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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등급 재심사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기고] 복지부는 장애인에 대한 학살을 멈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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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설에서 수십 년 살아왔던 뇌성마비 중증장애인이 큰맘 먹고 시설에서 탈출하려 한다. 무기력하게 시간을 보내야했던 시설이 아니라, 험난할지 모르겠지만 자신의 선택과 결정이 자유로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부푼 희망을 안고 탈출을 꿈꾸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중증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인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신청하려니 복지부에서 장애등급을 재심사 받아야 한다고 한다. 걱정이 돼서 미리 아는 의사를 통해 장애등급을 매기는 기준에 대해 물어보았더니,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한다. 장애등급이 1급에서 2급으로 떨어지는 순간 그는 활동보조인서비스를 신청조차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면 혼자서 살아가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리고 시설에서 인정되는 기초생활수급권도 시설 밖으로 나오면 계속 유지될지 알 수 없다. 가족관계를 다시 파악하게 되어 있어, 있으나마나한 가족의 부양의무 때문에 수급권이 보장되지 못할 수 있다고 한다. 지금까지 시설에 살았기 때문에 그나마 보장되었던 신변처리에 대한 지원과 한 달에 한 번 지급되는-‘황제의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쥐꼬리만 한 소득인 기초생활수급비마저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순간 통째로 날아갈 수 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꿈을 포기하고 다시 시설에 주저앉아야 하는가.

지금 복지부는 장애인들이 시설이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있다고 떠들어댄다. 하지만 현실에선 시설에서 지역사회로 나오려는 중증장애인들의 꿈이 무참히 짓밟히고 있다. 복지부는 ‘장애등급 재심사’라는 칼을 들고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시체가 썩어가는 ‘회칠한 무덤’과 같은 정책으로 장애인을 학살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2007년부터 2010년 3월까지 9만2817명에 대하여 장애등급 재심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장애등급이 올라간 사람은 0.4%인 352명에 불과하고, 내려간 사람은 36.7%인 3만4064명에 달했다. 확인불가, 결정보류를 포함하면 등급이 하향된 장애인은 3만6778명으로 39.6%나 된다. 그 중 1급에서 2급으로 하향된 경우는 25.6%에 달한다. 복지부가 말하는 ‘가짜장애인’에 해당하는 ‘등급 외’(확인불가, 결정보류 포함) 장애인은 5%이다.

복지부는 지금까지 장애등급 재심사를 통해 39.6%의 장애인이 등급이 하향되었다며 장애등급 재심사의 필요성을 강변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들이 이야기하는 가짜장애인(5%)을 골라내면서 3만6778명(39.6%)의 장애인에게서 활동보조서비스와 장애인연금을 박탈하고 있는 것이다. 1급에서 2급, 3급으로 하향 조정된 장애인들은 생존권을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학살인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 이야기가 있다. 지나가는 행인을 붙잡아 침대 위에 눕혀서 만일 침대 보다 작으면 몸을 잡아 늘여 죽이고, 반대로 침대보다 키가 크면 머리와 다리를 잘라서 죽였다는 이야기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를 장애등급 재심사에 빗대 보자면, 침대 크기는 예산의 범위이다.

복지부에게 예산 때문에 장애등급 재심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을 하니, 예산 때문이 아니라 공정성과 국민적 신뢰 회복 때문이라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정성에는 장애인에 대한 사회환경적 요소는 철저히 배제되고, 의료적 기준만 있다. 의료적 기준도 장애 영역 간에 형평성이 있거나, 객관적이지 않다. 엉터리 같은 의료적 기준의 칼을 가지고 예산의 범위라는 ‘프로쿠르스테스의 침대’에 장애인을 눕혀서 침대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면 팔다리와 목을 자르고 있는 것이 지금 복지부의 행위인 것이다. 그 침대 위에 올라가서 칼날을 기다리는 중증장애인의 공포는 날이 갈수록 더해 가고 있다.

당장 복지부는 장애인에 대한 학살을 멈추어야 한다. 그러나 복지부는 2011년부터 1급에서 6급 장애인 모두에게 장애등급 재심사를 전면적으로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드는 예산을 지금의 2배인 153억원으로 잡고 있다. 오는 2014년까지는 총 2194억원의 예산을 편성하겠다 한다. 그 돈은 활동보조인서비스 1년 예산보다 많다. 복지부는 장애인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는 것이다.

시설에서 나오려는 장애인들, 이제 골방에서 나와서 사회활동을 시작하려는 장애인들의 삶을 박탈하는 장애인등급제와 장애등급 재심사를 멈추고 활동보조와 소득이 필요한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만큼의 보편적 권리를 보장하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장애인을 고깃덩어리처럼 치수 재고, 생존권을 박탈하고, 낙인화 시키는 장애인등급제를 폐지해야 한다. (비마이너)
덧붙이는 말

이 기고문은 <비마이너>에 실린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