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0년 3월 3일 신촌 기차역에서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을 하고 있다. [출처: 인권오름] |
바쁘게 지나가는 시민들이 캠페인 부스 앞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무엇인가를 작은 용지에 쓴다. 무엇을 쓴 걸까?
작은 종이에는 앞뒷면으로 <나에게 밥은 000이다> 와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찬밥을 먹는 이유는 000 때문이다>가 쓰여 있다. 빈 칸을 채우기 위해 사람들 모두 짧지만 고개를 기웃하며 고심한다. 그렇게 한동안 자리를 지키던 사람들은 빈칸에 어떤 말을 적었을까?
사람마다 밥의 의미는 다양했지만, 삶의 소중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삶, 쉼표, 힘 행복, 인생, 삶의 즐거움, 생존, 천부인권, 일상, 지각을 해도 챙겨 먹는 것”
밥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필수적이며 삶의 한 부분이다. 그러나 많은 청소노동자들에게 따뜻한 밥 한 끼가 삶의 한 부분이 되지 못하고 있다. 또 그들은 청소노동으로부터 잠시 벗어나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면 사람들은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찬밥을 먹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추측했을까?
“차별, 쉬는 공간이 없어서, 한국의 낮은 복지수준, 자기들만 아는 고용주, 나쁜 학교 행정과 우리의 무관심, 세상이 정글과 같기 때문, MB, 일등만 생각하는 세상”
청소노동자들이 증언하는 노동조건
시민들은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찬밥을 먹는 이유로 한국 기업들의 이기적 행동과 청소노동자들에 대한 차별을 지적하였다. 이날 캠페인에서는 청소노동자들의 다양한 노동조건도 알리는 자리였다. 캠페인 장소 주변에 전시된 사진에는 청소노동자들의 쉬는 공간이 보인다. 대부분 비좁은 공간이기도 했지만 천장이 도배도 되지 않은 벽돌로 즐비한 곳도 있었다. 밥을 사먹을 만큼 임금이 제대로 주지 않는 비정규직의 현실, 도시락을 싸왔지만 그마저 먹을 만한 휴게공간조차 없다는 걸, 캠페인에 참가한 청소노동자들의 증언으로 알 수 있었다.
오후 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시작한 퍼포먼스는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상황을 표현했다. ‘점심시간의 화장실’을 묘사한 퍼포먼스에서 청소노동자는 도시락을 먹고 있다. 옆 칸의 누구는 화장을 고치고, 누구는 똥을 싸고, 누구는 어제 밤 먹은 술을 토하고 있지만, 청소노동자들은 ‘이곳’에서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한다.
물론, 모든 청소노동자들이 화장실에서 밥을 먹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화장실이 가지는 상징성이다. 화장실‘만큼’이나 열악한 공간만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들어서도, 그곳 어디에도 청소노동자들이 쉴 곳은 없다. 설사 휴게공간을 마련하더라도 매우 비좁아 휴게공간으로 기능을 할 수 없다. 고려대학 병원 청소노동자는 “휴식공간이 있기는 하지만 20여명이 굴비 엮듯이 몸을 붙인 채 앉아 있어야”한다고 했다.
또한 이들의 노동 환경은 물리적 열악함만이 아니다. 이어진 ‘청소노동자 증언대회’에서 당사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최저임금을 갓 넘은 “80만 원을 받으면서 새벽 출근을 하며 두 끼의 식사비로 월 12만 원을 쓸 수 없다”고 했다. 사실 68만 원으로 2인 이상 가족생활을 꾸려나가는 건 꿈도 꿀 수 없지 않은가.
▲ 2010년 3월 3일 이화여대 안에서 따뜻한 밥 한끼의 권리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다. [출처: 인권오름] |
캠페인에 참여한 고려대학병원 청소노동자의 이야기에 따르면 노동자들에게 주어졌던 공간은 ‘청소도구를 정리해 놓는 곳’ 혹은 ‘건물의 여러 배관 설비들이 설치되어있는 기기실의 한쪽 구석’ 이었다. 전혀 안전하지 않은 공간에 청소노동자들이 쉬고 있다. 그런데도 병원 측은 JCI (국제의료기관)인증을 받은 자랑스러운 병원이라고 선전하는 현실. 청소노동자들의 울분에 공감이 간다. 또한 이화여대의 경우 연면적 2만 평에 달하는 캠퍼스센터에는 서점, 은행, 극장, 식당 등이 들어서 있지만, 이곳에 청소노동자들을 위한 제대로 된 쉼터는 없다.
신촌기차역 캠페인을 마치고 이화여대까지 행진하였고 대학 안에서 청소노동자들의 열악한 실태를 알렸다. 학생들에게 청소노동자들의 상황에 대하여 알리고 연대를 이끌어내고자 했다. 하지만 여전히 학교 보안 책임자는 청소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조합 활동을 윽박지르며 막았다. 지난 1월 이화여대 청소노동자들은 학교 측이 장소를 빌려주지 않아 밖에서 비를 맞으며 노동조합 결성식을 했다.
노동자로서 생존과 품위를 위하여
미국 청소노동자들의 투쟁을 그린 영화 ‘빵과 장미’에서 청소노동자가 새로 들어온 노동자에게 한 말이 생각났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우리는 유령이 돼.” 국내에는 43만 명의 청소노동자가 있다. 그중에서 여성 노동자가 70%가 넘지만, 그들이 어떻게 대우받는지, 어디서 일하고 어디서 쉬는지는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이런 현실은 여성노동자를 ‘유령’이라고 부를 만하다.
영화 ‘빵과 장미’에서 ‘빵’은 기본적 생존권을, ‘장미’는 인간으로서의 누려야 할 품위를 상징했다. 아직도 청소노동에 대한 천대와 고령여성노동에 대한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갈 길은 멀다. 하지만 지금 시작하지 않는다면 한국 청소노동자들에게 ’빵‘ 그리고 ’장미‘는 현실의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시작하는 캠페인이 청소노동자들의 인권을 향한 발돋움이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