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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 교수 문제는 당사자들의 주체 역량으로

[칼럼] ‘대학시간강사 정책 단일한 마련 워크샵’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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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국정원에서 국가전복세력의 1순위로 거론했다는 루머가 있었다. 최근에 와서 누구나 그들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모두가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학연, 지연, 엘리트주의, 기회주의, 위계질서, 학벌, 고학력 등 한국 사회의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잉여인간으로 칭하기도 한다. 숫자는 5-6만 명에 육박하지만 구성원과 이해관계의 다양성으로 인하여 응집력은 매우 취약하고 그로 인해 조직적인 집단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통해 자신들의 열악한 환경을 세상에 고발한다. 바로 비정규 교수들이다.

저임금 불안정 노동에 시달리는 비정규 교수들의 환경이 근본적으로 나아질 수 있을까? 지난 5월 25일 조선대 고 서정민 비정규 교수의 자살로 인해 결성된 <시간강사 제도 철폐 및 비정규 교수의 법적 지위 회복과 대학 비리 척결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 준비회의>가 7월 16일 ‘시간강사 대책 관련 교수진영 단일안 마련을 위한 워크샵’을 개최하였다. 본 글은 그날 필자가 학단협을 대표하여 워크샵에 참여하면서 느낀 소회에 불과하다는 것을 미리 밝히는 바이다.

  지난 7월 16일 전교조 회의실에서 시간강사 관련 교수진영 단일안 마련을 위한 워크샵이 개최되었다.

198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대학이 파행적으로 팽창하다가 이제야 뒤늦게 축소되는 과정에서 대학의 구조적 문제가 그대로 드러나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논리가 대학을 지배하는 무한경쟁의 구조 속에서 비정규 교수들 가운데 정규직 대학교수가 되는 극소수의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대다수는 비정규 교수로 남거나 대학을 떠나 다른 일을 할 수밖에 없는 열악한 상황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대학의 비정규 교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간당 강의료 인상, 정규직 대학교수와의 비교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요구, 4대 보험의 적용, 교원에 관한 제반 교육법 및 고등교육법 개정, 비정규직 교수 문제에 대한 특별법 제정, 정규직 대학교수 충원률 확대 등 다양한 대안적 모색들이 ‘한국 비정규직 대학교수 노동조합’(이하 한교조)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날 워크샵에서도 이러한 대안들이 반복적으로 논의 되었지만 그 결말은 허무하고 쓸쓸했다. 그것은 본질적인 문제해결과 현실적인 문제 해결 어느 것도 해결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현실가능한 대안을 마련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원론적인 수준에서 실천적인 대안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한다.

첫째, 무엇보다 당사자들의 주체의식 함양과 노동조합 확대가 선행되어야 한다. 오늘날 그 지위에 관한 법규정조차 마련되어 있지 않은 비정규 교수들은 학교당국과 고용계약이 아닌 위촉의 형태로 임용되어 교권도 없이 강단에 서고 있다. 대학교육의 절반이상을 담당하는 강사들을 신분 불안에 떨게 하고 시간급 처우로 고통에 빠뜨리는 대학사회의 모순은 이들을 생존의 벼랑으로 몰고 있다. 이렇게 비정규 교수들이 그 교육활동 가치가 저평가되어 기본적인 생계수단의 확보를 위해 학문 외적인 일(소위 아르바이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은 교육의 부실화와 질 저하를 초래할 위험을 안고 있고 또 그로 인한 피해가 학생들에게 전가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러한 여건 속에서 비정규 교수들이 자기 정체성을 갖기란 매우 어려우며 게다가 각 대학에 뿔뿔이 흩어져 있기 때문에 그들이 처해있는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항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우리나라 대학행정의 주요 골격이 교과부의 지도와 통제에 의해 전국적으로 획일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립대학들이 강의료 책정 등 세부적인 문제를 대부분 담합하고 있는 실정에서 강사제도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고립 분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매우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비정규교수들이 처한 열악한 환경을 타개하려면 오로지 노동자로서 자주적으로 단결하는 길밖에 없다. 교육민주화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독자적으로 혹은 연대함으로써 대학사회의 구조적인 모순, 더 나아가서는 우리 사회의 모순을 해결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필여ㅛ하면 정규직 교수들, 학생들, 대학원생 그리고 대학내의 다양한 구성원들인 대학노조, 여성노조 등과 함께 연대를 모색해야 한다.

그리고 비정규교수노조는 비정규 교수 및 노조가 노동자 권리를 찾으며 경제적․사회적 지위를 누리고 각종 복지혜택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노력하는 단체가 되어야 한다. 교원지위확보, 차별철폐, 권익보호 등의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논리적 당위성을 넘어서 정치적 역량이 절실히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9개 대학(경북대, 고려대, 대구대, 부산대, 성공회대, 성균관대, 영남대, 전남대, 조선대)에 분회를 둔 비정규 교수노조는 조직 확대 사업에 중점을 두어야 한다.

둘째,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원칙 적용 및 이행이 우선되어야 한다. 비정규교수의 임금은 정규직의 그것에 비해 1/10 수준에 불과하다. 다른 사업장과는 달리 대학의 본령인 교육과 연구의 관점에서 비정규교수의 활동은 결코 정규직 교수의 그것에 비해 못하거나 부족하지 않은, 최소한 동일하고 동질의 노동을 요구하며 실제로 그 요구를 대부분 충족하고 있다. 특히 그들의 열악한 환경을 감안하면 그것은 놀라운 일이다. 이러한 재원들이 헌법의 기본 정신에 일치하지 않는 그릇된 관행에 의해 언제까지고 최악의 환경 속에 묶이어 불리한 대우를 강요받는 것은 우리 사회의 불행이다.

그러므로 현재 일방의 절대적 불이익을 강제하는 급여의 차이를 없애고 강사료를 현실화해야 한다. 동시에 현재의 관행에 의해 6개월 계약 동안 방학 2개월의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모순을 극복하여 비정규직 교수도 방학 동안 휴식과 안정을 취하면서 연구와 교육을 준비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정규직 교수들에게만 지급하는 연구비를 비정규교수들에게도 지급하여 연구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

이와 함께 최소 1년 단위의 새로운 계약제와, 결정적 사유가 없는 한 계약 기간의 연장에 의한 연임을 통해 비정규직도 국민연금, 직장의보 및 퇴직금을 보장하여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판을 마련하도록 법률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셋째, 비정규교수들을 대학교육의 주체로 세워야 한다. 각 학과나 전공에서 교육과정을 설계하고 계획할 때 비정규교수 대표자를 참석케 해야 한다. 그동안 비정규교수들은 수동적으로 교육활동에 참여해 왔다. 그러나 현재 그들 중 상당수가 박사학위를 갖고 있고 충분히 자신의 연구역량에 따라 참여할 능력이 있다. 그들이 대학사회 내에서 계속 주변으로 도는 것은 우리 대학교육을 위해서도, 연구에 기초해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것이 대학교육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도, 심지어 대학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넷째, 비정규직교수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법적으로 교원지위가 확보되어야 한다. 2009년 기준 학생 20명 당 전임교수 1명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면 상당수 비정규교수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이다. 이와 함께 비정규교수를 배제하고 있는 여러 교육관련법의 개정 내지 “대학강사 지위에 관한 특별법”을 제정하여 비정규교수들을 법적인 ‘교원근로자’로서 명문화해야 한다. 그리고 그에 걸맞은 대우가 필요하다.

다섯째, 한교조에서 주장하고 있는 새로운 교수임용제도 도입과 전담기구를 운영하는 방안이다. 비정규교수제도를 철폐하고 연구교수에게 교원법적지위를 보장하며 연구교수를 임용하고 관리할 전담기구를 설치한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새로운 교수임용제도의 구체적인 운영방안 마련이다. 기초 학문 보호와 다양한 신규학문의 활발한 교류를 위해서 현재의 비탄력적 교수임용제도를 보완할 새로운 방식으로 연구교수 제도를 고려해 볼만 하다.

5-6만여 명에 이르는 비정규교수들의 노동을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착취하고 대기업 노동자는 커녕 일반 노동자의 수준, 일용직 잡급 수준으로 전락시키는 이러한 사태는 사회적 총 자본의 관점에서 재고해야 할 중대한 문제다. 4대 보험 인정, 방학 중 임금 지급, 교육과정 참여, 연구비 지급, 연봉을 고려한 강의료 인상, 연구실 획기적 개선 등만이 비정규교수들의 교원지위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다. 헐값에 노동하고 학생들을 상품으로 배출하여 자본의 이익에 기여하게 만드는 노동 과정 전체를 고려해 비정규교수들의 임금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강사료를 1000원 더 주느니 마느니 하는 비열하고도 처참한 한국 대학 구조에서 뜬금없이 '노동과정', '사회적 총 자본' 운운하냐고 물어볼지 모르겠지만, 비정규교수 문제는 시혜 차원에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정당한 노동에 정당한 임금 구조가 정착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대중들의 비정규 교수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