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합천군 대양면 대목리 000번지, 네비게이션에 주소만 딱 치면 대문 앞에 바로 도착할 거라는 정미영씨의 전화 안내를 받고 나는 주저함 없이 할부로 네비게이션을 샀다. 그래도 초행길이라 오후 세시경까지 도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려 나는 일찍 집을 나섰다. 차를 몰고 합천으로 가는 길은 더웠다. 4단까지 에어컨을 올려 봤지만 뜨겁게 달구어진 차 안의 열기는 좀처럼 내려가질 않았다. 울산에서 네 시간 정도를 달려오니 합천이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했다.
행사가 있어 막 읍내에 다녀오는 길이라는 미영씨가 나를 안내한 곳은 친환경 농산물을 생산하는 농민 법인의 사무실이었다. 그는 이곳의 사무국장이다. 보통 때는 매일 농산물을 학교 급식실에 납품하느라 바쁘지만 지금은 방학이라 상근자 한명이 출근해서 한살림에 납품할 잡곡을 포장 비닐에 담고 있었다. 합천군의 친환경 무상급식을 이곳저곳에 알리기보다는 아직은 더 내실을 다질 때라는 미영씨는 여기저기서 찾아오는 취재진들의 인터뷰에 응하는 일이 부담이 된다고 했다. 그래도 널리 알려져서 다른 지역에서도 아이들을 위한 좋은 환경이 마련된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냐며 그는 말문을 열기 시작했다.
합천군은 초중등학교뿐만 아니라 고등학교까지 모두 친환경 무상급식이 실시되고 있다. 특히 농민들이 농산물을 생산하는 일뿐만 아니라 관리와 납품을 직접 담당하면서 농촌 사회의 변화를 일궈가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친환경 무상급식을 하면서 처음 든 마음이 무엇이냐고 물어 보았다.
“잘 사는 아이들이나 못사는 아이들이나, 아이들은 똑같이 먹고 똑같이 놀면서 자라야 해요. 그 나이에는 인성이 만들어지는 때라 자라면서 차별받고 상처 받으면 안되잖아요.”
세상에 죄 덜 짓고 사는 법을 고민하다 선택한 일이 농사 짓는 일이라는 미영씨는 세 아이들의 엄마이기도 하다. 아직 어린이집에 다닐 법한 나이 즈음으로 보이는 미영씨의 아이들이 사무실에 있는 컴퓨터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놀고 있다. 농사짓는 일이 개인적인 선택이었다면 친환경 무상급식을 일궈가는 그의 노력은 세상과의 조화를 만들어가는 일인 듯하다.
미영씨는 인터뷰 도중에도 자주 ‘쉬운 일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짐작만으로도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을 듯하다. 진보 교육감이나 단체장이 당선된 지역도 아닌, 이곳은 전통적으로 보수적인 경상도의 산간지역이 아닌가. 정말 이런 곳에서 어떻게 군내에 있는 모든 학교가 친환경 무상급식을 할 수 있었는지 나는 그 동력이 정말 궁금했다.
“쉬운 일이 아니예요. 첫째는 예산을 확보해야 해요, 그리고 친환경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생산자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요. 그리고 직접 식단을 짜는 학교 영양사분들도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영양사분들은 양이나 크기가 규격화되어 있는 식재료를 원하신단 말이예요. 그러나 직접 현장에 나와보면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감자는 알 굵기도 다 다르고 고르지 않다는 걸 알게 되잖아요. 음식을 만들었을 때 모양은 덜 나지만 그래도 그런 걸 아이들한테 먹여야 된다는 걸 알구 있죠. 특히 뿌리 채소들은 절대로 약 치면 안되거든요.”
농민들과 군청과 지역 교육청의 유대가 단단해야만 가능한 일이라는 그의 말을 들으면서 나는 세상의 변화는 제도나 정책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둘러싼 환경을 깊이 고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실천에서 나온다는 걸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군내에 있는 하천에 다리 놓는 공사를 하나 더 하려는 군청을 설득해서 고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에 예산을 지원하도록 하는 일, 무엇이 더 중요한 일인지를 정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르지만 분명한 건 예산을 움직이는 힘은 정책이 아니라 사람들의 열정과 노력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친환경 농산물은 일반 농산물보다 생산단가가 높다. 지역의 아이들에게 친환경 농산물을 다 먹이기 위해서 농민들은 가격을 양보했다. 이윤보다는 내가 생산한 농산물을 내 아이들에게 골고루 먹이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기 때문이다. 올해는 처음으로 합천군 내에 있는 초등학생들이 친환경 농사 체험도 했다.
“양파도 캐고 토마토도 따고 먹이사슬에 대해 설명도 하고, 어떻게 꽃이 피는지, 토마토는 왜 빨갛게 익었을 때 먹어야 하는지, 생물학을 전공한 분이 직접 현장에서 그런 걸 아이들에게 하나하나 다 설명을 해줘요. 이곳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재능이나 능력을 가지신 분들이 있어요. 체험을 하다보면 밭을 밟기도 하고 농민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도 있어서 그런 부분들을 교육청에서 예산 지원을 해요. 그러니까 좀더 안정적으로 체험 교육을 할 수 있어요. 이런 일을 하는 건 굉장히 중요해요. 교육을 하면서 너희들이 이런 농산물을 먹어야 건강해지고 또 농민들도 더 잘 살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요.”
합천군 내에 있는 학교에서는 된장이나 간장을 직접 학교에서 담가 먹는 ‘장독대 사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교들도 늘어나고 있다. 학교 뒷마당에 햇살을 받으며 옹기종기 모여 있는 장독대를 떠올리는 일은 정겹다. 내년부터는 급식 조리과정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작은 샘물 줄기 하나가 큰 강을 이루듯
2010년 지방자치 선거에서는 유독 무상급식에 대한 공약이 두드러졌다. 13개 지역에서 출마한 진보 교육감 후보들의 공통된 공약도 친환경 무상급식이었다. 반대편에서는 급식이 교육의 영역이 아니라고 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합천군을 들여다 보니 급식이 교육의 영역이 아닌 이유를 찾는 일이 더 어려운 일인 듯하다.
순한 재료들과 느리게 숙성된 양념으로 조리된 음식을 먹는 아이들은 어떻게 자랄까. 친환경 무상급식이 실시된 이후 합천군 내의 아이들 중 아토피나 천식을 앓는 아이들의 증세가 많이 나아졌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초등학교를 졸업한 이후 중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위해 합천군을 떠나는 학생수도 많이 감소했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합천군이 뿌리내린 땅속 토양까지 살리고 있었다.
“친환경으로 농사지은 쌀을 다 팔 수가 있고 찹쌀 같은 잡곡도 재배 종류와 면적이 늘었죠. 학교의 요구에 맞추다 보니 채소 농사 품목도 다양해졌어요. 농가 수익도 늘고 농사지을 거리가 있으니까 귀농자가 많이 늘었어요.”
그러고 보니 사무실 주변에서만 해도 어린아이들을 자주 볼 수가 있었다. 친환경 무상급식의 파급력은 컸다. 작은 샘물 줄기 하나가 큰 강을 이루듯 하나의 변화가 가져올 또 다른 변화들을 나는 이곳에서 예감할 수 있었다.
이미 작물들을 다 수확해 버려서 사진 찍을만한 데가 별로 없을 거라는 미영씨의 말에도 나는 사무실 밖으로 나와 이곳저곳을 카메라에 담아 본다. 유달리 더운 올 여름, 고온 다습한 이 열기속에 벼는 푸르게 잘도 익어 간다. 논을 지나 미영씨가 알려준 오이 하우스 안을 들여다 보았다. 훈장처럼 친환경 재배 농산지라는 알림판이 하우스 앞에 세워져 있다. 남아 있는 무성한 줄기와 잎만으로도 지난 한철 이곳에서 꽃피우고 열매 맺은 생명들의 열기가 전해진다. 하우스 뒤를 흘러가는 실개천 바위에는 왕우렁이가 낳아놓은 분홍색 알 무리가 붙어 있다. 옆의 논은 우렁이 농법으로 친환경 쌀을 생산하는 곳이다.
미영씨가 차에 오르려는 나를 불러 세운다. 학교에 납품하는 생산지에서 나온 거라며 내민 달걀 한판, 가지런히 담겨 있는 서로 다른 크기의 알들이 예쁘다.
에어컨을 끄고 창문을 열었다. 여전히 더운 바람이지만 차 안을 채우는 이 열기가 싫지 않다. 합천군에 오기 전에 품었던 답답한 마음이 조금은 풀린 듯하다. 몇몇 가난한 이들에게 급식비 지원 혜택을 주는 차별 급식의 문제가 무엇이냐고 묻던 나의 물음에 답한 이들은 차별 급식보다 교육의 부조리를 먼저 이야기했다. 이어지던 뿌리처럼 결코 다른 것이 아니었지만 울산에서는 어디서부터 잘못되어 있었는지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아니, 답을 찾기엔 길이 너무 좁았다.
팔월 초의 무더위, 난생 처음 네비게이션이 알려주는 길을 따라 온 이곳. 이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농민들과 공무원, 그리고 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들, 그분들의 마음이 한곳으로 흐르지 않았다면 친환경 무상급식은 어쩌면 꿈이었을지 모른다. 변화의 한가운데는 사람들이 있었다. ‘사람만이 희망이다.’ 이 오래된 글귀 하나가 합천군을 떠나온 후에도 오랫동안 내마음에서 지워지지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