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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보다 더 힘든 집회 신고

[기고] 5월 13일 집회를 쟁취하기 위한 신고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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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동희오토사내하청지회 조합원들은 12일 새벽 2시 서울 양재동(현대기아본사)에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서초경찰서로 향했다. 모닝을 만드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피를 빨아먹는 현대기아 자본을 규탄하는 집회였다. 하지만 이 날 현대기아자본을 상대로 한 집회신고부터가 집회이자 투쟁이었다.

  동희오토 조합원들이 집회신고를 하기 위해 서초경찰서 앞에서 24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출처: 금속노동자]

12일 새벽 5시
조합원들은 차 2대에 나눠 타고 서초경찰서로 갔다. 새벽이라 주차공간은 넉넉했다. 집회신고의 순번을 정하는 초소에 조합원들이 도착했을 때 벌써 집회신고자 1명이 우리보다 먼저 대기하고 있었다. 초소 주의를 순식간에 둘러싼 조합원들은 분주하게 우리순번을 증명하는 사진촬영, 동영상촬영(노뉴단), 초소 근무자에게 우리의 얼굴을 확인시켜주는 눈도장 찍기를 반복했다. 눈과 귀가 있는 사람이 보거나 듣더라도 우리는 확실한 두 번째 순번 자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것을 부정할 십덕후는 나타나지 않을 것 같았다.
(십덕후 : 특정분야나 취미에 열중해 365일 집회신고를 즐기는 사람들, 하지만 집회신고 하느라 바빠서 집회는 하지 못함)

앞선 대기자는 현대기아가 아닌 삼성전자에 집회신고를 내는 삼성측 용역이었다. 머리를 스쳐가는 것은 지난 31일 백혈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故 박지연 씨였다. 지친 투쟁으로 어느새 노동자가 자본을 인식하는 뇌의 반사 신경과 같았다.

12일 아침 7시
땅거미가 물러나면서 출근하는 차들이 도로를 메우기 시작하고 도보로 출근하는 사람들도 하나 둘 늘어났다. 경찰서 정문 초소에 자리를 잡은 우리들은 사람들의 궁금한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서있자니 다리가 아파 앉았다. 앉아있자니 허리가 아팠다. 그래서 아예 누워버렸다. 노숙농성을할 계획은 없었지만 경찰서 앞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농성장이 되어버렸다. 아침은 지회장이 사온 값싼 도시락으로 해결했고 경찰서 화장실에서 경찰들과 사이좋게 세수를 했다. 날씨도 견딜 만 해 비만 오지 않는다면 장시간 농성도 괜찮을 듯 했다. 출근하는 경찰서장의 불편한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누워 잠을 청했다.

12일 아침 8시
  뒤늦게 나타난 현대기아사측 용역이 동희오토 조합원들보다 자신이 먼저왔다며 새치기를 해 마찰이 있자 경찰이 용역에게 동희오토 조합원 뒤로 갈 것을 지시했다. [출처: 금속노동자]
십덕후들이 나타났다. 구렁이 담 넘어 오듯 걸어와 우리들 앞쪽에 태연히 줄을 섰다. 너무나 비폭력적이고 뜬금없었다. 새치기도 이렇게 손발이 오그라드는 새치기는 보질 못했다. 그들은 무조건 자기들이 먼저 왔다고 어색하게 주장했다. 사진자료를 보여주고 초소근무자에게 우리가 먼저 온 것을 확인시켜주자 자기들은 먼저 와서 기다리다가 초소옆에서 전화통화를 하느라 잠시 자리를 비운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지회 박태수 조직부장은 “나는 3일전에 와서 경찰서 화장실에서 똥누고 있었다”고 주장했고 이청우 정책부장은 “나는 한 달 전에 와서 경찰서에서 쓰레기 줍고 있었다”고 용역들의 논리를 반박했다.

우리의 반박에 용역들은 묵비권을 행사했다. 표정을 보니 차후 대책은 없고 그냥 버티는 전술을 선택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못했다. 지켜보던 서초경찰서 경찰들이 용역들에게 우리들 뒤로 가라고 지시했다. 3명의 용역들은 일단 퇴각했다.

12일 오전 9시
현대 용역들이 10여명으로 늘어났다. 키들이 건장했다. 용역들은 작전을 짜는지 경찰서 주차장에서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무력으로 밀어붙일지 몰라 만반의 준비를 했다. 하지만 용역들은 이렇다 할 반응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어제 새벽 잠자느라 우리에게 순번을 뺏긴 용역들은 해고되었다고 한다. 부당해고일까?

12일 오후 2시
  현대기아자본 용역들이 욕설과 폭력으로 신고 순서를 새치기하려 하자 정보과 형사가 '삼성 1번, 동희오토 2번, 현대 3번'으로 순번을 정리했다. [출처: 금속노동자]
용역들과 조합원들이 장사진을 이룬 서초경찰서 앞에 퇴직을 앞둔 정보과 반장이 나타났다. 경찰서 앞에서 용역들과 입씨름을 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해결해 준다며 확인증을 써줬다. ‘삼성 1번, 동희오토 2번, 현대 3번’ 실명으로 확인증을 써주었으니 줄 그만 싸우고 해산하라는 것이었다. 몇 번이나 정보과 반장은 자신이 확실히 책임을 질 테니 모두 돌아가라고 했다. 그래서 일단 우리는 주차장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경찰에게 뒤통수를 수없이 맞은 노동자들의 역사를 알기에 우리는 교대로 초소에서 대기하기로 했다.

첫 번째 순번근무를 하러갔던 대협부장에게서 다급히 연락이 왔다. 용역들이 초소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방송차에서 자려고 준비하던 조합원들은 다급히 뛰어갔다. 초소 앞에는 용역들이 이미 주의를 에워싸고 있었다. 또다시 실랑이가 시작되었다. 용역들은 우리가 정보과 반장의 말을 듣고 자리를 비웠기 때문에 자기들이 우선순위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거친 욕을 해대며 폭력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공손히 물러날 우리들이 아니었다. 아니 무료하던 차에 잘됐다 싶었다. 인원수로는 밀리지만 1년여 동안 단련된 욕투쟁과 바디랭귀지 투쟁으로 용역들을 제압했다.

난장판이 되어버린 경찰서 정문에 정보과 반장이 숨을 헐떡거리며 다시 나왔다. ‘삼성1번!, 동희오토 2번!, 현대3번!’ 정보과 반장이 다시 정리해주자 현대용역들은 무기력하게 14일 새벽에 집회신고를 하기위해 줄서있는 것이라고 말을 바꿨다.

12일 밤 9시
  비가 오고 추운 날씨였지만 동희오토 조합원들은 집회 신고를 위해 경찰서 앞에서 밤을 새면서 자리를 지켜야했다. [출처: 금속노동자]
경찰서 문이 닫히고 초소근무자가 다시 한 번 순번을 우리와 용역들에게 알려주었다. 그리고 비가 오기 시작했다. 용역들도 이제 포기했는지 2명씩 교대로 줄을 서고 나머지는 차량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삼성 용역은 경찰서 정문 차량관리를 경찰대신 해주는 여유로움을 보여줬다. 차갑고 쓸쓸한 밤비가 내려서인지 사람들의 마음도 숙연해졌다.

13일 새벽 4시
만일에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조합원들이 초소에 모였다. 금속노조 미비부장도 지원을 나왔다. 그리고 현대 삼성이 아닌 악질사업장에서도 유령집회신고를 하기위해 초소에 경찰서에 도착했다. 집회신고자만 7명은 되어 보였다. 심 대협부장은 집회신고서를 누가 채갈세라 가슴에 꼭 품었다. 이제 5시면 집회신고는 마무리된다. 비는 그쳤지만 기온은 한겨울이었다.

13일 새벽 5시
  "우리는 365일 중 하루를 노동자들의 집회로 쟁취해냈다" 동희오토 조합원이 집회신고 서류를 접수했다. [출처: 금속노동자]
초소에 조그만 창문이 열리고 방문패가 순번대로 부여되었다. 대협부장이 초소에서 정보과로 가는 길을 조합원이 호위했다. 3층 복도에 미리 나와 있는 정보과 형사가 신고서류를 받았다. 미련을 버리지 못한 현대 용역들도 집회신고서를 냈다. 경찰은 접수는 하지만 현대 측은 순번이 밀리기에 무효처리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동자들의 정당한 집회를 막기 위해 현대기아자본은 365일 용역들을 동원하여 유령집회 신고서를 경찰서에 제출해왔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365일중 하루를 노동자들의 집회로 쟁취했다. 5월 13일 모닝을 만드는 동희오토 비정규직 해고자들은 현대기아 자본의 심장인 양재동에서 동희오토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노동착취를 동지들과 함께 고발하려고 한다. 집회신고는 집회이자 투쟁이었다. (금속노동자)
  • 박종필

    5월13일 투쟁!

  • 영등포

    니들이 고생이많다.
    드런세상.

  • 아이고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