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전 신라 말 자신을 사생아로 내다버린 신분 차별에 고려 건국으로 차별사회를 응징한 도선국사가 있다. 전설에는 처녀가 아이를 배어 태어난 도선국사는 아비도 모른 채 내다 버려도 죽지 않자 월출산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져 자란다. 철저한 계급사회인 신라에서 살지 못하고 백제 땅에서 사생아로 자라나 비주류로 살아가야 하는 도선이 왕건을 통해 새 세상을 열려고 했다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2010년 현대자동차에도 정몽구 회장님을 회장님이라 부르지 못하는 사생아들이 있다. 같은 자동차공장에서 컨베어를 타며 똑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신분 차별 때문에 임금은 절반만 받아야 하는 피를 토하고 죽고 싶을 만큼 억울한 노동자들이다. 분명하게 현대자동차에 출근하여 현대자동차를 생산하는 노동자들인데도 정몽구 회장은 그들에게 회장이라 부르지 못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내세워 사장이라고 부르라 시키며 아는 척도 하지 못하게 한다.
만나자고 해도 만나주지 않고,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합법적으로 교섭을 요구해도 ‘현대자동차와는 고용관계가 없다’며 나타나지도 않았다. 억울한 김에 불법파견이기에 직접고용을 해달라며 노동부에 고소도 해보고, 법원에 고소를 해도 ‘무혐의’ 판정으로 책임 회피는 계속되었다. 하지만 지난 7월22일 대법원에서는 불법파견임을 확정하고 입사 2년이 지나면 당연히 직고용으로 간주하여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제서야 회장님을 회장님이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이번 판결이야말로 사생아 취급을 받아오던 비정규직노동자들에게 현대자동차 정규직이라는 친자확인소송에서 승소한 판결에 진배없다.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은 태생부터 잘못되었다. 파견법에는 ‘직접 생산공정’에는 파견근로를 하지 못하게 나와 있다. 그럼에도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사장에게 도급 형식을 빌려 인력을 공급하는 파견근로를 시켰기에 당연히 불법파견으로 시정되어야 했다. 2005년 노동부는 울산, 전주, 아산의 직접생산공정에서 혼재되어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렸지만 현대자동차는 시정하지 않았다. 2006년 울산지검에 고소를 하자 현장조사도 나오지 않고 ‘무혐의’ 판정을 내려 노동부와 상이한 판단을 했다. 그로부터 무려 4년이 지나서 대법원에서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판정과 직고용 정규직화 판시를 한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이번 기회에 불법으로 운영하던 비정규직 착취체제를 끝내야 한다. 동일한 일을 시키며 부당하게 임금 차별을 하여 절반만 주며 언제까지 이윤 추구의 도구로 삼을 수 없다.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부모가 있고 일가친척이 있다. 아내와 애인, 그리고 자식을 낳아 키우고 있다. 현대자동차 내부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 전국민이 관심을 갖고 바라보고 있다. 세계 5위의 자동차 선진기업답게 비정규직 제도를 악용하여 이윤 추구를 한다는 비판은 면해야 한다. 2005년 불법파견 판정 당시 1만여명을 정규직화시켜도 연간 1천500억원 정도의 추가비용이 드는 걸로 계산이 되었다. 한 해 4~5조원의 순이익을 거두는 현대자동차로서 비정규직을 정규직화시키면 경쟁력이 저하된다는 부끄러운 변명은 통하지 않는다. 회사는 어떤 형태이든 책임을 회피하려는 다른 생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불법 경영을 중단하고 이제까지 잘못된 비정규직 운영을 바로잡는 순간 국민들에게 박수를 받을 것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도 당부 드린다. 비정규직은 정규직을 대신하여 해고 당하는 고용안정의 방패막이가 아니다. 이제 현대자동차의 컨베어라인 비정규직은 불법파견이라는 판결이 나온 이상 비정규직이라는 신분차별제도는 노동자들 스스로 없애야 한다는 생각의 변화가 필요하다.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그동안 잘못된 것을 미안해 하고, 이번 판결을 축하해주며 따뜻하게 연대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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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노동뉴스>에 게시된 칼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