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은 한반도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차원의 국제질서가 새롭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4월에는 핵안보 정상회의, 5월에는 NPT평가회의가 예정돼있으며, 6월에는 한국의 지방선거, 7월에는 일본의 참의원 선거, 11월에는 미국 중간선거가 치러진다. 이러한 일정들은 각 나라의 국정운영뿐 아니라 동아시아 정세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하토야마 정권 등장 이후 ‘대등한 미일관계’를 설정하려고 했지만 최근의 도요타 사태로 인하여 결국 무릎을 꿇게 되었고, 중국과의 협력적인 관계도 미국과의 관계를 고려해서 속도를 조절하고 있다.
미국은 신자유주의 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일본과 중국을 대상으로 전방위 공세를 펼치고 있다. 현재 일본 압박에 성공하여 미국내 경제 회복에 숨통이 트이고 있으며, 앞으로 중국에 대한 압박에만 성공하면 경제위기 극복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제국의 부활과 경제패권의 중국으로의 이동을 강렬하게 거부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 인민폐 절상요구 등 미중 갈등 국면이 장기화될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과 중국은 전략적 경쟁자로부터 ‘책임있는 이익 상관자’로 자리매김하며 공동의 이익을 위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국면이 장기화되면 한반도 문제도 접점을 찾기 어려울 것이다. 결국 북한과 미국의 대화가 시작되면서 불원간 재개될 것으로 예측된 6자회담 재개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미중관계가 악화될수록 북중관계는 더욱 공고화할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북한이 핵 실험 후 제재로 고립된 이후에도 외교 고위 관리들을 차례로 북한에 보내 각종 대북 지원을 약속하고 6자회담 관련 논의를 진전시키는 등 관계를 돈독히 했다.
그런데 최근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찮다. 미중갈등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왕자루이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2월 6일 방북했으며, 2월 9일에는 유엔 사무총장의 대북특사 린 파스코 유엔 사무국 정무담당 사무차장이 방북하였다. 또한 2월 6일에는 재미 대북인권운동가 로버트 박이 억류 43일 만에 풀려났다.
남북관계 역시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북한이 서해상과 서해 육상지역에서 포 사격을 진행하고 있는 한편에서는 남북정상회담 가능성을 거론하고 실무협상을 진행키로 하는 등 예전의 잣대로는 이해할 수 없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월 1일 개성공단 실무회담을 시작으로 후속 군사 실무회담, 개성·금강산 관광 재개 실무회담 등을 추진하는 것 역시 새로운 전환을 예상케 한다.
북한 내부사정이 상당히 다급한 모양이다. 외부에서 북한으로 들어가는 현금의 흐름이 차단되면서 “39호실(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자금 관리처)금고까지 바닥이 났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경제난이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지난 해 11월 단행된 화폐개혁은 당국의 의도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화폐개혁 직후 ㎏당 20원 하던 쌀값이 현재 240원대로 폭등했다. 환율도 달러당 30원에서 400원까지 치솟았다. 3000원 남짓한 북한 근로자 임금 수준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물가다.
북한은 화폐개혁 이후 모든 생필품을 국영 상점과 배급을 통해 조달하도록 했다. 하지만 정부의 물자 공급 능력이 북한 전체 필요량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치면서 북한 물가가 폭등했다. 이 때문에 개인들의 시장 거래를 제한했던 북한 당국이 최근 거래를 묵인하기 시작했다. 특히 농산물만으로 거래가 제한됐던 종합시장에서도 공산품을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도록 최근 허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금지됐던 달러 거래도 다시 이뤄지고 있다.
화폐개혁 실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북한 노동당 간부도 줄줄이 물갈이되고 있다. 북한 경제를 총괄하는 박남기 계획재정부장이 전격 경질된 것으로 알려졌다. 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통치자금’ 관리 부서인 39호실 김동운 실장도 전일춘 제1부부장으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가 하면 당 재산과 자금을 관리하는 재정경리부 부장 자리는 여전히 비어 있지만 최근 들어 한광상 제1부부장이 사실상 부장 역할을 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최익규 당 영화부장도 화폐개혁 홍보 실패에 따른 책임을 지고 경질된 것으로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물가와 물자 부족 그리고 심각한 식량난으로 인하여 주민들이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북한으로서는 물자공급 통로인 중국과 한국을 상대로 유화공세를 펼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왕자루이 방북초청이나 개성·금강산 관광 실무회담 그리고 남북정상회담 등은 결국 물자와 ‘달러박스’를 확보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북한이 유엔 인사들을 초청하면서까지 제재완화의 분위기 조성에 나서는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인다. 달러 주 수입원인 무기 수출이 차단되면서 북한의 ‘달러 가뭄’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내부 권력승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경제난이 심화되고 내부 동요조짐이 커질 경우 2012년을 목표로 하는 강성대국 건설은 물 건너가고, 결국 안정적인 권력이양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이다.
그렇다고 한반도 정세가 어떤 수준으로까지 전환될 지는 미지수다. 대북제재 해제와 한반도 평화협정 논의를 요구하는 북한이 단번에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