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대를 만난 건 저녁 무렵이었다. 석식 시간을 이용해 인터뷰가 가능하다고 담임 선생님께 미리 연락을 받았던 터라 내가 학교 교문 앞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담임 선생님과 성대, 그리고 몇몇 여학생들이 교문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인터뷰를 한다는 게 마냥 신기했던지 따라 나온듯한 여학생들은 담임 선생님에게 웃으며 뭔가를 끝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발랄하다. 제 가슴에 떠오르는 궁금함들을 어떻게든 채우고야 마는 저 나이의 아이들. 나와 인사를 나누면서도 까르르 웃던 여자 아이들이 선생님과 함께 교실로 돌아간 후 성대와 나는 운동장에 있는 스텐드로 가서 앉았다. 나는 미리 준비해간 병커피 두껑을 열어 성대에게 건넸다. 열일곱, 내가 처음 커피를 마신 나이다. 시험 공부를 하느라 친구 집에서 밤샘을 할 때 처음 마셨던 커피. 처음엔 잠을 쫓는다는 핑계로 마시다가, 나중엔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림과 설탕맛에 즐겨 마셨던 것 같다. 뼈가 녹는다는 경고에도 커피를 마시기 시작한 나이. 열일곱이면 아이와 어른의 경계가 되었던 어느 선들을 넘고 있는 나이이기도 하다.
열 일곱살인 성대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한 후 급식비 지원을 받고 있다. 아버지가 새로 시작하신 사업이 아직 안정이 되지 않았고, 성대가 중학교때부터 어머니가 맞벌이를 하고 있지만 매달 들어오는 수입이 일정하지 않은 탓에 생활이 어려워 신청을 하게 된 경우다.
급식비 지원을 받는 학생들은 저소득층으로 분류되어 동사무소에서 지원이 나오는 경우와, 법적 저소득층으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담임 선생님의 추천으로 급식비 지원 혜택을 받는 경우가 있다. 서민층이 많이 몰려 사는 지역의 경우는 담임 추천 제도마저도 지원자가 몰려 학교에서조차 지원한 학생들의 서류를 일일이 검토해서 대상자를 선정해야 하는 일도 있다.
오년전, 나는 조카들의 급식비를 지원 받기 위해 조카의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한 일이 있다. 나와는 멀리 떨어진 지역에 살고 있던 언니는 이혼 후 쌍둥이인 두 딸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십년이 넘도록 지겹게 삶을 괴롭히던 우울증, 우울증은 마음뿐만 아니라 몸까지 병들게 하는 무서운 병이었다. 고혈압과 당뇨까지 겹쳐 언니네 거실 바닥 한구석엔 늘 약봉지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부어오른 얼굴을 매만지다 발견한 턱부위의 종양, 암이었다. 언니는 초기 암 종양을 제거하고 머리카락이 수북이 빠져 나가는 고통을 치르며 항암 치료를 했다. 당연히 생계는 돌볼 수가 없었다. 고등학생이 된 두 딸의 급식비 지원을 학교에 신청했지만 집이 있다는 이유로 대상자가 될 수 없었다. 조카들이 다니고 있던 학교는 대학 진학보다는 취업을 목표로 하는 전문계 고등학교였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학생들이 많다. 월세를 살거나 전세를 사는 학생들을 우선 지원하다 보니 그래도 낡은 집이라도 한 채 있는 언니네는 지원 대상에 오를 수 없었던 것이다.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께 다시 한번 말씀을 드려 달라는 언니의 전화를 받고 나는 어린 조카들을 떠올렸다. 싫다는 아이들을 겨우 설득해서 담임 선생님께 아이들이 처한 사정을 설명하고서야 급식비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난 조카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다. 그 나이의 아이들, 차라리 밥을 굶었으면 굶었지, 가난하고 아픈 가족의 모습을 아직은 감추고 싶은 그런 나이가 아닌가. 그러나 밥은 먹어야 한다. 어른들은 그걸 안다. 자존심을 구기고라도 밥은 먹어야 살아갈 수 있다는 걸. 키가 일미터 칠십센티가 넘는 아가씨로 자라 버린 조카들은 그날의 밥들을, 병든 엄마와 가난한 살림살이를 보여 주고야 먹을 수 있었던 그날의 밥들을 지금은 어떻게 기억할까.
조카들을 떠올리며 성대에게 급식비 지원을 받으면서 불편한 일이 있었던 적이 있느냐고 물어 보았다. 반 친구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아 일부러 드러내진 않는다는 성대는 급식비 지원 문제를 자신의 개인적인 자존심 문제를 넘어선 문제로 인식하고 있었다.
“생각을 많이 해봤어요. 저희 나라는 성적을 굉장히 중시하는 나라쟎아요. 그렇게 되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다른 부분에 대한 지원을 많이 나라에서 해줘야 하는데, 성적으로 드러나는 결과만 중시하고 지원은 없는 것 같아요. 대통령이 사업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경제적인 부분만 너무 중시하는 것 같아요.”
급식비 지원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몇몇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며 물어 보는 일이 결코 편한 일은 아니지만, 면제된 급식비로 집안을 위해 다른 일에 쓸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한다는 성대. 성대의 관심은 자신처럼 선별 지원급식을 받는 아이들이 겪는 고생을 넘어 급식을 둘러싼 부조리에까지 닿아 있었다.
“교장 선생님들이 급식비를 몰래 빼돌리고 하는 그런 비리들을 보면 교육자로서 그런 자리까지 올라 자기 이익만 챙기고 왜 학생들을 보살피지는 않는가 싶어요. 남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자기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 싶어요. 신문에서 그런 기사를 보면 저희 학교 선생님들조차도 의심을 하게 돼요. ”
나는 어쩌면 성대에게 아주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급식비 지원 대상자로서 느낀 내면의 아픔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였을까. 그러나 인터뷰 동안 성대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는 유상이냐, 무상이냐하는 급식의 방식이 아니라 학교에서든 정부에서든 학생을 위해, 국민을 위해 최소한 갖춰야 할 도리에 대한 것이었다.
급식비 지원을 받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은 건 아니라고 분명하게 말하지만 그래도 학교나 정부가 먼저 바로 잡아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하는 이 아이. 만성적으로 자리잡은 고위 관료들의 비리, 그리고 가까이에서는 교장 선생님들의 부패한 행동들이 어쩌면 지금까지 무상급식의 뿌리를 내리지 못하게 한 원인이 아니었을까. 근원을 묻는 것만 같은 성대의 말에 나도 잠시 흔들린다. 결과가 아니라 지금 현실의 모습부터 돌아보게 하는 말이다. 성대는 성인이 되면 선거권이 있으니까 그때는 꼭 투표를 해서 무상급식을 실현하는 사람을 뽑고 싶다고도 했다. 자신도 언젠가는 아버지가 될 건데 그때는 분명 다른 세상을 만들어 보고 싶다는 성대, 어둠이 내린 운동장을 바라보는 아이의 눈길이 깊고 멀다.
교육에 드는 비용은 급식비뿐만이 아니었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연년생인 두딸을 키우고 있는 이순영씨는 홈에버 해고 노동자다. 두 딸의 방과후 수업비까지 합하면 매달 34만원 정도의 고정적인 돈을 지출해야 하는 상황인데다가 학기가 바뀔때마다 체육복이며 참고서 값이며 수련회비, 수학여행비 등을 감당해야 할 상황이니 빚을 내서 사는 것도 한계에 이를 지경에 왔다고 했다.
“방과후 수업도 그렇쟎아요. 솔직히 매번 고정적으로 나가는 돈도 힘든데, 그러면서 방과후 수업은 또 왜 강제적으로 다 할 필요가 있는가 싶어요. 선택의 폭이 없어요. 거기다가 매번 치르는 사설 모의고사 시험도 돈을 내야 하쟎아요. 저는 국가가 이런 비용까지 다 지불해야 한다는게 아니라 자율적으로 선택하게라도 하면 좋겠어요.”
단순히 교육에 드는 비용의 문제를 탓하는 게 아니라 학생에게 선택권을 줘야 할 부분까지 사실 대다수의 학교에서 강제적으로 실시하다 보니 거기에 따르는 이중삼중의 비용이 대다수의 서민들에게는 큰 부담으로 다가서고 있다. 해고되고 파업할 때도 어려웠지만 지금도 별다른 소득이 없는 그는 두 딸의 교육비를 감당하기가 버거워 올해 급식비 지원 신청을 했다고 한다.
“나이 쉰이 넘은 아줌마가 4대 보험이 다 적용되는 사업장에 취업하는 게 쉽지가 않쟎아요. 직장의보를 적용받을려면 4대 보험 적용 사업장에 취업을 해야 하는데, 그게 안되니까 지역의보로 있거든요. 지역의보가 직장의보에 비하면 많이 높게 측정이 돼요. 친정 어머니 집이 지금 제 앞으로 되어 있는데 그러니까 지역의보가 더 비싸게 나오는 거예요. 의보가 높게 나오니까 또 소득이나 재산이 많다 해서 급식비 지원 대상이 안돼요. 급식비를 지원 받으려면 학교나 동사무소를 찾아가서 구구절절한 사연을 다 이야기하면서 또 다 털어 놔야 하쟎아요. 정말 막다른 길에 몰리면 더한 것도 할 수 있겠지만, 어떻게 생각하면 내가 얼마나 더 가난한 모습을 보여줘야 날 도와 줄까 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 힘들더라고요.”
쾌활한 성격의 딸이 이런 일로 혹시나 상처를 받을까봐 걱정이 된다는 순영씨는 급식비 지원이 안되더라도 최소한 방과후 수업이나 사설 모의고사 같은 것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주길 바란다고 했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아이들에게 효과가 없는 수업조차도 강제로 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생각에서다. 대학 입시 위주의 교육 방향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가난한 서민들의 생계를 조이는 위협으로 다가서고 있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