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중언론 참세상

유럽의 노동자 투쟁

[기고] 사민주의의 퇴조와 공장/가두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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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유럽에서는 나라와 국경을 넘어 임금 삭감, 연금 개악 등 긴축 재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의 총파업 투쟁과 가두 시위가 터져 나오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천만명의 노동자가 파업에 동참하고 있고, 파리, 아테네, 로마, 리스본, 베를린, 암스테르담, 브뤼셀 등지에서 수만명, 수십만명에 이르는 시위대가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다. 2000년대 초반 그리스, 스페인에서의 총파업 투쟁 이래 최대 규모이다. 아직 진행 중이라 그 결과를 보아야겠지만, 일단은 몇 가지 점을 생각하도록 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스페인 노동자들의 행진 [출처: http://www.spanishvida.com]

무엇보다도, 지금의 위기는 금융위기에서 재정위기로, 재정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긴축재정이 대중적 저항에 부딪치면서 정치 위기로 치닫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주가 폭락, 인플레, 과잉 생산이 문제였던 1929년이나 산유국들의 유가 담합 인상, 오일 쇼크로 촉발되었던 1970년대의 위기와 다른 양상이다.

한편 독일이나 스웨덴에서 명백히 볼 수 있듯이, 지난 백 수십년간 유럽에서 노동자 정치 세력을 자처해 왔던 사민주의의 퇴조와 함께 공장/가두의 정치가 터져 나오고 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고민이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흔히 금융위기, 재정위기로 불리우고 있는 지금 위기의 양상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에서 시작된 이번 위기는 세계 굴지의 금융기관들이 무더기 파산하면서 세계 각국을 강타했다. 너도 나도 돈벌이에 나서게 만든 오만가지의 금융 파생상품들(derivatives), 이것이 만들어주던 이윤들이 공중으로 휘발한 것이다.

(주식을 필두로 한 금융상품의 이윤은 실질적 자본(reales Kapital)이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되는’ 이윤에 기초해 상상 속에서 만들어지는 허구적 자본(fiktives Kapital)이다. 파생상품은 그것이 아무리 기발해도, 허구에서 파생한 허구에 불과하며, 말 그대로 거품(bubble)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거짓말이 커질수록 사람들이 그것을 믿듯이, 거품이 거대해지면 거품이 아닌 것 같이 보인다. 지금은 거품이 꺼졌으니 말이지만, 이러한 거품, 즉 파생상품을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가 여러 명이라니 경제학이라는 학문과 노벨상의 권위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많은 경우 학문은 상식보다 못하다. 거품이 사라지고 노동이 공격 당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노동 없이 화폐, 금융 그 자체에서 가치, 나아가서는 이윤이 나올 수 있는가를 둘러싸고 학자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마치 낙타가 바늘 구멍으로 몇 마리 들어갈 수 있는가를 가지고 논쟁을 벌인 중세의 신학자들처럼.)

금융 위기에 대한 처방으로 각국 정부는 국가 재정으로-대부분 국채 발행으로-구제 금융을 해주었다. 세계적으로 5조 달러가 지출되었다고 한다. 국가의 자산 매입으로 사실상 국유화된 금융기관도 있다.(시장 만능주의자들이 국유화를 하다니? 사회주의자들도 강령에서 지웠다는 그 국유화를.) 국가가 빚더미에 올라 앉자, 이제 그들이 항상 써먹는 수법이 전가의 보도처럼 동원되고 있다. ‘자본의 위기를 노동과 복지의 위기로!’ 자본을 살리기 위해 발생한 국가의 재정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임금과 연금을 삭감하는 긴축재정은 급기야 지금의 노동자 총파업과 가두시위를 촉발한 것이다.

지금의 위기는 축적되는 자본은 점점 더 커짐에도 이윤율은 저하하는 기본적인 자본주의의 법칙이 관철되면서, 거대하게 쌓인 자본이 투자처를 찾지 못해, 온 지구를 떠돌며 금융화, 투기화한 결과로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자본주의 위기는 자본의 생산, 재생산 과정의 모든 계기 속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지금의 위기는 ‘이윤’ 따먹기 그 자체에서 발생했다.

이전에는 노동자를 너무 많이 비효율적으로 고용했다는 등 노동과정에서, 또는 유가인상 등으로 생산단가가 갑자기 올랐다는 등 소재적인 데에서, 또는 생산과 소비 사이의 조절이 안되었다는 등 제도 차원에서 위기의 원인을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자본의 내적 속성인 더 많은 이윤을 위한 투자/투기가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채, 그 자체의 버블을 만들어 내면서 발생한 것으로, 자본 그 자체의 위기는 이제 무매개적으로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한편 지금의 위기는 1980년대 이래 등장한 신자유주의 전략이 한 세대를 거쳐 지구적으로 전면화된 결과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한 시대를 마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에 신자유주의에 대처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보다 정확히는 이를 추종했던-사민주의는 동반 추락하고 있다. 노동자 정치를 표방하는 정당이 역설적으로 자본이 위기를 맞고 노동자들의 투쟁이 벌어지는 와중에 약화되고 있는 것이다.

작년도 9월 독일 선거에서는 독일의 사민당이 23%를 획득해 최대의 패배자가 되면서, 중도 우파가 집권했다. 그 이전 2005년 보다 11.2% 하락한 득표율이며, 1900년대 이래 최저의 득표율이다. 지지율을 보면 극우 세력과 좌파당이 약진한 것으로 나타나, ‘정치의 양극화’를 볼 수 있었다. 특히 좌파당은 11.9%를 득표하며 녹색당을 넘어섰다. 독일의 사민당은 1800년대 중반 맑스와 라쌀레가 통합하면서 건설한 당으로 백수십년의 전통을 가지고 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수차례 중도 우파와 주거니 받거니 집권하면서 독일의 사회국가(Sozialstaat) 건설의 견인차 역할을 한 당이다. 사민당의 급격한 추락은 정치 지형의 변화가 심하지 않은 독일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필자는 이미10여년 전 토니 블레어의 '신노동' 정책과 슈레더의 '신중도' 노선 등 소위 제3의 길 류의 입장들이 등장할 때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내면화한 사민주의로, 사민주의가 자신의 기반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무덤을 파고 있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실제로 슈레더 정부는 2000년대 초반을 거치면서 공언한 대로 싸구려 일자리 만들기, 연금 및 의료보험 개악 등 신자유주의 개혁을 적극적으로 수행해 유권자들의 불만을 샀다. 사민당의 패배에 대해 독일의 한 언론은 사민당식 신자유주의 개혁인 아젠다 2010에 대한 영수증을 수령한 것이라고 썼다. 사민당의 우경화는 실권을 자초하는 한편, 라퐁텐을 위시한 사민당 내 좌파들이 탈당해 좌파당에 합류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지난 9월 스웨덴 선거에서는 사민당이 패배하면서 중도 우파 정당이 집권했다. 지지율 30.9%로 1914년 이래 최악이며, 우파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동시에 극우 세력이 스웨덴 국회에 처음으로 진출했다. 1930년대부터 수십년간 사민주의 정당이 집권해 온 나라, 에스핑 엔더슨 등 많은 학자들에 의해 사민주의 모델로 구분되면서 가장 이상적인 복지 국가로 연구 대상이 되어왔던 스웨덴은 이제 사민주의 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이제 스웨덴에서조차 사민주의가 선거에서 패배하고 우파 정권이 들어서면서, 유럽 전체에서 볼 수 있었던 사민주의의 퇴조 경향에 마침표가 찍히는 느낌이다.

사민주의의 퇴조와 함께 총파업과 가두 시위 등 대중의 직접 정치가 터져 나오고 있는 한편 자본주의의 지양을 목표로 내건 독일의 좌파당, 프랑스의 반자본주의 신당 등 신생 정당이 등장해 대중적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난 수십년간 진행되어온 신자유주의 지배 전략의 전면화와 자본 주도의 지구화 경향의 결과이다.

월러스틴 역시 스웨덴 사민주의의 패배에 대해 쓴 최근 글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굴복이 스웨덴 사민당의 패배에 결정적이었다고 쓰면서 사회민주주의에는 미래가 없다고 썼다. 그러나 월러스틴은 사민주의에 대한 유권자의 지지, 반발의 맥락에서 접근하고 있다. 또한 극우 반이민 정당의 국회 진출에 대해서는 인종, 소수자에 대한 사민주의의 무관심을 들고 있다. 필자의 생각은 사민주의의 퇴조는 지구적 수준에서의 자본의 축적 조건과 지배전략의 변화와 맞물린 것으로, 지금의 유럽의 정치 지형의 변화는 복지 국가/사회국가적 발전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예고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신자유주의적이거나, 사민주의적인 대안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뛰어 넘는 새로운 프로젝트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 금융위기, 국가의 재정위기를 거치면서 시장과 국가 모두가 바닥을 보이고 있는 지금 시기, 시장만능주의적인 신자유주의, 국가개입주의적인 사민주의 모두 운신의 폭이 매우 좁아져 있는 지금 시기, 자본주의가 자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드러내 놓고 노동에 대한 공격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 시기에는 더욱 그러하다.
  • 음..

    결국 글로벌한 대안을 가진 글로벌한 정치주체가 등장해야 한다는 말인데, 이런 것을 만들기엔 아직 인류가 덜 성숙했다. 인류는 아직 당장 내일 먹을 것이 중요한 수준에 머물러 있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