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메! 장독이 깨져부렀시야?”
마침 쪽박이는 장독대 옆 측간에서 낑낑거리며 똥을 누고 있었고, 쪽박이 아빠는 축사 안으로 도망 나온 송아지를 몰아넣고 있었다.
“이 일을 어쩐댜? 장독 뱃떼기가 아주 두동강이 났네.”
“뭔 일이여? 그게 참말이여?”
“엊저녁에 쪽박이가 동네 애들하고 전쟁놀이한다고 늦게까장 놀드만 이것들이.....”
쪽박이는 찔끔, 싸던 똥을 멈추고 얼른 바지춤을 올렸다. 자칫 잘못하다간 엄마에게 간장사발로 머리통을 된통 얻어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애, 쪽박아! 너 일루 와봐.”
측간에서 나오는 쪽박이를 본 엄마는 이미 얼굴이 험상궂게 변해 있었다. 다짜고짜 깨진 장독 쪼가리를 들이밀고 쪽박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거 어쩔겨? 일년 묵을 장을 다 쏟아놓고 시방 그 똥구멍으로 똥이 퍼질러 나와?”
“내가...... 안 그랬는디?”
“안 그러긴? 엊저녁에 돌맹이 쏴던지고 놀때부터 알아봤드라니.”
“진짜로 난 몰러.”
“그럼 누가 그래?”
“돌맹이는 웃집에 똘망이가 막 던졌는디.....”
“뭐시여? 똘망이 요 쌍놈의 새끼!”
쪽박이 엄마는 씩씩거리며 한걸음에 똘망이네 집으로 쫒아갔다. 위아래 이웃으로 붙어살면서 서로 의좋게 지내면 좋으련만, 두 집은 원수도 그런 원수가 따로 없을 정도로 사이가 안 좋았다. 더구나 똘망이네가 워낙 똥구멍이 찢어지게 가난하다 보니 동네에서 무슨 일만 생기면 무조건 똘망이네 짓으로 몰아붙이기 일쑤였다. 그럴 때마다 물불 안 가리고 항상 앞장서서 설치는 건 쪽박이 엄마였다.
“똘망이 에미 있소? 당장 나 좀 봅시다!”
“식전 아침부터 또 웬일이래요?”
똘망이 엄마는 무슨 영문인가 싶어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았다.
“똘망이가 우리집 장독을 박살을 냈는데, 이걸 어쩔 것이여?”
“똘망이가요?”
“그려. 이 돌맹이로다!”
어느새 쪽박이 엄마의 손에는 주먹만한 돌맹이가 한 개 쥐어져 있었다.
“쪽박이가 봤디야. 똘망이가 이 돌맹이를 우리집 장독대에 던지고 도망가는 것을!”
“그기 참말이여?”
똘망이 엄마가 쪽박이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쪽박이 엄마는 쪽박이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움찔, 놀란 쪽박이는 그저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쪽박이가 그짓말 하는 거 봤어?”
그때, 안방에서 똘망이가 잠이 덜깬 눈빛으로 부스스 기어 나왔다.
“똘망아! 니가 아랫집 쪽박이네 장독 깨뜨렸냐?”
“......아녀요.”
똘망이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니긴 뭐가 아녀? 여기 증거가 있는데!”
쪽박이 엄마는 돌맹이를 마루장에 탁 내려놓았다.
“이거, 니가 던진 것 맞지?”
“......아녀요.”
“저 울타리 뒤에 숨어서 던졌잖어?”
똘망이의 얼굴이 거의 울상으로 변하자 똘망이 엄마가 나섰다.
“아니, 천지로다 흔하게 널린 게 돌맹인디..... 이게 똘망이가 던진 거라고 으뜨게 그리 장담을 허신다요?”
“여그집 거니깐 그렇지.”
“하이고! 돌맹이에 무신 놈의 이름 박아 놨디야?”
똘망이 엄마도 더 이상 지지 않고 대꾸를 했다.
“자, 보드라고. 우리집 장독대에는 하얗고 반질반질한 갱돌이 전부여. 그란디, 이건 모가 나고 흙이 묻어 이리 시커멓잖어. 음...... 그렇지! 쩌그, 저 울타리 밑에 있는 돌맹이하고 똑같다 이말이여!”
쪽박이 엄마는 울타리 밑으로 달려가 모양새가 비슷한 또 하나의 돌맹이를 주워왔다.
“눈 빼기 내기를 해도 두 개가 다 똑같지야?”
“똑같긴 뭐가 똑같어요?”
“똑같잖어!”
“눈구멍이 뒤통수로 돌아가서 박혔나?”
“눈구멍이 뒤통수로 돌아간 건 똘망 에미지. 보고두 몰라? 이런 썅......”
년! 하면서, 걸핏하면 염치불문하고 머릿채를 휘어잡고 나뒹굴던 습관대로 점점 두 사람의 눈구멍이 뒤통수로 돌아가고 있었다.
“깨진 도가지하고 장값하고 전부 변상해. 안 그러면 국물도 없을 줄 알어!”
쪽박이 엄마가 뱃짱 좋게 큰소리를 치는 건 똘망이네가 그동안 쪽박이네서 이일저일 신세를 자못 지고 있었고 이것저것 얻어다 먹은 게 많은 탓이었다. 올 봄에도 트렉터를 세 번이나 빌려 썼고 씨감자와 묵은지, 된장 한됫박을 얻어 갔다.
“저 번 장날에 빌려간 돈 오만 원이나 내놔!”
쪽박이 엄마의 엄포에 똘망이 엄마는 예전 같으면 기세가 한풀 꺾였을 만도 한데, 예상외로 이번만큼은 아니었다.
“그래, 그까짓 돈 더러워서 논이라도 팔아서 해주꾸마.”
“팔아댈 논되지기라도 있고?”
“논을 팔든 씹을 팔든 네 년이 뭔 상관이야? 정이 없으면 금강산이라두 팔아서 준다.”
똘망 엄마는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면서 볼멘소리로 쏘아부쳤다.
“어디서 웬 돌맹이를 주어다 갖다 붙이고 뗑깡이야, 뗑깡이!”
분기탱천한 쪽박이 엄마는 갖은 욕을 퍼붓고 날뛰었지만 똘망 엄마는 그러거나 말거나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사람이 미쳐도 곱게 미쳐야 되는 거여. 왜, 우리집에서 벼락을 쏘았다고 하지 그랴?”
똘망 엄마는 방안에서 그렇게 한마디씩 염장을 질러댔다. 똘망 엄마가 딱히 상대를 해주지 않자 쪽박이 엄마도 별 뾰쪽한 수가 없었다.
“마을 회관으로 가자!”
쪽박 엄마는 쪽박이를 이끌고 동회 쪽 큰길로 내려왔다. 엄마 뒤를 따라가면서 쪽박이는 엄마에게 몇 번이고 다짐을 강요받았다.
“이 돌맹이를 똘망이가 수류탄이라고 던진 게 확실하지야?”
“수류탄? 언제?”
“야가 참 말귀를 못알아 듣네! 엊저녁에 똘망이하고 전쟁놀이 했담서?”
“예.......”
“고때, 똘망이가 장독대로 돌맹이 던진 거잖어?”
“뒷등 대밭에서 던졌는데......”
“그러니깐, 거기서 장독대로 날라온 거지. 안 그래?”
“......그랬나?”
쪽박이는 적잖이 갈등이 생겼다. 뒷등에서 장독대까지는 상당히 먼 거리이고 설령 돌맹이가 날아왔다고 해도 하고 많은 애들 중에 꼭 똘망이가 장독을 깨뜨렸다고 하는 건 아무래도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장독 깨지는 소리도 듣지를 못했다.
회관 입구에서, 동네 이장을 만났다. 이장을 보자 쪽박이 엄마는 반색을 하며 반가와 했다.
“이장님! 그렇잖아도 이장님 만나러 가는 중인데 잘 만났구만요.”
“무슨 일로요? 나 지금 바쁜디.....”
“아무리 바빠도 내 원정 좀 들어주소. 우리집 장독을 말이요. 엊저녁에 똘망이가 깨버렸는데..... 여기 이렇게 증거가 분명히 있는데도 똘망 에미가 딱 잡어 떼지 뭐요!”
그러면서 쪽박이 엄마는 똘망이네에 가지고 갔던 돌맹이를 이장에게 내밀었다.
“이걸 똘망이가 던진 것을 쪽박이가 봤대요. 쪽박이 아빠도 보구선 바로 똘망이를 잡으러 뒷등 대밭까장 쫒아갔다 왔대요. 그래서 내가 아침에 밥상도 못차리고 좋은 말로 따지러 갔더니, 거 무식한 똘망 에미가 나한테 씹을 팔아 죽을 년, 벼락 맞어 죽을 년! 입에 담도 못할 온갖 악담을 꾸정물로 쏟아붓고...... 세상에나 이장님, 내가 원통하고 절통하고 도무지 분해서 못살겄소. 으흐흑!”
쪽박이 엄마는 버짐처럼 번지는 눈물을 억지로 훔쳐냈다.
“해코지도 유분수지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도 아니고, 요번에는 아주 뿌리를 단단히 뽑아야겠소. 그러니 이장님이 명철하게 판관을 좀 해주시오.”
이장은 마지못해 돌맹이를 살펴보는 척 했다. 얼핏 손으로 만져보고 술독이 절은 코를 벌름거리며 냄새도 맡아보았다.
“쪽박이가 봤단 말이지?”
이장이 쪽박이를 쳐다보았다. 쪽박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발등만 내려다보았다.
“아, 그럼요. 아다시피 똘망이 고놈이 원체 재앙 궂은 짓만 골라서 허잖어요.”
쪽박이 엄마가 나서서 얼른 말을 받았다.
“그란디..... 이 돌맹이로다 장독을 깼다면 필시 장냄새가 나야할텐디..... 어째 짠내는 고사하고 군둥내도 안 나는데요?”
이장이 다시 코를 벌름거리며 돌맹이의 냄새를 맡았다.
“예?”
쪽박이 엄마는 이장의 돌연한 행동에 잠시 머뭇거렸다. 이장은 갑자기 불그죽죽한 혀를 쑥 내밀어 돌맹이를 낼름 핥았다.
“에이! 짠맛도 없구만요!”
이장이 쪽박이 엄마에게 돌맹이를 건네주고 되물었다.
“한번 맡아봐요. 썩은 소똥 냄새가 나는구만요.”
“그럴 리가 있남요......”
쪽박이 엄마는 적이 당황스러운 듯한 눈치가 역력했다.
“이장님이 약주를 많이 드셔서 냄새를 못 맡는 게지요.”
“설마, 똥냄새도 구분 못할까? 나두 소를 이십 년이나 키우는데..... 이건 소똥 냄새가 분명하구만. 똘망이네는 소가 없잖소?”
“없지요......”
“그럼, 그 웃돔에 소 키우는 집은 쪽박이네 뿐이잖어?”
이장의 반박에 쪽박이 엄마는 말문이 막혔다.
“여기, 요 모서리에 묻은 거..... 이거, 소똥 아녀?”
가만 보니, 돌맹이 모서리에 거무튀튀 하게 똥찌꺼기 같은 게 달라붙어 있었다.
“괜히 생사람 잡았다간 쪽박 차는 세상이여! 만일에 똘망이가 한 짓이 아니라면 쪽박이 엄마는 되려 손해배상을 해야 될 것인디 그땐 어쩔 것이요?”
“아니, 똘망이 말고 누가 했단 말이요?”
“내 말은..... 엉뚱하게 똥냄새 나는 돌맹이 하나 갖고선 범인을 단정하면 안 된다는 거지. 막말로 살인이 나도 증거를 찾기 전에 무리하게 범인을 몰았다가 진짜 범인이 나타나면 꼼짝없이 손해배상 해줘야하잖어? 내가 봤을 적에는 똘망이 엄마가 시방 쪽박이네에 손해배상 청구서를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구만.”
혹 떼러 왔다 혹 붙힌 꼴이 되어버린 쪽박이 엄마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발끈했다.
“이장님은 뭣땜시 똘망이네 편을 든대요?”
“편을 들다뇨? 실제로 똘망이가 장독을 깼다면 응당히 변상을 하고 사과를 해야 도리겠지만, 똘망이가 저지른 일이 아니라면 쪽박이네서 반대로 사과를 해야 옳지 않겠소? 그 책임을 질 자신이 있소? 똘망이에 대한 인권유린, 허위사실 유포, 증거물 조작..... 그리고 또, 그에 따른 사죄는 물론 정신적 물질적 손해배상까지!”
이장의 말은 마치 판관이 논고를 제시하듯 사리가 명확했고 조목조목 거침이 없었다. 졸지에 책임성을 추궁 당한 꼴이 되어버린 쪽박이 엄마는 마땅히 변명할 댓거리를 찾지 못하고 돌아서야만 했다.
“가자, 쪽박아! 쪽박을 차든 뒤웅박을 차든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똘망이네 장독이나 전부 박살내버리고 오자!”
쪽박이는 엄마의 기세등등한 손길에 질질질질, 발버둥을 치며 끌려갔다. 쪽박이네 대문 앞에 다다랐을 때, 쪽박이 아빠가 길다란 몽둥이를 들고 허둥지둥 뛰쳐나왔다.
“이런 쥐새끼 같은 놈, 어디 갔어?”
난데없는 쪽박이 아빠의 소동에 놀라 쪽박이 엄마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물었다.
“쥐새끼라뇨?”
“아! 쥐새끼 말고, 소새끼! 아침에 몰아넣은 송아지가 장독대를 죄다 깨뜨리고 금새 쥐새끼 같이 도망가 버렸네. 고저 남은 김장독까지 깡그리 엎어지고 난리인디 어디 갔다 오는 거여?”
쪽박이 아빠는 눈알이 톡 튀어나올 듯이 부라리고 대문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면서 이렇게 쌍소리를 내뱉는 것이었다.
“축사 걸고리가 빠져 설주 밑에 짱돌을 하나 박아두었는데 그걸 대체 언 놈이 빼냈을꼬! 이런 씨부랄!”
* 글 : 임성용
* 판화 이미지 : 강우근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