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몇 년 사이에 다문화란 말이 넘쳐나고 있어. 텔레비전, 신문뿐 아니라 대기업 광고에서도 다문화가 등장해. 심지어 학교에 다문화 담당 선생님이 있을 정도야.
그래서 그런지 어린이 책에도 다문화 동화책이란 게 등장했어. 책들도 참 다양해. 먼저, 가장 많은 부류가 『지붕위의 꾸마라 아저씨』(문공사, 2004), 『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창비, 2004), 『우리 엄마는 여자 블랑카』(중앙출판사, 2005), 『까만 달걀』(샘터사, 2006),『까매서 안 더워?』(파란자전거, 2007) 같은 책들처럼 이주노동자 가정,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생활 속에서 받는 차별에 문제를 다루고 있는 작품이야.
두 번째 부류는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 왔다』(길벗스쿨, 2008)같이 직접적인 차별문제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상징적인 소재를 이용해 다문화 문제를 말한 동화책들이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신 짜오 태권팥쥐와 베트콩쥐』(한솔수북, 2009)처럼 한 권 한권 각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 책들도 있어.
그런데 이런 책들을 읽어 보면 모두가 살짝 살짝 불편한 감이 있어. 뭔가 개운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거지. 그래서 이번에 공룡트림에서 속 시원하게 다문화 동화를 살펴보려고 해. 어때 속 시원한 공룡트림을 할 준비가 됐니?
차별만 있고 삶이 보이지 않는 아이들
차별은 사람들의 수많은 다른 점 중에서 한 가지 차이를 마치 그 사람의 전부인양 구분 짓기를 할 때 시작돼. 피부색, 종교, 성별, 성적 취향, 국적 이 모든 것이 다 그렇지. 그래서 다문화 대부분의 동화들도 이주노동자 가정이나 다문화 가정의 아이들이 겪는 차별문제를 그리고 있어.
급식시간에 고기 먹기를 강요당하는 무슬림 아이(블루시아의 가위바위보), 피부색이나 생김새 때문에 놀림을 당하는 아이(까만 달걀)가 그려지지. 그런데 이런 동화들을 읽으면서 계속 불편한 점이 있어. 그게 뭔지 알아?
대부분의 다문화 동화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모두 고통스럽고 힘들기만 해. 물론 아이들이 편견과 차별 때문에 힘든 건 사실이지만, 그것만이 아이들 삶의 전부는 아니잖아? 아이들은 공부 걱정도 하고 친구들끼리 다투기도 하고, 부모님과 갈등을 겪기도 해. 그 모든 것들이 다 문화적 차이나 국적의 차이 때문에 나타나는 건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다문화 동화책에서는 아이들이 차별 때문에 고통 받은 것 말고는 다양한 고민들, 다양한 삶의 모습들은 보이지 않아.
물론 다문화 동화책이란 의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처받고 차별받는 것에 대해서 좀 더 자세히 다룰 순 있어. 하지만 이렇게 다른 아이들과의 차이점만을 강조하고 그것 때문에 고통 받는 존재로 그려지는 것만으로 정말 차별에 대한 생각들이 줄어들 수 있을까?
오히려 “그들은 나와 달라, 불쌍하고 도와야만 하는 존재야.”라고 생각되지 않을까? 책 속의 아이들이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다양한 고민과 슬픔, 다양한 즐거움과 기쁨을 느끼는 살아있는 아이로는 느끼지 못하지 않을까?
아이들은 이 책들을 보고 무얼 생각할까?
최근에 이주노동자 분들이 양로원등을 찾아다니며 봉사활동을 자주 한다고 해. 왠지 알아? 이주노동자는 불쌍하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생각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 많기 때문이래. 그래서 자신들도 한국에서 다른 사람을 서로 도와주며 살아가는 똑같은 사람들임을 보여주고 싶은 거야.
이주노동자분들은 우리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사람으로 존중받고 싶지, 불쌍하고 도와주어야 하는 사람들로 여겨지고 싶지 않데. 이주노동자분들의 인권이 보장되어야 하는 것은 그분들이 불쌍하거나, 가난해서 도움을 받는 게 아니라, 누구나 사회의 일원으로서 보장받아야 할 권리들을 누리기 위해서야. 그러니 이주노동자분들에게 동정의 시선은 참기 힘들겠지?
그렇다면 이주가정이나 다문화 가정 아이들은 어떨까? 친구들은 다문화 동화를 읽으면 어떨까? 기분이 좋을까? 나 같으면 그런 동화는 일부러라도 안 읽을 것 같아.
생각해봐, 1년에도 수 백 권씩 나오는 대부분의 동화책에는 철수, 민희, 동욱이 등 모두 부모님도 모두 한국인인 아이들만 주인공이 돼. 세티, 샬라, 미누 들은 주인공이 될 수 없어. 그 아이들은 오직 다문화 동화라고 불리는 동화책에서만 주인공이 돼지. 그리고 그 속에서도 고통 받고 힘들어하고 그래서 도와주어야 할 대상으로만 그려져. 아이들이 동화책 속에서 그려지는 순간부터 이렇게 구분된다는 건 차별이 아닐까?
다문화 동화들은 “우리는 서로 다르지 않는 인간이야, 차별하면 안 돼” 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 책들은 이미 책을 읽는 독자들을 딱 정해 놓고 있는 거야. 이주민이나 다문화가정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이 바로 그 독자들이지. 그런데 그 아이들은 이 책을 가지고 정말 자기 친구 미누의 삶을 정말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또 미누는 이 책들을 다른 친구들과 행복하게 읽을 수 있을까?
다문화 동화인데 다문화란 뭐지?
그런데, 다문화 동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지는 동화들 중에 많은 수가 차별문제를 이야기 할 뿐 문화의 다양성을 깊게 다루고 있진 않은 것 같아. 다른 나라의 문화를 소개하는 형식의 동화책들도 마찬가지야. 베트남, 몽골, 버마의 문화를 설명해줄 뿐인 경우가 많아.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기 위해 그 문화를 이해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거야.
문화는 왜 서로 비슷하면서 다르지? 그리고 왜 문화는 다양한 것이 모두 똑같은 것보다 더 좋은 거지? 서로 다른 문화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선 뭘 해야 하지? 이런 질문들이 이야기 되지 않는다면 다문화란 그냥 나와 다른 문화를 알아보는 것에만 그치지 않을까?
실제로 한국에 사는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살고 있어. 부모님 모두 한국인이지만 외국에서 생활하는 아이도 있고 부모님이 외국인이지만 한국에서 태어난 친구도 있어. 그리고 어떤 아이들은 부모님 중에 한 분이 외국인이어서 한국문화와 다른 나라 문화를 함께 경험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지. 게다가 한국의 문화도 단지 한국 고유의 문화로만 존재 하는 게 아니야. 다양한 나라의 문화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 만들어진 문화지. 이런 환경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접하는 아이들이 읽는 다문화 동화가 너무 단순하게 다문화를 이야기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어린이 책에서 진짜 아이들을 보고 싶어!
다문화 동화가 아이들에게 자신이 몰랐던 차별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좋은 점도 있어. 하지만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을 차별과 편견으로 고통 받는 대상으로만 그려지게 한다는 점도 생각해 보아야 해. 사실 다문화 동화라는 구분 자체가 일종의 차별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굳이 “다문화 동화”, “더불어 함께 살아가는 아이들을 위한 동화”라는 제목으로 다문화 동화를 만들기보다 모든 동화에서 다양한 국적과 피부색, 문화를 가진 아이들이 나오면 되지 않을까? 그럼 모든 아이들이 그냥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래서 난 한국에 많은 동화 작가 분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싶어. 일부러 다문화 동화를 쓰는 것 보다, 그냥 한국의 살고 있는 모든 어린이들의 삶을 담은 동화를 써달라고 말이야. 그리고 그 속에서 문화가 왜 다양하고, 다양한 게 왜 획일적인 것보다 좋은 것인지,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들을 자연스럽게 이야기 해주는 동화를 써 주었으면 좋겠어.
그런 동화책에서 아이들은 어느 나라 국적이냐, 피부색이 어떠냐, 가난하냐 부자냐, 같은 것 때문에 힘들기도 하지만, 친구를 사귀고, 공부 걱정도 하고, 부모님께 혼이 나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을 놀려먹기도 하고, 친구와 신나게 놀기도 할 거야. 그런 책을 읽어 보면 진짜 아이들의 삶이 살아 숨 쉴 것 같지 않아?
굳이 의도하지 않아도 세티도 미누도 샬리도 모든 동화책에 주인공이 될 수 있으면 어떨까? 그리고 그 속에서 그려지는 아이들이 때론 깔깔대고, 때론 슬퍼하고, 또 때론 감동 받으며 서로 다르면서 또 서로 같은 점도 많은 친구들로 진정 서로를 이해해가는 모습이 그려지면 어떨까? 그런 내용이 담긴 동화책을 모든 어린이들이 행복하게 읽을 수 있다면 정말 멋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