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합리한 인력 구조조정과 위기에 빠진 지하철 안전
2007년 서울도시철도공사는 서울시가 서울시산하 공기업에 인력의 10%를 감축하라는 권고를 하면서 본격적인 인력 감축이 시도되었다. 그러나 서울도시철도공사의 구조조정은 합리성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왜냐하면 불과 2년 전 외부전문기관의 50여명의 전문가들이 ‘적정 근무형태와 소요인력’을 산정해서 노사합의를 통해 정원을 늘렸었기 때문이다. 불과 2년 만에 10% 인력 감축이 필요하다는 사장 주장이 설득력을 가질 리 없었다. 더구나 공사 측 인력감축 주장의 근거는 오직 사장의 직관이었다.
경영자의 직관에 의존한 무리한 구조조정은 ‘노동자의 정신건강의 심대한 침해’와 ‘시민안전의 위협’이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낳고 있다. 즉 역사 야간 근무인원이 1명으로 줄어들었고, 각종 시설물의 예방점검 업무가 폐지되고, 매일 점검해야 하는 열차도 드문드문 점검하고 서비스를 강화한다고 시작한 수동운전 강요는 관련 전문가들의 시정권고를 받는 등 도시철도는 ‘총체적 안전위협의 시기’에 접어들게 된 것이다. 이것은 결국 지하철 안전에 치명적인 결과를 낳게 할 수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구조조정 대상 노동자들의 정신적 충격과 고통이었다.
해고를 목적으로 하는 부서의 탄생?
‘지하철 안전 위협’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은 시작되었다. 그러나 공사의 구조조정 계획이 통해 시도한 것은 편법을 동원해서 근로기준법을 무력화하는 것이었다. 즉, 근로기준법에서 노동자가 개인적 잘못이 없는 한 해고 할 수 없고 인력 구조조정은 노동자 개인이 자발적으로 퇴직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 그러나 과연 어느 노동자가 나가란다고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둘까?
결국 사용자는 ‘사표를 내지 않고는 못 버티게 만드는 악랄한 방식’을 쓰는 데 그것이 바로 ‘퇴출 프로그램’이다. 물론 퇴출 프로그램은 불법이다. 하지만, 법을 피해가는 수많은 방법들을 그들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다. 서울도시철도 공사는 퇴출프로그램에서 근로자에게 스트레스와 수치심을 유발시켜 자발적 퇴직을 강제하는 “퇴출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다. 담당부서까지 만들어 몹쓸 짓거리를 본격화한다.
도시철도공사의 ‘5678서비스단’을 통한 몹쓸 짓
2008년 4월14일 공사는 퇴출조직인 ‘서비스지원단’ ‘창의지원센타’를 신설하고 이곳에 1954년생 이상의 노동자, 입사 1~2년 차의 신규입사자 등을 강제 배치했다. 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유선 연락하여 “빨리 명예퇴직해라.”라고 압박하고 버티면 “직무재교육을 통해 퇴출시키겠다.”고 협박했다. 20년간 해온 본연의 업무와는 전혀 동떨어진 단순 업무를 주는 등 수치심을 유발하게 하는 등 당사자들은 막대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2008년 12월부터 2009년 1월 사이에 전체 ‘5678서비스단’ 중 50%가 압박에 못 이겨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현재 ‘5678서비스단’에는 56, 57, 58세의 고령자들과 노동조합활동가들 그리고 징계자 등이 소속되어 있다. 징계자나 노조 간부가 반드시 ‘5678서비스단’으로 배치되는 것은 아니며, 대상자의 선정은 일정한 기준 없이 자의적 판단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다. 10년 이상 수행한 본인의 업무와 상관없는 포스터 붙이는 등 단순 작업을 해왔으며, 교육을 통한 퇴출프로그램인 직무재교육 등 공사의 구조조정 계획이 나올 때마다 1차 희생자가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도 가족들에게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하고 있다. 자존감의 손상은 물론 일상적인 무기력을 호소, 심지어는 자살 충동 등을 호소할 정도로 심각한 정신적 후유증을 겪고 있다.
공사의 몹쓸 짓은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노동조합은 ‘5678서비스단’이 단순히 업무상 스트레스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한국의 기형적 구조조정 이라고 판단했다. 서비스를 가장한 노동자 죽이기라고 여긴 노동조합은 희생자들의 완쾌와 조속한 현장복귀는 물론이고, 공사의 구조조정에 맞서기 위해 우울증에 대한 연구조사를 실시했다. 연구조사의 결과를 통해 ‘5678서비스단’이라는 새로운 구조조정 공세에 희생당하고 고통을 겪는 노동자의 현실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다.
‘5678서비스단’ 경험을 한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2010년 초에 실시한 조사 결과 BDI(벡스 우울증 지수) 점수는 평균 17.34점(표준편차 10.86)로 조사되었다. 우울하지 않은 상태(0~9점)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10명(34.48%), 가벼운 우울 상태(10~15점)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3명(19.28%), 중간 우울상태(16~23점)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5명(17.24%), 심한 우울 상태(24점 이상)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11명(37.93%)이었다.
이러한 수준은 일반 인구 집단, 증권노동자, 호텔 및 오락시설 종사자 등에 비해서도 매우 높았다. 구체적인 수치는 아래 표와 같다.
더구나 2004년 도시철도 기관사 자살 사고를 계기로 수행된 도시철도 승무 노동자 정신건강 관련 연구결과에 비춰보더라도 상태가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예컨데, 2004년 당시 심할 우울상태에 해당하는 노동자가 3.74%였던 것에 반해, 2010년 초에 실시한 이번 연구결과에서는 37.97%였다. 2004년 당시 연구는 도시철도 승무 노동자 전체를 대상으로 한 것으로서 도시 철도 노동자들의 일반적인 상태를 반영한다고 했을 때, 최근 ‘5678서비스단’ 우울정도는 참혹할 지경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교대근무 등의 근무조건, 업무상 스트레스 등의 사회심리적 요인이 노동자들의 우울 증상과 연관이 있다는 것이 여러 연구결과에서 밝혀지고 있듯이, 도시철도 서비스단 노동자들의 우울 수준이 높은 원인 역시 근무조건 혹은 업무상의 스트레스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할 수 있다. ‘5678서비스단’이 그중에 가장 큰 원인으로 똬리를 틀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동자의 몸, 맘, 삶을 지키기 위한 정의로운 저항
스트레스와 수치심을 유발하여 자발적 퇴직을 유도하는 것은 명백한 근로기준법 위반이다. 하지만 실무 상담에서 이런 사례는 매우 흔히 접하게 된다. 즉, 휴가 사용 후 돌아왔더니 책상을 복도로 빼 놓거나, 출근해도 업무를 주지 않고 회식자리도 끼지 못하게 하거나, 고령의 근로자를 하급직원 밑으로 배치하여 수치심을 유발하는 것 등등.
소위 ‘수치심 유발’을 통한 자발적 퇴직 강요는 아예 ‘한국형 노무관리 필수 매뉴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경영효율화’의 논리를 앞세워 자행되는 탈법적이고 불법적 사례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아마 수없이 많은 노동자들이 이런 편법에 스트레스와 수치심으로 회사에 사표를 내야 했을 것이다.
문제는 비록 근로자가 해고에 이르지 않더라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린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자발적 퇴직 유도에 대한 스트레스 연구는 많지 않은 듯하다. 특히 이번 경우와 같이 ‘집단적 퇴출프로그램’을 운영했던 사례가 없던 만큼 지속적인 추적 조사가 필요할 것이다.
현재 서비스단 관련하여 소송을 제기하여 승소했던 근로자 10여명과 노동조합이 공사와 관리자를 상대로 ‘정신적 위자료 청구 및 손해배상’ 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에 연구를 통해 확보한 결과들은 이 소송에서 중요한 자료로 사용할 것이다. 또한 노조는 우울증으로 진단된 노동자들과 함께 산재인정 투쟁을 준비 중이며, 회사 측에게 ‘집중적 우울증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나아가 항소심에 있는 인사배치 무효소송을 통해 집단적 퇴출프로그램이 더 이상 한국형 구조조정 매뉴얼로 악용되는 것을 막는 다양한 실천을 전개해 나갈 것이다.
노조와 노동자들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서울도시철도공사는 4월에 ‘직무재교육’이라는 2차 퇴출프로그램을 가동한다고 밝히고 있다. 무리한 구조조정으로 지하철 안전에 치명적인 구멍이 뚫렸음에도 반성은커녕 2차 3차 구조조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모한 폭주를 막을 방법은 노동조합의 저항과 시민, 노동자들의 관심과 저항일 것이다. 4~5월로 예상되는 도시철도 노동조합의 ‘지하철 안전을 위한 임단투’는 과거의 임단투와는 목적과 양상에서 확연하게 다를 것이다. 많은 관심과 호응을 기대한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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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일터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