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가 낸 부당해고 구제와 불법파견 정규직화 소송에서 완성차 컨베어 흐름작업에서 동일한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은 위장도급 형식의 불법파견이라며 2005년 7월1일 이전 입사해 2년 이상 경과한 자는 고용의제에 따라 이미 정규직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타임오프제 실시로 노조말살 위기에 내몰렸던 민주노조운동에는 경천동지할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에 따라 불법파견노동자가 쉽게 정규직화를 쟁취할 수 있는 호락호락한 정세가 아니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대법원 판결을 뒤집어 불법적인 착취경영을 지속하려고 안간힘을 쓴다. 울산지역 모 변호사는 “호들갑을 떤다”며 부당하게 착취당하는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희망에 찬물을 끼얹는가 하면, 대한상공회의소는 29일 설명회에서 “사내하도급 관련 대법 판결은 부당”하고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며 기업 현실을 부정하는 판결”이라면서 번복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어김없이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의 고임금, 고용의 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을 통한 노동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정규직노동자 탓과 함께 모든 노력을 기울여 사법부가 새로운 해석을 하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밝히기도 했다.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은 작년부터 파견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고 모든 업종에 파견을 확대시키겠다는 방침을 정하고 있다. 노동부는 지난 4월 단계별 파견업종 확대방안을 추진하다 사회적 반발에 부딪혀 대기 상태에 있다. 노동부의 파견업종 확대는 현재 파견법을 위반하며 제조업 생산공정까지 확산된 불법파견에 대해 합법화의 길을 열어 기업들에게 면죄부를 주려는 의도가 명백해 보인다.
현대차는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하지 말라
물론 대법원은 서울고법으로 사건을 파기환송했기에 현대차가 새로운 증거를 제출하면 다시 변론을 거쳐 재판을 해야 한다. 시일이 걸리겠지만 서울고법은 대법원의 파기이유로 삼은 사실상 및 법률상 판단에 기속된다고 정하고 있기에 종국판결로서 번복될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또 최병승 조합원 개인에 대한 판결이기에 8000여명 전체에게 집단적으로 적용하기 위해서는 노사간 교섭을 통해 해결하거나 회사가 불응하면 집단소송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러나 현대자동차 공장을 없애지 않는 한 컨베어 작업장의 증거 인멸도 불가능하고 결정적인 새로운 증거가 나올 리 없기에 이번 최병승 조합원에 대한 판결은 전체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도 해당된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판정은 이미 2005년에 노동부에서도 불법을 인정했던 사항이며, 파견법 제5조 1항에서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은 파견근로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는 것이다.
외계인이 아닌 이상 현대자동차 컨베어 작업장에 가 보면 ‘제조업 직접 생산공정’이 분명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혼재되어 동일한 차를 조립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당연히 출퇴근 시간도 동일하고, 연장과 특근도 똑같이 하며, 휴가와 휴무일도 같다. 차량조립에 문제가 있어 컨베어를 세우면 똑같이 작업을 중단하고 안전교육시간도 점심시간도 함께하며, 불량이 발생하면 앞 공정 정규직노동자가 수정하고 정규직 관리자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데 단지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차별로 인해 동일한 노동을 하고도 임금은 절반을 받고 정리해고는 1순위다.
세상에 태양이 하나이듯 현대자동차 비정규직노동자는 파견법을 위반하고 위장도급으로 사내하청업체에게 인력을 불법으로 파견받아 중간착취를 자행하는 불법경영의 산물이다. 따라서 대법원 판결은 바뀔 수가 없다.
최근 법원의 사내하청, 불법파견 판결 사례와 현황
-SK 인사이트코리아 시설관리노동자 불법파견 판결(2003년 9월)
-코스콤(증권전산) 불법파견 판정(2008년 1월)
-현대미포조선 용인기업 사내하청 정규직화 판결(2008년 7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 원청 사용자성 인정 판결(2010년 3월)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비정규직 불법파견 판결(2010년 7월)
-인권위, 공무원과 동일 노동하는 파견노동자 동일임금 지급 권고(2010년 8월)
-KTX 여승무원 코레일 불법파견 직접고용 및 부당해고 판결(2010년 8월)
정규직노동자와 사회적연대로 불법경영 중간착취 바로잡을 기회
현대차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는 불법파견의 덫에서 빠져나와 정규직화의 길로 가는 마지막 기회일 수 있다. 대법원 판결과 함께 금속노조는 제조업 전체 불법파견 문제로 확산시키고, 현대차비정규직지회는 노조가입 조직화에 심혈을 기울이며 특별교섭 요구와 집단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하지만 사내하청업체 사장들의 노조 가입 방해와 탈퇴 유도라는 부당노동행위에 부딪혀 조직률이 정체상태에 머물고 있다. 원청인 현대자동차 비정규직특별대책팀이 비정규직노조 가입률을 7월22일 이전으로 되돌리라는 비밀지침을 내리고, 하청업체 사장들에게 차기 재계약 심사에서 탈락시킨다는 협박을 하고 있다고 한다. 결국 전주공장에서는 사내하청업체 관리자가 비정규직지회 대의원 머리를 병으로 내리쳐 중태에 바뜨리는 사건이 생기고 말았다. 현대차는 아직까지 불법경영 착취경영을 해결할 의시가 전혀 없다는 게 확인된 사건이다.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해결할 최고 빠른 방법은 비정규직노동자들이 정규직지부에 직가입해서 대대적인 조직화를 통해 정규직지부가 협상에 나서 길이다. 대법원 판결은 비정규직노동자도 정규직이라는 판결이며 동시에 정규직 조합원이라는 평결이기도 하다.
정규직지부는 과거 세번이나 부결되는 부끄러운 역사를 이번 기회에 해소해 비정규직과의 연대투쟁에 나서야 한다. 정규직지부가 결심하면 조합원들은 기득권이 아님을 알기에 대법원 판결에 수긍하고 따라줄 것이다.
두번째는 진보정당과 시민사회세력이 비정규직과 사회적 연대를 실천하는 방법이다. 본래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중간착취’에 있다.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비정규직 정규직화 문제는 어떤 형식이든 해결되겠지만 사내하청 이외의 파견노동자 저임금 차별 문제, 90%에 이르는 중소영세기업의 다단계하도급에 의한 중간착취 문제 해결 없이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날 공산이 크다.
따라서 진보정당과 시민사회단체는 현대차 불법파견 투쟁에 숟가락을 얹는 방식이 아니라 지방정부 관급공사와 용역업체에 중간착취가 없는지 ‘특별감사’를 요구하고 착취가 발견되면 환불과 함께 재발 방지를 위해 ‘임금직불제’ 실시를 요구해야 한다. 더 나아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고 직접고용방식으로 개선하는 역할을 다할 때 현대차 불법파견이 소수노동자들의 이기주의 문제가 아니라는 걸 사회적으로 확산시켜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을 현실화시키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아무래도 국민들의 여론이다. 대법원 판결에 따른다면 정부와 기업들이 판결을 뒤집지 못할 것이고, 불법경영을 바로잡자는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설득력을 잃으면 영원히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따라서 승부의 관건은 여론전이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 청소와 경비노동자가 비정규직이 아닌지 살펴보고 정규직화를 추진해 비정규직 문제가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문제이고 내 자식과 후손들의 미래를 밝히는 문제로 받아 안아야 한다. 그랬을 때 이 사회에서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차별제도와 중간착취가 사라지는 날이 빨리 다가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