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 소환장까지 받으면서도 아무런 연락을 안했더니, 며칠 전엔 집으로 경찰이 방문을 했다고 한다. 그러고도 아무 대책이 없으니 마지막 통보 문자가 들어왔다. 이번주 안으로 자진 출두 날짜를 밝히지 않으면 의사가 없는 것으로 알고 체포영장을 발부하겠다고 한다.
그러고도 나는 오늘까지 아무런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 사안으로 보면 구속될 정도는 아닐 수 있으니, 조용히 몇 시간 조사받고 나오면 그만이다. 벌금이 또 하나 늘겠지만. 어차피 재판으로 갈 거니 또 1년이 걸릴지, 2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 2008년 기륭비정규 투쟁 관련 재판도 아직 끝나지 않았고, 작년 용산 관련 재판들도 끝나지 않은 걸로 보면 귀찮긴 하지만 이젠 뭐 별 일들도 아니다.
그렇게 별 일도 아닌데 나는 왜 한사코 고집을 부리는 것일까. 누가 알 일도 아니고, 누가 알더라도 뭐라 할 일도 아닌데, 왜 나와 함께 소환장을 받은 김소연은, 문재훈은, 김정수는, 이승무는 무사태평일까. 누가 먼저 잡혀가게 될까 했더니 문재훈은 아마도 내가 맨 먼저가 될 거라고 한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까닭은 별 거 아니다. 영장이 떨어지면 먼저 집으로 잡으러 올 터인데 그때 집에서 자고 있을 사람은 나뿐인 것이다. 얘기한 문재훈은 기륭전자비정규직 동지들인 윤종희, 오석순이 다시 경비실 옥상 점거농성에 들어간 지난 60여일 내내 집엘 들어가지 못하고 우리 모두를 대신해 빈 천막을 지키며 자고 있다. 난 그가 참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작년 쌍용자동차 투쟁 당시 정비지회 지회장으로, 선봉대로 피터지게 싸우다 결국 해고 당한 김정수는 며칠 전부터 산업은행 앞에서 졸속적인 재매각에 반대하는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그리곤 이승무가 있는데, 어젯밤 농성장에 와서 하는 말 왈, “그래도 조금은 살살하지 않겠어. 나는 급이 있잖아.” 생각해 보니 그는 국회의원 5명을 가진 민주노동당의 금천지역위 위원장으로 근래 야당 구청장이 당선되고는 공식 비공식 지역 당정협의회 등에 참여하는 나름 지역 인사다.
그럼 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늘 집시법으로나 끌려가는 시인은 시인도 아니다. 시인의 탈을 쓴 전문시위꾼일 뿐이다.
그렇게 아무 것도 아닌 내가 버팅기고 있다.
죄질도 더럽다. 무슨 필화나 언론 출판 집회 결사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기 위한 일이었으면 폼이나 나련만, 난 다만 남의 성스런 공무를 무단으로 막고 타인의 정당한 재산권 행사를 방해한 파렴치범일 뿐이다.
그런 말도 하지 말자. 그러니까 지난 8월 16일 새벽 6시 30분. 1시간여 전부터 근처에 사복경찰들이 먼저 수두룩하게 깔리고 나자, 용역깡패들이 공장 문 밖으로 유유히 나와 ‘공무수행’ 준비를 했다. 낌새가 이상해 전날 저녁 무수한 문자들을 보냈지만 우리는 기껏해야 20여명. 하기야 이런 시대에 연행을 각오하고 나올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정작 오고 싶었던 사람들 중엔 새벽 택시비가 궁해 오지 못한 이들도 많을 터였다. 그런 외로운 새벽들이 숱했기에 이젠 누구를 원망하지도 않는다.
흥분하지 않고자 했지만 그들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분노가 치솟았다. 작년 용산에서 숱하게 봐 왔던 광경들, 얼마 전 재능교육비정규직 천막농성 1000일 문화제마저 막던 그들, 양재동 현대 본사 앞 길거리 노숙농성조차 밀어내던 그들, 나를 늘 좌절하게 만들던 그들, 내 청춘의 모든 기운을 빼앗아가고도 건재한 그들, 울부짖는 여성비정규직들을 밀치고 거대한 포크레인을 내리려는 그들. 대추초교를 부수던 포크레인, 용산의 가난한 삶터들을 아작아작 씹어 먹어가던 그 포크레인, 어머니 4대강의 가슴을 짓이기던 그 포크레인.
저 포크레인을 내리게 하면 안된다고, 저 포크레인이 이 땅에 내려앉은 순간 우리 모두는 밀려나고 만다고…, 어느 틈에 보니 나 역시 포크레인 위에 올라가 있었다. 시동을 걸어라고, 빨리 시동을 걸어 이 다리를 잘라먹고, 짓이겨보라고, 동력 연결부위 사이에 두 다리를 깊숙이 넣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있었다. 사람들이 다칠 수도 있는데 지금 무엇들을 하고 있느냐고, 그런 지경에도 주변에 나와 서서 팔짱만 끼고 있는 금천서 경찰들과 금천구청 공무원들 근 50여명을 향해 욕을 퍼부어대고 있었다. 누가 책임질 거냐고, 그래 여기서 제2의 용산을 만들어 보겠다는 거냐고 울부짓고 있었다.
현장에서 어떤 인명 구조 활동도 하지 않고, 어떤 중재 노력도 하지 않고 공무를 방기하고 있던 금천서가 이제 와 업무방해로 조사를 받으러 오라 한다. 생각하니 그럴 셈이었는가 보다. 나중에 잡아넣으면 되니 업무방해할 동안 기다렸다가 손 안 데고 코 풀고 싶었는가 보다.
물론 나는 그나마 그런 ‘중용’(?)의 자리에라도 가만히 서 있었던 금천서와 금천구청의 자제 노력에 감사한다. 특히 60여일에 이르는 경비실 옥상 점거 농성 과정에서도 저 무식하고 편파적인 서초서처럼, 혜화서처럼 날뛰지 않고 인내를 가지고 공권력 집행을 유보하며 겉으로나마 문제 해결의 중재자 역할을 해보려고 하는 그 안간힘에 경의를 표한다. 가난한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비라도 피할 수 있게 콘테이너와 천막을 철거하지 않는 민선 금천구청장의 노력에도 감사한다. 사인간의 분쟁에는 때로 그렇게 기다림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용산에서처럼 일방을 위해서만 그토록 전격적으로 무자비하게 개입하고, 그런 공권력의 남용과 오용 과정에서 사람들이 다치고 죽어나가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나서서 사람들을 죽여 놓고선 ‘사인들 간의 문제’이므로 정부는 간여할 수 없다는 희대의 망발을 늘어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렇게 기륭전자비정규직 농성이 다시 60여일이 훌쩍 지나 왔다.
첫날부터 다시 끝장 단식에 돌입하겠다는 사람들을 간신히 주변 사람들이 막아 왔다.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단식에 돌입하겠다는 것을 막아 왔다. 2008년 96일에 이르는 김소연 분회장의 단식 동안 우리 모두가 얼마나 미안하고 고통스러웠는지 알기 때문이다. 40일차에 쓰러진 조합원을 엠브란스에 실려 보내며, 50일차에 쓰러진 사람을 다시 실어 보내며, 60일차에 쓰러진 사람을 실어 보내며 그렇게 96일이 지나갔지만 문제는 풀리지 않았다.
당시 공대위 집행위원장을 맡고 있던 나는 목줄을 걸고, 관을 올리며 동지의 목숨을 담보로 싸움을 하는 나쁜 놈이라고, 더러운 놈이라고, 극좌 맹동주의자 등등의 수도 없는 욕을 먹으며, 정말 내가 그러한가, 수많은 밤을 잠 못 들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욕을 다 먹으면서도 나는 더한 육체적, 정신적 하중을 견디며 자주적이고 주체적이며 의연했던 기륭분회원들의 편에 편파적으로 설 수밖에 없었다. 다른 무엇보다 그들 비정규직 주체들의 판단과 의지의 편에 서 달라고 얘기하던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동지들의 간곡한 당부의 편에 편파적으로 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제 기륭여성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마지막 양보안을 내놓고 다시 끝장 투쟁을 결의하고 있다. 문제 해결에 대한 사측의 의지가 없다면 이번 주 부터는 단식부터 ‘시작’하겠다고 한다. 무려 1870여일, 쉬지 않고 달려 온 이들의 사회적 호소와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렇게 3년여를 싸우고 이제 다시 상경 노숙농성 100일째를 넘은 동희오토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꿈은 이루어질 수 있을까. 그 억울한 1000일을 막 넘기고 다시 편파적인 혜화서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한 재능교육비정규직들과 그렇게 인천 부평 지엠대우 공장 담벼락 천막을 지키고 있는 지엠대우비정규직들의 꿈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곰도 100일만 정성을 다하면 사람이 된다는 옛 설화가 무색하다. 곰이 사람이 되겠다는 꿈도 아닌, 다만 나도 정상적으로 고용당해 최소한의 노동권을 보장받는 정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 소박한 꿈들이 이 사회에서는 그렇게도 무리한 요구일까.
난 이번에도 내 발로는 못 가겠다. 차라리 잡아가라.
60일째 경비실 옥상에 올라가 야위어가는 윤종희, 오석순을 두고는 당신들의 아가리로 내 발로는 못 들어가겠다. 이 악독한 세계를 이토록 안전하게 지켜주고 있는 이 편파적인 법 망의 논리 안으로 순순히는 못 가겠다. 사유재산권 행사를 막은 업무방해라니, 이 세계의 모든 가치는 다만 저 고귀한 자연으로부터 빌려 온 것들과 거기에 더해진 평범한 이들의 노동력으로부터 나올 뿐이다. 사유재산이라니, 도대체 당신들은 무엇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무엇이 도대체 당신들만의 것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중세의 신이 역사의 무대에서 밀려나듯, 자본가 당신들 역시 언젠가는 이 역사의 무대에서 희화화되고 말리라. 그보다 먼저 내가 좌절에 빠지지 않기만을, 타협하게 되지 않게 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기륭의 1800일은, 지엠대우비정규직과 재능교육비정규직, 동희오토 비정규직들의 1000일은 우리 모두가 부끄러워야 할 비참의 1000일이다. 우리 모두가 분노해야 할 통한의 1000일이다. 그런 잔악한 1000일이, 1800일이 사회적으로 소환되지 않는 이상, 이 악독한 현대판 노예제도 비정규직 제도가 사회적으로 소환되지 않는 이상, 나는 내 발로 못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