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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퇴근할테니 아쉬우면 사람 뽑으시게!

[일터] 현대차 울산공장 생산기술센터 노동자들의 정시퇴근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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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한 건물에 위치하고 있는 생산기술센터 사무실.

매일 새벽 두, 세시까지 불이 켜져 있다. 거의 새벽녘이 가까워져서야 파김치가 된 직원들이 하나, 둘 씩 나온다. 오늘, 굉장히 바빴나 보다. 그런데 어제에 이어 오늘도, 또 오늘도, 그리고 또 오늘도 야근이 계속된다. 그런데 아침 일찍 출근시간은 여전하다. 이 사람들, 이러다가 과로로 쓰러지는 것 아닐까? 그런데 어느 날부터 정시면 퇴근하기 시작한다.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 여기, 자본의 시간강탈에 당당히 NO!라고 외치는 현장이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기술센터에서는 ‘정시퇴근’이라는 어찌 보면 당연한, 그러나 그동안 엄두조차 낼 수 없었던 일이 일어나고 있다. OECD국가 중 노동시간 1위, 세계 최고 수준의 과로사 사망률이라는 오명에도 꿈쩍하지 않았던 이 사회에 반격이 가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반격에 앞장서고 있는 강혁진 현대차지부 대의원을 만났다.

강혁진 대의원과 생산기술부(이하 생기부) 조합원들이 지금 하고 있는 것을“정신퇴근운동”이라고 임의로 이름을 붙여 봤습니다. 이렇게 불러도 될까요? 그리고 이러한 운동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강혁진 대의원: (어색해 하며) 정시퇴근운동이라... 그렇게 불러 주니 고맙긴 한데, ‘운동’이라는 말이 부끄럽네요. 그저 근로기준법을 지키겠다는 건데, 여태 법에도 나와 있는 기본적인 권리조차 지키지 못한 현실이 더 부끄럽지요.

이 일을 추진하게 된 계기라면 한노보연의 공유정옥 동지에게 직무스트레스와 관련한 교육을 받고나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곧바로 생기부 부서 조합원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그 결과 장시간 노동에서 비롯한 조합원들의 스트레스와 건강상의 문제점들이 예상보다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동안 이러한 문제점들이 표면상으로 드러나지 않았던 것은 사무직군의 특징이기도 한데, 진급 같은 문제도 있고 대기업의 수직적 조직구조 속에서 수동적으로 따라가는 분위기이다 보니, 힘들어도 그저 참고 견뎌왔기 때문이었죠.

이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이러한 문제점들에 대한 해결방안을 모색했고, 네 명의 대의원 동지들과 함께 결의를 모아 2월1일 부로 장시간노동을 근절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겠노라고 사측에게 선포하고 지금까지 정시 퇴근을 해오고 있습니다.

생산기술부(생기부)란 어떤 곳인가요?

강 대의원: 신차종과 신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하는 곳입니다. 전체 490여 명의 조합원이 있고 대부분 30대 초반으로 젊은 편입니다. 자동차 회사의 핵심적 부서로 직원들의 심리적 중압감이나 피로도가 매우 높은 일이죠. 게다가 업무량이 많아 정시에 퇴근하는 일은 아예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고 새벽 세, 네 시까지 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근로기준법대로 정시 퇴근한다는 것이 상식적인 일인 것은 당연하지만, 말씀하신대로 조합원들도 많이 위축이 된 상태이고 회사의 분위기나 여러 여건상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강 대의원: 처음엔 조합원들의 반응도 회의적이었어요. 조합원들이 대의원이나 노조에 어려움들을 호소를 하면, 초반에 개선의지를 보이다가도 실행으로 옮기지 않거나, 호언장담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런 것들이 누적이 되다보니 조합원들이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에서조차도 체념하게 되고... 그런 식으로 많이 위축이 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측으로부터 계속 밀리는 거죠. 강요가 강제가 되고, 그게 어느새 자연스러운 노동조건이 되고 순종하게 되는 겁니다. 강요에 의해서 의무만 몇 배로 짊어지게 되고 권리는 모조리 내어주게 되는 꼴이죠.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은 저들에 의해 폐기돼 버린 최소한의 권리라도 되찾자는 것입니다.

어려워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간단한 거예요. 쉽게 말해서 “법대로 하자”는 거지요.

정시퇴근을 추진했을 때 주저하거나 두려워하는 조합원들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만... 전반적으로 조합원들의 반응이 어땠나요?

강 대의원: 물론 잘리거나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하고 두려워하는 조합원들도 있었어요. 또 일중독이 되다보니 하던 일을 멈추고 집에 가는 것이 맘이 편치 않아 오히려 하소연하는 조합원도 있었고...

두려움을 없애주고 권리를 찾는 것에 대한 믿음을 주는 것이, 또 조합원들을 보호해 주는 것이 현장활동가, 대의원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신뢰가 가장 중요해요. 믿음을 주고 설득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어요. 차츰 마음을 열고 용기를 내어 자신의 권리 찾기에 동참해 줬을 때 고마웠어요.

  인터뷰 중, 조합원에게서 온 문자를 확인하며 즐거워하는 강 대의원.


이후 변화가 있다면요?

강 대의원: 처음엔 관리자 눈치를 보고 머뭇머뭇하는 경우가 있는데 내가 눈에 힘주고 퇴근하라고 호통을 치면 주섬주섬 챙겨 들고 나가곤 했지요. 지금은 조합원 동지들이 아주 좋아하고 있어요. 조합원 집사람들이 대의원들 고생한다고 통닭도 보내주고... 집에 일찍 들어오니까 당연히 좋겠죠.(웃음) 그리고 저녁시간이 생기니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고, 취미 생활을 하거나, 평소 다니고 싶었던 학원에 등록한 조합원들도 많아요. 이게 원래 정상인 건데, 이제라도 하게 되는 걸 지켜보면서 뿌듯했어요.

사측의 탄압도 만만찮을 텐데 어떤 식으로 대응하는지요?

강 대의원: 몰상식한 관리자들이 행토(경상도사투리, 시비걸다, 트집잡는다는 뜻)를 내고 대들기도 했지만 그런 건 눈 하나 까딱 안 해요.(웃음) 나름대로 치밀하게 준비를 했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근로기준법, 단협상 합의 내용 등을 들어 어차피 우린 법을 준수하겠다는 것이고, 사측이 지금껏 법을 무시하고 강제노동을 시켜온 것이라는 그런 논리로 투쟁전략을 세웠어요. (인터뷰 중에도 그의 옆에는 손때가 끼고 두툼하게 부푼 근로기준법 복사본이 놓여 있었다.) 퇴근을 가로막거나 업무를 강요할 경우 고발조치하겠다고 단단히 선포를 해뒀기에 저쪽에서도 함부로 못하고 있지만, 그래도 조합원들에게 혹여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니 생기부 대의원 네 명이 계속 감시를 해요. 그리고 사무실 말고 라인 현장으로 흩어져 있는 조합원들의 경우, 관리자로부터 불법·부당행위가 가해지지 않도록 해당 작업장 대의원에게 얘기를 해뒀고 계속 연락을 취하고 있습니다.

정시퇴근을 한 이후 업무량이 엄청 쌓여 있을 텐데 회사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을 것 같네요. 인원충원에 대한 요구도 함께 해 온 걸로 아는데, 회사에서는 어떤 움직임을 보이고 있나요?

강 대의원: 신제품도 딜레이 되고 생산에도 차질이 생기죠. 일이 산더미처럼 쌓이든 말든 우리가 알 바가 아닙니다. 남는 일은 회사 몫이지, 우리 책임이 아니거든요. 이게 중요한 건데, 몇 명이 충원되든지 우린 주어진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의 일만 해야 합니다. 모든 자본은 적게 고용하고 많이 쥐어짜내려고 하는데 이게 고용정체의 원인입니다.

대부분의 노동자는 사실상 육체적·정신적 한계를 초월한 노동을 하고 있고, 일에 자신을 맞추어 왔어요. 충원을 요구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몇 명을 충원해 달라고 요구하지 않아요. 저들이 얼마나 교활한데요. 그러니 인원 충원에 대해선 사측과 협상할 필요가 없는 거예요. 충원을 아무리 해도 초과노동, 강제노동은 절대 하지 않을 거니까.

제대로만 한다면 활동가들의 활동이 정부보다 훨씬 더 많은 일자리 창출을 할 수 있어요. 그렇게 해야 하구요. 사측과 이 문제로 계속 교섭을 진행 중인데, 이 점을 확실히 하고 있고 사측에서도 인원을 원래 계획보다 더 늘이겠다고 발표를 했는데, 그렇다고 이게 절대로 투쟁의 끝이 아닙니다.

이러한 활동이 다른 부서나 현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나요?

강 대의원: 기아자동차 생기부에서도 관심을 보이고 있고 여기 말고 차체 생기부서도 있는데 거기서도 정시퇴근을 추진하려고 합니다. 노조에서도 관심 있게 지켜보는 분위기고요. 장시간 노동이 근절되고 정착화 될 수 있도록 이런 움직임이 확장되어야 하고, 시급제로 잔업이 일상화되어 있는 라인의 경우에도 대의원이나 노조 차원에서 책임 있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봐요. 용두사미로 조합원들 힘만 빼지 말고, 하려면 제대로 준비하고 끝까지 해야 돼요. 사실 근로기준법이나 답협상 합의사항조차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게 참 안타깝죠.

현장운동이 많이 침체되어 있고 또 경기침체, 고용문제 등에 위축이 돼 숨죽이고 있어, 오히려 노동자들이 자발적으로 오래 일하는 측면이 없지 않은 것 같아요. 이런 상황에서 참으로 유의미하고 소중한 투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요?

강 대의원: 노동운동은 계속 후퇴하고 있어요. 잘 아시다시피 가장 열악한 상황에 몰려 있는 것은 비정규직입니다. 건강권에 대한 문제인식도 전무한 상태구요. (한숨을 푹 내쉬며) 저는 ‘비정규직’이라는 단어 자체가 정말 싫어요. 똑같은 사람이 왜 그렇게 나눠지고 차별을 받는지... 정규직이 비정규직 문제에 고민을 많이 해야 해요. 비정규직들만으로는 많이 힘든 게 사실이에요. 그게 가장 큰 고민이에요. 앞으로의 운동은 비정규직 투쟁이 되어야 한다고 보는데... 참 어려워요.

정규직 활동가 중에 “우리끼리 깨놓고 말해서 직영라인은 적자고, 하청라인에서 흑자 낸 돈 받아먹고 사는데, 비정규직 있어야 되지 않겠냐”라고 말하는 입장도 있어요. 이런 게 도둑놈이고 사기꾼이죠. 여기서 평등을 얘기하고 약자를 보호한다고? 말도 안 되죠. 가장 우선적으로 정규직/비정규직의 테두리를 벗어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우리 스스로 벽을 세우면 우리 스스로 몰락하게 되는 거지요.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강 대의원: 현장 활동이 밥그릇 싸움이 되어선 안 된다고 봐요. 노동조합은 매우 중요한데 그것보다 활동가의 인격이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썩어 고인 물은 뽑아내야 해요. 양심과 사상으로 현장의 주인공은 노동자이고 스스로가 그러한 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설 수 있도록 돕고 이끌어야 한다고 봐요. 행동하는 노동자가 되어야 해요.
덧붙이는 말

이 인터뷰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기관지 '일터'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