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내 옆으로 버스가 굉음을 내며 지나갔다. 그러면서 자전거 행렬을 앞지르더니 행렬 앞 쪽에 있는 친구의 어깨를 커다란 버스가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깜짝 놀랐다. 우리는 신호에 걸려있는 버스를 가로막았다. 그리고 버스 운전자에게 너무 위험한 일이었다고, 아무리 자전거가 느려도 그렇지 잘못했으면 사람이 죽을 뻔도 한 일이니 사과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버스 운전자는 퉁명스러운 말투로 ‘미안해요’라는 말을 한마디 하고 다시 가던 길을 가려고 했다. 전혀 미안해하는 말투나 표정이 아니었다.
우리가 계속해서 제대로 된 사과를 요구하자, 오히려 왜 자전거가 자동차를 피해서 한 줄로 가지 않고 차선을 막고 두 줄로 가느냐고 따졌다. 사과를 할 마음은 전혀 없는 듯했다. 사람을 죽일 뻔도 한 일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듯했다. 우리는 자전거를 스치고 지나가는 일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했고, 차선도 많았으며, 자전거도 도로를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며 거듭해서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버스 운전자는 사과를 했고 버스는 다시 출발했다.
도심 도로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타고 가면 흔히 겪게 되는 일이다. 하루에 한두 번은 겪게 되는 일이니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이 된다. 뒤에서 단순히 빵빵거리는 사람은 그래도 예의가 있는 사람이다. 심한 사람들은 자동차 유리창을 내리고 욕을 해대기도 하고, 자전거 옆으로 아슬아슬하게 지나치는 사람도 있으며, 자전거 바로 뒤 1미터도 채 되지 않는 거리에서 계속 쫓아오며 빵빵거리는 사람도 있다. 그러다가 자전거가 갑자기 멈추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러는지.
심지어 어떤 자동차는 자전거가 비켜주지 않으니 위협을 한다며, 자전거 뒤를 살짝 받아서 크게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결국 도로를 이용하여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목숨을 걸고 타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처음에는 겁도 많이 나고 조심도 많이 하게 되어 편하게 돌아다니기 위한 자전거가 오히려 심한 스트레스를 주게 되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인식에서 정책까지 갈 길이 멀다
2009년 현재 (선진국이라고들 말하는) 대한민국에서 자전거에 대한 인식은 이 정도 수준이다. 자전거는 결코 대안적인 교통수단으로 취급되지 않고 있고, 자동차 운전자에게는 걸림돌로만 인식될 뿐이다. 특히 교통수단이라기보다는 레저수단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이것은 자전거를 탈 때의 옷차림에서 많이 느끼게 된다. 그냥 평상복 차림으로 자전거를 타고 도로에 나가보면 자동차들은 유난히 빵빵거리고 방해자로 취급을 한다. 하지만 헬멧에 선글라스, 져지, 쫄바지, 버프, 클릿슈즈를 하고 고급스럽게 도로에 나간다면 차들은 무시하지 않고 오히려 멋있다고 생각하는 듯 쳐다보곤 한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자전거 선수들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결국 사람들은 자전거를 교통수단이 아니라 레저수단으로만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자동차를 탈 때에는 아무 옷이나 입지, 마치 레이싱을 하는 것처럼 옷을 갖춰 입을 필요는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자전거를 도로가 아닌 자전거 전용도로에서 타면 되지 않는가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자전거 전용도로를 이용하게 되면 자동차와 마찰이 생길 이유도 없고, 빠르게 이동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자전거 이용시설은 그리 만만하지가 않다. 일단 자전거 전용도로가 현저히 부족하다. 자전거 도로는 자전거 전용도로,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 자전거-자동차 겸용도로로 분류할 수 있다. 자전거 전용도로가 절실하지만 현재 대부분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가 대부분이다.
실제로 수원의 경우 자전거 도로가 200킬로미터가 넘다고 하지만, 자전거 전용도로는 없다.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는 우리가 흔히 인도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도에 색깔로 구분해놓거나 선만 그어놓은 자전거도로이다. 따라서 빠르게 이동을 할 수도 없을뿐더러 보행자와의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고, 그 사고의 책임은 거의 대부분 자전거 이용자의 몫이다.
자전거 보관소는 또 어떠한가. 1995년 ‘자전거 이용 활성화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 전국 대부분 도시의 곳곳에 자전거 보관소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자전거 보관소라는 것은 그저 자전거를 묶어놓을 수 있는 장소일 뿐이다. 자전거 도둑들로부터 안전하지도 않고 갈수록 자전거 폐차장이 되어가고 있다. 또한 장거리 이동을 할 때를 대중교통과의 연계도 중요한데 버스는 불가능하고, 지하철마저도 이용하기가 어렵다. 지하철에 자전거를 싣기 위해서는 접는 자전거이거나 가로, 세로, 높이를 더한 길이가 158센티미터 이하인 물품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자전거를 타고 서울에 갔다가 일이 생겨 지하철에 싣고 오려하다가 지하철역 직원과 한참을 싸우고 결국 몰래 지하철에 싣고 왔던 경우도 있다. 이외에 자전거 보험과 관련된 문제, 각 건물마다 샤워시설 구비의 문제 등도 안전하고 쾌적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권리를 위해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시장갈 때는 자동차, 고향 갈 때는 자전거?
지난 4월 20일, 이명박 대통령이 라디오 연설에서 ‘자전거 타기 활성화’를 약속하면서 자전거는 주목받게 되었다. 국내 자전거 업체인 ‘삼천리’는 주가가 폭등했고, 각 지자체장들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언론들은 앞뒤를 다투며 자전거가 얼마나 친환경적인가에 대해서 예찬을 했고, 심지어 이제는 경찰들도 자전거를 타고 순찰을 하겠다고 하니 말 다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기뻐해야 할 자출족(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사람들)은 전혀 반가워하지 않았다. 그것은 정부의 자전거 정책이 전혀 ‘실용’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1조 2456억 원을 들여 2018년까지 3114킬로미터의 자전거 길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정책은 출퇴근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는 바닷가와 4대강 주변, 그리고 새로 만들어지는 도시에 자전거 길을 만들겠다고 했을 뿐 기존의 도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니 ‘시장갈 때는 자동차, 명절에 고향 갈 때는 자전거?’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며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비판을 무마하기 위한 정책이라고 비판받는 것이다. 결국 이런 비판에 대하여 정부는 기존 도시의 자전거 길은 지자체에서 알아서 하는 것이며 정부는 도시간의 연계만을 고민하는 것이라는 궁색한 핑계를 말했을 뿐이다.
또한 ‘녹색성장’을 이야기하는 정부는 4대강 살리기를 말하지만 결국 환경을 파괴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있다. 생태계 보존을 위하여 자전거를 이용한다면서 생태의 단절을 만들어내고, 흙을 덮고 아스팔트를 깔아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내는 것은 모순적이지 않은가? 자전거 전용도로가 필요하지만, 기존의 도로를 ‘다이어트’하여 만들어내는 것이 아닌, 새롭게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해 반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더구나 환경파괴를 막고 자전거를 활성화시키려면 대기오염을 발생시키고 석유자원을 사용하는 자동차를 줄일 수 있도록 자동차 정책을 변화시켜야 하지 않는가.
그렇다면 지자체에서는 자전거 정책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가? 지자체도 사정은 마찬가지일 뿐이다. 2007년에 제정된 ‘수원시 자전거이용 활성화에 관한 조례’를 보면, 자전거 도로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나오지 않고 그저 자전거 교육에 대한 이야기와 자전거 주차장에 대한 언급만 나올 뿐이다. 모든 시민은 ‘안전하고 쾌적하게 자전거를 이용할 권리’를 갖는다고 하지만 현실에서 자전거는 애물단지일 뿐이다.
얼마 전 5월 28일에는 수원시의회에서 자전거 보험가입과 자전거 교실 운영 지원을 규정하는 조례안을 만들었다. 자전거 이용 활성화를 위해 시민들의 안전과 불의의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시범학교와 직장, 자전거 관련 행사 등에 참여한 시민이 자전거 보험에 가입하거나 보험료 일부를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또한 자전거 이용의 활성화를 위해 자전거 교실 운영 등에 대해 위탁하고 비용을 보조하거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사항을 지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또한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생각이다.
자전거 보험은 필요한 것이지만, 자전거 전용도로도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금 당장 우선순위로 두어야할 만한 것은 아니다. 또한 현재 자전거 보험은 무척 가격도 비싸고, 시에서 지원을 해준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1만 원씩 1년에 12만 원을 보험료로 낸다면 누가 가입을 하겠는가. 보험료와 자전거 값이 비슷하다면 누구도 가입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자전거 교실 운영을 위탁하여 비용을 보조한다는데, 무료로 자전거를 가르쳐주는 곳도 많은 상황에서 관변단체들의 재정 나눠먹기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생각일까?
결국 정부와 지자체의 자전거 정책에는 자출족과 소통하려는 시도가 없다. 그렇기에 자전거를 타기 위해 가장 시급한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그들은 자전거 전용도로가 가장 시급하다는 것을 모르기에 사람들에게 가장 보여주기 쉬운 사업들을 펼치고 가장 추진하기 쉬운 정책들을 마련한 뒤 자신들은 자전거 정책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자전거면 충분하다!
자전거를 타게 되면 어떠한 장점이 있을까? 몸을 튼튼하게 단련할 수 있고 차비를 아낄 수 있으며 환경을 보호할 수도 있다. 하지만 가장 커다란 장점은 자전거는 자신의 체력 안에서만 탈 수 있다는 점이다. 체력에 따라 갈 수 있는 거리는 달라지겠지만 자신이 힘들면 자전거에서 내릴 수밖에 없으며 쉬어 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까지 석유에너지를 통한 교통수단은 자신의 힘이 아니기에 한계를 모르고 계속해서 발전해왔고 사람들은 더욱 빠른 것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제 석유 생산량이 줄어들고 있고 기후변화로 인해 지구에서 인간이 살기는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 결국 인간이 지구에서 살아남고 지구가 살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왔던 효율과 빠름의 철학이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자동차와 자전거의 관계에서는 강자와 약자 속에서 강자만이 살아남게 되었던 우리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도로에서 자동차들이 자전거를 보면 그렇게 빵빵거리는 것도 자신보다 느릴 수밖에 없는 자전거가 약자이기 때문이다. 약자를 보면 자신이 강자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기 때문인지 자동차는 자전거의 느림을 참지 못한다. 결국 약자에 대한 배려가 없는 사회 속에서 자동차는 자전거를 항상 방해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자전거와 보행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는 자전거가 강자가 된다.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다면, 자전거도 자동차와 같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자전거 정책은 발전되어야 한다. 하지만 자전거 산업이 발전하면 안 된다. 자전거를 산업으로서 인식하는 순간, 자전거는 더 이상 생태적인 대안적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이기적인 발전의 도구가 될 뿐이다. 자전거가 발전하는 것도 결국은 자원의 고갈을 유도할 뿐이다. 더 이상 자전거가 좋아지지 않아도, 새로운 자전거 전용도로를 만들지 않아도, 조금 더 빠르게 이동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도 충분히 자전거는 대안 교통수단으로서 기능을 할 수 있다. 빠르고 강한 것만을 요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 바뀌고, 자동차를 줄이고, 주변의 여건들이 조금씩 변화된다면, 우리에게는 자전거면 충분하다.
‘바람난 자전거’(http://cafe.daum.net/wind-bike)는 지난해 11월 수원지역 시민단체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생활 교통수단으로서 자전거를 홍보하고, 제대로 된 자전거 정책을 마련하기 위해 만들어진 자전거 동호회로 현재 카페 회원 수는 80여 명이고, 활발히 활동하는 회원은 20여 명 정도가 된다. 아직은 초창기라 수원지역을 돌아다니며 자전거를 타고 있을 뿐이다.
- 덧붙이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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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이 님은 '바람난 자전거' 회원입니다
이 글은 격월간 <세상을 두드리는 사람> 2009년 7-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