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답답하고 암담하다. 천안함 사건의 파장이 생각보다 크게 확대되고 오래 지속될 것 같다. 동북아뿐만 아니라 탈냉전기 국제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는 것이다. 그것은 남북관계를 20년 전의 신냉전시대로 되돌림으로써 새로운 구조위에서 남북한 행위자들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난 5월 20일의 민군합동조사단 발표는 중간발표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선택이 매우 중요하다.
천안함 사건은 총체적인 시각과 개별적인 사안으로 접근하되 양자를 결합하는 입체적인 분석을 냉철히 해야만 현명한 대처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총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보수진영은 전쟁불사를 외치면서 북한 규탄과 단호한 대처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고, 진보진영은 안보무능과 북풍정치를 경계하면서 대립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천안함 사건은 크게 네 가지 차원에서 분석해 볼 수 있다.
천안함 침몰원인에 대한 의혹 해소
첫째, 침몰원인에 대한 진실의 차원인데, 아직도 여러 의혹이 해소되지 않은 채 논쟁 중에 있다. 군 당국은 무책임하고 불성실한 초기대응으로 인해 신뢰를 상실했으며, 선체 인양과 조사과정에서도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행태를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속하게 국제적 공조를 통해 국제조사단을 꾸린 점은 실추된 정부의 신뢰를 만회하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번 조사결과에 대한 국민들의 믿음이 70%정도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이를 반증하고 있다. 물론 한미동맹의 가치를 바탕으로 국제 공조를 미국(영국, 호주, 캐나다 등) 중심으로 추진하다 보니 중국과의 정책적 협조를 이끌어내지 못한 점은 여전히 의혹의 대상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 정부의 신뢰 만회에 대한 거품은 차치하더라도 음모가 아니라면 모든 의혹이 해소되어야 한다. 사건 발생시각과 지점, 북한 잠수정의 침투경로, 천안함의 이동경로, 물기둥에 대한 설명, 초기 TOD 영상 존재여부, 가스터빈실 문제, 연어급 잠수정의 실체, ‘1번’ 한글 표기문제 등 제시된 증거보다 남는 의문점들이 원인규명의 본질에 해당되기 때문에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그 후에 정부를 믿으라고 호소하면 믿게 될 것이다.
천안함 사태이후 남북관계 재편의 향방
둘째, 남북관계 차원에서 천안함 사건의 후속조치와 관련해서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이다. 현재 이명박 정권의 대북제재 초강수에 대해서 북한은 남한과의 모든 관계를 단절하겠다는 강경하게 맞대응함으로써 벼랑 끝으로 치닫는 치킨게임을 연출하고 있다. 이번 이명박 정권의 대북조치는 대통령으로서의 의지와 인식위에 강경파 참모들의 입김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정권은 처음부터 북한을 의도적으로 무시했고 대화의 상대로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 대북조치가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강경파 참모들의 경우 봉쇄를 통한 북한의 붕괴가능성을 고려하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이 매우 적은 것이 현실이다. 최근 한국의 일부 네오콘들은 내용적으로 과거 천민보수를 그대로 답습하거나 혹은 단호함을 넘어서서 선제공격론의 광기어린 노선을 무책임하게 주장하기도 한다.
북한은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부터 경제협력 분야의 대남의존도가 낮아진 상태였기 때문에 대북 경제협력중단 조치가 큰 효과를 거둘 수 없으며, 오히려 중국에 대한 의존도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북의 입장에서도 어차피 당국 간 대화가 불가능해진 상황에서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혹시라도 어느 일방이 가장 최종적 대응 수단인 군사적 옵션을 선택한다면 모두 패배자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군사적 옵션의 선택은 배제되어야 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질서의 변화
셋째, 국제정치적 차원으로 천안함 침몰사건에 대한 주변국가의 인식과 대한반도 전략을 고려할 때 이명박 정권의 외교 전략은 어떠해야 하는가이다. 천안함 사건 이후 동북아시아에서 미국의 군사적 비중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천안함을 계기로 미국은 하토야마 정부를 굴복시켰고, 중국에 대해서도 압력수단이 하나 더 생겼다. 천안함에 대한 책임과 부담은 한국이 지되, 미국은 몇 가지 이득을 취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미동맹이 강화되고 대규모의 군사기동훈련이 서해에서 실시되면 한국의 MD 참여 등이 가시화될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도 일정하게 동북아에서의 세력균형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어 북중 동맹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북한의 대응여부에 따라서 상황전개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즉 북한이 연루설을 인정하느냐의 여부인데, 북한이 연루설을 부정하고 한미조작설을 주장하게 되면, 남한은 미국과 유엔을 통한 대북제재를 동시적 또는 순차적으로 실시할 것이다. 다만 여기서 이명박 정권이 고려해야할 것은 어떠한 옵션을 선택하느냐의 문제와 한반도의 추가 긴장 조성에 대한 대응 방안, 안보태세 확립 그리고 사회적 불안 해소 방안 등이 될 것이다.
또한 6자회담을 천안함에 대한 처리와 연계시킬 것인지 분리시킬 것인지의 문제도 손익계산서를 잘 따져 보아야 할 것이다. 만약 미국이 북한과의 대화를 통해 천안함 사건을 부분적으로 정리하고 6자회담에 올인하게 되면 이명박 정권의 입지는 매우 어려워지게 된다. 중국 또한 대북제재에 대한 신중론을 내세웠고 천안함 사건과 6자회담을 분리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한국의 선택은 협소해 지는 것이다.
국내 정치지형의 변화
넷째, 국내정치적 차원에서 6.2지방선거도 한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세력의 결집과 반MB 전선에 대한 파열 등 정치적 효과에 대한 고려가 작용하면서 강경파의 입김이 크게 작용한 것 같다. 하지만 중간에서 멈춰서야 했다. 아무리 선거에 이기고 싶은 탐욕을 주체할 수 없어도 마지노선을 넘지 말아야 했다. 그것은 북을 봉쇄하려다 스스로 퇴로를 봉쇄한 꼴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매우 위험한 장면이 연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번 사건을 통해서 이명박 정권은 국민들에게 사과도 책임자 처벌도 하지 않았다. 국제질서가 매우 빠르게 변화되어도 국가안보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 없다. 하지만 국가안보 못지않게 인간안보도 매우 중요하다. 이명박 정권은 하늘이 내린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내린 것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존중함이 묻어나는 현명한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그것이 한반도 평화의 첩경이라는 것을 유념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