계경제는 환율전쟁으로 번져 자원확보경쟁에까지 불이 붙고 있다.
역사는 비극과 희극으로 두 번 반복된다 했던가? 보호무역주의와 결합한 애국주의의 비극적 결말을 역사는 이미 경험했다. 그렇다면 이제 희극적 작별을 고민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