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일본 참의원 정원 242석의 절반인 121석(지역구 73석, 비례대표 48석)을 바꾸는 선거 개표 결과, 민주당 44석, 자민당 51석, 모두의 당 10석, 공명당 9석, 공산당 3석, 사민당 2석, 신당개혁과 일어나라일본 각각 1석을 얻어 집권여당인 민주당이 참패했다.
민주당은 참의원 의석이 선거전 116석에서 106석으로 10석이나 줄었고, 연립정당인 국민신당은 6석에서 3석으로 의석이 줄면서 총 109석으로 과반(121석)획득에 실패하게 되었다.
상원에 해당하는 참의원에서 과반 획득에 실패하면서 민주당은 국정운영에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입법과정에서 하원격인 중의원에서 통과된 법안은 '형식상' 참의원의 의결을 받아야 한다. 참의원 의결을 못 받으면 다시 중의원에서 재의결하게 되지만, 올리는 법안마다 참의원에서 통과되지 못한다면 그만큼 시간이 걸린다. 민주당은 중의원 480석 중 307석으로 과반이 훨씬 넘는다.
소비세 인상론의 등장 배경
일본의 공공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80%로 주요국 중에서는 최악이다. 일본 재무성에 의하면 국채, 차입금, 정부 단기증권을 합한 국가채무는 2010년 3월말에 사상 최대의 882조 9235억엔(약 1경원)에 이르렀다. 일본은행의 통계에 따르면, 공공부채의 국내 소화 여력의 기준이 되는 가계의 순금융자산은 1079조 2631억엔(약 1400조원)이었다.
일본 정부의 자료에 따르면, 2020년까지 명목 GDP 성장률을 매년 1%대 중반으로 하는 “신중 시나리오”에서는 국가와 지방의 기초재정수지의 GDP대비 적자폭은 2010년 6.4%에서 15년에는 4.2%, 20년에 3.8%까지 개선되는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간 총리는 재정 건전화를 위해 세출 삭감이나 증세가 필요하다고 역설해 왔다.
애당초 참의원 선거의 주요 쟁점은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이 물러난 이유가 되기도 한, 후텐마 비행장 이전 문제와 정치자금 문제가 중점적으로 거론될 전망이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문제는 민주당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문제여서 민주당은 참의원 선거 주요 쟁점을 소비세 인상 문제로 바꾸어 놓았다.
애초에 소비세(부가가치세) 10% 인상은 자민당의 주요 공약이었다. 민주당 하토야마 정권은 4년내에 소비세 인상 문제는 논의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바 있고, 불과 6개월 전인 재정장관 때에도 “물구나무를 서도 코피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쓸데없는 낭비를 없애고 나서 (세금인상) 논의한다”는 것이 당시 간 총리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총리가 되기 2개월 전인 지난 4월부터 “증세를 해도 사용법을 바르게 하면 경기가 좋아진다”는 것으로 태도를 변화화시켜 왔다.
6월 8일에 취임한 간 나오토 총리는 소비세 인상의 불을 지피기 위해 노력했다. 간 총리는 6월 22일, 부채비용 등을 제외한 세출의 큰 범위를 2011년부터 3년간 올해 수준인 연 71조엔 이하로 억제한다고 하는 “중기 재정 프레임”을 각의에서 결정했다. 또한, 기초재정수지의 GDP대비 적자폭을 늦어도 2015년까지 절반으로 줄이고, 2020년까지 흑자화 하는 목표도 내걸었다. 세입면에서는 개인소득세, 법인세, 소비세, 자산 과세 등 세제의 발본적인 개혁을 실시하겠다고 표명했다. 2011년의 신규 국채 발행액을 금년도의 약 44.3조엔 이하로 억제할 방침을 밝혔다.
‘제3의 길’과 좌충우돌 민주당
간 총리의 전략은 “강한 경제, 강한 재정, 강한 사회보장”이라는 “제3의 길”로 명명되었다.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자민당류의 공공사업에 의지한 정책으로도, 규제완화와 시장경쟁을 우선시한 정책으로도 경제개전을 실현시킬 수 없다는 간 총리 '최소불행사회'의 철학을 유지하라”고 하며, “사회보장을 축으로 정부의 역할을 중시하며, 의료나 구호, 환경 에너지 등의 산업을 육성해 고용을 늘린다는 제3의 길” 시작하라며 역성을 들었다.
그러나 긴축재정을 하면서 성장을 하겠다는 '제3의 길' 전략은 애매모호함과 좌충우돌로 좋지 않은 평가를 받아 왔다. 심지어 소비세 인상을 통해 마련한 재원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도 분명하지 않았다.
[요미우리] 신문은 선거 전날 사설에서 "총리는 소비세 10% 근거나 용도에 대한 명확한 설명을 피했다. 민주당은 일찍이 세율 3% 연금목적 소비세 창설을 주장한 바도 있다“며 ”총리의 소비세 상세 내용에 대한 심화부족은 부정할 수 없다“고 평했다. 한마디로 소비세를 늘려서 이를 이를 어떻게 쓰겠다는 정확한 구상이나 설명없이 추상적인 설명으로 일관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시장주의자들의 평가는 더 냉혹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크레디 스위스 증권의 시라카와 히로시도 수석 이코노미스트의 선거평가를 전했다. 그는 “세수를 간호사업 등에 중점적으로 투입해, 고용 창출로 디플레이션을 탈피한다는 제3의 길에 대한 국민의 반응이 좋지 않았다”며 이번 선거에서 민주당의 패배는 “제3의 길”을 의식해 증세의 용도를 너무 펼쳐서 버렸던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또 BNP 파리바 증권의 관계자는 “경제성장의 원천은 사람들의 창의력이며, 정부에 의한 자원배분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며, “증세로 경제를 성장시킨다”라는 생각은 “주술(voodoo economics)이라는 비방을 면할 수 없다”고 혹평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시장주의자들의 평가와 달리, 자민당은 참의원선거에서 “소비세를 10%로 올려 전액을 사회 보장비에 충당한다”라고 공약했다. 소비세 10% 인상의 원조인 자민당은 이 구호로 이번에 의석을 38석에서 51석으로 늘렸다.
또한 ‘모두의 당’은 공무원 제도 개혁 등 세출 삭감을 중시하여 세출개혁이라는 구호로 선거 전 1석에서 11석으로 무려 10석을 늘렸다.
특히 와타나베 당대표는 선거연설에서 “무작정 지금 돈이 없으니까 증세하자는 건 말이 안된다. 증세 이전에 할 일이 있다. 정부부처부터 구조조정해서 작은 정부를 만들어야 한다. 민간과 지방이 주역으로 등장하는 성장국가를 만드는 게 급선무다”고 주장해 강력한 세출조정, 공무원조직개혁 및 작은 정부론으로 인기몰이를 했다.
하지만 일본공산당의 평가는 이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일본 공산당은 “간 총리는 사회 보장과 재정재건을 위해서 소비세 증세를 한다고 말하지만, 이것이야말로 최대의 속임수”라고 혹평했다.
일본 공산당에 따르면, 민주당은 재계의 요구에 따라 소비세 증세와 함께 법인세율 인하를 내걸고 있다. 그 동안 일본 제계는 지방세를 포함한 법인세율을 15%인하하라고 요구해 왔다. 간 나오토 정권의 “새로운 길 전략”도 같은 정도의 세율 인하를 목표로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민주와 자민, 공명당, 모두의 당도 “법인세는 너무 비싸다”라고 입을 모아 대폭적인 법인세율 인하를 내걸고 있다며, 지금까지가 지나친 감세와 우대 세제로, 소니나 파나소닉 등의 기업의 실질적인 법인세 부담율은 불과 10%대로 낮았다고 강조했다.
일본 공산당은 “경기악화 전의 세수입으로 계산하면 9조엔 규모의 감세”라며 “간 수상이 표명한 “소비세율 10%”로 5% 증세했다고 해도 4%분은 대기업 감세에 소비되어 재정재건에도, 사회 보장에도 거의 효과가 돌아오지 않게 된다“고 평가했다.
제3의 길 ; 하시모토 아니면 카메론
간 나오토 일본총리는 참의원 선거결과 발표 직후, 사임하지 않고 계속 일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일본 총리는 중의원에서 선출하기 때문에 참의원 선거 결과로 자진사퇴하지 않는 한 총리직은 계속 수행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시장주의자들의 우려와 같이 이번 선거결과로 인해 소비세 인상을 통한 재정건전화 계획은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또한, 긴축과 성장이라는 불가능한 목표를 설정한 G20 선언과 같이 간 나오토 일본총리의 제3의 길도 실행 가능할 것인지, 이번 선거 결과로 일본 유권자들은 일단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결국 공공투자와 사회적 투자로 성장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제3의길’은 소비세 인상이 어려워지면서 연료를 갖지 못한 형국이 되어 버렸다.(이 같은 전략은 국내에서도 노무현 정부 당시 ‘사회투자국가론’으로 논쟁된 바 있다)
더군다나 민주당 내부에서 하토야마 전총리 등은 소비세 인상에 대해 강력히 반대하는 입장으로 알려져 당내부 논란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유일하게 소비세 인상을 주장하는 자민련과는 공조가 쉽지 않아 보이며, 모두의 당도 소비세 인상보다는 세출개혁에 더 집중하고 있다. 공산당과 사민당은 소비세 인상 자체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따라서 국정운영을 위한 연립정권 수립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간 나오토 정권이 출범하자 10여년전 하시모토 정권과 자주 비교되곤 한다. 하시모토 이래로 재무상을 거쳐 일본 총리가 된 것은 간 나오토 총리뿐이다. 또한, 하시모토 정권은 지난 21년간의 소비세 역사에서 유일하게 세금 인상을 실시했다. 이번에 실패한 간 총리 역시 과감하게 소비세 인상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유사성을 꼽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경제위기 하에서 당시의 일본과 지금의 상황이 유사하며, 국가정책의 방향이 매우 중요한 때에 총리를 역임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시모토 총리가 1996년 일본 총리가 된 이후 [위키 백과사전]은 하시모토 총리를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경제상황에 대한 판단착오, 소비세 인상에 따른 경기후퇴의 심각화, 항구적인 감세에 관한 과세 최저화의 발언이 국민의 불신을 초래하여 1998년 7월의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함으로써 총리직을 사직하였다.”
자본주의 경제위기 하에서 쓸 수 있는 정책이 그리 많지 않다.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는 방책 역시 마땅치 않다. 그렇다고 카메론 영국 총리가 단행한 것처럼 11%나 되는 국가 재정을 삭감하는 초 긴축정책을 쓸 것인지... 그렇게 되면 제3의 길은 사라지고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