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교사들이 평가받는가?
정부는 교원평가제를 통해 ‘부적격 교사’를 퇴출시키고, 교육혁신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교원평가제를 통해 퇴출당하는 교사는 어떤 교사일까? 성추행 교사? 촌지 교사? 폭력 교사? 물론 이런 교사들은 퇴출당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이런 교사들은 현행 법이나 징계 규칙으로도 처벌 가능하다. 오히려 이런 문제들을 은폐하고 숨기려는 학교 사회의 구조와 분위기가 문제이다. 즉, 위에서 말한 성추행ㆍ촌지ㆍ폭력 교사 등의 부적격 교사들은 ‘교원평가제’와 관련이 없는 이들이라는 말이다.
여기서 정부의 의도는 분명해진다. 지금과 같은 입시 위주의 교육 풍토 속에서 결국 우수교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적을 올리는 교사일 수밖에 없고, 낙제교사는 입시 맞춤식 수업을 하지 못하고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교사가 될 것이다. 평가기준에 대한 정부의 주장을 보아도 이런 부분은 분명해진다. 정부는 평가의 기준을 공정하고 객관적으로 만든다고 했지만 전인적인 교육활동이 ‘1점~5점’으로 매겨질 수 있는 수치의 영역이 아닌 것을 감안한다면 결국 교원평가제의 기준은 수치화, 계량화하기 쉬운 학생들의 시험점수가 될 것이다. 최근 치러지고 있는 전국 단위의 일제고사가 바로 이 평가기준을 마련하기 위한 시험이라고 볼 수도 있다. 즉, 교사를 판단하는 기준이 ‘성적’만이 되고 말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결국 학교사회는 입시경쟁, 성적위주의 교육이 더 횡행하는 곳이 될 것이다. 성적 부담감으로 인해 한 해에도 몇 명씩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이 생겨나는 상황에서 더욱 입시경쟁이 심해진다면 한국의 교육이 그야말로 파탄으로 치달으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닉 데이비스의『위기의 학교』라는 책을 보면 교원평가제가 일상화된 영국에서는 전국단위의 시험이 치러지는 날이면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지 말 것을 종용하는 교사가 종종 있다고 한다.
철밥통 교사들! 이제 너희들이 마지막이다
교사들 및 교사 사회를 공격하는 주 키워드는 바로 ‘철밥통 이데올로기’다. “모든 국민들이 언제 잘릴지 모르는 불안한 일자리 때문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너희 교사들만 이기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를 지키려고 해서야 되겠냐.”는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갖는 것이 문제인가? 오히려 언제 해고당할지 모르면서 하루하루를 불안하게 살아가야만 하는 이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된 사회가 문제 아닐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동으로 임금을 받아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사회에서 안정적인 일자리는 곧 우리의 행복을 결정하기 위한 필수 조건이니 말이다.
하지만 기업가들과 정부는 노동이 불안정해져서 자신들의 마음대로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임금도 줄이면서 최대한의 이윤을 내기를 원한다. 정리해고제, 비정규악법 등이 모두 그런 맥락의 법들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에게 교사들이 문제였다. ‘공무원, 참교육’을 핑계로 철밥통을 틀어쥐고 있는 교사들이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교원인사 개방/교원양성특별과정, 교사인턴제와 함께 전면 시행하는 교원평가제는 교사들이 좀 더 쉽게 잘리고, 임금도 차등 지급될 수 있도록 하면서 교사사회에도 불안정노동이 일반화될 수 있도록 하려는 것이 정부의 핵심의도이다. 정부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영국, 미국 등의 교원평가제가 이미 그렇게 되고 있다. 교육계에 쌓여있는 수많은 문제들에 대해 정부는 책임지지 않으면서 그 원인을 교사 개개인들에게 돌리면서 교원 구조조정을 위한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다.
정부는 평가 결과를 인사에 반영하지 않고 재교육을 시키기 위한 판단근거로만 쓴다고 하지만 일본에서 재교육 대상자 중에 ‘다시 학교로 복귀한 사람이 드물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이렇듯 내쫓기 위한 수단이 ‘재교육’이라는 포장인 것이다. 강제 퇴직만 해고가 아니다. 스스로 마지못해 나가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이미 기업들이 즐겨 사용한 정리해고 방식이었음도 상기하도록 하자.
‘경쟁-평가’로 실력 향상?
사실 현 신자유주의 사회의 키워드는 경쟁과 평가이다. 서로 경쟁하고, 그 과정에서 평가받으면서 사람들의 능력이 향상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가? 한국 사회에서는 날이 갈수록 경쟁이 심해지고 있지만 그에 따라 구성원들의 능력이 향상되고 있는가? 입시 경쟁은 시간이 흐를수록 더해지고 있지만 학생들의 성적은 향상되고 있는가?(물론 이것은 학생들의 성적이 향상되는 것이 무조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또 지금 사회에서 경쟁을 통해 향상시키고자 하는 능력은 어떤 능력인가? 자신의 삶을 희생시켜가면서까지 상품을 많이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 암기 잘하고 정답 잘 찍는 능력?
이런 질문에 답하다보면 우리가 언젠가부터 익숙해진 경쟁과 평가에 대해 의문을 가지게 된다. 경쟁이 무조건 좋은 것만은 아니며, 평가를 통해 우리의 삶이 나아지리라는 보장도 없다. 아니, 오히려 더욱 불안정해지고 힘들어질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경쟁을 통해 서로 협동하고 연대해야 할 사람들을 분할시키고, 소수에 대한 포섭과 다수에 대한 배제를 만들어 낸다. 즉,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소수일뿐이고 다수는 이 경쟁을 통해 낙제자로 낙인찍히고 힘든 삶을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더불어 경쟁에서 패배한 사람들에게는 ‘너가 모자라고 부족해서 질 수 밖에 없는거야. 더 열심히 노력해!’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면서 누군가는 패배해야 유지될 수 있는 이 사회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한다. 그 사람들은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각종 허망한 노력들을 계속해서 하게 될 수 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 도래한다.
교원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교사의 전문성을 향상하고 교사의 질을 제고한다는 것이 무조건적으로 서로 경쟁시키고 평가를 통해 등수를 나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서로 비판하고 협력하며 고칠 점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더 나은 학교와 교육을 만들 수 있다.
지금의 교사회(아예 없는 학교가 대부분이다.)나 학생회, 학부모회는 실질적인 권한이 없는 요식 기관에 불과하다. 이들에게 실질적으로 학교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주어 학교자치를 실현하자는 의미이다. 교사회에서는 서로의 수업에 대해 평가하고 조언도 해주면서 교사의 수업 방법, 상담 방법 등도 향상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학생회, 학부모회도 법제화되어서 학교의 인사나 재정에 대해 개입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로가 생긴다면 정부가 지적하는 교사의 여러 문제들도 발전적인 방향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교사회ㆍ학부모회ㆍ학생회 법제화’가 대안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몇 년전에 ‘학교 종합평가제’가 교원평가제의 대안으로 대두되기도 했는데, 이것은 학교 구성원들이 함께 집단적으로 토론/비판을 나누자는 취지의 정책이다. 교사/학생 간에, 같은 교과/학년끼리, 교사/학부모 간에 ‘평가회’를 정례화하여 수업과 학급운영, 학교계획에 대해 토론/비판을 공유한다. 혹여 미흡한 점이 있는 교원들은 이 과정에서 비판받고 분발하게끔 촉구한다. 관료적으로 부과되는 ‘평가’보다 이 과정에서 사람은 스스로 더 분발하기 마련이다. 이 과정은 학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또다른 ‘교육운동’의 계기가 될 것이다.
또한 교사의 실력/전문성은 해마다 오르락내리락 바뀌는 게 아니다. 그러니 ‘전문성/실력 부족’ 교원이 많다면 이는 교원양성과 임용 과정이 무척 엉성했다는 뜻이고, 양성임용과정을 제대로 다잡는 것이 옳은 해결책이다. 이런 맥락에서 수년동안 예비교사운동이 제기해온 ‘장기적이고 계획적인 교원임용정책’과 ‘내실화된 교원양성정책’이 그 대안이라 할 수 있다. 다만, 기왕에 배출된 교원들의 전문성 향상을 돕는 것이 ‘과도기적 조치’일 터인데, 이는 위에서 서술했던 ‘교사회ㆍ학부모회ㆍ학생회 법제화’, ‘학교 종합평가제’나 ‘현장교원 자율연수체제 장려’를 통해 북돋는 것이 순리이다.
예비교사들도 교원평가제에 계속 반대해 나갈 것
위에서 얘기했던 수많은 문제들은 현직 교사들에게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당연히 우리 예비교사들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이다. 교원평가제 강행의 핵심의도는 교사사회에도 불안정노동이 넘치게 만드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은 교사를 꿈꾸고 있는 많은 예비교사들의 미래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에 다름아니다. 예비교사들이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것은 결국 자신들의 미래를 안정적으로 꾸리려는 몸부림인 것이다. 또한, 이런 교원평가제로 대표되는 교원 구조조정은 교사대 통폐합-인턴교사제-교사양성특별과정 등으로 이어지면서 계속해서 교/사대생들과 현직교사들을 총체적으로 힘들게 할 것이다.
또한, 대학은 이미 기업의 논리가 아주 깊숙이 들어온 제2의 기업이나 다름없다. 기업이 원하는 커리큘럼이 횡행하고 있고, 대학 자체가 기업이 되어 이윤을 추구하고 있다. 이렇게 기업, 지배층들만을 위한 대학의 교육을 이제는 중고등학교로까지 퍼뜨리려고 하고 있다. 교원평가제를 통해 정부의 말을 잘 듣는 ‘착한 교사’를 길러서 정부의 의도대로 초중등교육을 재편하기 훨씬 수월해지도록 하는 것이다. 대다수 예비교사들은 ‘이런 학교에서 진정한 교육활동을 벌여낼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한국 사회 전체의 교육 전반을 부정적으로 변화시키고, 교사 노동력을 급속히 유연화시킬 교원평가제에 우리는 예비교사의 이름으로 계속해서 반대의 목소리를 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