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원청의 지휘감독하에 있다
자동차조립생산과 같이 하나의 상품을 생산하기 위해 컨베이어벨트 시스템 등을 통한 분업화된 제조업분야는 업무의 특성상 작업량과 작업시간, 작업순서와 방식 등 원청 기업의 지시에 따라 수행될 수밖에 없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 대법원판결 이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현장에서 노동자들의 판결의 의미를 토론하고 있다 [출처: 울산노동뉴스] |
원청 소유의 생산시설에 출근하여, 원청이 정한 작업시간에 맞추어 컨베이어벨트 앞에 서고, 원청의 관리자가 켄베이어벨트를 가동하면 이에 맞추어 원청이 제공하는 부품, 소모품을 사용하여 원청이 미리 작성교부한 부품 식별방법, 작업방식 등 각종 작업지시서에 따라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원청 노동자와 함께 켄베이어벨트에 배치되어 작업을 수행하기 때문에 사내하청 노동자는 시업과 종업 시간이 원청에 의해 결정될 뿐만 아니라 휴게시간의 부여, 연장 및 야간근로의 결정, 교대제 운영 여부, 작업속도 등에 대해서도 모두 원청의 작업지시에 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자동차업계의 경우 새 차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당 차종에 맞는 공정이 표준화되는데 이는 모두 원청에 의해 기획·설계된다. 원청 기업은 제품에 따른 공정 지시서가 나오고 이 공정을 배워서 전달하는 사람들도 원청 직영 정규직 조장들이다. 조장들이 와서 다시 사내하청 노동자들에게 직접 알려준다. 이후 작업 과정에서 불량이나 하자가 생기면 이에 대한 조치를 지시하는 사람들도 정규직들이다. 그럼에도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임금 기타 복지혜택 등 모든 근로조건에 있어 원청 정규직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열악한 상황에 있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원청의 직접고용으로 구성되어야만 한다
대법원은 “원고들이 수행하는 업무의 특성 등을 고려하며, 사내협력업체의 현장관리인 등이 원고들에게 구체적인 지휘명령권을 행사하였다 하더라도 이는 도급인이 결정한 사항을 전달한 것에 불과하거나 그러한 지휘명령이 도급인 등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고 판단하였다.
또한 대법원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업무는 파견허용대상업무에 해당되지 않기 때문에 위법파견을 이유로 직접고용간주규정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하였던 원심에 대해서도 파견법의 취지와 적용범위의 해석에 대한 법리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번 대법원의 판결은 자동차업계 등 제조업분야의 사내하청이 업무 특성상 진정한 도급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으로 파견법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만연해 있던 제조업분야의 도급관행에 제동을 걸고, 파견법 상 제조업직접생산공정에 대한 파견절대금지원칙(즉 직접고용원칙)을 지킬 것을 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판결이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서는 도급이라는 외관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실질적으로 원청 사용자의 제조생산의 핵심적인 부문을 차지하기 때문에 원청 사용자의 지휘감독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본질적인 영역을 구성하게 된다는 점에서 도급이 성립될 수 없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또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파견법상 파견절대금지업무로서 파견을 통해 직접 고용하지 않는 노동자를 원청 사용자가 직접 지휘감독하여 해당 업무를 수행하게 할 수 없도록 정하고 있는 바, 결국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은 직접고용으로 구성되어야 할 것을 천명하고 있다 하겠다.
위장도급·불법파견을 통해 누린 부당이득을 환원해야 한다
직접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을 위장도급·불법파견을 통해 사실상 사용하면서 직접고용시 부담해야 할 비용과 노동자들에게 돌아가야 할 배분을 원청의 이윤으로 축적해왔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간접고용이라는 이유만으로 직접고용 노동자에 비해 임금, 복리후생 및 각종 근로조건에서의 차별뿐 아니라 작업복이나 작업화 등 작업도구의 지급에서도 차별을 받아왔고, 각종 시설의 이용이나 공간의 분리 등을 통해 인간적으로 이등계급화시킴으로써 사회적인 차별대우에 상처입어왔고 노동하는 인간에 대한 존엄을 침해당해왔다.
노동부가 2008년 고용보험에 등록된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장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963개 사업장 노동자 168만 5995명 가운데 21.9%인 36만8590명이 사내하청 노동자였다. 특히 각종 실태조사를 보면 300인 미만 제조업사업장의 경우 과반 이상이 불법파견을 통한 호출노동으로 인력공급이 표준화되어 있는 실정에 비추어보면 전체 제조업분야의 50~60% 이상이 사내하청 노동자로 채워져 있다고 볼 수 있다.
자동차업계의 경우 전체 노동차 13만2046명 중 14.8%인 1만9514명이 사내하청 노동자로 조사됐다. 하지만 조사대상에 빠져 있는 2·3차 하청업체 노동자들까지 포함하면 사내하청 노동자는 2~3배 이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즉 그동안 원청 기업이 불법파견을 통해 노동자의 임금 및 근로조건을 악화시키면서 가로챈 이윤이 얼마나 큰 규모인지 보여준다.
제조업분야 원청기업은 대법원의 판결을 존중하여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위장도급을 중단하고 직접고용으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며, 그동안 직접고용해야 할 노동자들은 도급이란 허울로 위장한 채 간접고용 노동자라는 이유로 임금 기타 근로조건, 복리혜택에서 직접고용 노동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차별대우를 지속해왔는 바, 간접고용 노동자에게 배분되어야 할 이익을 공정하게 환원해야 할 것이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위장도급의 확산, 정부의 책임이 가장 커
또한 대법원 판결의 법원칙이 준수되기 위해서는 정부 역시 제조업분야에 대한 파견절대금지원칙을 제대로 시행하기 위해 직접고용 전환을 위한 감독업무를 철저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제조업분야에 광범위한 위장도급·불법파견이 확산된 데에는 노동부가 파견법을 회피하기 위한 형식적 도급전환에 대해 엄정한 법원칙을 적용하여 규제하고 파견절대금지원칙이 준수되도록 철저히 감독하지 않고, 오히려 위장도급을 적극적으로 지도하면서 파견법을 회피해가도록 도모하는데 한 몫 해왔다.
사실 불법파견의 문제가 제기되기 시작한 것은 간접고용을 확산시킴으로써 노동자들의 직업안정을 해치는 기업에 대해 직접고용을 하도록 지도해야 할 정부가 직업안정법에 대한 예외를 허용하면서 파견법을 만들어낸데서 시작되었다. 그럼에도 정부는 오히려 파견절대금지원칙을 훼손하며 도급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으며, 이로 인해 도급이 확산되는 분야는 파견허용업무로 허용해주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며 노동자들의 고용환경을 더욱 열악화시키는데 앞장 서왔다.
최근 들어서는 노동부는 파견법상 파견절대금지업무에 대해서까지 파견을 확대하여 위법을 합법으로 둔갑시키려는 시도를 계획하고 있다. 특히 정부는 실업해소를 명목으로 ‘고용서비스선진화’, ‘민간 고용서비스 활성화’한다면서 이름뿐인 인력관리업체를 앞세워 전 사회적으로 간접고용을 확대하려고 하고 있다. 즉 민간 인력업체의 수익을 확보해주기 위한 명분으로 파견절대금지업종인 제조업 분야에 대한 파견을 확대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제 파견법이라는 존재가 노동자를 거래하고 착취하는 전형적인 사회악임을 인지하고, 직접고용원칙을 뒤흔들어 간접고용을 더욱 확대하려는 정부의 일자리정책에 대해 명확한 반대와 직접고용에 대한 정치적 요구를 조직해내고 사회적으로 확산시켜야 할 중요한 시기가 아닐 수 없다.
▲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제조업 노동자들은 하반기 불법파견 문제를 화두로 싸울 것을 계획하고 있다 |
원청의 사용자 책임, 원청에 대한 직접교섭투쟁을 확대해나가자
이번 대법원 판결은 단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에 대한 직접고용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대한 직접고용의 원칙과 도급 및 파견의 금지원칙을 밝힌 대법원 판결을 통해 노동자의 삶을 파괴하는 파견법의 허위성을 재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하며, 직접고용의 요구는 단지 원청의 시혜적인 선택이 아니라 바로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권리라는 점, 이러한 노동자의 권리는 노동3권을 통해 스스로 쟁취해야 할 과제라는 점 역시 재확인시켜주었다.
따라서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의 간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노동조합 활동을 더욱 활성화하고 원청 사용자에 대한 직접적인 교섭을 요구함으로써 노동자 스스로 원청 사용자 책임을 확고히 해나가는 투쟁이 구축되고 확산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