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 도착해서 보니 많은 사람들이 와 있다. 참여연대, 학생들, 용산 당원들, 그리고 기자까지 10여 명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우선 간단한 수칙을 듣고 두 끼니의 식대 4200원을 받았다. 이곳 동자동에 1000명 정도의 쪽방 사람들이 산다고 하는데 미리 섭외된 두 분 정도를 방문하기로 했다.
60이 넘으신, 대전 출신의 몸이 불편한 남성 한 분을 만났다. 집 앞에서 만났는데 서울역 친구들(노숙자)이 찾아와서 소주 한 잔 하시고 오는 길이라고 하신다. 20여 분 대화중에서 "힘들어"라는 말을 10번 정도 하셨다. 기초생활수급자이면서 1종 의료보호대상자이지만 아픈 몸에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하는 것이 가장 힘들다고 하신다. 그리고 20만원의 집세만 부담을 덜어도 정말 좋겠다고 하신다. 이렇게 살다가 더 아프지 말고 잠자다 죽을 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라는 그 분의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방문을 나서는데 20대 후반 정도의 여성이 말을 걸어온다. 약간의 발달장애를 가지고 계신 듯하지만 자신은 동거를 하고 있고, 전철역에서 약간의 벌이수단을 갖고 있지만 집세 내기가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을 하신다. 기초생활수급자이지만 전철역에서 돈벌이를 하고 있다는 걸 동사무소에서 알면 수급자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비밀'을 지켜달라고 두 번, 세 번 당부를 하신다. 또 한 분을 만나기 위해 다른 쪽방을 찾았지만 방에 아무도 없다.
동자동 사람들의 등불 같은 존재인 '동자동 사랑방'을 찾았다. 안내 팸플릿에 '도심 속의 외딴섬, 동자동. 그 섬에 사랑의 다리를 연결해 주세요'라고 적혀 있다. 서울역과 건너편의 높은 빌딩들, 바로 그 건너편에 있는 동자동. 동자동은 섬이 맞는 것 같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에는 밤섬만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6시가 넘어 식사 준비를 위해 인근 시장에 갔다. 쉽지 않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4200원으로 두 끼를 해결하는 데는 많은 포기와 결단이 필요했다. 몇 번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한 끝에 쌀 800원어치, 라면 1개, 볶음김치(포장), 어묵, 그리고 200원짜리 계란 하나 사고 나니 100원이 남는다. 내일 아침까지 모두 밥을 하고 한 공기 밥과 찌개를 남겨두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나른하다. 옆 방 복도에서 다투는 소리도 들린다.
7시30분경에 별도로 우리가 섭외한 홈리스 행동의 이동현 집행위원장과 같이 오신 신용불량자를 위한 단체 해오름 관계자와 함께 노숙자들의 건강 실태와 대책, 그리고 노숙자이면서 신용불량자인 사람들에 대한 대책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후 의원실과 긴밀하게 협의하면서 제도적 대안을 함께 만들어 가기로 했다. 9시에는 용산 당원들 모임에 잠시 들렀다. 신입당원 두, 세 분과 인사를 나누고 맥주 한잔 먹고 나서 곧바로 쪽방으로 복귀했다.
누워서 잠을 청했지만 복도의 발자국소리, 옆 건물에서 간간히 다투는 소리, 선풍기 소리에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그러다 잠이 들고 몇 번을 깨고 나서 새벽에 깊은 잠에 빠졌나 보다. 7시에 일어나서 간단히 씻고 어제 남은 밥 한공기와 끓여 두었던 숭늉으로 아침을 먹었다. 그리고 체험후기를 적고 있다.
세계 10위권의 대한민국이지만 사회양극화로 보통의 시민들도 주거, 의료, 교육, 일자리, 노후에 이르기까지 안전하지 못하다. 아차하면 이곳 쪽방 사람들이 그렇듯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곳에서 만난 분들 모두가 그랬듯이 최저생계비의 현실화가 가장 급선무인 것 같다. 도시가계 평균소득의 34%인 현재의 최저생계비는 계속 비율이 낮아지고 있다. 심의, 결정도 3년에 한 번 이루어지는 것도 제도적 보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의료대책이 시급한 부분이다. 많은 노숙인, 쪽방 사람들이 만성 질환과 많은 부상을 입고 있어 현재의 의료보호제도를 넘어선 특별한 대책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자동 사랑방과 같은 기관이 좀 더 확대되고 재정적인 뒷받침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취약한 기초생활수급자제도와 같은 정부의 지원체계에서조차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보장되지 못하는 현실에서 다양한 사회서비스 기관들이 이를 채워야 할 것 같다. 대한민국은 할 일이 많은 나라다. 오늘 동자동 쪽방에서 새로운 숙제를 하나 가지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