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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간 노동체제의 포로가 된 노동조합

[기고] ‘OECD 최장’ 노동시간, 누가 이를 방조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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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5일 연합뉴스는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너무 지나치게 긴 우리나라의 노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장기 로드맵을 노동부가 준비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그러나 기쁜 마음은 잠시였다. 사실관계를 확인해 본 결과 담당 기자가 노동부의 올해 연구용역과제 공모 공고문을 확대해석한 오보(?)였음이 밝혀졌다. 한편의 우스꽝스러운 해프닝으로 끝난 이번 사건이 왠지 모를 아쉬움과 씁쓰레함으로 남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즘 한국사회는 ‘일자리창출’이 화두가 되고 있다. 2008년 경제위기의 충격이 가라앉고 최근 들어 경기가 다시 회복되고 있다고 정부는 떠들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은 요즘 한국경제가 전형적인 ‘고용없는 성장’의 특성을 보이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지표상으로 실업률이 일정하게 낮아지고 취업률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지만, 이는 임시직과 기간제를 비롯한 ‘질 낮은’ 일자리의 증가로 인한 일시적 ‘착시현상’에 불과하다.

고용문제에 있어 현재 한국사회가 봉착한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경기가 어려울 때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이 더 빨리 줄어들고 경기가 회복되면 다시 나쁜 일자리만 늘어나는 악순환구조가 정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경기변동에 따라 비정규직의 고용조정은 큰 폭으로 요동치는 반면, 흔히 ‘질 좋은 일자리’라고 말하는 정규 상용직의 경우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정체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고용정책의 핵심과제가 단순히 일자리의 절대수치만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된 일자리를 보다 많이 만드는 것에 있다는 것에 이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특히 경기회복이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시점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수 있는 정부의 능동적인 정책조치가 필요하며, 그나마 지불능력을 갖추고 고용창출의 여력이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우선적으로 만들 수 있는 획기적인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과연 그렇다면 이러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가? 그렇지 않다. 단언컨대 한국의 직장사회에서 고질적인 병으로 관행화되고 있는 ‘질 나쁜’ 장시간노동체제를 우리가 없앨 수 있다면 ‘질 좋은’ 일자리의 창출은 충분히 가능하다.

고용정체와 세계 최장노동시간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상황이 공존하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실노동시간의 단축이 필요하다. 하지만 2007년 현재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316시간으로 29개 OECD 국가들 중에서 압도적 1위를 지난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이 수치는 2위인 헝가리와 연간 400시간 이상 차이가 날 뿐만 아니라, OECD 평균치인 1,786시간과는 무려 600시간이 차이가 난다. 더욱이 2003년 법정 주당노동시간을 44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연간 노동시간은 거의 줄어들지 않고 있다. 2004년 2,404시간이던 연간 노동시간이 2007년 현재 2316시간으로 고작 88시간이 줄어들었다. 사무직은 여전히 저녁 6시 이후 초과근무가 일상화되어 있고, 생산직은 평일 연장근로는 물론, 휴일특근으로 공장에서 ‘뺑이’를 치고 있다. 왜 이런 일이 발생하고 있는 것인가?

장시간 노동체제가 유지되는 이유

장시간노동체제가 유지되는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고임금 노동자는 줄어든 인력이 감당하던 일까지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가중된 업무처리를 위한 장시간노동이 어쩔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저임금 노동자의 경우 일일 8시간의 근로소득으로는 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초과근무로 생계비를 보전해야 한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것이 현실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조장하고 있는 법제도적 문제에 우리가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살펴본다면 고용창출에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현행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시간 규정은 반드시 개정되어야 한다. 고용안정은 물론, 일자리창출에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법정노동시간에 대한 현행 규정을 보다 엄격하고 세밀하게 바꾸어야 한다. 현행 규정에 따르면, 일일 근로시간은 8시간, 주당 근로시간은 40시간으로 되어 있지만, 이것은 문구에 불과하다. 법 규정의 허점으로 인해 사실상 실제 노동시간은 무한대로 늘릴 수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가? 분명 법상으로 연장근로는 당사자의 합의에 의해서만, 더 나아가 주당 12시간 이내에서만 늘릴 수 있다고 되어 있다. 하지만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예외규정에 의해서 연장근로의 규제는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사용자의 직간접적인 압력이 뻔히 보이는데도 노동자 개인의 동의, 혹은 노동부장관의 사후인가라는 형식적인 제한규정 외에, 연장근로를 제어할 수 있는 방안은 존재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연장근로, 야간근로, 휴일근로가 법 규정상 분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야간근로와 휴일근로에 대한 제한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야간근로와 휴일근로는 소위 할증수당(가산임금)만 지급하면 무한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2000년 노동부는 근로기준법 52조 1항에 대한 행정해석을 통해 주당 12시간 한도 내에서 사용하도록 규정한 연장근로에 휴일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고 공지하였다. 과연 이러한 해석이 상식에 맞는 것인가? 연장근로시간이 법정근로시간(주 40시간)을 초과하는 근로시간이라고 한다면, 휴일근로시간도 당연히 연장근로시간에 포함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지만 우리나라의 노동부는 그렇지 않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노동법 학자들이 이러한 행정해석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해당 노동자가 이 문제를 법적 소송으로 제기하지 않는 한, 사용자가 할증수당만 지급하면 휴일근무는 무한대로 사용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진정 노동부가 장시간노동체제를 극복하고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만들기를 원한다면, 근로기준법의 노동시간규정부터 전면 개정하는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장시간노동을 해소하고 노동시간을 실제로 줄이기 위해서는 법정근로시간에 대한 개정운동이 필요하다. 하지만 법 개정운동은 폭넓은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강력한 제도개선투쟁을 전제로 할 때 가능한 일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노동시간단축의 현실화는 커다란 난간에 봉착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시간단축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포기할 것인가? 과연 이러한 난간을 극복할 수 있는 단초를 노동조합 스스로는 만들 수 없는가?

임금보전 논리로 해온 초과노동 악습도 깨야

어렵고 힘들지만 그 길은 분명히 있다. 지금부터 노동조합이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에 기여하는 실노동시간의 단축을 위해 협약노동시간의 제도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면 가능한 일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20년간 민주노조운동진영은 노동시간단축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법정근로시간의 단축투쟁은 전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단체협약으로 노동시간규정을 제도화하는 데에 소홀히 하였다. 최고의 단체협약을 유지하고 있는 재벌대기업 조차 노동시간에 대한 규정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연장근로의 예외규정을 사업장에서 엄격히 규제하기보다 오히려 잔업과 특근의 보장이라는 ‘자본의 덫’에 빠져 허우적대기 바빴다. 언제부터인가 사업부대표가 되기 위해서 활동가가 조합원들에게 주말근무 몇 개를 따겠다고 약속해야 하는 장시간노동체제의 포로가 되었다. 바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 장시간노동체제의 담합구조는 산업현장에서부터 고착화되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노동조합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먼저 임금보전의 논리로 합리화해 온 초과노동의 악습을 조직노동자 스스로가 깨야 한다. 세계 최장의 장시간노동체제가 지금까지 존속된 것에 대한 책임은 일차적으로 사용자와 정부에게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하지만 노동조합 또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실질임금 확보 보다는 조합원의 요구를 빌미로 할증수당 인상, 잔업과 특근보장과 평일 대체근무 등과 같은 ‘잘못된 관행’에 매몰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완전한 임금보전을 전제로 하지 않으면 노동시간을 줄이기 힘들다고 핑계대기 보다는 과감한 노동시간단축을 통해 실질임금을 높이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노동조합의 의지와 결단을 국민들은 바라고 있다.

실노동시간 단축위한 협약노동시간 쟁취운동으로

이를 위해서 노동조합은 지난 20년간 미루어왔던 협약노동시간 쟁취운동을 시민사회의 각계각층 및 제반 연대세력과 함께 사회운동적 차원에서 전개해야 한다. 자신의 인간적 노동생활 뿐만이 아니라, 청년 예비노동자, 미취업자,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일자리창출을 위해 향후 10년 내 주당 협약노동시간을 서구 유럽과 같이 35시간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실노동시간 단축을 위한 중장기 로드맵을 설정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현장에서 무분별하게 악용되고 있는 초과노동에 대한 엄격한 제한규정을 단체협약으로 명시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5년 내 주당 실질노동시간이 40시간을 넘어서지 못하도록 만들어 연간노동시간을 1900시간으로 줄여야 할 것이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이 선진국에 일반화되어 있는 유급중기휴가, 생애할당근무, 교대제변경과 부분퇴직제도를 한국의 실정에 맞게 재설계하여 추진한다면, 실노동시간 단축에 의한 고용창출효과는 상당히 배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다양한 방안에도 불구하고 장시간노동체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스스로가 ‘시간이 곧 삶, 돈 보다 삶’이라는 인식의 대전환이 요구된다. 만일 노동조합이 금전적 보상에 기반한 물질적 혜택을 추구하는데 매몰되어 있다면, 자신의 조합원들이 일상적으로 수행하고 있는 초과근무가 ‘보이지 않는 또 다른 동료들’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노동조합이 스스로의 한계와 관성을 극복하고 노동시간 단축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아버지는 철야근무와 초과노동에 시달려 과로사위험에 직면하고 삼촌은 부족한 생계비를 보충하기 위해 ‘투잡’을 찾아야 하고 아들은 일자리를 찾지 못해 빈둥거릴 수밖에 없는 고용불안사회를 벗어나는 길을 노동조합이 열어 제치게 될 것이다.
덧붙이는 말

이 글은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3월 뉴스레터에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