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합의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포투쟁에 함께했던 현장조직 활동가들에게 회사가 중징계의 칼날을 빼들었다. 그리고 덩달아 노동조합도 활동가 3명에게 중징계를 내렸다. 잠자코 넘어갈 수 없는 일이었다. 이는 미포투쟁에서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던 자발적 현장활동의 싹을 짓뭉개겠다는 의도였다. 특히 비정규직과의 연대에 앞장서야 할 노조가 비정규직 복직투쟁에 연대한 조합원을 징계하는 미포조선에서 자발적 현장활동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지켜내야 할 마지막 희망이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 대한 해고, 부당처우, 괄시 등에 관리자나 노조간부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떤 불만과 항의도 표현할 수 없는 곳은 더 이상 사람이 일하는 일터가 아니다. 그것은 뼈와 살로 만들어진 기계가 돌아가는 곳에 불과하다. 마지막 숨구멍까지 막으려 드는 회사와 노조의 징계에 맞서 싸우지 않을 수 없었다.
1년 가까이 울산과 부산, 서울(노동부, 국회, 여의도 한나라당사)을 오가며 협약서 이행, 현대중공업 경비대에 의한 노동자 테러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1인시위를 해왔다. 이럴수록 이를 덮으려는 탄압은 더 모질고 집요해졌다. 여러 기사를 통해 알려졌듯이, •이른 새벽부터 노무관리자의 자택 감시 및 미행 •어용의 1인시위 방해 •출근 시 사내경비의 감시 및 미행 •중식시간 시 반장의 식당 동행 •현장사무실 입구에 인신 비방 현수막 3개 설치 •왕따 조장 •작업감시 항의에 폭행 •작업조건 변경 •회사의 명예훼손 등을 이유로 한 고발 등을 겪어왔다.
지난 해 1월17일 현대중공업 경비대 심야테러 후유증에, 이처럼 개인에게 저질러진 가혹한 압박과 스트레스까지 겹쳐 1년간 병원치료와 6개월간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다. 최근에는 전남 광양에 위치한 모 한의사의 무료 도움으로 계속 치료를 받아오고 있다. 그리고 10여 건의 민사, 형사, 진정 등의 재판을 진행해오고 준비하고 있다.
▲ 2009년 국정감사. 부산지방노동청 앞. |
투쟁이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유가 절박하기에 투쟁할 것이다. 투쟁 끝에 받아낸 협약서를 한낱 종이쪼가리 취급하는 행태, 현장활동을 완전히 짓뭉개려는 탄압, 활동가를 겨냥한 현중경비대의 살인적 테러... 이런 것들을 묵인했다가는 정말 앞으로 노동운동이 어떻게 될지, 그 현실을 감당해낼 수 없을 것 같다. 모두들 알 것이다. ‘한 번 쯤은’이라고 물러섰다가는 어떤 대가를 치르고 마는지를.
그런데 이 절박함이 함께 나눠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미포투쟁 1주년이 되는 지금, 조합원들은 침묵하고 있고 현장조직 활동가들의 현장투쟁도 발이 묶여 있다. 그러나 좌절하고 싶지 않다. 단 한 명의 동지라도 함께 고민하고 함께 싸웠으면 좋겠다. 미포투쟁 1주년이 되는 1월29일에 ‘제2미포투쟁 승리!’를 위한 실천투쟁 결의와 더불어 변호사 선임료(회사의 고소, 노조의 징계에 대한 법적 대응)와 서울상경투쟁 기금 마련을 위한 일일주점을 미포조선 현장노동자투쟁위원회가 주최한다. 울산지역 노동형제들의 지지, 연대를 바란다.
제2미포투쟁 승리 결의를 위해 다시 한 번 머리띠를 힘껏 묶어야 한다. 심야테러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공개사과하고 재발방지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협약서를 이행시키고 현장조직 활동가들에 대한 중징계를 반드시 철회시켜야 한다. 그 길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