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에 대한 보복성 징계라고는 하지만 그 명분이 일제 고사 거부였다는건 우리 교육의 현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듯 했다. 교사들에게 중징계를 가하고 체험 학습에 참가한 아이들을 모두 무단 결석으로 처리하고서라도 정부가 얻고자 한 건 무엇이었을까. 한쪽에서는 책상 한 가운데를 가리고 낑낑대며 시험을 치고 있고 한쪽에서는 산과 들을 내달리며 뛰어노는 아이들의 모습이 비교되며 방영되던 체험 학습 당일의 밤 아홉시 뉴스를 보며 나는 새만금 간척 사업장의 콘크리트 구조물 속으로 가라앉던 수많은 갯벌의 생명들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이들의 영혼을 쇳물속으로 던지고 있는 건 아닌가.
체험학습 동행으로 징계를 당한 박현옥 선생님은 초등학교 교사이자 초등학생 아들을 둔 엄마이다. 그이는 집회 내내 자주 목이 메었다. 만수에 달해서 곧 넘칠 것 같았던 그이의 슬픔 때문이었을까. 목이 메여 목소리 끝이 가늘게 떨릴 즈음이면 나는 그이의 다음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다 알 것 같았다. 말보다 더 선명하게 전달되는 것이 있다. 그이의 감성이 곧잘 출렁이며 전해 와서 나도 자주 눈물을 흘렸던 그런 날들이었다.
인터뷰 내내 나는 오히려 내담자가 되어 그이에게서 많은 용기를 얻었다. 그이는 아이들과의 교감을 사랑했고 아이들의 감성을 흡수해서, 어느덧 함께 아이가 되어 교실과 운동장을 뒹구는 그런 사람이었다. 십오년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쳐 온 그이는 아이들을 통해 넓어지고 부드러워진 사람이었다.
방학인데도 초등학교 아이들이 학교로 등교를 하는 몹쓸 여름이 시작되었다. 이제 여름이 되어도 아이들은 매미 울음소리를 듣지 않고 냇물을 첨벙대며 버들치를 잡지 않는다. 여름 방학의 대부분을 보충 수업을 하며 학교에서 보내고 밤이 깊도록 학원을 옮겨 다닌다.다가 오는 시월에 실시되는 일제 고사에서 학교의 서열을 높여야 한다는 학교장의 요구에 교사들은 침묵하며 따라가고 있다. 경쟁에 대해 본능적인 불안감을 안고 사는 이 시대의 부모들은 아닌 줄 알면서도 아이들을 깨워 아침이면 학교로 내몰고 있다. 방학이 사라져 버린 아이들의 영혼에 이제 어떤 생명이 다가와 휴식을 취할 건가.
전교조 울산 지부의 수석 부지부장이기 이전에 십오년간 아이들을 가르치며 살아온 박현옥 선생님의 이야기를 통해 다시 한번 있는 그대로의 아이들을 바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아이들은 골대를 향해 내몰리는 축구장의 공이 아니라 저 스스로 땅으로 떨어져 줄기를 올리고 꽃을 피우는 씨앗이라는 것을.
다음은 인터뷰 전문이다.
▲ 박현옥 전교조 울산지부 수석부지부장 |
도시 아이들은 훨씬 우울하죠
처음 발령받았던 곳은 어디였어요
첫 발령은 구십 사년도 경남 함양에, 전교생이 서른 여섯명이고,우리반 아이들은 일학년 한명,사학년 세명. 구십 사년 오월에 발령 받아서 일년 못되서 십개월만인 그 다음해 이월에 폐교된 학교, 거기서 첫발령이 시작되었죠. 삼년 있다가 울산으로 와서 십이년동안 울산에 있었고, 사년씩 세학교를 다녔어요.
시골 학교 생활은 어땠나요
저는 시어머니 모시고 살고 싶고 그래서 큰 도시보다 함양에 냈어요. 다른 친구들은 삼월에 절반 가까이 발령이 났고요, 저는 두달 기다렸다가 오월에, 발령을 기다리던 그 두달도 저한테는 굉장히 소중했어요. 바람도 쐬고 놀러도 다니고. 제가 처음 발령 받았던 학교에 평교사가 네명이었는데 점심도 같이 해먹고 아침에 내가 밥 앉히면, 시골 학교는 마을 아저씨들이 다 주사 아저씨들이거든요, 점심때가 되면 다 같이 밥 해먹고 그런 학교예요. 학교에 운동회를 열면 마을 전체 잔칫날이 되는, 큰 감나무 감 같이 따먹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다 학교에 땅을 기부하셨던 그런 학교였어요. 평교사가 네명인데 그때는 비합이었는데, 한명만 빼고 다 전교조 교사였던 그런 학교였죠.
시골 아이들과 여기 도시 아이들이 많이 다르던가요
다르죠. 시골 아이들은 반의 삼분의 일이 결손 가정 아이들이죠. 부모들이 이혼을 했거나 그렇지 않더라도 도시에서 부모들이 먹고 살기 바쁘니까 시골 할머니 할아버지께 아이들을 맡겨 놓은 조손 가정, 그런 경우가 많죠. 도시 아이들이 물리적 환경은 좋다고 할 수 있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시골 아이들에 비해 훨씬 우울하죠. 시골 아이들은 부모님이 옆에 안계신다는것 뿐이지만 여기 도시 아이들은 그렇지 않죠.
도시 아이들이 우울하다고요?
자기들은 우울하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내면에 내적인 힘이 없어요. 좀 당하면 따돌림 당하면 견뎌내질 못하고 대개 외로워해요. 부모님들도 안 그런 것 같지만 아이들을 코너로 몰고 있죠. 엄마, 아빠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엄마, 아빠에게서 풍겨 나오는 눈빛으로 아이들은 알죠. 공부를 잘못하는 아이들은 우리 엄마, 아빠는 나를 별로라고 생각할 것이고 나는 그런 아이가 못되니까 엄마, 아빠는 속상해 할 것이고 나를 부끄러워 할 것이고 그런 생각을 하죠. 저는 오륙학년 아이들을 많이 맡았는데 그 아이들을 보면 주로 또래 아이들 한둘 정도도 친한 친구가 있는 아이들이 별로 없고 친구가 있는 아이들조차도 친구들이 다른 아이들과 놀거나 자기와 안 놀까봐 불안해하죠. 시골 아이들은 안 그렇거든요. 자생력이 있어요. 심적으로 흔들리거나 얕거나 그렇지 않아요. 도시 아이들은 자기 기반이 없어요. 시골 아이들은 배짱이 있어요. 다쳐서 뼈가 허옇게 드러나도 놀래지 않아요. 제가 놀랬어요. 가을에 벼 다 베고 나면 걔들 노는 데가 다 그런 데죠 학교 운동장이거나. 제가 저녁 일곱 시 사십분에 집에 가는데 그때까지 운동장에서 놀다가 제게 놀러 오죠. 도시 아이들은 늘 초조한 눈빛, 청소하자 해도 밖에서 학원차가 지나가 버릴까 봐 불안 해 하고. 엄마, 아빠는 다 생업에 바쁘잖아요. 집에 계신 엄마들도 바쁘잖아요. 왕따는 사회가 시키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 왕따 시키는 건 정작 부모님들이 아니냐고, 부모님들이 우울 하잖아요. 이렇게 살다가는 나중에 돈 못 벌고 무능하면 오히려 아이들에게 손가락질 받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되기 전에 아이들 마음 건강하게 만들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되기 전에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신뢰를 보여줘야 되잖아요. 돈이 아니더라도 부모 노릇할 수 있는 그런.
우울함의 대물림 같네요. 아이들을 돌볼 여유조차 없이 생업에 쫓기는 절박한 부모들도 많이 있으니까요.
그렇죠. 말로 안 해도 대물림되죠. 기운이 느껴지니까요. 스승의 날 편지를 받잖아요. 그중에 삼분의 일은 다른 반 아이들이예요. 우리 반 아이 언니 오빠이거나 그런 아이들이예요. 지금도 일산 해수욕장에 가보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서빙을 하는 학생들이 인사하러 와요. 우리 반 했던 아이들도 있지만 다른 반 아이였던 아이들이 반갑다고 인사를 하거든요. 그건 제가 잘했다는게 아니라 그만큼, 아이들이 소통할 수 있는 교사가 그만큼 적었다는 거죠.
이러다간 유치원까지 다 스며 들거에요
선생님께서 처음 울산에 오셨을 때도 지금처럼 일제 평가가 있었나요
거의 없었죠. 이런 일제 고사는 작년 옿해 처음 겪죠. 아, 있긴 있었죠. 광역 수준 평가를 할려고 해서 저희가 표집으로 하라고 엄청 싸웠죠. 이천 이년도에 엄청나게 싸웠죠. 그 때도 표집을 전집으로 돌릴려고 해서 엄청 나게 싸웠죠.
실제로 실시된 적이 있었나요
실시했죠. 그때부터 풀려 가지고 한두 해는 막았는데 그때부터 죽죽 했는데 하지만 이렇게 전면적인 건 작년 올해가 처음이죠.
일제 고사를 치기 시작하면서 시험에 대비해 학교나 집에서 풀어야 할 과제도 많아지고 아이와 부모, 선생님들 간의 갈등도 점점 깊어지는 것 같아요
과제를 해가지 않으면 성실하지 않다고 봐버리잖아요. 잘하는 얘들이 있으니까 비교되니까요. 안 해가는 애들인들 마음이 편하겠어요. 그런거예요. 애들은 공부 잘하고 싶고 숙제 잘하고 싶죠. 몸이 안 따라 주니까 못하는 거죠. 우리 아이도 숙제 안 해가면 부담 느끼거든요. 일기도 써야 된다고 느껴요. 우리 아이는 부모가 강제하지는 않지만, 아빠는 써라고 하거든, 엄마는 쓰고 싶을 때 써라고 하지만 아빠는 쓰고 싶지 않지만 그래도 쓰는게 어떻겠니 저는 아이 담임 선생님께 맨 처음 이야기 드리는 게 애가 아직 일기쓰기나 공부에 욕심이나 의욕이 없다, 그런데 내 아이가 바보가 아닌 한은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 때가 언제인지 모르더라도 좀 기다려 주시라, 멍한 눈으로 앉아 있더라도. 지금 신문도 보거든요. 롯데가 이겼나 어쨌나, 체험 학습 간다고 내일 날씨가 어떤가 다 보고 앉아 있더라고요. 저는 그게 애들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일제고사 거부하고 체험학습 조직할 때 그 때 인원이 정말 많았거든요. 진짜 전화 통화한 인원만 한 백 명도 넘은 것 같아요. 그렇게 드러나는 인원이 백 명이었으면 안 드러나는 인원은 열배, 스무 배도 넘었을 거예요. 그만큼 고통 받는 사람이 많았다는 거거든요. 중고등학교는 한풀 접고 가는 게 있어요. 어차피 성적 나온다, 과목 별 석차 나온다 하는 반면 초등은 아니지 않느냐는 생각을 부모님들께서 하신 것 같아요. 진짜 초등학교는 연막 쳐서라도 막아야 하거든요. 기름기 스며들 듯 다 스며들어 버리니까. 이러다간 유치원까지 내려 갈 거예요. OMR 카드도 지금은 삼학년부터 쓴다고 하지만 일이학년부터 돌리는 학교도 있거든요.
누가 아이들의 눈물을 저렇게 빼나 싶은게 정말
초등에서 공부라는 의미가 어떤걸까요. 너무 많은 과목을 하고 있는데 이게 정말 다 필요한건지 모르겠어요
지금 몇과목일것 같아요? 과목 정말 많아요. 국어, 도덕, 수학, 과학, 체육, 음악, 미술, 실과,영어, 특별 활동, 재량 활동, 한자, ICT, 요즘은 독서 인증제도 시험 보거든요, 줄넘기도 시험 치고. 한 스무 개는 되는 것 같습니다. 실제 교과서는 한 열 대여섯 개 되거든요. 거기다가 한자 하는 학교, 어느 학교는 사자소학을 가르친대나, 다 담임들이 해야 하거든요.학교에서 잘 한다고, 성과물 낸다고 교과서 안의 내용 짜깁기 해서 그 학교만 주는 그런 책도 있어요. 초등 공부요, 저는 자기에게 맞는 학습 방법 찾기, 그런 것 같아요. 그 다음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던져 주는 정도가 초등 공부라고 생각해요. 역사의 그 많은 내용을 다 어떻게 외워요? 부모님들에게 초등학교 오륙학년 시험지 던져 주면 십 점 이십 점도 안 나올 거예요. 초등학교 이학년한테 통일이 왜 되어야 하나 그런 걸 물어 보니까. 그리고 우리 집 애가 이달 학습 같은 문제집을 풀다가 예를 들어 어른에게 왜 높임말을 쓰는가하는 문제가 나오면 아이는 그냥 안 그러면 혼나니까 그렇게 쓰죠. 쓰고는 답이 아닐까봐 시달리죠. 네 답이 답이야 하고 내가 말하지만 그럼 뭐해요 학교 가서 똑같은 문제 나오면 그게 답이 아닌데. 어른들의 말이 답이 되는 거죠. 끊임없이 갈등 구조를 살살 건드려 주는 것, 그 정도가 초등에서 해야 할 단계라고 보거든요. 기본적인 연산, 수셈, 판별 능력, 습관, 학생 자치, 학급 자치, 이런 것. 우리 모둠에서 내가 어떻게 행동하면 이 아이는 어떨까 그런 걸 생각하는 것도 배우고 젤 중요한 게 협동 학습, 남 도와 주는 것, 더불어 사는 삶, 내가 지금 하나를 주면 당장은 손해여도 두개, 세 개로 나중에 더 크게 돌아온다는 것, 그런 경험을 하게 하는,저는 그런 장이 초등학교라고 생각하거든요. 중고등학교는 더 그렇게 해야 하는 장소지만 허용되지 않고 초등학교만큼은 자연이나 생명이나 환경이나 이런 걸 가르쳐서 몸의 근간, 정신적인 근간을 형성하는 단계라고 생각해요. 유아 초등에서 해야 할 단계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시기를 주질 않잖아요, 벌써 살을 붙여 버리니까.
선생님께서도 지금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과목이 좀 과하다고 생각하시는거네요
좀 과한 정도가 아니죠. 사회 교과만 봐도 이분의 일, 삼분의 이 정도는 중고등학교 가서 배워도 될 내용들이죠. 제 친구 중에 초등학교 교사하다가 지금 대학교 강의 나가는 친구가 있는데 그 친구가 어린이 철학을 공부해요. 그 친구가 도덕 교과를 가르칠 때 그 친구는 배려에 대해 일주일 내내 토론식 수업을 하는 거예요. 토론 수업을 해서 그 기록을 노트북에 남겨요. 학부모에게 보내고 아이들에게 보여 주고 나중에 다시 보여 주고는 네가 그때는 그랬지만 지금은 어떻게 생각 하니 다시 물어 보는 토론식 수업을 진행하는 거예요. 그 선생님 밑에서 자란 아이들은 바르잖아요. 자기 이야기를 건넬 줄 아는, 전 그런 것 가르쳐 주는데가 초등학교라고 생각해요. 그런 걸 아이들에게 하고 싶었어요. 아까도 이야기 했지만 아이들은 늘 찾아 와요. 고민이 있으면 찾아 오고 시험치고 못 쳤다고 생각하면 그 큰 덩치가 와서 안겨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거예요. 공부 잘하는 애였거든요. 왜 그래 하니까 오늘 일제 고사 쳤는데 너무 못 친 것 같다고,너무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근데 이 녀석이 두 달 있다가 또 일제 고사 치고 점 수 나온 날, 저는 일학년 담임이라 점수 나온 줄도 몰랐는데 청소하다 말고 빗자루 던지고 달려 와서 또 우는 거예요. 선생님, 제 평균 점수가 칠 점이나 낮아졌어요 하며 정말 엄마 아빠가 돌아 가셔도 저렇게 울까 싶을 만큼 서럽게 울더라고요. 누가 아이들을 저렇게 눈물을 빼나 싶은 게 정말 이건 아니다 싶더라고요. 저 나이에는 사랑도 꿈꾸고 내 부모가, 또 자기가 어떻게 사나 둘러도 보고 주위도 둘러 보고 나를 사랑해 줄 친구도 사귀고 이럴 나이인데, 몇 점, 학원 들어가도 월반 하잖아요, 에이반, 비반, 씨반. 씨반 들어가면 인생 끝난 것처럼 살다가 그러다가 에이반 들어가면 성공한 것 같고, 다람쥐 쳇바퀴돌 듯 그렇게 살죠. 그런데 교사들 대부분 침묵하며 살죠. 그런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전 다 못 보지만 아이들은 다 성장하는 거예요
선생님은 초등학교에서 어떻게 수업을 하셨나요
아이들하고 땀 흘리는 것 너무 좋아 해요. 체육 전담 선생님이 따로 있는 것 싫어요. 음악,미술, 체육은 제가 해야 해요. 그런데 음악, 미술, 체육은 전담 교사를 따로 두잖아요. 주지 교과 공부가 안 되는 아이들은 음악, 미술, 체육에서 끼가 발하잖아요. 그 아이는 그 순간만큼은 자기가 일등이라는 걸 보여 줄 수 있는데 안하면 볼 수 있는 눈이 없는 거예요. 우리 반은 줄창 나가죠. 제가 초등학교 이학년한테 달리기 지거든요. 꼭 달리기 하재요. 져주는 거지, 아니 진짜 지는 거지. 그러면 아이들은 쾌감을 느끼는 거죠. 저는 죽자고 뛰어요. 죽자고 뛰어도 맨 날 져요. 저는 훌라후프를 못 돌려요. 세 개 정도 밖에 못 돌리거든요. 그러면 아이들이 쾌감을 느껴요. 내가 못하는 것 열개 쫙 이야기 해주잖아요.
초등학교 교실 수업에서는 특히 산만한 아이들이 잘 적응을 못하는 것 같아요
제가 제 수업하는 것 언제든 들어와서 구경하라고 하는데 우리 반 수업하는 걸 후배 교사들이 들어와서 보고 웃고 나가더라고요. 개판 오 분 전이죠. 오 분 있다가 돌아다니고 떠들고, 십분 앉았다가 돌아다니고 사십분 수업인데 반은 놀거든요. 황당하죠. 그런데 애들은 진짜 좋아 해요. 저도 그런 수업을 늘 해왔던 게 아니예요. 일제식 수업 했었어요. 때리기도 많이 때렸고요. 그런데 오륙년 전 부터는 손바닥 때리는 일이 거의 없죠. 일 년에 한두 번, 안 때리는 사람이 때리니까 그게 더 큰 상처가 되더라고요, 그렇게 기억하더라고요. 시간이 지나면 애들은 다 알죠.
수업 방법을 바꾸게 된 그런 계기가 있으셨나요
그 때는 못 배웠으니까요. 그런 교수, 학습 방법을 저도 받아본 적이 없으니까, 교대에서도 그런 것 가르쳐 준 적이 없으니까요. 계속 연수를 찾아 듣다 보니까, 이런 연수 저런 연수,연수 뿐만 아니라 만나는 선생님들한테 이야기 들어 보면 이렇게도 수업하고 저렇게도 수업하고 이렇겠다 저렇겠다 적용을 해보니까 엉덩이 안 붙이게 하는게 제일 좋아요, 교실을 떠나면 좋고.
수업 방식이 바뀌면서 처음엔 좀 혼란스러우셨겠어요
처음엔 이게 수업 맞아 이럴 정도였죠. 쟤들이 진짜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 거 맞아? 내가 알려 주는 것 알고 하는 게 맞아? 싶었는데 그건 제 기우였어요. 애들은 쏙쏙 받아 들여요. 보통 보면 도덕 시간에 무슨무슨 역할극 준비해서 한 두팀 나와서 발표하다 보면 종치고 그러는데 전 그렇게 안 해요. 이 모둠이 저 모둠 가서 하는 거예요. 저희들끼리 다 다 하는 거예요. 전 다 못 봐요. 못 보지만 아이들은 다 성장하는 거예요. 보통 교사들은 이 팀은 저 팀 만나라고 다 지정해 주지만 전 그런 것 안하고 한번 만났던 팀들은 두 번 안 만나기, 다음 달 자리 정할 때는 아무리 친해도 두 번 안하고 새로운 친구하고 앉기, 끼리끼리 그건 것 안하고 골고루 앉기, 그거 하나 약속, 그러고는 저는 가만히 기다리는 거예요. 그러면 애들이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하더라고요 전 그걸 늦게 알았어요.
겉으로 보기엔 소란스럽지만 아이들 스스로는 엄청난 성장을 하는거네요
그럼요, 중고등학교도 그렇게 수업하면 좋겠어요. 이니 그런 걸 온 몸으로 경험하고 겪어 본 선생님들의 모임도 있고 그런 걸 실천하는 선생님들도 많기 때문에 그런 걸 하나하나 모아 나에게 맞고 아이들에게 맞는 걸 실천해 보면, 전 장담하건데 아이들이 정말 학교에 즐겁게 왔어요. 학부모님들도 편하게 왔어요. 학력 때문에 행복한 아이들 십프로, 하지만 얘들도 불안해하죠, 일등은 일등이라서 불안하고. 다른 아이들은 다른 데서 재미를 찾거든요, 그래도 이 재미를 어느 틀 안에서 허용을 하느냐 안하느냐, 같이 놀아 주느냐 아니냐 이게 아이들이 좋은 선생님 나쁜 선생님 가름하는 잣대더라고요. 선생님들이 그런 좋은 교육을 할 수 있는 연수를 많이 받으셨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고 학부모들도 우울증으로부터 벗어나게 만들어 주고 그렇게 했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부모님들이 우울하시면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하겠어요. 부모님들이 행복 할 수 있는 방법을 찿으시고 나한테 좋은 기운 주는 사람 만나고 그래서 행복하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