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하다시피 사회공적영역을 시장화하여 자본의 이윤축적의 도구로 삼는 것이 곧 신자유주의의 특징이다. 그런데 사회공적영역 중 하나인 교육분야와 관련하여 그동안 교육운동진영의 논의와 대응은 주로 교육의 시장화로 인한 교육불평등 현상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점증하는 사교육비 부담과 교육비 지불능력에 따른 교육기회의 차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주를 이루었다. 그런데 이는 엄밀하게 말하면 교육이라는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 사이에 구매력의 차이가 존재함으로 그를 최소화하자는 식의 개량주의적 대응으로 왜곡될 위험이 상존한다.
더욱 문제는 교육분야의 시장화에서 나타는 교육노동자들에 대한 노동유연화에 대해 침묵하거나, 심지어는 교원평가와 같이 일상적인 구조조정과 노동통제 정책에 학습권 운운하며 동조하기도 하는 경향이 교육운동 안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자! 학교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그것이 교사든 비교사든) 고용불안과 노동통제에 시달리는데 어찌 학교교육이 제대로 될 것이고, 공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단 말인가? 학부모운동, 교육운동을 하는 내가 교육노동자들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학교를 둘러싼 충돌과 대립 그리고
자본가들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은 생산수단을 배타적 독점적으로 사적으로 소유하고 구조에 근거한다. 그리고 이 소유구조를 정당화하고 영속화하기 위한 것이 국가권력이다. 법률체계도, 군대와 경찰도 기본적으로 이를 위해 존재한다. 한편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인 국가장치들도 작동한다. 학교도 그 중의 하나이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지배계급의 논리를 학교교육을 통해 주입받았고, 그렇게 노동자들의 자녀들은 훈육되었고 지금도 우리들의 자녀들은 자본이 원하는 체제순응적인 노동자로 길들여지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자본의 의도대로만 일방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저들이 형식적인 수준에서나마 민주주의를 부정할 수 없고, 노동자 민중들이 더 많은 민주주의를,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할수록 자본과 국가권력이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듯이.
학교현장에서도 지난 20년간 이런 현상은 반복적으로 확인되고 있다. 무엇보다 전교조의 존재가 말해주고 있듯이 적지 않는 교사들이 국가권력의 시종으로 살아가길 거부하였다. 비록 노동조합이라는 이름에도 불구하고 조합원들의 상당수는 스스로를 여전히 교육노동자이기 보다는 교사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호명하고 규정하고 있지만.
때문에 자본과 국가권력이 전교조에 대해 거의 맹목적 증오에 가까운 히스테릭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바로 노동자들을 분할하고 상호 대립시키거나 협소한 이해관계에 가두는 방식으로 지배를 공고히 한다. 그리고 이른바 노동조합관료들과 일부 어용 집단들이 그에 부화뇌동하며 노동자대중들의 판단을 흐리게 한다.
이들은 국가권력과의 투쟁을 회피하면서 늘 현장정서와 조합원들의 의식수준을 들먹인다. 심지어 대중들의 요구에 따를 뿐이라면서 실상은 대중의 이해에 반하는 타협과 배신을 일삼는다. 이들이야말로 노동자계급의 적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대중의 정서, 대중의 상태에 근거한다는 미명하에 조중동식 참주선동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는 노동자대중들이 자신의 계급적 본능에만 충실할 수 없다는 것을 이들은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 검토할 ‘교원업무경감을 위해 학교행정업무 전담요원 배치 방안(이하 방안)’ 또한 이러한 사례가 아닐 수 없다.
교사를 위해 다른 노동자들은 희생돼도 되나?
지난 8월 자유선진당 소속 국회의원 정영희와 한국교원단체총연합은 ‘교원의 업무경감을 위한 학교행정 전담요원의 배치’라는 안을 제출하였다. 그리고 이 안에 근거하여 ‘학교행정업무 개선촉진법’을 제정할 것과 ‘지방교육자치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이번 국회에 상정할 예정이라고 한다.
제목에서처럼 이 방안은 교원 즉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경감해주기 위해서 학교행정전담요원을 둔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말 그대로라면 교사들을 위한 조치라는 것이다. 즉, 이 방안은 교사라는 집단을 위한 것임을 내세워 학교 안에서의 노동자들의 분할을 노골화하는 것이다. 그동안 자본과 국가권력이 비정규노동을 확대하면서 제출한 논리가 반복된다. 다시 말해 이른바 핵심업무와 비핵심업무를 나누어, 교사의 노동은 핵심이고 나머지는 주변적인 노동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방안은 “학교의 행정업무는 난이도가 높은 업무가 아니”라고 명시하고 있다.
문제는 이런 명분대로라면 교사들 안에서 이 안을 찬성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나의 우려가 기우가 되길 염원하나 상황은 그리 녹녹치 않다. 특히 학교라는 위계서열화된 집단속에서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다른 교육노동자들과의 관계 속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조건이나 업무적 관계에서 점하는 위치 그리고 평범한 교사대중의 의식수준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조금만 진지하게 사태를 직시해보자. 이 방안으로 이른바 교수노동 외 잡무 즉 교원의 행정업무가 줄어들 수 있을지도 의문이지만, 줄어든다고 가정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왜인가?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이 방안은 바로 기간 학교에서 행정회계직이라고 불렸던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기위한 도구로 악용될 것이고, 이는 결국 부메랑이 되어 정규직 노동자들과 교사들에게 겨누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욱 본원적으로는 정규직노동자들이 비정규직노동자들의 희생에 근거하여 자신의 근로조건을 개선하는 방안에 찬성하는 것이 과연 노동자로서 올바른 선택인가라는 점이다. 나아가 과연 교사의 노동은 핵심이고 나머지 노동은 비핵심업무인가에 대해서도 발본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물론 학교라는 특수성을 고려할 때 교사의 교수행위가 갖는 중요성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러나 엄밀하게 말하면 학교가 새로운 세대들이 사회구성원으로 성장해나가기 위한 공간으로 사회적 필요에 의해 형성된 것이고, 그 과정에는 교사외의 다양한 노동자들이 학생들과 함께 학교라는 교육공동체를 이루는 것이지 않는가? 그리고 소위 저들이 말하는 각종 보조라는 이름의 노동자들 없이, 또 급식노동자들 없이 학교가 돌아가는가? 이들 모두가 학교라는 공간에서 필요한 노동 아닌가?
그동안 노동위계화에 따른 임금격차와 사회적 지위의 차이를 문제제기 해 온 것처럼 학교현장에서의 노동위계화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실천하는 것이 노동조합과 활동가들의 역할일 것이다. 아니 적어도 다른 노동자들의 피눈물을 통해 나의 노동조건을 개선하자는 식의 편협하고 반노동자적인 태도에 맞서 싸우는 것이 존재의 이유가 아닐까?
비정규노동의 일반화, 구조조정의 일상화, 노동통제의 전면화를 위한 수단
방안이 제출되는 근거중 하나로 “교무행정직원에 대한 업무분장이 명확히 정해져 있지 않아 교사 및 사회보조원과의 갈등이 유발”된다는 것을 들고 있으며, 이를 위해 “전문화, 표준화, 전산화”하고, 기존의 비정규직 교무행정 노동자가 있음에도 ‘학교행정요원’이라는 새로운 직군을 만들어 해결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전문화, 표준화, 전산화는 노동유연화 전략에서 등장하는 전형적인 논리로, 실제로는 평가시스템과 맞물리면서 노동강도와 노동통제를 강화하며, 효율성 논리에 근거하여 구조조정을 일상화하는 것으로 나가게 된다. 실제로 방안 곳곳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우선 학교행정요원은 노동계약을 단위학교 학교장과 기간제 방식으로 체결하게 되어 있다. 이는 노동력의 사용자가 시도교육청이 아니라 단위학교 교장이 되는 것으로 공공기관에서 사용자성을 회피하는 수단이 될 것이며, 기간제 비정규노동을 일반화할 것이다. 현재의 행정회계직의 경우 멀쩡히 호봉제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지난정부에서 일부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거나 연봉제 계약직으로 전환하였는데, 이러한 기간제 직군의 등장은 바로 기존의 행정회계직이라 불리는 노동자들에 기간제 노동으로 강제하는 요인으로 작동할 것이다. 심지어 안은 그 근거로 “프로야구 선수에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음”이라고 예를 들고 있다. 실소를 금할 수 없는 이런 발상은 이들이 학교를 공적기제로 사고하고 있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다음 임금체계에서 성과급제이며, 이는 철저히 평가제도 근거한다. 방안은 “각 시도교육감은 정해진 학교행정요원의 연봉예산을 감안하여 업무성과에 따라 성과급을 차등지급하여야 한다”고 하였으며, 업무평가를 “하루 1회. 일주일 1회 학교장이 하도록” 되어 있다. 또 “점수에 의한 서열을 부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교무행정업무를 표준화하고 그 업무진행에 대한 평가 즉 점수화하여 서열을 부여하는 것은 곧 업무에 대한 계량화 수치화에 근거하여 그 점수에 맞추어 임금을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곧 불필요한 잉여노동인력을 구조조정하는 것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는 처음에는 교무행정업무를 해온 기존의 비정규노동자들을 1차 대상으로 할 것이지만, 이어 정규직노동자와 교사로 확대될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전교조 등에서는 과연 교사의 노동이 계량화 수치화가 가능하냐고 문제기 해왔지만, 교사의 업무였던 교무행정업무를 계량화 수치화한다는 것은 바로 교원평가제와 맞물리면서 교수노동에 대해서도 유사한 틀을 들이대면서 차등적 임금체계를 확대하면서 구조조정을 일상화하는 수단으로 작동할 것이다.
동시에 업무평가를 하루 1회, 일주일에 1회 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학교장의 평가점수가 곧 임금으로 연동되는 것은 곧 학교장의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학교행정요원이라는 노동자들에 대한 생사여탈권을 학교장이 갖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이는 학교행정요원에 그치지 않고 바로 다른 직군의 노동자들로 확산되게 될 것이며, 노동강도와 노동통제의 강화로 이어지게 될 것이다. 즉 학교행정요원의 일은 기존의 교무행정보조 노동자들의 일이었고, 교사들의 일이었던 업무영역이었다. 그런데 이 새로운 직군의 노동자에 대해 방안과 같은 노동통제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바로 기존 노동자들에게 확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이렇게 방안은 학교에서 비정규노동을 확대하고,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일상화하고 노동통제를 강화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게 될 것이다.
학교시장화를 위한 보완적 기제
방안은 명분은 교사들이 행정업무로 시달리니 수업에 전념할 수 있게 이를 해소해 주겠다는 것이지만 실상은 학교시장화정책에 교사들을 더욱 몰입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는 도입배경에서 분명히 확인되고 있다.
즉, “학교자율화 등으로 교사수요가 증대”하며, 특히 “방과후 교실”. “사교육 없는 학교” 등의 사업으로 교사들이 부족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인턴교사제나 방과후 학교 코디네이터 등의 제도가 도입되나 여전히 부족하므로 교사들의 행정업무를 덜어 여기에 투입하겠다는 발상인 것이다.
그런데 방과후 학교는 음악 미술 교육 등 특기적성을 위한 보완적인 장치가 아니라 일제고사의 도입과 함께 학교가 서열화된 평가시스템에서 뒤처지기 않기 위해 일제고사 교과에 대한 보충수업을 시키는 것으로 왜곡되고 있다. 또 사교육 없는 학교는 학원대신 학교에서 학원수업을 시키겠다는 것으로 실제로 학교를 학원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다시 말해 한국교육의 고질적인 병폐인 대학서열체제와 입시경쟁구조는 그대로 둔 채, 사교육비를 해결한답시고 아예 학교교육에서 입시교육을 전면화하고 학원화는 황당무계한 짓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학교시장화 정책에 교사들을 몰입시키겠다는 것이다.
나가며
청년실업을 해결하고 학력저하 학생을 지원하겠다는 미명하게 진행되고 있는 인턴교사제는 실상은 학교현장에서 교사의 노동마저 비정규노동으로 채우겠다는 발상에 다름 아니다. 지금도 학교에는 비정규노동은 확대추세에 있다. 정규직교원의 결원을 기간제교사로 채우고 이도 모자로 4개월짜리 인턴교사제를 실시하여 1년 미만 단기근로노동으로 채우려 든다. 또 ‘희망근로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기존의 학교비정규직의 업무를 6개월짜리 노동으로 전환시키려 든다. 그리고 그 최종 목표는 정규직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것이다.
순망치한이라고 했다. 지금 이명박정부는 내년부터 교원평가를 전면화 할 것을 천명하였다. 그런데 지금 진행되고 있는 학교에서의 비정규노동의 확대에 손 놓고 있다가는 정규직노동자의 구조조정이 전면화될 때 과연 누가 함께 할 것인가? 또 이들 교육노동자들이 짤리고 고용불안에 시달리게 되면 그 최종적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갈 것인가? 바로 학생들이 아닌가? 노동자들의 자녀들이 아닌가? 바로 우리들 전체의 문제가 아닌가?
그럼에도 현실은 만만치 않다. 사태가 이리 심각해도 여전히 안이하고 편협한 경향들은 분명 존재한다. 일예로 “나는 실력있는 교사니까 예외일꺼야!” “내가 몇 년을 근무했고, 우리 학교 실장님이 얼마나 잘해주시는데 설마 내가 해고당할까?” “그건 교사들이나 노동자들 문제고 내 아이는 좋은 학원 보내면 되니까 상관없는 일이다!” 라는 류의 사고방식 또한 결코 없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현실 때문에 노동조합이 필요하고, 활동가들이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그것이 운동이 아니던가? 진정으로 우리가 교육이 상품이 아니고 보편적인 권리로 서는 세상을 원한다면 이제 교육노동자들의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대해야 한다. 교육운동진영은 이 시점에서 교육노동자들에 대한 구조조정과 학교에서의 비정규노동의 확대에 대해 자신의 과제로 설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또한 이문제가 전체 노동자 민중의 문제임을 알리고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기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교육은 상품이 아니다. 교육은 노동자 민중이 정당히 누려야할 권리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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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정 님은 범국민교육연대 사무처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