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갑자기 드는 생각. 어떤 눈 크고 미소 환한 베트남 사람이 이 짙은 보랏빛의 셔츠를 만들었을까, 싶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옷이 한국으로 가게 될 것을 알았을까, 한국의 한 대형 마트에 진열되었다가 나 같은 사람 손에 들어가게 되리라는 것을 상상이나 했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그들은 어떤 공간에서 얼마나 받으며 일을 할까, 또 그들이 받는 결코 넉넉지 않을 보수는 누구를 위해 어떻게 쓰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가을 수레국화같은 빛깔의 이 셔츠가 마음에 든다고 말해주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얼마 전에 본 다큐멘타리 <꿈의 공장> 때문인 것 같다. 그리고 그 다큐멘타리의 주인공들인 콜트-콜텍의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 때문인 것 같다.
기타? 그렇다. 기타다. 소싯적에 <긴 머리 소녀>의 코드를 더듬어 치던, <알함브라 궁전>의 선율로 먼 이국에 대한 그리움을 키우던, 잔디밭에 둘러 앉아 두구두구둥거리는 힘찬 전주에 맞춰 비장한 목소리로 <진짜 노동자>를 부르던, 혹은 잉위 맘스틴의 신들린 손길에서 희열을 느끼던, 그리고 커트 코베인의 우울하고 어두운 기타 소리에 허무를 경험하던, 또 그리고 지금도 어디선가 울려 퍼지고 있을 바로 그 기타 말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기타가 있다. 송경동 시인이 <꿈의 공장을 위하여>라는 시로 진즉에 읊었던 것처럼, “자신의 지문을/ 반지름한 기타 몸체처럼/ 잔금 하나 없이 맨지름하게 만들”고 “자신의 폐를 기타 통 속처럼/ 숭숭 구멍 뚫어 작은 호흡에도 울리게” 하며 스스로 기타가 되어버린 기타 만드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이 바로 그 기타다.
▲ 영화 '꿈의 공장'의 한 장면 |
영화는 ‘꿈의 공장’이라는 영화 제목에 맞게, 꿈에 관한 인터뷰로 시작한다. 중년을 넘긴 아줌마, 아저씨들이 카메라를 바라보고 수줍게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기계 만지는 일이 좋았다, TV에 나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이제는 꿈이 뭐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등등. 콜트콜텍에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의 인터뷰다. 아니, 정확히 말해 ‘만들던 노동자’들이라고 해야 할까.
대통령이나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이전 세대의 거창한 꿈과도 다르고, 연예인이나 CEO가 되겠다는 요즘 세대의 화려한 꿈과도 다르다. 소박한 꿈, 그러나 혹자는 그런 것도 꿈이냐고 할 꿈. 그런 생각은 이들의 현재 꿈이 무엇인지 들어보면 더 분명해진다. 영화 말미에야 제시되는 그들의 꿈은 다시 기타를 만드는 것.
그런데, 이들의 인터뷰가 이루어지는 곳은 기타 만드는 공장이 아니다. 이 영화의 어디에서도 현장에서 땀 흘려 작업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과수원인 듯 보이는 산비탈에 앉아, 꽃밭인지 묵정밭인지 분간이 안 가는 공터 한 가운데 서서, 음료수를 배달하는 트럭의 운전대 앞에 앉아, 그리고 먼지 쌓인 책상만 휑덩그런하게 놓인 가건물의 책상 앞에서 인터뷰를 한다. 그들은 또 독일과 미국과 일본의 길거리 위에 있다. 전 세계 음악인들이 모여든다는 그곳에서 거리를 행진하고 사람들에게 팜플렛을 나눠주며 서명을 받고 서투른 몸짓으로 공연을 한다. 그 어느 곳도 그들이 있어야 할 곳, 그들이 있고 싶은 곳은 아니다.
그들이 기타 만들던 손으로 투쟁가를 부르며 세계 곳곳을 다니게 된 것은 지난 2007년도의 정리해고 이후이다. 최저 수준을 조금 웃도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통풍도 안 되는 작업실에 앉아 12시간 넘게 지독한 약품 냄새를 맡으면서도, 툭하면 공장 문 닫는다는 사장의 협박을 들으면서도, 그래도 우리 사장은 봉급은 제때 준다고, 회사가 살아야 우리가 산다고 이를 악물고 일한 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30년. 그러나 그들은 순식간에 정리해고를 당한다. 명목은 경영손실.
그러나 콜트콜텍 사는 세계 악기 시장에서 생산 점유율이 3분의 1을 차지하고, 순이익이 10년간 연간 100억이 넘는단다. 게다가 사장은 한국에서 120번째 부자란다. 사장의 말만 찰떡같이 믿고 있다가 뒤늦게 노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사실들이다. 중국과 인도네시아에 공장을 세운 것도 단순히 사업 확장 때문이 아니라 위장 폐업과 저렴한 노동력 확보를 위한 수순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러니, 부당해고고, 복직을 요구하는 건 당연하다. 고등법원에서도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여 해고된지 2년 만인 2009년에는 “폐업과 해고를 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성을 갖추지 못했고, 해고는 부당하다”고 판결했단다. 그러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판결이 나고 한 해가 다 가도록 그들은 여전히 길 위에 있다.
자본가가 자기 자본을 투자하여 노동자를 고용하고.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다들 그렇듯 임금이 더 싼 곳으로 공장을 옮기는 게 무슨 잘못이냐고 물을 수 있다. 나는 그에 대해 어떠한 합리적인 대답도 알지 못한다. 경영윤리니 인도적인 차원이니, 하며 상식적인 선에서 말할 수는 있겠지만, 상식은 통하는 사람들끼리만 상식이다. 다만, 투자한 자본과 창출된 이윤 사이에 천문학적인 차이가 있다면, 그 과정에는 뭔가 엄청나게 불가사의한 일이 있다는 것은 말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가 노동력의 착취라는 것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꿈의 공장>은 자본의 착취와 한국의 노동 현실에 관해 이야기하려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 영화는 의아하리만치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이나 노동 현장의 열악함을 조명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런 이야기는 김성균 감독이 작년에 만든 <기타(其他, Giutar) 이야기>에서 다 했는지도 모른다.
땀과 눈물이 맺힌 노동자들의 호소 대신 감독은 이들이 만든 기타와 그 기타로 또 다른 꿈을 노래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넣는다. 한국의 인디 밴드들과 독일 미국 일본에서 만난 뮤지션들이 기타와 관련된 그들의 꿈 이야기를 한다. 자신이 언제 어떻게 기타와 만나게 되어 음악가의 길로 접어들었는지에서부터, 펜더의 넥이 어떻고, 아이바네즈의 소리가 어떻고, 깁슨 몸체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까지.
뮤지션들의 기타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분명해지는 것이 있다. 기타라는 생산품을 사이에 두고 거대한 심연이 존재한다는 것, 두 개의 거대한 무지가 소용돌이 치고 있다는 것. 뮤지션들은 알지 못한다. 그들이 선호하는 유명 기타 브랜드들의 상당수가 한국의 콜트콜텍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과 그들이 지불한 기타 값에 착취당한 노동력이 대가로 따른다는 사실을. 노동자들도 알지 못하는 게 있다. 자신들이 만든 기타가 어느 나라의 누구에게로 가서 어떤 외로운 영혼을 위로하는 노래가 되는지를. 그리고 그 노래를 듣지 못한다.
그러나 지난 4년간의 투쟁 끝에 이제는 안다. 콜트콜텍 노동자들은 그들이 만든 기타가 그저 잘 만들어진 공산품이 아니라 누군가의 고백을, 누군가의 분노를, 누군가의 호소를 대신하고 함께 하는 영혼의 공명통임을, 그리고 그 누군가가 자신들이 될 수도 있음을 믿는다. 뮤지션들도 마찬가지다. 회사 측의 비인간적인 처사를 알게 된 후, 그 기타로 부르는 노래가 어찌 예전 같을 수 있겠는가. 수십 번의 ‘빼빠질’에 지문이 닳고 절단기에 손가락이 잘려나가도 산재처리조차 받지 못하는 수고 속에 만들어진 것이 그 기타임을 알고 나서 어찌 그 기타가 어찌 예전 같을 수 있겠는가. 그것은 이미 노동자들의 한숨으로 이은 줄이고 울음을 삼키는 노동자의 몸통이 아니겠는가. 그것이 부당해고 이후 4년간의 목숨 건 투쟁을 통해 얻은 것이라면……, 너무 감상적일까.
그런 의미에서 이 다큐멘타리는 기타 만드는 노동자들과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고립되고 소외된 꿈이 서로 연대해 가는 현실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뮤지션과 노동자의 꿈을 병치하였지만 마침내 하나의 꿈으로 녹아들게 하는 편집은 이 영화를 현실의 재현에서 더 나아가 스스로 현실을 구현하는 연대의 장이 되게 한다. 어디 그 뿐인가. 영화로 인하여 노동자들과 뮤지션들, 그리고 시민들과 또 다른 연대의 장을 열어주기까지 하지 않았는가.
이 다큐멘타리가 처음 세상에 선을 보이는 날도 그렇다. 검푸른 해운대의 밤바다를 배경으로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의 거친 손과 기타를 연주하는 뮤지션들의 자유로운 손이 만났다. <한음파>, <일요일의 패배자들>, <킹스턴루디스카>가 “No Workers, No Music. No Music, No Life”를 외치며 음악을 연주할 때, 가장 열렬한 목소리로 환호하고 흥겨운 몸짓으로 박자를 맞추던 이들은 다름 아닌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티셔츠에 새겨진 “Song for worker”라는 글자와 그 글자를 딛고 서 있는 기타였다. 이윤엽 판화가가 새겨준 그림이었다. 음악과 영화와 그림에서 가장 소외되었던 이들이 이제 음악과 영화와 그림 한 가운데 서 있었다.
하지만 나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을 처음 만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을 처음 본 거대한 쇼핑몰 로비에서도, 영화가 상영되기로 되어 있던 그 건물 7층의 멀티플렉스에서도, 붉게 그을린 얼굴에 주름이 깊은 초로의 노동자들은 초대받지 못한 손님 같아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이 영화 축제의 주인으로, 진열된 상품의 주인으로, 자기가 주인공도 아닌 영화마저도 주인으로 거리낌 없이 누비고 다니는데, 어째서 노동자들만 그토록 멋쩍어보여야 하는 것일까.
김성균 감독은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콜트콜텍 노동자 이야기로 이미 전작을 만들었다. 그런 만큼 오랜 시간을 그들 곁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촬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전작인 <기타(其他, Giutar) 이야기>도 그렇고 이 <꿈의 공장>도 그렇고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대신 이 영화를 보게 될 사람들, 노동자이면서 자신이 노동자임을 망각하고 사는 사람들, 자신이 어떤 보이지 않는 거대한 사슬 가운데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누군가의 피와 분노와 슬픔을 먹이 삼아 자신의 꿈을 이루고 있음을 전혀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게 목적이다.
그 질문은 영화 속에서 뮤지션들에게 먼저 던져진 바로 그것이다. “이 기타가 노동자의 착취로 만들어진 것을 알아도 사겠는가.” 뮤지션은 대답한다. “살 것 같다.”
그 질문은 이제 우리에게 던진다. 우리는 어째서 어떤 상품이 착취의 대가로 만들어진 것임을 알고도 구매를 포기하지 못하는가. 그것은 한 개인의 의지와 도덕성 문제로 치부해야 하는 문제인가, 아니면 이 지극히 이기적이고 모순적인 대답이야말로 핵심적인 비밀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던져진 질문은 또 있다. 노동의 착취와 소외가 한국에서 일어나지만 않으면 괜찮은가. 베트남과 중국, 인도네시아의 노동자에 의해 대신 치러진다면 그렇다면 괜찮다는 말인가. 메이드 인 베트남도 아니고, 메이드 인 차이나도 아닌, 메이드 인 '꿈의 공장'에서 상품들을 만들 수는 없는 것인가.
이런 류의 다큐멘타리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다행히 <꿈의 공장>은 부산국제영화제의 와이드앵글 다큐멘타리 경쟁부분에서 상영이 되었다. 거기다가 영화제 행사의 일환인
+ 매 월 마지막 주 수요일, 홍대 클럽 빵에서 콜트콜텍 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과 함께하는 수요문화제가 2008년부터 진행되고 있다. 150여 팀의 문화예술인들이 참여한 이 공연은 이번 달, 10월 27일에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더 자세한 정보는 콜트콜텍의 공식 블로그 http://cortaction.tistory.com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