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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하나로’는 기적을 이룰 수 없다

[기고] 병원자본 통제없이 돈 더 내도 보장성 강화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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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보험 하나로 시민회의(이하 시민회의)’가 7월 17일 출범을 앞두고 언론의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1만1천원의 기적’이라며, 건강보험료 1만 1천원을 더 내서 ‘건강보험 하나로’ 마음 놓고 병원을 이용하자는 얘기다. 즉 보험료를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인상해서 이를 통해 국가지원과 사용자부담도 ‘자동적으로’ 같이 올리고, 공적재원을 대폭 확대해서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시민회의의 전략은 공공재정을 확보하는 방법과 공공재정을 사용하는 방법 모두에 문제를 가지고 있다. 먼저, 보험료를 선제적으로 인상하는 것은 맞지 않다. 공적재원을 확대해서 건강보험 보장성을 강화하려면 현재의 민간중심적인 병원운영체계의 공공적 변화가 필수다. 당연히 의료민영화 저지가 함께 가야한다. 우리나라는 의료공급기관의 소유구조가 민간중심인데다 그런 병원들을 통제할 시스템조차 미흡하다. 이런 구조 하에서는 공공재정을 확충하더라도 보장성을 제대로 강화할 수 없다.

선제적 보험료 인상이 답인가

선제적 보험료 인상은 합당하지 않다. 월 1인 당 보험료는 2004년 3만 3천 원에서 2008년 5만 원으로 늘었다. 이 기간 동안 총 보험료는 15.6조 원에서 25.0조 원으로, 60% 증가했다. 반면 국고지원은 3.5조에서 4.0조로, 단지 16% 증가했을 뿐이다. 전체 건강보험료 수입에서 국고지원이 차지하는 비율은 2004년 18%에서 2008년 14%로 감소했다. 지난 7년 동안 정부는 법률로 규정된 국고지원금을 과소지원했고 그 누적액이 3조 6900억 원에 이른다.

법대로라면 그동안 보험료가 인상된 비율만큼 국고지원도 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건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은 국민들이 마땅히 요구할 수 있는 데도, 현재는 국민들이 먼저 양보한다고 정부와 자본에게 요구하기가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제까지 정부와 자본은 보건의료체계를 이윤창출의 영역으로 구축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이를 위한 의료민영화가 강력하게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공적재원 확충이 국민들의 부담을 덜 수 있는 구조인가

시민회의는 전체의료비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데 반해 공공의료비는 그 증가율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 차액인 사적 부담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공공의료비를 획기적으로 늘려서 그 격차를 줄이자고 제안한다. 무엇보다 공공의료비 비율이 증가하면 국민의료비 증가추세를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를 들면서 공공의료비를 대폭 확충함으로써 전체의료비와 공공의료비 간의 격차 확대를 줄일 수 있다고 본다.

공공의료비 비율이 증가하면 전체의료비 증가율을 제어하는 효과가 있다는 근거로 시민회의는 OECD 국가들을 분석한 자료를 든다. 그러나 이런 효과가 있다고 알려진 국가들은 GDP 상위의 영미, 서유럽 국가들로 우리나라는 해당되지 않는다. 또 비교대상인 OECD 국가들의 평균 공공병상 비율은 73%이지만 우리나라는 10%밖에 되지 않는다. GDP 상위의 OECD 국가들 중 공공병상수가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들도 있지만(벨기에, 독일, 일본, 네덜란드) 이들 국가들 중 병원 신설, 병상 감축/추가 규제가 지역 또는 중앙정부 차원에서 되지 않고 있는 국가는 단 하나도 없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런 규제조차 하지 않고 있다. 병원 소유구조가 대부분 민간중심인데다, 병원 운영에 대한 규제도 없다는 얘기다. 이런 공급체계 상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채 공적재원 확충으로 전체의료비 통제가 가능하다고 주장해선 곤란하다.

우리나라 공공의료비 비중은 OECD 국가에 대비해 확실히 낮다. 하지만 공공의료비 증가만으로 보장성 확대와 사적의료비 부담 경감이라는 목적을 달성하기는 어렵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공적재정이 병원의 이윤추구 행위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장성을 어떻게 강화할 것인가

시민회의는 기존의 비급여 항목을 급여항목으로 전환해서 보장성을 늘리고 이에 추가로 “연간 본인부담금 총액이 100만 원을 넘으면 이를 초과하는 비용에 대해서 건강보험이 전액 부담”하는 의료보험상한제를 실시하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이를 위한 시민회의의 구체적 안을 보면 비급여의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를 급여로 전환하는 등의급여 대상 항목의 열거만 있지, 민간중심의 병원을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먼저,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는 그동안 규제가 지속적으로 완화되면서 ‘부당하게’ 늘어왔던 비용이다. 환자의 진료와 관련이 없고, 병원의 수입을 위해 부당하게 환자들에게 부담을 지웠던 것이므로 규제를 강화해 그 비용을 줄여야지, ‘부당한 수익’을 건강보험재정으로 충당해 주는 것은 맞지 않다. 선택진료비를 급여화 해주고 추후에 병원이 수입원으로 또 다른 ‘부당한’ 비급여를 만들어내면 그것 또한 급여화해 줄 것인가.

이런 통제로 인해 병원 운영에 재정적 어려움이 생긴다면 그것은 정부보조금으로 해결해야 한다. 비급여 서비스를 급여화 하는 것과 정부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같은 비용이 들더라도 공급기관의 통제에 있어서는 다른 의미를 가진다. 비급여의 급여화는 개별적 의료행위에 대한 재정적 규제를 높이는 것이지만, 공공적 의료서비스 전반에 대한 정부지원은 병원의 공공적 서비스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더 포괄적인 규제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선택진료비는 폐지되거나 최소한 규제가 강화되어야 하고 상급병실료는 신설, 증축하는 병원에 70% 이상을 다인실 병상으로 하는 것을 시작으로 규제가 더 강화되어야 한다. 이는 단순히 선택진료비와 상급병실료의 문제가 아니라 앞으로 새롭게 창출되는 부적절한 비급여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의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다. 비급여가 확산되는 한 실질적인 100만원 상한제는 불가능한 것이다.

건강보험부담은 2004년에서 2007년까지 49% 증가했지만(주로 보험료 인상을 통해) 그에 비해 보장성은 61.3%에서 64.6%로 3.3% 증가했을 뿐이다. 이는 건강보험부담이 증가하는 동시에 법정본인부담과 비급여본인부담도 늘어났기 때문이다. 보장성=(건강보험부담)/(법정본인부담+비급여본인부담+건강보험부담)이기 때문에 건강보험부담이 늘더라도 본인부담(법정+비급여)이 함께 증가한다면 보장성 확대효과는 제한적이다.

본인부담이 느는 것은 개별의료행위 당 수가를 지불하는 행위별수가제 때문이기도 하지만 본인부담의 증가의 문제가 수가체계의 문제로 수렴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미국은 포괄수가제를 시행하고 있지만 이는 오히려 보험자본이 이윤을 최대화하기 위해 의료인의 행위를 감시, 통제하는 기전으로 활용된다. 총 의료자본의 증대, 개별 의료자본의 거대화 경향을 제어하지 못한다면 수가지불체계 개혁의 효과는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총 의료자본의 증가를 추동하는 대형의료자본의 행위를 규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병원 신설, 증축, 병상 수 증가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 개별 의료자본의 증식이 가능하게 하는 각종 의료민영화 정책은 보장성을 강화하는 데 치명적이다.

한편 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으로 몰리는 이유는 이들 병원의 치료성적이 좋고 그런 서비스를 받고 싶은 욕구가 있기 때문이다. 의료 서비스 수준의 지역적 격차를 줄여가야 하는데, 기존의 수도권 대형병원들에 대한 규제와 함께 지방 국립대를 포함한 공공병원을 육성하는 안이 나와야 한다. 기존의 재정지원은 양적으로도 턱없이 부족하지만 공공병원들의 재정독립성을 요구하면서 공공의료서비스는 파편적으로 상대화시키고 나머지 부분에서는 ‘이윤 획득’을 통해 효율성을 추구할 것을 전제로 재정지원을 하고 있다. 공공병원이 제대로 공공의료를 제공할 수 있는 재정지원이 필요하며 경영난에 있는 중소병원에 대한 지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공적재원이 병원의 이윤추구에 활용되고 있는 현재 구조에서 공적재원 확충을 통해 전체 의료비를 어떻게 통제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시민회의는 병원자본과의 적대관계를 덮어두고 병원 통제 방안을 회피하고 있다. 이는 단지 ‘통제 방안을 명시하지 않은’ 문제가 아니라 현 보건의료문제의 핵심적 원인을 보지 않는 문제이다.

병원의 이윤 추구 행위를 통제하지 못하면 보장성을 강화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과 보장성 강화 투쟁은 별도의 다른 투쟁이 아니다. 지금으로서는 보장성 확대를 위한 공급기관 통제를 보장성확대 운동과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연결시킬 수 있는 유효한 요구안으로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