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양라면’ ‘농심라면’의 라면이 아니다. ‘바다가 육지라면’에서 나오는 ‘라면’을 얘기하는 것이다.
천안함 침몰사고 초기부터 지금까지 언론이 취재할 수 있는 정보는 매우 제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퍼즐의 극히 일부 조각 뿐이다. 이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맞춰가며 진실에 조금씩 조금씩 접근해 가는 것이다. 그런데 미리부터 퍼즐의 전체 그림을 일방적으로 그려놓은 채 조각들을 여기에 맞추려 한다면?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자신이 원하는 그림만 그릴 수 밖에 없다. 북한 개입설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보수언론들은 처음부터 어떻게든 북한 관련성을 부각시키려 애써 왔다. 오죽하면 이명박 대통령까지도 “언론이 앞서나간다”고 지적할 정도였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당부도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그런 보수언론이다. 그런데 이제 ‘외부 충격설’이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되자 ‘외부 충격=북한 소행’으로 단정짓고 마음놓고 북한을 끌어들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확증이 없으니 기교를 동원할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기교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군이나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북한이 저질렀을 것으로 본다” 거나 “북한이 어떠어떠한 능력이 있다”고 보도하는 것이다. 지난 16일자 신문을 보자. 조선과 중앙은 버블제트설을, 동아는 직접타격설을 보도했다. 상호 모순되는 두 가정은 모두 군 관계자를 인용한 것이었다. 언론의 추측보도를 막기 위해 절단면까지 그물로 감싸서 숨긴 군 당국이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서는 무슨 그렇게 흘릴 말이 많은지 모르겠다. 이런 상황에서 군이 어떤 결과를 내놓든 국민이 신뢰할 수 있을까 의문이다.
또 하나의 다른 기교는 가정이다. 이것이 이른바 ‘라면’뉴스이다. 팩트 전달보다는 향후 전망을 다루는 기사에서 사용된다. 사고 원인을 냉정하게 밝히려는 게 목적이 아니라 북한 개입을 단정짓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이번 사태가 북한 어뢰에 의한 공격이라면...”, “만의 하나 북한 소행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나온다면...”, “북의 소행으로 밝혀진다면...”
이같은 ‘라면’뉴스는 어떻게든 북한 개입을 전제로 한다. 그러다보니 그 과정에서 자기모순을 드러내기도 한다. 조선은 지난달 29일 ‘북한, 사흘째 침묵’ 기사를 통해 북한이 과거 세 차례 서해교전 당시 6시간 안에 공식 입장을 밝힌 것과 대조적으로 이번에는 의도적인 침묵을 유지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이달 10일에는 “북한이 2주째 입을 다물고 있다”면서 “북한의 침묵은 갈수록 수상하다. 북한이 한 일이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하거나, 평소 입만 열면 ”우리 민족“ 운운해온 만큼 최소한의 유감 표시 정도는 내놓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밝혔다.
여기에 응답이라도 하듯 북한이 일주일 뒤 ‘북한 관련설은 날조’라는 입장을 내놨다. 북한은 ‘(희생자들이) 동족의 구성원이라는 점에서 있어서는 안 될 유감스런 불상사로 간주해 왔다’는 표현까지 썼다. 그런데 조선은 여기에 어떻게 반응했나? 북한이 6.25와 아웅산 사태, KAL기 폭파 사건 때도 발뺌했다면서 “북한은 천안함이 북한 공격에 의해 두 동강난 것으로 밝혀져도 남한의 자작극으로 몰아갈 게 뻔하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침묵을 지키든, 입장을 밝히든 조선의 결론은 처음부터 하나였다. 그리고는 기사에서는 또다시 같은 가정을 되풀이한다. “만일 북한이 개입했다면...”
최근 어느 여론조사에서 이번 지방선거 때 자신의 투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사안을 묻자 ‘4대강 사업’이라는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밖에 ‘천안함 사고’ ‘세종시 논란’ ‘무상급식’ ‘한명숙 전 총리 수사’ 등이 거론됐다. 이 가운데 정부 여당에 유리하다고 할 수 있는 사안은 ‘천안함’ 사고에 북한이 개입했을 경우 뿐이다. 아니, 북한의 개입이 확인되지 않아도 된다. 북한 개입 논란으로 다른 사안들이 모두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만 해도 목표는 달성하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 군 당국과 보수언론들이 왜 그토록 ‘라면’뉴스에 목을 매는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민주언론실천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