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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노조 비정규직 직가입 1사1조직으로 가야

[칼럼] 비정규직 정규직화는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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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경 미국 노동운동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한다. 온갖 부정부패와 비리에 연루되어 연방정부가 노동조합 외부감사법을 도입하는 등 자주성은 크게 훼손되고 노동운동은 쇠퇴하며 조직율이 하락하여 오늘날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미국은 8시간노동제는 무너지고 노동시간은 증가하고 있으며, 2009년 미국 빅3의 임금삭감과 정리해고 사태를 보듯 약화된 노동조합운동은 조합원 권익 옹호라는 최소한의 역할마저 다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우리는 미국노동운동 위기의 본질은 정권과 자본의 탄압에만 있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1950~60년 당시 미국노동운동도 현재의 한국 정규직 노동운동처럼 대공장 백인 중심의 노동운동이 활개를 쳤다. 미국이라는 나라는 흑인노예와 이민노동자로 하층노동시장이 구성되었다. 당연히 노동운동은 장시간 저임금 노예노동 상태인 이주노동자와 흑인노동자들에 대한 차별 철폐와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지향하는 투쟁을 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철강, 조선, 자동차, 항공 등 대규모 제조업과 군수산업 노동조합들은 노사가 담합하여 백인 노동자들의 임금인상과 고용안정에만 매달렸으며, 이주노동자와 흑인노동자들의 차별과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외면했다. 사회 정의의 칼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국민들로부터 고립의 길을 걸었던 미국 노동운동이 대의명분을 상실하고 쇠락해 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역사의 순리일지 모른다.

미국 노동운동 역사를 보며 2010년 현대자동차의 비정규직 차별 금지 정규직화라는 대법원 판결을 두고 전전긍긍하는 우리 정규직들의 모습이 투영되는 것은 무리한 상상일까? 87년 노동자도 인간이고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쳤던 우리는 98년 외환위기 사태에 이은 정리해고 사태와 비정규직법이 도입되면서 차별이야말로 인간의 기본권을 말살하는 부끄럽고 추악한 것이라는 걸 망각하고 외면해 왔다. 정규직보다 힘든 일을 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을 대신하여 정리해고 당하는 부당한 현실에 대해 우리는 ‘정규직 고용안정의 방패막이’라는 최면에 빠져 회사의 비정규직 살인을 묵인방조하며 비겁하게 살아왔다.

그 결과는 참혹했다. 정권과 자본, 보수언론은 비정규직 저임금 착취체제의 원인을 대공장 정규직 고임금론으로 책임을 덧씌웠다. 재벌기업과 중소영세기업간의 임금격차를 벌인 최저입찰제와 자본이 강행하는 납품단가 후려치기마저 정규직 임금인상과 성과분배에 대한 고통분담이라고 악용했다. 대공장 정규직 이기주의, 대공장 정규직 책임론과 양보론은 연봉 6000만원 노동귀족론으로까지 발전한다. 이때부터 국민들은 “먹고 살만한 놈들이 파업하고 지랄한다”는 파업반대론에 물들어갔다. 고향에 가면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일가친척과 친구들에게까지 비난을 받는 치욕을 당해야 했다. 민주노조운동은 현장에서는 정치파업은 불법파업이라며 세상의 정의를 향한 정당한 투쟁조차 회피하며, 공장 담벼락 안으로 회귀하는 산별노조 무용론마저 먹혀 들어가는 노사협조주의에 현혹되고, 사회적 고립에 직면했다.

대법 판결은 회사의 부당함을 밝히고 노조의 정당성을 확인시킬 절호의 기회이다. 하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분열하면 이 좋은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정규직지부가 비정규직을 끌어 안고 함께 살아가는 길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로 가능하다. 주간연속2교대도 결국 작업편성효율 평준화를 위해서는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 정규직화를 요구하기 전에 우리부터 정규직 조합원 선언을 하고, 정규직지부 규정부터 1사1조직 직가입이 가능하도록 개정 조치해야 한다. 이번 정규직화 투쟁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조직화이다. 현대자동차가 먼저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쟁취할 경우 전국의 사내하청과 비정규직 차별 철폐 투쟁은 새로운 희망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노동귀족, 정규직 이기주의라는 부당한 왜곡을 벗어 던지고 현대자동차 민주노조운동의 정의로움을 만천하에 알려 사회적 고립으로부터 벗어나도록 하늘이 준 기회이며 거부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이다.(기사제휴=울산노동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