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날 해고통지서가 도착 했는데 그동안 수많은 해고통지서를 봤지만 이번처럼 어처구니없는 해고통지서는 처음 봤다. 애초에 성희롱 피해자를 두 번이나 징계하는 것 자체가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일인데 여기에 더해 친절하게도 재심 날짜까지 못 박아서 보낸 것이다. ‘인사위원회 결과에 이의가 있을시 2010년 9월 27일까지 이의신청을 하시기 바라며 이의신청시 2010년 9월 28일 오전 10시에 개최할 예정이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현대자동차의 휴가기간이 26일까지였고, 추석전날 해고하고 휴가 뒤 바로 27일날 재심신청해 28일날 재심 인사위원회를 열겠다는 말이다. 최초의 해고일부터 재심의 결과가 확정될 때가지 추석휴가 6일을 포함해도 열흘이 안 걸리게 하겠다는 의도이고 실제 그렇게 진행되었다.
상식적인 징계의 절차를 밟아 피해자가 재심요청을 하면 회사가 재심 날짜를 통보하고 이것을 다시 피해자가 연기하면 다시 재심날짜를 통보하는데 보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겨우 2주이다. 14년 동안 일한 사람을, 성희롱 당하고 그것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 냈다고 해고하면서 시간이 2주정도 더 걸리는 것이 그렇게도 싫을까.
도대체 왜 이렇게 억지를 쓰듯이 무리해서 피해자를 괴롭히는 걸까. 어차피 지난해 12월 금양물류가 성희롱사건을 최초 인지한 후 가해자 소장이 피해자를 징계하는 황당한 방식으로 괴롭혀왔으니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괴롭히기로 작정이라도 한 걸까. 왜?
이렇게 서두르며 막가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봤다. 현대자동차 입장에서는 어차피 이미 언론에 날만큼 나서 속된말로 ‘쪽팔리는 짓’을 다 한 마당이라는 거다. 가해자소장과 피해자를 징계해고하고 업체인 금양물류는 폐업하면 된다는 원청의 속셈이다. 말이 폐업이지 어차피 일을 중단하는 것도 아니고 사장만 바꾸면 그뿐이다. 하청사장은 울산에도 협력업체를 운영하고 있고 그렇지 않다 해도 다른 지역의 현대자동차 사내협력업체의 사장이 되면 그만이다. 소장 또한 징계해고 된다 해도 다른 협력업체의 관리자로 다시 가면 된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건을 진두지휘하는 현대자동차 원청은 피해자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우기면 된다.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불법인줄 뻔히 알면서 파견노동자들을 고용하고 있지 않은가.
현대차는 이왕 막가기로 한 거 여기서 더 나간다. 28일 금양물류에서 피해자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여는 아침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 40여명이 항의방문을 갔다. 그런데 금양물류 관리자도 아니고 아무 상관도 없다는 원청관리자들 200여명에 몰려와서 힘으로 조합원들을 밀어냈다. 여기에 동원된 원청관리자들의 폭력이야 당연하고 지회 조합원이 찍고 있던 카메라를 빼앗아 파일을 지우고 돌려주면서 자기들은 어림짐작으로 10대도 넘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다. 성희롱 사건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원청이 지회 조합원들의 항의 방문은 떼로 몰려와 막으며 폭력과 욕설을 서슴지 않는다.
[출처: 현대차 아산공장 사내하청지회] |
어차피 원청 관리자들이야 폭력행위도 서슴지 않으며 충성경쟁을 하고 있다. 현장의 저항은 폭력으로 막으면 된다. 그 과정에서 사진 찍어 고소고발하고 징계를 남발하면 그 결과 불법파견으로 오래간만에 정규직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조직되고 있는 사내하청지회의 조합원들을 위축시킬 수 있다. 그리고 법으로 가면 업무방해니 폭력이니 일방적으로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만 처벌 될 테니까. 현실의 물리적 폭력과 공권력에 의한 법의폭력을 양손에 쥐고 현대자동차가 두려울 것이 없으니 무법천지도 이런 무법천지가 없다.
결국 현대차는 사내에서 벌어진 성희롱 사건의 피해자를 해고하는 것은 원청과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딱 잡아떼면서도, 항의하는 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직접 때려잡고 있다. 이로써 현대차는 피해자에 대한 해고 또한 자기들이 직접 지시 했다는 것을 노골적으로 확인시킨 꼴이다.
차를 생산해 이윤을 남기는 것으로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선 현대자동차가 여성노동자에 대한 인권을 무시하고 노사관계를 탄압으로 일삼으며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또한 세계적인 수준으로 앞서가고 있다. 어디까지 막나갈지 두고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