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천 명이 넘는 비정규직을 해고한 GM대우와 하청업체들이 다시 지금에 와서 이러한 공작을 펴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 논리대로라면 GM대우 노동자 중 상당수는 해고되어야 한다
먼저 9월 들어 또 다시 시작된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의 배경을 살펴보기 위해 GM대우가 처한 경영 상의 조건을 살펴보자.
알다시피 GM대우는 2008년 말 1조원 규모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수출 시 환율 하락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드는 선물환 계약이 환율 폭등으로 탈이 난 것이 주요 원인이었다. 세계 40여개 국가에서 자동차 생산과 판매를 하는 초국적 기업 GM의 계열사가 환율 변동 예측을 거꾸로 하여 한국에서 다른 업체와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가장 많은 파생상품처분 및 평가 손실을 입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다. 의도적 자본 유출 의혹 등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목인데, 어찌되었건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밝혀진 바는 없다. GM대우는 2008년 말까지 이 파생상품처분 손실로 1조원을 잃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2008년 말로 끝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GM대우는 현재까지도 계속 선물환 계약 만기가 도래하고 있다. 2009년 5월에 시중 은행들과 한 차례 만기 연장을 했지만, 2009년에 선물환 손실로 갚아야 할 돈이 대략 1조 2천억 원 규모이다. GM대우의 선물환 계약이 보통 2년 미만인 것으로 비추어 올 해 내내 갚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생산의 80% 이상을 GM을 통한 수출에 의존했던 GM대우는 GM파산과 세계 경제 위기가 계속됨에 따라 예년 평균 (2006~2007년)의 절반 밖에 판매를 하고 있지 못하다. 벌써 이렇게 생산이 절반 이하로 떨어진 지 반년이 지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GM대우 사측은 지금까지 그럭저럭 임금삭감, 순환휴직, 비정규직 해고 등으로 버텨왔지만, 이제 이 마저도 힘들 것으로 보인다. 바로 GM 유럽 법인의 핵심 기업인 오펠(Opel, 영국에서는 Vauxhall)이 캐나다 부품업체 매그나와 러시아연방예금은행 컨소시엄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오펠은 GM유럽 법인 판매의 70%를 차지한다. 오펠 매각은 사실상 GM유럽 법인의 해체와 다르지 않다.
문제는 GM대우 수출의 절반 이상이 시보레 브랜드를 달고 유럽으로 수출된다는 것이다. GM 유럽이 사실상 붕괴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에서 GM대우가 유럽에 수출할 길이 구조적으로 좁혀진 것이다. GM대우는 칼로스, 라세티, 마티즈 등 소형차 중심으로 2008년 기준 40만대 가량을 유럽에 수출하였다. 더군다나 이번 오펠 인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가가 러시아라는 점도 큰 문제인데, GM대우는 유럽 수출의 절반을 러시아에 하고 있다(2008년 기준). 국가적 차원에서 자동차 생산을 도모하고 있는 러시아가 마티즈 정도를 제외하고는 GM대우와 비슷한 제품 라인업을 갖추고 있는 오펠을 인수함에 따라 GM대우의 유럽 수출은 더욱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GM대우는 경제 위기에 따른 생산 감소와 더불어 글로벌 GM의 재편에 따라 중장기적으로 생산이 감소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그리고 초국적 기업의 하청공장이 되어버린 GM대우가 이 과정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없다. 오직 할 수 있는 일은 생산 판매의 감소에 걸맞게 인원을 조정, 비용을 낮추는 것이다. 장기적으로 생산 감축이 필연적인 상황에서 GM대우가 자동차 시장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여 구조조정을 진행한다면, 현재 노동자의 30~40%는 해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정규직노조 탄압은 전체 GM대우 노동자의 첫 번째 전선이다
이러한 점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GM대우와 하청용역업체들이 금속노조 비정규직지회를 탄압하는 것은 이후 대규모 구조조정을 위한 GM대우의 첫 번째 수순일 가능성이 크다. 특히 현재 사무직 노동자에 대한 희망퇴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가능성에 더욱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GM대우가 생각하는 구조조정 시기는 GM대우 신임사장이 취임하고, GM본사 회장이 방한하여 정부 지원 여부를 확정한 이후가 될 것이다. 현재 GM대우는 산업은행에 증자 참여, 차입금 상환 연기, 운영자금 추가 지원 등 GM2조원 가량의 자금을 요청장이 취임하고정부가 쌍용차와 달리 지역 경제와 제조업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큰 GM대우에 지원을 아예 거부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산업은행 총재가 여러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것처럼 산업은행은 GM본사 차원의 장기적 GM대우 운영 방안을 요구할 것인데, 문제는 이 장기적 경영 방안이 인적 구조조정을 포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GM본사는 산업은행 결정에 대한 명분을 주는 차원에서 신차 개발, 장기적 생산 등 상징적 발표들을 하겠지만, GM의 하청생산공장인 GM대우의 근본적 위치 조정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이 모든 것들은 상징적인 것 이상일 수 없다.
이제 남은 것은 정부의 지원이 초국적 기업 GM에 대한 퍼주기와 정리해고를 위한 구조조정 기금으로 사용될 것인지, 아니면 노동자들의 고용 보장을 위한 고용보장기금으로 사용될 것인지 여부이다. GM대우 노동조합이 현재와 같이 사측의 관용만을 바라며 투쟁을 조직하지 않는다면, 산업은행 지원은 노동자들을 해고하는 무기가 될 가능성이 크다.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GM대우가 GM의 국제하청공장으로 계속 남는 한 더 이상 생산을 유지할 요인이 없다. 더군다나 경제 위기가 앞으로 상당기간 계속될 가능성 또한 높다는 점 또한 GM대우 경영에 큰 영향을 줄 것이다.
따라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해고와 사측의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에 정규직 노동자들이 적극 나서 함께 투쟁하는 것이 현 시기 매우 중요하다. GM대우 노동자들이 단결된 힘으로 사측의 예봉을 꺽지 못하고 물러선다면, 그 다음은 더 큰 정리해고 요구를 해 올 것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진행될 구조조정은 몇 백 명 수준에서 그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비정규직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을 즉각 중단시키고, 현재 진행 중인 비정규직 해고를 중단시키는 것이 앞으로의 구조조정 저지 투쟁의 첫 걸음이다.
시장의 논리를 넘어서는 요구만이 자동차 노동자들이 살 길이다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보자면, GM대우가 이러 저러한 구조조정을 하더라도 세계 경제위기와 자동차 산업의 과잉축적이라는 조건에서 온전히 ‘시장의 논리’로 살아남을 수 있느냐는 문제이다. GM본사의 북미에서의 소형차 생산 계획, 유럽 소형차 시장의 상실, 한국 내수 시장의 양적 한계, 중국 인도 등 신흥 자동차 생산국가들의 생산 확대와 기술 격차 축소, 고효율 자동차, 전기차 등 신차 생산에 필요한 거대 자본과 이에 따른 자동차 기업 전반의 자본 수익성 저하 등 GM대우를 둘러싼 조건은 그 어떤 것도 GM대우에 유리한 것이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GM대우 노동자들이 GM대우의 생산 증감, 또는 판매 증감에만 목을 매는 것은 그다지 좋은 방안일 수 없다. 앞으로의 투쟁은 자본의 사활을 변수로 한 노동자 생존이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 자체를 변수로 한 요구와 대안들을 만들어 나가야 할 때이다. 한국에서 앞으로도 현재와 같은 형태로 자동차 산업을 계속 유지할 수 없다면, 대안적 구조조정을 위한 노동자 시민들의 안이 제출되어야 한다. 물론 이러한 안은 단발성 아이디어가 아니라 전사회적 재편까지를 염두해 둔 장기적인 것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현재 중요한 것은 현재 이러저러한 장밋빛 전망보다는 대안적 구조조정의 과정을 노동자들의 노동권에 대한 희생 없이 진행해 나갈 수 있는 정부의 지원과 자본에 대한 통제 방안이다. 예를 들면, 이명박 정부는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부동산 거품을 해결하기 위해 자산관리공사에 구조조정 기금이라는 명분으로 20조원을 조성해 놓았다. 이 돈은 건설회사들을 지원하기 위한 돈이다. 또한 파생금융상품과 부동산 투기 등 금융 투기로 부실해 진 은행들을 지원하기 위해 20조원을 은행자본확충펀드라는 이름으로 만들어 놓았다. 자본은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2009년에만 시민들의 현재와 미래 세금을 담보로 40조원을 조성해 놓았는데, 현재 노동자들은 이러한 재정에 대해 어떠한 통제권도 갖고 있지 못하다.
GM은 여차하면 GM대우를 버리고 가버려도, 이미 충분히 GM대우를 이용하였다. 하지만 그 속에서 GM대우 노동자들은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것이다. 자본의 활로가 아니라 노동자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 중요한 시기이며, 이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고 함께 승리로 이끄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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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지원 님은 노동자운동연구소(준)의 연구위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