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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악노조법은 민주노조운동 무릎 꿇리는 것

[연속기고](1) 개악노조법에 맞서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해, 다시 20년 전처럼 투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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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최근 노조 전임 활동 문제와 관련해서 근로시간면제심의위가 가동되고 있다. 또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해서 사측과 정부는 교섭창구 단일화로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이 논의를 통해 노조전임자와 복수노조 관련한 노동조합법도 바뀔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비정규직 철폐 운동을 하고 있는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에서 두 개의 기고 글을 보내왔다. 다소 전문적이고 논쟁적인 글이다. 하지만 최근 상황과 관련해서 독자들과 고민을 나눌 수 있는 글이라 전문을 게재하기로 했다.


복수노조 허용, 자율교섭 쟁취는 왜 중요한 요구인가!

2010년 1월 1일 새벽, 개악된 노조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신년 인사였다. 1997년 노조법 개정에서 초기업 단위의 복수노조는 허용하되 사업장 단위에서는 5년간 유예하기로 한 후, 무려 13년 동안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 허용이 계속 연기되어 왔다. 그렇게 강산이 바뀌고도 남을 세월, 이번에야 말로 오랜 악법을 철폐하고 복수노조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노동자들의 바람에 정부는 초기업단위까지를 포함한 교섭창구단일화라는 법 개악으로 답했다.

그러나 이후 바로 총파업을 예고했던 민주노총은 4월 투쟁을 선포하며 투쟁의 흐름을 꺾었다. 그리고 최근 민주노총이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 참가를 결정하기까지 4월 투쟁에 대한 본격적인 조직은 진행되지 못했다. 그리고 현장에서는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와 노조전임자 급여지금 금지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와 대응 방안들이 진행되어 왔다. 주된 흐름은 교섭으로 돌파한다는 것. 그 내용은 당장 7월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에 대한 대응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복수노조 교섭창구단일화에 대하여는 노조법 재개정 투쟁이라는 제목 외에는 구체 대응이 제출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가운데 우려스런 소리도 들린다. 어차피 1년이 남았으니, 또 유예될지도 모른다는 것.

민주노총이 합법화되고 초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되면서 노조들은 차츰 복수노조의 필요성을 잊어왔다. 민주노조 건설의 열망은 그간 정부와의 교섭이 정점에 이를 때마다 전임자 임금 문제와 맞바꾸어 졌다. 전혀 다른 두 가지 문제인 노조전임자 임금 문제와 복수노조 허용이 쌍을 이루며, 마치 하나를 받으면 하나를 주어야 하는 것처럼 논의되었다. 그 흐름에 제대로 일침을 가하지 못하고 맞바꾸기로 일관해 온 결과, 노동악법 철폐의 구호는 존재했지만, 악법으로 인한 피해는 마치 사라진 듯이 보였다. 그리고 지금 교섭창구 단일화라는, 복수노조 허용이 아닌 오히려 역사를 뒤로 되돌려 기업단위 1교섭 시스템을 강제하는 악법이 만들어 진 상황에서도 이에 대한 투쟁이 제대로 기획되지는 못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복수노조 금지란, 노조를 정권과 자본의 통제 하에 두고 민주노조를 탄압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조금이라도 저항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때리고 가두고 죽였던 독재정권의 역사를 다시 기억해 보라. 그때 노조는 노동자들이 만든 것이 아니었다. 노조위원장이 조합원들이 아니라 사장님하고 짝짜꿍하던 말 그대로 어용노조 뿐이었고, 노동자들은 어용노조를 민주화하기 위해서 투쟁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사측은 뒷짐을 진 채 어용노조의 뒤를 밀었기에 겉으로는 노-노 싸움인 것처럼 드러났다. 그 과정에서 사측의 책임은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다. 또한 노동자들이 이것을 벗어나 독자적으로 민주적인 노조를 만들려는 시도도 봉쇄되었다. 즉 어용노조를 통해 노동자들의 노조 설립 시도를 봉쇄하고 효과적으로 노동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만든 법이 이른바 ‘복수노조 금지’였던 것이다. 또한 상급단체에서도 복수노조가 금지됨으로써 민주적인 노동조합의 자주적 결사체인 전노협과 민주노총이 불법으로 몰렸다. 하지만 노동자들은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자주적 결사체인 전노협과 민주노총을 지키기 위해서 투쟁해왔다. 그 결과로 비록 반쪽짜리였지만 초기업단위 노조의 복수노조 허용을 쟁취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오랜 기간 사업장 단위의 복수노조의 허용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이제는 그 조차 역행하려고 하고 있다. 전노협과 민주노총이 법적으로 인정받고, 사업장 안에서도 민주노조운동의 성과로 어느 정도 노동조합을 만들고 인정받아온 노동자들에게는 복수노조가 오히려 걱정일 수도 있다. 그리고 초기업단위 노조에 가입하는 방식으로 단위사업장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편법적으로 피해오기도 했기 때문에 복수노조 허용이 절실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초기업노조로 가입 하는 것과 복수노조 허용의 문제는 다른 문제다. 대체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지금도 복수노조 금지로 인해 권리를 침해당하는 노동자들이 엄연히 존재하고 있다. 정규직 노조에 가입을 요구했으나 가입을 거부당하고, 복수노조 금지 규정을 피하기 위해 조합원 대상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구할 수밖에 없었던 한국통신계약직노동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초기업단위 노조에 가입했음에도 사측이 복수노조를 핑계 대며 교섭을 거부했던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있다. 무엇보다도 유령 노조를 만들어 노동자의 단결권을 가로막고 있는 삼성 자본의 무노조 전략이 힘을 발휘하게 만들어온 것이 바로 복수노조 금지라는 악법이다.

그러니 생각해보자. 또 유예되기를 기대하는 것이 이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잔인한 것인지, 초기업단위 복수노조만 허용하는 상태로 그대로 두자는 것은 또 얼마나 많은 걸림돌을 못 본 척하겠다는 것이지를 말이다.

단지 어떤 노동자들이 복수노조 때문에 노조를 만들 자유를 제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민주노조운동은 현재 10%도 안 되는 조직률을 가지고 있다. 이후에 전면적인 조직화를 통해서 민주노조운동의 계급대표성을 가져야 하는데,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이거나 노조 설립을 극단적으로 방해받아온 재벌사 소속 노동자들이다. 이 노동자들을 전면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시도를 하기 시작한다면 복수노조라는 것이 심각하게 발목을 잡고 조직화를 방해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이 현재 조직된 노동자들 중심으로 안주하고 전면적 조직화를 하려고 하지 않는다면 복수노조 금지는 해당 몇몇 노동자들에게만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조운동이 전면적인 조직화를 자기 목적으로 한다면 복수노조 금지조항은 반드시 투쟁으로 분쇄해야 할 대상인 것이다.


개악 노조법의 민주노조운동 무력화 의도를 바로 보고 싸워야 한다

개악법은 다만 복수노조 허용이냐 금지냐, 전임자 임금을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수준을 넘어선다. 개악법의 의도는 민주노조 운동의 무력화와 길들이기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간 민주노조 운동의 원칙으로 자주성, 민주성, 연대 등을 이야기 해 왔다. 그리고 그 원칙을 운동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우리는 정규직-비정규직의 공동투쟁, 노동조합의 자주적 민주적 운영과 차별의 철폐, 끊임없는 조직화를 통한 권리의 확장, 전체 노동자의 권리 확장을 위한 정치 투쟁 등을 노동조합의 역할과 과제로 가져 왔다. 그러나 개악법은 이러한 민주노조 운동을 하나하나 깨뜨리고 관리 통제가 가능한 노조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첫째, 교섭창구 단일화로 인해 비정규 노조를 포함하여 소수노조는 사멸할 가능성이 높고 신규 조직화도 매우 어려워진다. 복수노조가 허용된다고 해서 비정규직 조직화가 활발해 지거나, 소수노조가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하지 못한다. 그러나 교섭창구 단일화는 그 가능성 자체를 거의 전면적으로 통제한다. 신규노조를 건설하면 당연하게 진행되었던 교섭과 단협 체결이 개악법 하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교섭창구단일화를 전제로 한 복수노조 허용은 오히려 자유로운 노조의 결성을 가로막는다.

둘째, 산별노조를 형해화하고 기업별 교섭을 고착시킨다. 창구단일화는 기업별 교섭을 전제로 하는 모델이다. 사업장에 산별노조나 지역노조 등 초기업단위 노조 조직이 존재하더라도 사업장(기업) 단위에서 교섭하기 위해서는 창구단일화를 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노조의 활동이 산별노조로 이루어지기보다는 사업장 단위에서 다수노조 지위를 차지하는 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또 산별노조의 조직이라 할지라도 사업장 단위에서 소수노조에 머무르면 유지되기가 힘들 것이다. 결국 노조 역량과 활동은 산별노조로 집중되거나 확장되기보다는 기업 단위로 분할될 것이다.

한국 노조 운동의 역사에서 기업별 노조의 한계는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이 누누이 지적되어 온 것이며, 바로 이를 극복하기 위하여 산별노조 등 초기업단위 노조 조직화를 진행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창구단일화는 이러한 과정을 역행하게 만든다. 노조의 활동 자체가 사업장 단위로 분할된다면(다수노조 지위를 차지하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인데), 기업별 이해관계를 넘어선 연대의식과 투쟁을 발전시키는 것이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셋째, 사측 개입에 의한 노조의 어용화·무력화의 위험성이 매우 높아진다. 물론 지금도 사측이 노조를 어용화하고 무력화하려는 시도가 적지 않지만, 개악법은 그를 위한 사측의 유인(誘因)을 강화하고 전술적 선택 폭을 넓혀 줄 것이다.

개악법의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복수노조 하에서 다수 조합원을 확보하여 교섭권을 획득하기 위한 노조간 경쟁을 일으킨다. 이는 투쟁성(선명성)이나 민주성(대표성) 경쟁 등으로 나아갈 수도 있지만, 사측과의 협조성 경쟁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현재의 상황은 후자의 가능성이 더 높다. 더 문제는, 앞서 말했듯이 교섭권을 갖지 못하는 소수노조가 되면 유지 자체가 어려울 뿐 아니라, 독자적인 집단행동을 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대표교섭을 하는 다수노조가 교섭당사자가 되기 때문에 소수노조의 파업은 불법이 된다. 교섭권에 이어 단결권도 제한될 뿐 아니라 집단행동권도 크게 제약됨으로써 손발이 묶이게 된다. 즉 사측이 인정하고 지원하는 어용노조를 제외하고 민주노조는 소수노조로 전락하면서 실질적으로 무력화될 가능성이 있다.

넷째, 노조 활동에서 노동자의 의식 향상 기회가 소멸하고 임단협 교섭 중심성을 강화한다. 결국 조합원 실리를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서의 노조만이 남게 된다.

이는 창구단일화에 의한 소수파의 사멸, 어용화·무력화, 기업별 활동 고착 등 앞의 이유에서 기인하기도 하지만, 덧붙여 타임오프제도 중요한 원인이 된다. 사실상 타임오프제는 전임자 임금 지급 금지와는 전적으로 다른 제도이다. 노조활동에 필요한 시간에 대하여만 유급전임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사측은 노조활동을 구석구석 파악하고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또 그것의 기본 근거와 잣대를 만들어 주는 것이 지금 진행되는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이다. 즉,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는 노조 활동을 어느 수준에서 통제할 것인가를 논의하는 자리에 다름없다는 것이다. 면제 인정사유를 최대한 넓히고 그 속에서 자율성의 영역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는 견해도 있지만 이는 단순히 인정 사유의 범위와 종류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는 조합원 등을 대상으로 한 노조 내부의 일상 활동까지도 법적 또는 노사 합의로 제한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노조의 손을 묶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되면 노조 활동은 실리적 이해를 관철하기 위한 교섭으로 제한되며, 조합원들은 노조 활동 참여에 수동적이 되고 노조 활동의 관료주의화가 촉진될 것이다. 조합원의 의식 향상 계기는 사라질 것이며, 조합원들은 단지 이해계산의 잣대로 노조의 존재를 상정하는 자판기 노조주의가 더욱 만연하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말하면, 개악 노조법(복수노조 창구단일화 - 타임오프제)은 민주노조로서의 정체성을 지닌 노조들은 고립시키고 실리를 추구하는 노조로 순치시키려는 의도를 갖는 것이다. 노사협조를 추구하고 기업과의 교섭을 활동으로 하며 배타적 실리를 추구하는 이익집단으로서의 노조. 그러나 우리가 민주노조라는 말로 의미하는 바, 노동자들의 자율적 조직과 민주적 운영에의 참여, 계급적 연대적 의식은 사라질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

노동3권이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 어용노조만이 합법이었던 시대, 이를 끝장낸 것은 불법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의 투쟁이었다. 합법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투쟁했기 때문에 교섭도 할 수 있었고 권리를 쟁취할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심각한 이중의 문제점에 처해있다. 하나는 노조가 이미 조직되어 있는 노동자들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다보니 그 노동자들을 사실상 배제하는 ‘복수노조 금지’를 또다시 유보한 것에 대해 심각한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노조운동이 조합원의 실리중심의 사고를 따라가면서 노조활동을 하다 보니 정부와 자본이 만들어놓은 ‘교섭창구 단일화’가 노조를 더욱 실리적인 길로 가게 만들거나 소수가 될까봐 두려워하게 만들어놓고 있는 것이다. 이 기회에 민주노조운동에 대해 평가하고 새롭게 조직화를 자기 과제로 하고, 원칙을 세우고 실리를 넘어 연대를 자기 과제로 하는 운동을 만들어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이상 ‘복수노조-교섭창구 단일화’에 대한 지금의 무기력한 대응은 반복될 것이다.

저들이 다시 시간을 되돌리려는 악법을 만들었다면, 우리는 다시금 이 악법을 깰 수밖에 없다. 지금 투쟁의 슬로건은 명백하다. 복수노조 허용! 자율교섭 쟁취! 노동악법 철폐! 20년 전의 망령이 되살아온 듯하지만, 그것이 현실이라면 다시 20년 전처럼 싸워야 한다. 악법을 거슬러 민주노조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 스스로가 민주노조운동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며, 그 정신을 다시 세우겠다는 각오로 싸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